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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1.20
    예루살렘의 멸망 원인

예루살렘의 멸망 원인

예레미야1:1-3

 

우리나라에서 4대강공사는 100% 잘못된 공사였습니다. 4대강공사에서의 dam은 강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4대강의 dam 말고 일반 dam은 그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dam은 많은 물을 저장하는 곳입니다. dam은 우기에 많은 물을 저장했다가 건기에 물을 사용하게 합니다. 과거에 사람들이 적을 때는 dam이 없어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dam은 생명수를 저장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dam은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건설부터 튼튼하게 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건설 후에도 정기적으로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dam이 붕괴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dam의 관리를 맡은 자는 철저하게 순시를 하면서, 댐에 이상이 있나 없나 살펴야 합니다. 만일에 댐에 조그마한 구멍이라도 생겼다면 즉시 이를 보수해야 합니다. 즉시 보수하지 않으면 조그마한 구멍이었던 것이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감당하지 못할 상태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들이 지난 5공화국과 6공화국 시절에 엄청 많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dam들이 붕괴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조그마한 구멍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 점점 그것이 커버려 나중에는 감당하기가 어려운 상태가 됩니다. 그러므로 아니다 싶은 구멍들은 우리가 미리미리 막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조그마한 틈이라도 발생하면 즉시 막아야 합니다. 조그마한 틈을 막지 못할 때, 후에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1절과 2절을 보면

 

1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2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다스린 지 십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1절과 2절에 예레미야서의 쓰여진 배경에 대해서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I. 예레미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1,2)

 

동물들은 저마다 상호간에 의사소통을 합니다. 벌과 나비들은 날개나 몸짓으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짐승들은 소리로서 상호간에 의사소통을 합니다. 물고기들도 몸으로 또는 소리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사람들은 의사소통을 대체적으로 말과 글로서 합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로서 의사소통을 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말들은 중요성이 내재합니다.

 

말은 누가 했느냐에 따라서 듣는 자의 행동이 결정됩니다. announcer가 아무리 말을 잘한다 하더라도 그 말에 우리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는 사람들의 말은 듣습니다. 직장의 상사라든지, 나와 거래하는 사람들이라든지, 가족들의 말은 듣습니다. 즉 우리를 통제하는 사람들의 말은 우리가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과 우리 간에 경제적인 문제가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운전 중에 교통경찰이 음주측정을 할 때는 두말없이 응해야 합니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안 불겠다.고 하면 공무집행방해죄가 적용됩니다. 그래서 우리를 통제하는 사람들의 말은 들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말도 들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필히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엄청난 보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하셨습니다(1:28). 노아에게는 다시는 지구를 덮을 홍수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8:21). 아브라함에게는 내 말만 따르라 그러면 너는 복 받는다”(12:1-3)하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들으라 하나님의 말씀을하면서,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이 제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했습니다. 성경 곳곳에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하는 조건을 수없이 달고 있습니다. 순종하면 인생이 순풍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면이라는 말씀을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시대를 불문하고 요구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살았습니다. 아나돗의 제사장 중 힐기야의 아들이었습니다. 아나돗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4km지점에 위치한 곳입니다. 아나돗은 다윗시대에 제사장이었던 아비아달(왕상2:26)과 예레미야(1:1)의 고향입니다. 유대인들이 포로에서 귀환하여 이곳에 살았습니다(7:27, 10:19).

