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룻기

가나안을 떠난 엘리멜렉

김해수/예수촌교회 2010. 9. 18. 13:34

가나안을 떠난 엘리멜렉

룻기1:1-5

포도청(捕盜廳)이란 조선시대에 도둑이나 범죄자를 잡는 관청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보면 서울지방경찰청에 해당하는 관청입니다. 포도청은 좌우 양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각 포도대장 1명씩이 있었습니다. 당시의 계급으로 종2품인데 오늘날로 말하면 차관급입니다. 포도대장 밑에 포도부장 4명이 있었는데, 포도부장은 포졸들을 거느리고 도성 안팎을 순찰하였습니다. 포도청에 끌려가면 가혹한 고문으로 인하여 없는 사실도 자백하였습니다. 그래서 포도청은 공포청이었습니다. 포도청에 끌려가면 사람들은 비굴해지고 한없이 나약했습니다. 살기위해서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속담에 ‘목구멍이 포도청이다’라는 말은 살기 위해서는 어떠한 일도 참고 비굴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생존문제는 우리들 생애에 있어서 굉장한 영향력을 줍니다. 오늘 1절과 2절을 보면 유다베들레헴에서도 그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1 사사들의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유하더니

오늘 첫 번째로

I. 가나안을 떠난 엘리멜렉(1,2절)

사람들은 뭐니 뭐니 해도 땅에서 나는 산물을 먹어야 삽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되고 첨단의 시대를 걷고 있다 해도 사람들은 땅에서 나는 산물을 먹어야 합니다. 땅이 산물을 풍족하게 내기 위해서는 적당한 비가 내려야 합니다. 곡식들이 원하는 일조량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람도 불어야 합니다. 이 중에서 어느 것 하나라도 빠지면 흉년이 들게 마련입니다. 특히 비가 오지 않으면 절대적인 흉년이 들게 됩니다. 물론 지하수를 개발한다고 생각하지만 지하수도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의 산물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나라는 연이어 풍년이 들기에 흉년의 고통을 모릅니다. 연이어 십 수년째 풍년으로 말미암아 밥상들이 항상 은혜롭습니다. 그러나 북한에는 몇 년째 흉년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을 보도를 통해서 접할 수 있습니다. 흉년은 무서운 것입니다. 흉년으로 사람들이 굶어죽을 수도 있습니다.

룻기 처음에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사사시대 초기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보아스(z['Bo)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Boaz는 라합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마1:5). 이때는 이스라엘 전체가 위기였습니다. 강력한 1인체제의 리더들이 없었습니다(삿1:1). 그렇다고 왕정체제도 아니었습니다(삼상8:5).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도 아니었습니다(삿2:11). 그때의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아는 세대는 모두 죽었습니다. 그리고 후세대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도 알지 못했습니다(삿2:10). 여호와의 앞에서 바알들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악행을 서슴지 않았습니다(삿2:11). 그 때는 이스라엘이 자기소견에 옳다고 생각한 일들을 했습니다(삿17:6).

이런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 땅($r<a;=B;)이란 가나안 곧 이스라엘 전체를 말합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기근이 들었다는 것은 참 irony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는 땅이 기근이 들었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얼마나 기근이 심했던지 옥토라 불리는 베들레헴까지 흉년이 들었습니다. 특히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이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 흉년이 물이 풍부했던 떡집까지 임했습니다.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납니까? 레위기26:19절과20절을 봅시다.

19 내가 너희의 세력을 인한 교만을 꺾고 너희 하늘로 철과 같게 하며 너희 땅으로 놋과 같게 하리니

20 너희 수고가 헛될찌라 땅은 그 산물을 내지 아니하고 땅의 나무는 그 열매를 맺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관리하시는 땅 가나안에 흉년이 들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죄를 졌다는 것입니다.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따라서 흉년은 백성들의 연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연단을 피하지 않아야 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겸비한 마음으로 연단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연단을 피해서 외국으로 이주를 한 것입니다. 성경은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갔다는 것입니다. 여행으로 간 것이 아닙니다. 모압 땅에 아예 살러 간 것입니다. 가나안의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모압으로 이사를 간 것입니다.

