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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 로마로부터 누린 특권(로마서2:25-29)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이 세상(지구상) 어디에서든지 특권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특권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대인은 이 세계에서 가장 혐오스럽고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돈을 거머쥐고서 좌지우지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신약시대 때 이방인들은 유대인을 가장 진절머리 나는 종족으로 여겼습니다. 유대인을 가장 비천한 노예의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로마정부로부터 특전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매년 예루살렘으로 성전세를 보낼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이 성전세의 예루살렘의 송금이 주전60년경에 아시아지방에서는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화폐의 수출이 금지되었었습니다. 로마제국 내에 있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보내려 했던 20톤의 밀수금을 압수당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로마제국 내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그들 자신의 법정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 자신들의 법에 따라 생활하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이방인들은 한 민족이 마치 별다른 민족같이 특정을 누리는 민족으로 살아가는 것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그럼에도 로마정부는 유대인의 안식일을 존중해주었습니다. 법률상으로 유대인은 안식일에 재판정에서 증거를 제시할 수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또 백성에게 특별의연금이나 선물 등이 나누어질 때 그것이 안식일일 경우에 유대인은 그 다음날 자기의 몫을 찾아갈 수 있게 규정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에게만 징집면제를 했습니다. 전면면제였습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에 군사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병역의무의 특별면제가 다른 민족들에게 엄청난 불만을 가진 것은 당연했습니다(William Barclay, 1981, 80-81).

이러한 특권을 누리고도 그 이행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 특히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썩을 대로 썩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고도 이 사람들은 안심했습니다. 자신은 안심했습니다.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자심의 육체에 할례의 표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족보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어떤 판정승이 바로 우리의 조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조상은 영의정을 지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편승해서 나도 보통의 집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아닌데, 맞다는 것입니다. 특권의식만 잔뜩 가지고 있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의 논증은 유대인이라는 것은 할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된다는 것은 행위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And

이방인들을 판단했던 유대인들(로마서2:1-3)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나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많은 목회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구절입니다. 너도 잘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단함으로서 엉뚱하게 성경이 해석되어지는 것입니다.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성경에 기록되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성경의 해석이 그런 사람들에게 맡겨지면 이상하게 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그런 의도로 써진 구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러한 의도로 써졌다면 이단을 판단할 필요도 없고, 교회가 잘못해도, 신자들이 잘못해도 일체 판단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1:18-32을 보면 이방인들(로마교회)의 부도덕한 행위들이 적나라하게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들입니다. 그것을 그대로 두면 반드시 멸망합니다. 무엇보다도 멸망의 근거는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을 당연히 믿어야 하는데 하나님 자리에 우상을 가져다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이란 우상숭배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상을 버리고 예수그리스도를 모시게 됩니다. 그러면 멸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까지 됩니다. 그리하여 영원까지 하나님과 같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판단했습니다. 우상숭배하고 목매달아 죽인 것을 먹으며, 율법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판단하는 이유는 우상을 숭배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유대인들도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의롭게 여겼습니다. 자신을 스스로 의롭게 여김으로서 자신을 우상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그것을 지적했지만 유대인들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여기고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나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육신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율법의 백성이요, 유대인이기 때문에 자신들은 특별한 족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을 함부로 예단하고 판단했습니다. 바울사도는 그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즉 이방인들을 판단하면서도 자신들도 역시 판단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하려는 것입니까? 모두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이지, 행위로 말미암은 의(義)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자가 있으면 틀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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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igula와 유대인(사도행전25:6-12)

Caligula는 Roma의 제3대 황제입니다(재위37-41). 칼리굴라의 본명은 Gaius Caesar Germanicus입니다. 즉위 초에는 민심수습책으로 원로원, 군대, 민중에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낭비와 증여로 재정을 파탄시켰습니다. 잔혹한 독재정치를 강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점차 자신이 인간세계에 나온 神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혔습니다. 광포한 행동을 자행하다가 근위병의 한 장교에 의해 암살되었습니다.

