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가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가치
잠언 1:·1-7
우리가 시내에서 또는 교외에서 식사를 할 때면 의례히 식당 간판에 ○○○전문점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그 분야의 음식에 대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전문가(專門家; specialist)가 되려면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최소한 10년 이상을 그 분야에 종사하거나 연구를 해야 전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사는 11년을 공부해야 전문가가 될 수 있고, 신학도 최소한 10년 이상을 그 분야에 연구해야 약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문가 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도 이 사회에서 가장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하면 대학교수일 것입니다. 그들은 엄청 공부를 한 사람들입니다. 초등학교6년 중학교3년, 고등학교3년, 대학교4년, 석사과정3년, 박사과정4년, 유학3년 정도를 하니까 최소한 20년에서 25년 안팎을 공부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평생을 공부 하는 사람들입니다. 새로운 논문들을 발표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가히 그 분야에 전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상 최대의 전문가는 역시 솔로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솔로몬은 박사학위가 엄청 많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지식으로 치지 않았습니다. 1절에서 7절을 보면
1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2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3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4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5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6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참으로 지혜 있는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오늘 첫 번째로
I. 여호와를 경외하는 참된 지식(7절)
7절 상반절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 했습니다. 문자적으로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처음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지식의 처음이 되려면 여호와를 경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지식인이라면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혜는 하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잠언(lv;m;;마샬)이라는 말은 ‘속담’ 또는 ‘격언’이나 ‘비유’입니다. 1절은 이 잠언의 출처를 말하는데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이 말한 격언집’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속담이라고 해서 별것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라마다 속담과 격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속담들이 있기 때문에 잠언이 꼭 필요할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잠언과 세상의 속담은 다릅니다. 예로 우리말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이 성경과 얼마나 다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은 원인에 따라 결과가 생긴다는 말인데 성경과는 맞지 않습니다. 유대의 히스기야는 아주 선한 왕입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 아사는 아주 악합니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도 역시 악한 왕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속담은 성경과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악인이 선한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고, 선한 사람이 악한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은 세상의 속담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잠언은 성경을 가르칠 때 대조하거나 빗대어 알기 쉽게 교훈하는 것입니다. William Arnot은 잠언을 ‘세상에서 바른 생활을 하기 위한 하늘의 율법’이라 했습니다. 잠언은 진리를 알기 쉽게 오래 기억하도록 비유나 대구를 통해 간결하게 말한 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잠언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지혜(hm;k]j;)와 훈계(rs;Wm)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여 사람답게 살게 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지혜와 훈계는 무엇입니까? 3절에서 5절에 있습니다.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입니다. 즉 잠언은 사람을 총명하게 합니다(lk'c;; 사칼). 잠언은 사람을 바르게 인도합니다. 잠언은 사람을 공의롭게 합니다(fP;v]mi; 미쉬파트). 잠언은 사람을 정직하게 행하게 합니다(rv;yme; 메샤르). 잠언은 이런 일들을 하도록 지혜를 주고 훈계를 하게 합니다.
또한 잠언은 어리석은 자(ytiP]) 즉 순진한 사람을 슬기롭게(hm;r][;) 합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통찰력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그래서 지혜 있는 자들은 더 많은 지식을 얻고, 지각이 있는 자들은 좋은 조언을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 이것이 솔로몬이 잠언을 쓴 목적입니다. 잠언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리석은 자와 지혜 있는 자들 모두에게 지혜를 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세상의 지식만으로는 절대 안 된다는 전제를 솔로몬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
띠라서 잠언은 윤리적인 것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접근해야 함을 말합니다. 즉 제대로 된 지혜자가 되려면 하나님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 학문은 초등학문
(stoicei'on)에 불과합니다(갈4:3). 박사가 아니라 세계적인 석학이라도 초등학문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지혜와 하나님과는 밀접한 관계입니다. 잠언의 목적은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 상호간의 철저한 윤리의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지식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잠언은 지혜의 작품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찾아야 합니다. 지혜를 알고자 한다면 하나님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Calvin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혜는 대부분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우리자신에 대한 지식의 두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두 지식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한 자기 자신을 살필 수 없다 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비참한 상태로 자력으로 구원받을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100년 1000년 노력을 해도 죄인이라는 딱지를 떼지 못합니다. 1,0000년을 노력해도 죄인이라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갈 때만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지혜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의 참된 빛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들의 건전한 덕들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들의 풍성한 선함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들이 추구하는 정의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추악한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자신을 불만족스럽게 여길 때마다 하나님을 갈망하며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우리 자신들에 대한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종교사에서 크게 두 시대의 혼돈시대가 있었습니다. 중세시대(476-1517년)와 계몽주의시대(17세기-18세기/1648-1781)입니다. 중세시대는 하나님을 빙자하고 사람이 인간을 무자비하게 다루었습니다. 철저하게 세속적이었고 사탄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잔인하게 다루었습니다. 계몽주의는 중세시대와는 다른 양상으로 사람을 표현했습니다. 계몽주의는 인간의 위치를 격상시켰습니다. 계몽주의시대는 인간을 역사의 중심무대로 두었습니다.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따졌습니다. 두 시대 모두 인간들이 중심인 때였습니다. 이 시대에 사람들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시대였으며, 하나님을 소외시킨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다시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솔로몬은 할 것 다해본 사람입니다. 그러한 그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기초라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제대로 된 지혜를 소유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모든 교육의 밑바탕에는 여호와께 예배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교육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여호와를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신뢰하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그를 반드시 존경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방종하게 되고,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성장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은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그를 예배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두 번째로 그럼에도 여호와를 멸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 ····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6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7 ····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II. 여호와를 멸시하는 어리석음(2,6,7절)
잠언을 쓴 목적 중 다른 하나는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함”입니다. 직역을 하면 “통찰력 있는 말씀을 분별하게 함”입니다. 6절에 깨닫는 것을 펼쳐 보입니다. 잠언(lv'm;)입니다. 비유(hx;ylim])입니다. 지혜 있는(!k;j;) 자의 말입니다. 오묘한 말(hd;yji)입니다. 이런 것들을 깨달으라고 잠언을 썼습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분별하는 것입니다. 득도(得道)가 아닙니다. 이 말이 옳을까 저 말이 옳을까 분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말로는 쉬운데 분별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오묘한 말을 분별하기까지는 많은 것을 공부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3년이나 따라다녔던 제자들도 예수님에 대해서 잘 깨닫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16:5-12절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의도를 깨닫지 못합니다.