유다의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 이사한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모압에 갈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l,m,ylia>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입니다. 이름에 걸맞지 않게 모압으로 간 그 사람은, 아내인 나오미와 아들 말론(병약한)과 기룐(낭비)을 데리고 모압으로 갔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이라 강조했습니다. 가나안은 하나님의 주신 기업입니다. 그런데 그 기업을 버리고 모압으로 이주한 것은 불신앙적 행위였습니다. 우리가 사사들 시대 때 알 수 있는 것은 회개하면 즉시 어려움을 해제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가나안의 흉년은 연단이지 자연현상은 아니었습니다. 즉 회개하면 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한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의 교회 안에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많지 않은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엘리멜렉 때의 이스라엘과 세상은 철저하게 분리되었었습니다. 가나안은 여호와의 총회였고, 그 국경을 넘어야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세상과 교회는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문밖에만 나가면, 세상입니다. 교회 밖에만 나가면 세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세상을 드나듭니다. 그래서 우리마음속에 교회가 없다면 엘리멜렉과 대동소이할 것입니다. 우리 가족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분명히 가나안입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자리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자리가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있어야 할 필요는 자명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있어야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모르면 무작정 하나님의 나라에서 세상으로 나가려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양식이 있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우리의 욕구를 충분히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떡집입니다. 모압은 일시적인 떡집일 뿐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영구적인 떡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를 세울지언정 교회를 허물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떡집인 이스라엘을 떠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과 짝하여 산다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스스로 하나님과 분리하여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을 떠나서 실패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가나안을 떠났습니다. 에서가 가나안을 떠났습니다. 이스마엘이 가나안에 거하지 못했습니다. 가나안은 우리보기에는 젖과 꿀이 흐르지 않는 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가나안에 있을 때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떠나면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교회 밖에서는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의 지역을 이탈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 어떠한 경우라도 있어야 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꼭 하나님의 교회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흉년으로 가나안을 떠난 엘리멜렉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3절에서 5절을 보면

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이 남았으며

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거기 거한지 십년 즈음에

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II. 모압으로 이주한 엘리멜렉(3-5절).

아시아에서 또는 러시아에서 코리아는 꿈의 땅입니다(Korea dream). 그래서 너나할 것 없이 한국으로,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힘들지만 몇 년 만 고생하면 고국에 돌아가서 여생을 편안히 보내리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코리아 드림’하면서 막상 한국에 도착해보니 자기들이 생각하던 땅이 아닙니다. 위험한 일은 도맡아서 해야 합니다. 죽도록 일했는데 나쁜 사람들을 만나서 돈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같은 사람인데 사람취급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더는 Korea dream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자기 나라가 어려워서 떠나오면 꿈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Moab dream을 안고 가족모두 이사를 했는데 가장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와 두 아들만 남았습니다. 엘리멜렉은 Moab dream의 꿈도 이루지 못한 채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죽었습니다. 흉년이 들었다고는 하지만 베들레헴에 있을 때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습니다. 21절을 보면 “풍족했다”고 나오미가 말하는 것을 보면 극히 어렵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먼저 모압으로 이사한 사람이 풍족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보았던지, 아니면 베들레헴이 전혀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가산을 정리해서 모압으로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서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모압에서 그가 죽었습니다. Moab dream이 산산이 깨어진 것입니다. 거기에서 나오미가 다시 베들레헴에 돌아왔더라면 괜찮았을 텐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아예 모압에서 살기로 나오미도 작정한 것 같습니다. 이를 악물고 모압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 아들이 성년이 되자 혼인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둘 다 모압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큰아들 아내는 룻(tWr; 우정)이었고, 작은 아들 아내는 오르바(hP;r][; ; Orpah/앞머리)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10년을 모압에서 살았습니다. 신명기 7:3을 보면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찌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것은” 이방인들과의 혼인을 적극 반대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서 이방결혼을 적극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방인과의 결혼은 우상숭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압인의 딸들과의 결혼은 가나안 여인과의 결혼과 같이 율법에서 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압사람이 이스라엘회중에 영접되는 것은 금지되었습니다(신23:4). 어쨌든 모압 여인과의 결혼은 잘못되었습니다.