예레미야(hy:m]r]yI)의 뜻은 여호와께서 세우신다.입니다. 인생의 모든 것을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세우심을 암시하는 이름입니다. 예레미야는 주전627년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1:4-9). 40년간 하나님의 일을 했습니다. 요시야,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때 선지자였습니다(1:2-3/주전627-586/42년간). 종교개혁의 시대에서부터 예루살렘과 유대가 망할 때까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1절을 보면 예레미야서는 예레미야의 말(Why:m]r]yI yrEb]DI)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예레미야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h~w:hy] Arb'd])이었습니다. 따라서 예레미야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지만, 그 말씀의 출처는 여호와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중계하는 중계자일 뿐이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위대한 것입니다. 사람은 절대 위대할 수 없습니다. 예례미야가 없으면 제2의 예레미야를 하나님께서는 등장시키십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위대하다고, 어떤 목사들을 그릇이 크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릇이 큰 것이 아니라 잘못된 야망을 가졌다고 해야 합니다. 잘못된 야망을 가지고 망하는 목회자들을 우리들은 지금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을 크고 작다는 그릇 론은 대단히 잘못된 말입니다.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대변인일 뿐입니다. 대변인들은 자신의 정당이나 조직체의 의견을 피력할 뿐이지, 그 사람이 실권자가 아닙니다. 실권자는 그 뒤에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기독교가 계시종교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계시종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하심입니다. 다른 여타의 종교들은 교주들의 가르침이나 정신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교주들의 정신과 가르침을 받고, 그대로의 삶을 지향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누구의 정신, 누구의 가르침에 끝날 뿐이지, 죽었던 교주가 그들을 신봉하는 자들에게 어떠한 action을 취해주거나 계시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믿음은 인간의 추측이 아닙니다. 인간의 어떤 信念이나 槪念도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진리입니다. 우리가 믿는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이지, 죽은 말씀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말씀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달하신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세상의 어떤 법보다, 무슨 말보다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앙과 도덕에 대한 우리의 권위를 확신해줍니다. 성경은 단순히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이어서 지키자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 어떤 종교도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Luther성령은 하늘과 땅에서 가장 분명한 저술자이자 화자(writer and speaker)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믿음 있는 말은 위력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외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그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성경의 사람들, 역사적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서 목숨까지 걸고, 목숨을 바치기까지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과거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수천 년이 지난 오늘도 그 말씀이 적용됩니다. 성경은 거의 유대인들이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적용됩니다. 성경은 과학이 발전하지 않았을 때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적용됩니다. 노아와 우리와 관계가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우리와 관계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기 때문에 예레미야의 말을 믿어야 유다가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래야 이스라엘이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교회에 어떤 정신을 계승받으러 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고자 왔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섭리하시고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온 것입니다. 그냥 주일이 되었으니까 교회 가자고 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없는 가정은 그 집이 아무리 좋아도 나침반이 없는 배와 같습니다. 언제인가는 반드시 침몰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하나님의 말씀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임을 믿고 말씀을 듣고 믿어야 합니다. 말씀이 하라하면 하고 말씀이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법이요 나침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레미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II. 말씀을 듣지 않은 예루살렘(3)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 왕 시드기야의 제 십 일년 말까지 임하니라 이 해 오월에 예루살렘이 사로잡히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유다의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아의 아들 시드기야의 11년까지 예레미야에게 임했습니다. 이 기간이 22년입니다. 22년간이나 예레미야는 예루살렘과 유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습니다. 2년도 아니고, 2년 두 달도 아닌 22년간을 외쳤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적국 바벨론에게 망했습니다. 예루살렘이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어떤 곳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의 천사 하나가 출동하니까 하루 밤에 18,5000명이 죽었습니다. 모세가 갈라진 바다위에 손을 폈더니 이스라엘을 뒤따라오던 애굽 군인들이 모두 수장이 되었습니다. 애굽의 군인들은 전장에서 잔뼈가 굵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망했습니다. 망한 이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야김은 왕이었습니다. 왕이 되어가지고 백성들이야 죽든 살든 엄청 호화로운 저택을 지었습니다. 제 돈으로 제 집을 지었으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그 집을 짓기 위해 백성들을 심히 탄압하고 죽였습니다. 일한 대가도 주지 않았습니다(22:13-19).

 

13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불공평으로 그 다락방을 지으며 그 이웃을 고용하고 그 고가를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찐저 14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광대한 집과 광활한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15 네가 백향목으로 집 짓기를 경쟁하므로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비가 먹으며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공평과 의리를 행치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16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17 그러나 네 눈과 마음은 탐남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강포를 행하려 할 뿐이니라 18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 19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밖에 던지우고 나귀 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

 

여호야김의 죄목이 무엇입니까? 불의한 이득을 취한 것입니다. 무죄한 피를 흘린 것입니다. 국가 지도자로서 백성에게 폭력을 행한 죄입니다(22:17). 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화롯불에 태웠습니다. 궁정관리로 하여금 성경을 읽게 한 후, 칼로 싹뚝싹뚝 잘라서 화롯불에 모두 태워버렸습니다. 왕과 신하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옷을 찢지 않은 죄를 하나님께서 물은 것입니다(36:20-24). 유대인들은 이래서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들의 죄가 그들의 나라를 멸망케 한 것입니다.

