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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 없는 심판(로마서2:4-16)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성경해석은 조심해서 해야 합니다.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다가는 잘못된 길로 인도하거나 그리로 같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예로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를 띄어쓰기를 잘못하면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가 된다. 글자 수는 틀림없는데 띄어쓰기를 잘못함으로 엉뚱한 해석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방에 들어가는데, 가방에 들어가는 것으로 오해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4절에서 15절을 언뜻 보면 이방인들도 양심으로 인해서 구원을 받을 수도 있다는 nuance로 볼 수도 있습니다. 만일에 그렇다면 복음이 완전히 흐트러져버립니다. 굳이 양심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다면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에 들어오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교회의 존재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종교를 가지거나 가지지 않아도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 삶을 살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바울사도가 왜 이런 구절을 썼습니까?

 

독일성서공회해설 성경은 율법을 소유하는 것이 결정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결정적이다. 모세의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도 역시 선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도 그것을 행할 수 있으며, 그들의 양심에 의거하여 스스로를 고발하기도 하고, 변명하기도 하면서 그들의 생각이 둘로 갈라져서 싸우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야말로 인간의 삶의 실상이 어떠한지를 밝혀 줄 것이다.고 했습니다.

 

Thompson 성경은 구체적조항인 율법은 없어도 본성의 양심이 율법의 기능과 목적을 대행할 것이다. 사람들의 양심이 스스로에게 증거하듯이 인간은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죄인임을 각성시킨다고 했습니다.

How주석에서 최갑종은 율법의 소유와 할례가 유대인들에게 특권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심화시키기 위하여 이방인들이 설사 할례를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만일 그들이 율법을 행한다면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수사학적 표현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에 들어간다는 주장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Calvin은 우리가 취한 행위의 바른 경로를 옹호해주는 어떤 논증들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우리의 악한 행실들로 인하여 우리를 비난하고 유죄선고 하는 논증이라고 했습니다.

 

Matthew Henry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그 심판이 공정하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순종의 법칙이 하나님의 심판의 법칙이라는 원칙에 입각해서 진행될 것이다. 이방인들은 자연의 빛이 있고, 유대인들은 율법의 빛이 있다는 것입니다.

 

William Hendriksen은 사도바울은 어떤 사람이 율법을 모르고 죄를 범하든, 또는 율법을 알고 죄를 범하든(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거스르는 자는 범죄한 자로 판단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에 상응하는 형벌이나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이방인에게 과연 공정한 것일까? 이방인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희미한 개념조차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 왜 그가 심판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14,15절에서 보는 바대로 이러한 반론은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방인이 본래 돌판에 기록한 율법을(24:12) 알고 있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의 마음에 율법이 요구하는 행위들을 기록해 두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에게 옳고 그름에 대한 지각을 주셨던 것이라는 것입니다.

 

William Barclay문장의 의미로 볼 때 16절은 13절 다음에 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14,15절은 괄호 안에 들어 있다. 바울은 책상에 앉아서 단어 한 마디 한 마디 그리고 문장 하나하나를 생각하며 써 내려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더디오(16:22)에게 불러 주면서 방을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였고, 더디오는 받아쓰느라고 애를 썼다고 상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긴 괄호가 왜 있게 되었는지를 설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13절에서 16절로 직접 연결하고 14-5절은 부가적으로 설명하면 그 내용의 뜻을 바로 이해하기가 더 쉽다는 것입니다. 1

 