Orient에서 우수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유대인과 Greece인들이었습니다. 우수하기 때문에 두 민족들은 모든 면에서 이해가 서로 대립되었습니다. 경제적인 대립, 학문적인 대립으로서 그 도가 지나칠 만큼 심했습니다. Alexandros대제 시절에 시작된 300년의 Hellenism 시대에는 두 민족의 처지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Cleopatra의 죽음으로 그리스인의 마지막 보루가 Roma의 손에 들어간 주전30년부터 두 민족은 지배자인 Roma인 밑에서 피지배자로 동거하고 있었습니다. Caesar와 Augustus, Tiberius로 이어진 한 세기가 유대인에게는 그래도 살기 좋은 시대였습니다. 과거의 Greece인 지배시대보다는 훨씬 나았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자신에게 권력이 주어지고 힘이 생기면 인간은 타락한 존재라 자신을 다르게 생각합니다. 자천이든 타천이든 Caligula는 Roma황제가 신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신이라고 여기던 Caligula가 병이 들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제물까지 바치며 그의 쾌유를 빌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유대인들은 난처했습니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Greece인은 다신교였습니다. 다신교인들은 신이 하나쯤 늘어난다고 해도 문제될 수 없었습니다. 이 문제로 Greece인과 유대인들이 마찰하기 시작했습니다. Egypt의 Alexandria는 Greece인과 유대인들의 도시였습니다. 100만 명의 도시로서 Greece인과 유대인들의 비율을 6:4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이 마찰하면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은 불 보듯 뻔했습니다. Caligula가 즉위한지 1년 뒤인 주후38년 Alexandria에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Greece인들이 Caligula의 이름을 빌어서 유대인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 것입니다. Greece인들은 항구에 정박해있는 유대인 소유의 배를 모조리 불태웠습니다. 유대인 거주지역의 집들도 불에 타고 약탈당했습니다. 유대인이 집단 거주 지역으로 나오면 그 이유만으로 살해했습니다. Greece계 주민은 유대회당 안에 Caligula의 상(像)을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이럴 때 싸움을 공명정대하게 수습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황제대리로 수습하러 온 사람은 Egypt에 온 Flaccus장관이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중재자로서 온 것이 아니라 Greece편에 서버렸습니다. Flaccus는 황제의 눈치를 본 것입니다. 신을 자처하는 Caligula가 젊기에 황제로 오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런 Caligula를 신이라고 부추긴 그리스인들을 강경하게 진압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Alexandria폭동은 유대인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이었습니다. 항상 최고자리에 있는 사람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명색이 수사관이나 수습관이라고 하더라도 제대로 수사나 수습할 수 없는 것이 인간들입니다. 권력이란 사람을 사람답게 하지 못합니다. 잘못하면 자신의 밥줄과 생명이기에 공명정대하게 하고는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권력입니다. Flaccus는 토요일의 안식일을 폐지했습니다. 지금까지 유대인들은 Alexandria의 5개 지구 가운데 2개 지구에 거주했습니다. 하지만, Alexandria에서도 경치가 아름다운 구역에 살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1개 지구에 몰아넣었습니다. 유대인의 구역이었던 곳은 400채의 저택이 불탔습니다. 회당도 불에 타고, 36명의 제사장들은 경기장으로 끌려가 Greece계 주민들의 조롱을 받으며 채찍질을 당했습니다. 유대인의 공장은 폐쇄되고 무역도 정지되었습니다. Alexandria의 경제는 거의 절반이 마비되었습니다. 할 수 없이 유대인들은 Caligula에게 호소했습니다. 이때 사절단의 단장은 Philo였습니다. Philo는 석학이었습니다. 학식이 풍부하고 유대인이면서 Greco-Roman의 문화에 정통했습니다. 재산도 있어서 사절단의 비용도 자부담이었습니다. 또한 Philo의 친동생 가이우스 율리우스 알렉산드로스는 유복한 금융업자였습니다. Roma의 시민으로서 Caligula의 할머니의 재산을 맡아서 운용했습니다. Philo의 아들들 중에는 Roma군단의 대대장이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Philo는 주후38년에 Roma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당장 만나줄 것 같은 Caligula는 여러 이유를 들어서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결국Caligula는 유대인의 불리한 환경을 개선하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Greece인들이 Alexandria에서 횡포를 부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교회와 세상은 확연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세상과 교회는 같은 세대에 있지만, 소속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인간의 명령을 따릅니다. 그러다보니 세상에서는 정의가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세속화된 교회도 정의가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세상과 교회의 line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교만하기 쉽고, 변하기 쉽기에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합니다.