 

이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도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을 이미 주시면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못 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자신들의 정보판단과 자신들의 능력은 믿으면서 하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이 지상에 오셨을 때에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십자가에 못 박게 했습니다(27:1-2). 예수님의 사도들에게 굴레를 씌워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철저하게 훼방한 것입니다. 역사이래로 사탄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역사와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그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움직이니까요. 말씀을 믿고 떠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었고, 말씀을 믿고 동행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에 올라갔으며, 말씀을 믿은 모세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끌어냈습니다. 말씀을 믿은 여호수아는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말씀을 믿은 다윗은 전쟁마다 승리했습니다. 말씀을 믿은 사람들은 고침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믿은 사람들은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1031일은 종교개혁일입니다. 15171031Martin Luther(1483-1546)가 타락할 대로 타락해버린 공룡 같은 Roman Catholic이 잘못되었음을 조목조목 지적한 날입니다. 이로 인해서 기독교가 제자리를 잡도록 도운 날입니다.

 

Luther가 비텐베르크 정문에 95개 조항을 내걸었지만, 처음에 교황청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Luther의 게시문이 시한폭탄일 줄은 몰랐습니다. 갈수록 사람들이 Luther의 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Luther로 인해서 비로소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Roman-Catholic은 여우같은 에크를 시켜서 독일에서 추방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리하여 에크의 음모로 독일에서 추방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이에 Luther15208, 10, 11월에 세 가지 논문을 발표합니다. ‘독일 크리스챤 귀족에게 보내는 글’(An den christlichen Adel deurscher Nation des christlichen Standes Besserung)입니다. ‘교회의 바벨론 감금’(De Captivare Babylonica Ecclesiae)입니다. 그리고 크리스천의 자유’(Von der Freiheit eines Christenmenschen)입니다.

그중 독일 크리스천 귀족에게 보내는 글중에서 Roman-Catholic은 세 가지 담을 쌓고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첫째 담은 영적문제에 관하여 교황이 최고의 권위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담은 성경해석에 있어서 교황만이 유일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담은 교회의회(Konzil/)를 소집하는 권한은 교황에게만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Roman-Catholic은 하나님의 말씀을 교황청에 무력으로 유배시켜 놓고, 자기들 마음대로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타락시켰습니다. 교회의 모든 문제들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모든 것들이 교황의 뜻이어야 했고, 교황의 칙서에 의존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교황의 칙서가 더 권위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두 번째 논문 교회의 바벨론감금’(De Captivare Babylonica Ecclesiae)에서는 교회의 성례전을 교황청에 감금했다고 했습니다.

 

교회가 어떠할 때 타락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없을 때 타락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고, 인간 자신들의 뜻대로 해석할 때 교회는 타락합니다. 이 문제는 비단 교회사에서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일반역사도 관여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든지, 아니 믿든지 하나님의 말씀은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에 많은 나라들이 뒤안길로 사라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아무것도 모르고 이슬람교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Caliph Omar는 예루살렘을 637년에 정복했습니다. Omar는 철저하게 마호멧이 시킨 대로 했습니다. 유대인의 성전을 철저하게 파괴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이슬람사원을 세웠습니다. Omar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을 불태웠습니다. 이 자가 성경의 초기사본들을 모두 태웠습니다. 수천 개의 교회들을 파괴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이슬람사원으로 바꾸었습니다. 한때 어거스틴과 키프리안이 사역했던 북아프리카도 이들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기독교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모조리 색출해서 죽였습니다.

 

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역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시시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성경, 진짜야, 기독교인들이 믿는 경전일 뿐이야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성경을 믿어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결과입니다. 과거의 성도들이 지키고 믿었던 말씀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입니다. 오늘 우리교회의 성도들이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악에서 떠나라” “네가 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내가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남겼을까?”하고 우리에게 수시로 다짐하십니다. ‘너에게 현재 보이는 것이 없지? 그래도 나를 믿어봐’ ‘너희의 신앙의 선배들이 그렇게 나를 믿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청교도인 Philip Henry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우리가 회심을 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이때 우리는 그 말씀을 우리의 시금석으로 삼아 자기 자신을 살펴보게 된다. , 우리의 거울로 삼아 자신의 모양을 보게 되고(1), 우리의 규례로 삼아 좇아 행하며(6:16), 우리의 물로 삼아 깨끗하게 씻고(119:9), 우리의 불로 삼아 마음을 뜨겁게 하고(24), 우리의 검으로 삼아 마귀를 대적하며(6), 우리의 조언자로 삼아 모든 의심을 물리치며 (119:24), 우리의 감로주를 삼아 위로를 받고, 우리의 재산으로 삼아 우리를 부요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교회의 성도들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꼭 믿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언제나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이 우리성도들을 감시하며, 성경이 우리성도들을 읽게 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볼 때 성경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고 영생을 얻습니다. 성경을 읽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이 세상에서 승리자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살아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우리 성도들의 가정에 늘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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