최소한 나오미와 말론과 기룐은 결혼문제를 놓고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들이 기도했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이 있었을 것입니다. 베들레헴에 가서 여자들을 데려오라든지, 아니면 모압 여자들과 결혼해도 좋다든지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이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나오미나 말론이나 기룐이 모압에서 베들레헴에 사람을 보내어 여자들을 데려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큰 아들에 이어 작은 아들까지 모두 모압 여자였습니다. 무엇인가 심각하게 잘못되어 가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Moab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리고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 빨리 가나안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신앙이 나오미에게 아직 없었습니다. 급기야 Moab의 며느리를 맞아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십년쯤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Moab으로 이사를 잘했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론과 기룐이 급작스럽게 죽었습니다. 이제 세 여자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두 아들의 죽음을 시리아역 성경에는 “두 아들이 이방인 여자와 결혼하여 율법을 범했기 때문에 그들의 날 수가 단축되었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흉년을 피하자 더 큰 시련이 온다는 것입니다. 흉년은 피했지만 죽음을 피하지는 못했습니다. 5절을 보면 나오미가 제일 비참했습니다. 흉년을 피해서 모압으로 와서 살만했었는데 남편이 죽었습니다. 남편의 죽음을 잊을만했는데 이제는 두 아들이 죽었습니다. 나오미는 이제 이 세상에서 의지할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어 이러한 일이 닥쳤습니까? 우리가 이것을 풀어서 세상사는 지혜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엘리멜렉의 가정이 왜 실패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 즉 성경을 믿지 않았습니다.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을 떠났을 때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그래서 아들 이삭은 가나안에서 한걸음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하란에서 20년을 살다가 다시 가나안에 돌아왔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하다가 가나안에 돌아왔습니다. 왜 이렇게 가나안에 돌아왔습니까? 가나안의 솥뚜겅에 엿을 붙여놓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가나안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었다면 그들은 어려움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떠한 능력이 있습니까? 우리를 거듭나게 합니다(벧전1:23).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딤후3:15). 우리로 하여금 영육간에 풍성하게 합니다(요20:31). 우리가 길을 잃지 않도록 인도합니다(시119:105). 그러므로 우리는 수시로 성령의 조명을 받아서 성경을 묵상해야 합니다(고전2;10-14). 성경을 항상 상고해야 합니다(요5:29). 설교를 잘 들어야 합니다(행17;2). 그래야 우리가 실패하지 않습니다. 설령 실수하더라도 금방 일어설 수 있습니다.

엘리멜렉의 가정이 왜 실패했습니까? 하나님께 붙어 있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5:5을 보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성경은 우리가 능력이 있는 자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12을 보면 하나님의 권세가 우리에게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그 권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자가 권세가 있지 영접하지 않은 자에게도 권세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을 떠나서는 무능력자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연합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면 신비한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의 말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family가 됩니다. 그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은혜 안에서 나오는 신비한 것들을 가지게 됩니다.

아주 무능한 우리들이 유능하게 됩니다. 전혀 무능한 우리들이 유능하게 됩니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상황으로 반전됩니다. 교회 밖의 것이 크게 보여도 교회 안에서 그것을 구해야 합니다. 교회 밖의 것이 아무리 좋게 보여도 교회 안에서 그것을 구해야 합니다. 교회에 들어오자마자 어떤 사람들에게는 기적의 지팡이를 주시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십니다. 어려운 상황에 있을수록 하나님의 교회에 꼭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전후사정을 모두 알리고 슬프게 울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리기도 하시고, 택배로 배달도 하십니다. 때로는 힘이 들어서 걸어갈 기운이 없으면 안아서 데리고 가십니다.

흉년을 피해서 가나안을 떠난 엘리멜렉은 하나님까지 떠났습니다.

그러나 엘리멜렉은 흉년은 피했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피하지 못했습니다. 교회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이슬같이 내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이탈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충만하기를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