       참고: 로마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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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Tiberius와 유대인(사도행전25:6-12)

Tiberius는 유대민족의 특수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Syria 총독 Kurêvios를 계속 중용한 것도,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여러 가지 타협책을 취한 것도 Tiberius가 유대인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반면에 유대인을 이해했기 때문에 특수한 유대민족이 보편을 지향하는 Roma제국에 가져올 위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법을 따르는 유대인과 인간의 법에 따라 다스리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동방에서는 연중행사처럼 일어나는 Greece 주민과 유대계 주민의 충돌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그 이유는 Greece인들은 다신교였습니다. 그래서 Greece 사람들은 Roma와 친숙할 수 있었습니다. Roma인과의 동화에 별다른 저항감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은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다신교와 일신교를 믿는 사람들이 도저히 섞일 수 없었습니다.

Tiberius에게는 Alexandria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Tiberius 당시에 Alexandria의 인구는 100만 명이었습니다. Alexandria의 주민은 5개 지구에 나누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3개 지구에는 Greece계 주민이 살고 있었고, 나머지 2개 지구에는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비율로 봐서 Alexandria에 유대인이 최소한 40만 명은 넘었을 것입니다. Antioch도 비슷할 것으로 추정합니다. 하지만 Roma에서는 14개의 행정구역 가운데 1개 지구에만 유대인 거주가 허용되었습니다. Roma에는 유대인들이 2만 명 정도였습니다. Tiberius는 Augustus가 예루살렘의 유대인에게 허용한 사법권을 동방의 여러 도시에 있는 유대인 에게 공식적으로 인정해주었습니다. 예루살렘과 같이 사형집행만은 Roma의 총독이나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동방의 유대인들은 율법에 따라 재판을 받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또한 Tiberius는 토요일마다 안식일을 갖고 싶어 하는 유대인의 의식을 인정해주었습니다. 종교의 자유도 이주의 자유도 인정하고 유대교 특유의 관습도 인정해주었습니다.

주후19년에 유대에서 Kurêvios총독이 유연하게 진행하고 있을 때 Roma에서는 유대인들이 사회불안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Tiberius는 Roma에 사는 유대인들을 모조리 이탈리아에서 추방했습니다. Tiberius는 유대인이 많이 사는 동방에서 Caesar와 Augustus의 정책을 계승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자칫하면 격렬해지는 Greece계 주민들과 유대계 주민들에 대해서 Roma는 중재자역할을 함이었습니다. 이리하여 Roma제국의 동방은 Greece인과 유대인 없이는 존속하지 못했습니다.

Tiberius는 예루살렘과 유대를 헤롯 아그립바에게 맡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능하지만 책임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대를 시리아 총독에게 맡긴 것입니다. Tiberius는 죽을 때까지 Roma인과 유대인의 관계를 위와 같은 정책으로 일관했습니다. 유대 쪽으로 볼 때 Caesar와 Augustus, Tiberius의 때에는 그런대로 만족한 관계였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참고: 로마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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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인과 유대인(사도행전25:6-12)

 

로마인이야기를 쓴 Shiono Nanami 즉 불신자들이 보는 유대인과 Roma인과의 관계입니다. Roma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상과 그리스도인이나 유대인이 생각하는 사상은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Roma인들은 패자까지도 자신들과 동화하는데 있음을 자부했습니다. 그럼에도 패배한 여러 민족들 가운데 유독 유대인만이 동화하기를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승자인 Roma인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민족과의 동화도 유대민족은 거부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제외한 어떤 신도 인정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날들을 유대인들은 다른 신도 섬기기도 했습니다. 허나 웬만한 사람들은 Babylon의 포로로 있을 동안에도, Palestine에 돌아왔을 때도 여호와만의 신앙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고대의 유대인은 Greece인에 버금갈 만큼 이산(離散) 경향이 강해서 웬만한 도시에는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같은 도시에 많은 사람들과 살면서도 유대인만은 다른 거주자와 동화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금융업이나 장사에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교류가 그 이상으로 진척되어, 동화나 융합으로는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Roma인과 유대인은 법률에 대한 사고방식도 달랐습니다. 유대인에게 ‘법’이란 모세의 율법이었습니다. Roma인이 생각한 ‘법’은 원로원이나 민회에서 인간이 결정한 것입니다. Roma가 제국 안에 사는 이민족을 Roma인과 동화시키기 위해 취한 구체적인 방책은 Roma시민권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Roma의 시민권은 속주세를 면제했습니다. 그럼에도 유대 민족들은 Roma에 동화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Roma군단에 지원하는 유대인도 극히 적었습니다. Roma 병사가 되면 최고사령관인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Roma도 이 ‘특수사정’을 인정했습니다. 유대인에 대해서만은 병역을 면제했습니다. 유대인은 언제나 Roma의 이방인이 되는 쪽을 택했습니다. 지배자인 Roma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 선택했습니다. 오래 전에 Alexandros대왕이 Hellenism화한 이후 유대인의 사회적 지위가 그대로 지속되었습니다. 지배자는 Greece인에서 Roma인으로 바뀌었지만, 유대인의 지위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Roma인과 유대인이 직접 관계를 갖기 시작한 것은 주전63년에 Pompeius때부터였습니다. 이어서 Pompeius를 패배시킨 Caesar와 유대인의 협정은 유대인의 요망을 그대로 들어주었습니다. Caesar의 뒤를 이은 Augustus도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Augustus는 다른 황제들과 달리 Agrippa의 조언에 힘입었습니다. Agrippa(Marcus Vipsanius Agrippa/주전62-주전12)는 Roma의 장군과 정치가로서 Augustus의 정계진출을 도왔습니다. Agrippa의 군사적/외교적인 것에 능했습니다.