5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쌔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7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우리가 떡을 가져 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8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9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10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
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2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가르침(didachv)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떡에 관한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이 해석을 해주셨을 때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이런 정도니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람어로 “엘리엘리 사박다니”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입니다. 그런데 십자가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엘리야가 와서 저를 구하나 보자”라고 했습니다. 도통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깨닫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모든 지식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집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은 것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qeou' to; dw'ron).엡2:8) 그러므로 사람들이 스스로 잘났다고 할 수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제아무리 많은 지식이 있고 수많은 논문을 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람은 스스로를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근본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기 때문입니다.
과학에서는 사람이 원자들의 우발적인 배열로 인해서 생겼다고 말합니다. 또는 진화의 최고단계의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합니다. 어떻게든지 하나님을 배제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우발적으로 생기지 않았습니다. 단세포인 아메바(amoeba)가 진화해서 된 것도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의 고향은 에덴동산입니다. 에덴동산의 흙입니다. 흙으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만들었습니다. 만드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만들어진 작품은 우리들입니다. 그 만들어진 작품이 사탄의 말을 듣고 타락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겨야 할 당위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드신 창조주요 구원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많은 종교 중에 하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만드신 분을 섬겨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람들이 망각했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잊으려 합니다. 그래서 그의 말씀이 먹혀들지 않습니다. 그의 말씀을 멸시합니다. 인간들이 언제 실제적인 심판을 받았습니까? 노아시대 때입니다. 홍수로 전 지구를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불과 얼마 안되어 사람들이 또 죄를 짓습니다. 바벨탑을 하늘까지 쌓아서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 벌로 오늘날 우리들은 “어린 쥐, 어른 쥐”하면서 영어돌풍에 휩쓸리고 있는 것입니다.
7절을 보면 미련한 자들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어리석다는 말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잠언1:32에 나오는 어리석은(lysiK]/케실)/멍청이, 잠언1:7에 나오는 어리석은(lywia>/에윌)/바보, 그리고 잠언17:21에 나오는 미련한 자(lb;n:/나발)/분별없는 자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행동을 어떻게 합니까? 여호와의 지혜와 훈계를 멸시합니다(잠1:7, 25,30, 9:8). 하나님을 업신여깁니다(시10:3,13). 하나님의 율법을 멸시 합니다(겔20:13,암2:4). 주의 이름을 멸시합니다(말1:6).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합니다(잠13:13, 사5:24). 하나님의 뜻을 업신여기며(시107:11), 하나님의 성품(롬2:4)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멸시합니다(삼상2:17). 하나님의 아들을 멸시하고(히10:28,29), 사람들을 구원하는 복음을 멸시합니다(마7:6, 행13:41). 어리석은 자들은 스스로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권위에 반기를 듭니다(벧후2:10, 유1:8).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합니다(대하36:16). 이웃을 멸시합니다(잠11:12). 다른 사람보다 자기가 훨씬 낫다고 여깁니다(눅18:9). 가난한 자를 멸시합니다(잠14:31, 17:5).
지혜 있는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차이가 어디에서 납니까? 지혜 있는 사람들은 분별을 합니다. 갈 데 못갈 데 구분합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들은 분별을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판단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들은 마음이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마음이 닫혀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밖에 모릅니다. 자기가 제일인줄 압니다.
어느 날 개구리 형제들이 다른 곳으로 소풍을 갔습니다. 엄마 아빠와 함께 가지 않는지라 조심조심해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엄청 크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개구리 형제들은 거의 기절하다시피 했습니다. 소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개구리 형제들은 소풍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크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보았느냐? 어떻게 생겼느냐고 물어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엄마개구리는 배를 한번 불쑥 내밀고는 이만큼 크더냐고 했습니다. “그보다 더 커” “이만큼”하면서 갈수록 배에 바람을 집어넣어 아이들에게 크게 보이고자 했습니다. “아니 그 보다 더커” 엄마개구리는 마지막으로 “이제는 됐겠지”하면서 바람을 최대한 잡아서 배를 내밀다가 터져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면 하나님도 그들을 멸시합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은 재앙을 당합니다(레26:15,16, 민14:11,12, 신31:20,21). 하나님의 형벌을 받습니다(레26:43, 민16:30, 삼상2:30,31,32,33). 패망하게 하십니다(잠13:13, 사5:24). 약속의 땅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민민14:23). 다른 사람 앞에서 엎드러지게 합니다(시106:24,25,26,27). 하나님께 멸시를 당합니다(삼상2:30).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지 못하게 됩니다(대하36:16, 암2:4, 롬2:4,5). 행한 대로 심판하십니다(겔16:59). 곤고와 쇠사슬에 매이게 하십니다(시107:10,11).
잠언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을 깨닫게 하기 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줍니다. 성경만이 우리들을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의 뜻을 적어서 보내주신 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구원을 위해 자신의 교회를 위해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으로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대로 우리가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