Augustus에게는 Agrippa의 도움과 유대에서는 Herod이 도왔습니다. Herod은 순수한 유대인도 아니었습니다. 치열한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사람입니다. 유대의 주권을 장악한 Herod왕은 머리가 기민했습니다. 삶의 달인이었습니다. Pompeius가 Roma의 주권자일 때는 Pompeius에게, Caesar가 유대 왕국을 재건하자 당장 Caesar에게 달려가 Julius라는 가문 이름을 받고서, Caesar의 부하로 변신했습니다. Caesar가 암살되자 Brutus(Marcus Junius Brutus) 일파의 세력이 강하다는 소식을 듣고서 Caesar 암살 주모자인 Brutus와 Cassius(Caius Longinus Cassius) 편에 붙습니다. 그러나 Caesar파인 Antonius와 Octavianus가 반Caesar파인 그 두 사람과 대결했을 때는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Antonius와 Octavianus가 권력투쟁 시 Antonius의 세력이 강하다는 이유로 Antonius편에 붙습니다. 이를 고맙게 여긴 Antonius는 Cleopatra가 아무리 간청해도 유대 왕국만은 Cleopatra에게 선물로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Antonius가 패하였습니다. 이에 Herod은 Augustus로 이름을 바꾼 Octavianus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서둘러 Roma를 방문한 Herod을 Augustus는 Roma의 동맹자로 삼고, 유대 왕위를 인정했습니다. Augustus는 Herod의 이용가치를 냉철하게 파악하고 그같이 했습니다. 즉 Augustus가 볼 때 Herod은 전제군주였습니다. 유대에서 전제군주라는 것은 유대교 제사장들이 국정에 간섭하지 못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Roma인은 독립된 사제계급을 두지 않았던 만큼, 종교의 정치 개입에는 항상 불신했습니다. 또한 Herod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왕위를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려면 Orient에 주둔한 Roma군단의 후원이 적극 필요했습니다. Augustus에게는 Orient 일대에 평화와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었습니다. Roma의 직할령인 Syria와 Egypt를 잇는 선상의 유대가 Roma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Augustus는 현지에 밝은 Herod을 유대에 상주시켰습니다. Herod은 Augustus의 정책을 충분히 이해하였습니다. Augustus는 Orient 일대에 널리 퍼져 살면서 공동체 network를 형성하고 있는 유대민족을 다스리려면 그들에게 마음의 고향인 Jerusalem의 동향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유대는 어디에 살든 Jerusalem 성전에 일정한 헌금을 바칠 의무가 있었습니다. Jerusalem 성전에 돈이 모인다는 것은 그 돈을 틀어쥐고 있는 제사장들의 권력이 강해짐을 뜻했습니다. 이에 Augustus는 민족주의의 온상이 될 수도 있는 유대교 제사장들을 강권으로 억누를 수 있는 사람이 Herod이라고 판단했습니다. Jerusalem만 안정되면 Orient 일대의 유대인 사회도 안정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전4년에 Herod이 죽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Herod왕은 유대 왕국을 삼분하여 세 아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왕국의 북부는 philip에게, 남부는 Herod Antipas에게, 수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중부는 Herod Archelaus에게 남겨주었습니다. 북부와 남부의 통치권은 두 왕자가 별 문제없이 계승했지만, 문제는 Jerusalem이었습니다. Jerusalem의 유대인들이 제사장들의 신권통치 부활을 요구하며 봉기했습니다. 이들은 Herod이 임명한 대제사장을 면직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자, 이번에는 비유대교도들을 Jerusalem에서 추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Jerusalem은 유혈이 낭자했습니다. 젊고 미숙한 Archelaus는 Syria 속주 총독에게 군대출동을 요청했습니다. 이 시기의 Syria 총독은 Varus였습니다. 총독은 즉각 군단을 출동시켜 진압하지 않았습니다. Varus는 봉기한 급진파 유대인의 대표가 Roma로 가서 왕정을 폐지하고 제사장의 신권정치를 부활시키고 싶다는 뜻을 황제에게 전달하는 것이 어떠냐고 권했습니다. 50명의 대표가 황제에게 호소하기 위해 Roma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Palestine에서 Italy까지는 바닷길입니다. 왕복하는 데 걸리는 기간과 Roma에 체류하는 기간을 합하면 반년은 족히 걸립니다. 급진파는 이 기간을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자기네 요구를 기정사실로 만들기 위해서 비유대인들과 격렬하게 싸웠습니다. Varus도 Syria 주둔 4개 군단을 출동시켜 진압하였습니다. 결국 Herod왕의 상투 수단이었던 단호한 무력행사만이 Jerusalem의 질서를 회복시킬 수 있었습니다. 당시 Roma에서는 Augustus가 팔라티노 언덕에 서 있는 아폴로신전 앞에서 유대인 대표들을 만났습니다. Augustus는 신전으로 오르는 계단 밑의 50명의 유대인들의 호소를 듣고 있었습니다. 50명의 대표 뒤에는 Augustus의 허락을 받고 테베레 강 건너편 제14구에 공동체 유대인들이 8000명이나 몰려왔습니다. 그럼에도 Augustus는 유대인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Augustus는 왕정을 폐지해달라는 요구는 거부했지만, 대신 조세경감을 약속했습니다. 이 회답을 가지고 귀국한 대표들은 경과를 설명했지만 Jerusalem의 유대인들은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폭동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Augustus도 수습능력이 없는 Archelaus를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왕정이 폐지된 것입니다. 그러나 Augustus는 유대교 제사장들에게 통치를 맡길 생각이 추호도 없었습니다. 헤롯이 Archelaus에게 준 Jerusalem과 유대 중부를 직할통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이 지역의 행정은 Jerusalem의 유력자들로 구성된 장로회의에 맡겼습니다. 내정의 자치권은 유대인들에게 남겨준 것입니다. 주후6년부터 Jerusalem과 유대 중부는 Roma의 속주로 바뀌었습니다. 유대 담당 장관의 관저도 Jerusalem에 두지 않았습니다. Greece계 주민이 많은 교역도시 Caesarea에 두었습니다. 이 도시에 사는 유대인들도 거의 온건파였습니다. Roma는 군사력도 3000명 정도밖에 주둔시키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로마 시민인 군단병이 아니라, Syria에서 모집한 Greece계 지원병이었습니다. Roma는 유대인을 되도록 자극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사고방식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마찰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Roma는 어떤 지역을 속주화하면, 실정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인구나 재산을 조사했습니다. 이럴 때 유대인은 자신들을 노예로 삼기 위해 그런 조사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속주세를 내야 한다는 것도 유대인에게는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왕에게 세금을 낸다면 모르지만, 멀리 있는 황제에게 왜 세금을 내야 하는가? 다른 민족의 안전까지 지켜주기 위해 돈을 내야 할 필요가 어디 있는지, 유대인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속주화가 진행되는 어려운 시기에 봉기나 폭동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두 가지 요소가 로마에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유대민족은 바윗돌처럼 단단히 단결되어 있지 않고,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항구도시의 유대인과 농민이나 예루살렘 하층민으로 구성된 급진적인 유대교도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전자에 속하는 유대인은 대부분 공업이나 금융이나 무역에 종사했기 때문에, Roma의 직할통치로 질서가 회복되는 것은 그들에게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인구조사와 속주세의 필요성도 이해하였습니다. Augustus는 유대를 속주화하기 위해 시리아 총독 Kurhvnio"/Kurêvios를 등용했습니다.

Kurêvios는 온건파 유대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항구도시의 자치권을 재확인했습니다. 유대 중부에서는 Jerusalem뿐 아니라 카이사레아를 비롯한 여러 도시가 내정 자치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정책의 목적은 ‘분할하여 통치하라’ 는 Roma의 통치 좌우명을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Jerusalem의 영향력을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Kurêvios총독은 Jerusalem의의 특수성을 배려하였습니다. Roma는 Jerusalem과 유대 중부를 직할 통치하더라도 Jerusalem에서는 제사장들이 사법권을 갖는 것을 인정해주었습니다. 다만 사형 판결이 난 경우에는 ‘황제의 대리인’인 유대 주재 ‘장관’이 허가해야만 사형을 집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예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Jerusalem의 제사장들로 구성된 법정에서 사형판결을 받고, 유대 장관인 Pontius Pilatus가 집행을 허락했기 때문에 처형을 당했습니다. 제사장들의 압력에 굴복한 Pilatus는 손을 씻는 상징적인 gesture를 보이면서 형을 집행했습니다.

Syria 총독 Kurêvios가 실시한 Augustus의 유대대책은 Tiberius에게 그대로 계승되었습니다. Tiberius는 더욱 철저하게 실시했습니다. 황제가 Tiberius로 바뀐 뒤에도 Kurêvios는 여전히 Syria총독이었습니다. Jerusalem성전에 바쳐진 Roma의 봉납품에는 황제를 상징하는 것이 없었지만, Tiberius는 이것조차도 신격이 된 선황 Augustus에게 바쳐진 Caesarea의 신전으로 옮기라고 했습니다. Jerusalem성전이 비유대교도의 봉납품으로 더럽혀졌다고 유대교도가 생각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습니다. 또한 유대교 대제사장이 의식을 치를 때 입는 제의는 Roma측이 Jerusalem 궁전 안에 보관하고 있었지만, 이것도 유대 측에 돌려주라고 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종교의식을 치를 때마다 제사장들이 그 제의를 빌려와야 했고, 이교도인 Roma인이 보관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그 더러움을 없애기 위한 일주일의 ‘정화’ 간을 두어야했습니다. Kurêvios가 주후21년에 죽었을 때 Tiberius황제는 조국에 대한 공헌이 컸다는 이유로 국장을 치러주었습니다.

Kurêvios가 죽은 뒤에도, Tiberius는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혹 유대 장관들 중에는 유대민족의 특수성에 무지하여 그릇된 판단을 내린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Tiberius에게 알려지면 당장 해임될 뿐 아니라, 본국으로 소환되어 재판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주후26년부터 10년 동안이나 유대 장관을 지낸 Pontius Pilatus가 해임된 첫 번째 이유는 군기를 앞세운 부대를 예루살렘에 입성시켰다는 것, 두 번째 이유는 몇 차례에 걸쳐 일어난 주민의 소요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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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로 난 유대인들의 계략(사도행전23:16-22)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절대적인 비밀은 없다는 말입니다. 더구나 40여명의 테러분자들이 산헤드린과 결탁하는 과정에서 terrorist의 계획이 바울의 조카에게 들린 것입니다. 바울의 조카는 즉시 그 계획을 바울에게 전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백부장 한 사람을 불러서 조카를 천부장에게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이로써 천부장은 바울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바울도 위험을 느꼈을 것이고, 바울의 조카도 위험을 느꼈을 것이며, 천부장과 백부장들도 위험을 느꼈을 것입니다. terrorist들이 무려 40명이며 산헤드린과 결탁하여 예루살렘이 소동할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하나같이 모두 위험하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럴 때마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 하여야 하리라’(23:11)고 하신 말씀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즉 로마에 가서 복음을 증거 하기까지는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보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위해 섭리사역을 하십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5장1-4,7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물의 위대한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들과 그들의 언행심사를 보존하시고 감독하시고, 처리하시고, 통치하신다. 그는 기장 큰 것으로부터 가장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하시며 그의 가장 지혜롭고 거룩한 섭리에 의하며, 그의 무오한 예지와 그 자신의 의지의 자유롭고 불변하는 계획을 따라서 하신다. 이로써 그의 지혜 능력, 공의 선하심 그리고 자비의 영광을 찬미케 하신다. 제1원인이 되시는 하나님의 예지와 작정에 따라 모든 일들이 변함이나 틀림없이 일어난다. 그렇지만 동일한 섭리에 의해서 하나님은 제2원인들의 성질에 따라 그 모든 일들이 필연적으로 자유롭게 또는 우발적으로 일어나도록 작정해 두셨다 하나님은 그의 일반적 섭리에 여러 수단들을 사용하신다. 그렇지만 그는 그 수단들 없이 그것들을 초월하여, 그리고 역행하면서도 그의 기쁘신 뜻대로 자유롭게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측량할 수 없는 지혜와 무한하신 선하심이 그의 섭리에 잘 나타나 있다. 그 섭리는 아담의 첫 번째 타락과 천사들과 사람들의 모든 죄까지도 포함한다. 그런데 그러한 죄들은 단순한 허용에 의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은 허용하시되 여러 세대에 가장 지혜롭고 강력하게 제한하시고 그 밖에도 명하시고 주관하시어 그 자신의 거룩한 뜻들을 이루도록 하신다. 그러나 죄악성은 오직 피조물에게서 나온 것이요,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기장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기 때문에 죄의 조성자이거나 승인자가 아니시며 또한 그러실 리도 없다. 하나님의 섭리가 일반적으로 모든 피조물들에게 미치는 것처럼, 하나님은 가장 특별한 방식을 따라 그의 섭리로 자기 교회를 돌보시며, 모든 일들을 교회에 유익이 되게 처리하신다.

우리의 사명은 금방 넘어질듯 하면서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는 로마에 갈 때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기까지 누구도 바울의 생명을 해할 수 없습니다.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비록 동화처럼 아기자기하지는 못해도, 고통과 고난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마귀와 사탄이 사나운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어도 성도들을 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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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역한 유대인들(사도행전21:27-36)

바울사도는 야고보의 중재에 의해서 유대의 결례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결례일이 끝나갈 무렵에 예루살렘성전 뜰에서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소아시아 특히 에베소지방에서 소동을 일으켰던 유대인들이 바울을 보자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을 선동했습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사도가 3년간을 사역하면서 유대인들은 바울을 적으로 간주해서 살해하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좋은 기회를 포착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에베소사람 드로비모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드로비모’Trovfimo"/trôphmos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드로비모는 에베소의 이방인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는 아시아에서 바울과 동행했습니다(행20:4), 그리고 예루살렘교회에 줄 선물을 가지고 예루살렘까지 동행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인 드로비모가 이스라엘의 뜰(Court of Israel)에 바울과 함께 있을거라고 지레짐작했습니다. 이방인으로서 ‘이스라엘의 뜰’에 들어가는 것은 사형을 당할만한 범죄였습니다. 하지만 성전의 바깥뜰에는 이방인들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방인들이 성전의 안뜰에 들어갈 때는 죽음을 면치 못했습니다. 로마당국조차도 유대인의 종교적인 금기사항을 지킬 정도였습니다.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당시 로마의 총사령관인 디도(Titus)가 예루살렘성전 경비병들에게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고 주지시켰다는 것입니다. 설령 로마시민이라고 할지라도 금지된 지역 안으로 들어갈 때는 사형선고가 내려지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에베소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소동을 일으키며 그 뜻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이에 예루살렘성이 발칵 뒤집히다시피 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바울을 대적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실체들이 있습니다. 천사들입니다. 그리고 마귀입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편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반면에 마귀는 사탄의 편에서 사탄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사주를 받는 존재들이 또한 존재합니다. 교회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을 끌고 간 유대인들이 사탄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겉으로는 명분을 가지고 일합니다. 자신들은 율법에 충실하고 유대인으로서 손색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전을 더럽히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실은 성전을 심히 더럽히는 자들입니다.

사람이 의식화되고 정형화되면 다른 것들은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한번 박혀버린 사상이 그래서 무섭습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자신의 정형화된 사상에 반하는 사람들은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들을 제지할 어떤 근거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의 정형화로 인해서 초대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심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복음이 더디어졌습니다. 그러나 더욱 복음전파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복음을 받을 뻔 했던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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