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6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바울사도가 이방인들에게로 눈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그릇 생각하는 특권과 편애의 주장을 다루었는데,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특권이려면 그것은 율법이었다. 그래서 이방인들은 하나님은 율법을 가지고 선악을 분별할 줄 알았을 유대인을 벌할 것이고, 우리 이방인들은 율법을 알 기회도 없었으니까 선악을 분별할 줄도 몰랐기 때문에 심판을 확실히 면하게 될 것이다라는 주장에 대답하기 위해서 바울은 두 가지 대 원칙을 내세웠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로 사람은 그에게 알 기회가 주어진 것에 의해서 심판된다. 만일 그가 율법을 알고 있었다면 그는 율법을 안 자로서 심판될 것이고, 만일 그가 율법을 몰랐다면 그는 율법을 모르는 자로서 심판될 것이다. 하나님은 공정하시다. 여기에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살았던 사람과 기독교 메시지를 들을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고 질문하는 사람에 대한 대답이 있다. 기독교적인 대답은 사람은 그가 알 수 있었던 최고수준에 대한 성실성에 의해 심판된다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그가 알고 있었던 최고표준에 진실했다면 하나님은 그에게 더 이상 요구할 수도 없고 하시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더 나아가 글로 써진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도 그들 마음 속에 불문의 율법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것을 선악에 대한 본능적 지식이라고 부르고 있다. 스토아파 철학자들은 우주에는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도 범하려는 법칙들이 있는데 그것은 생명과 생활을 지배하는 법칙, 건강의 법칙, 도덕률 등이다. 바울에 의하면 사람의 본성에는 우리가 꼭 해야 할 것에 대한 선천적이고 천부적인 그리고 본능적 지식이 심겨져 있다. 바울은 세계가 두 가지 종류의 사람들로 나뉘어 있다고 보았다. 즉 유대인들은 그들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이 직접 주어지고 씌어져서 누구나 읽을 수 있게 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민족들은 이 씌어진 율법은 없으나 그들 마음속에 하나님이 심어주신 선악에 대한 본능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러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이 심판에 대해 변명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심판은 특권을 가졌다고 하는 유대인이나 특권이 없는 이방인이나 예외가 없습니다.

 

 

And

심판의 표본/하나님의 진노(로마서1:18-23)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우리말 성경에 번역되지 않은 단어가 있습니다. gavr/gâr/가르입니다. gavrge/적어도, 심지어 a[ra/그런 까닭에, 그러므로, 그렇다면 의 단축형으로 참으로, 사실은, 왜냐하면이라는 원인, 설명, 추정 또는 계속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접속사입니다. 가르가 번역이 되었으면 훨씬 해석에 빛을 더해주었을 것입니다.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왜냐하면)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7 (왜냐하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8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왜냐하면)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21 (왜냐하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바울사도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이유로(왜냐하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17절에서 18절을 잇는 접점에서도 (왜냐하면)을 사용합니다. 원래 성경은 장절이 없었습니다. 성경의 장()을 나눈 사람은 영국교회의 켄터베리 대주교였던 랭튼(Stephen Langton/1150-1228)입니다. ()은 스테파누스(Stephanus Robertus)가 신약성경을 절로 구분하여 1551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출판했습니다.

17절과 18절의 왜냐하면/gâr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받는 방법 이외에는 어떤 것도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gâr이 그것을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태초부터 인간에게 임한 이후로 인간은 율법의 행위로나 다른 방업으로나 자신을 완전히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있다고 하면 희대의 사기꾼이며, 대대로 마귀의 자식들입니다. ‘하나님의 진노’/ojrgh; qeou'/‘오르게 쎄우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람이 잠깐 화를 내는 것일까? 만일에 그렇게 생각한다면 잘못 계산한 것입니다. 다음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진노가 어떤 사람에게 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로마서9:22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에베소서5: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골로새서3:6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데살로니가전서1: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창세기6장에서 8장을 보면 홍수심판이 나옵니다. 홍수심판은 전해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중동지방에만 심판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지구상이 일 년간 물에 잠겨 있었던 공포의 홍수입니다. 이 홍수로 인해서 방주에 있었던 노아가족만 살아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의 멸망입니다(19). 이 도시들은 유황불로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사해로 그 잔해가 남아있습니다. 또한 출애굽기6장에서 12장까지의 애굽에 내린 재앙입니다. 이런 심판들이 모두 하늘에서 있었습니다. 오늘의 사람들은 심판에 대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으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심판이 있다 해도 나대로의 종교가 있으니까 걱정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통치영역에 있음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빨리 회개하고 심판에서 탈출해야 함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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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심판 아래 있는 인간들(로마서1:15-17)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지켜야 할 법이 있습니다. 지켜야 할 규칙이 있고, 법이 있습니다. 이것을 어기면 법과 규칙의 제재를 받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교통규칙을 어기고 사고를 냈습니다. 당연히 도로교통법과 그에 해당하는 법의 제재를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인류의 시조에게 법을 선포했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은 엄중한 법입니다.

 

창세기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로마서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5:15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로마서5:16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로마서5: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로마서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

로마서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것 같이

 

정녕 죽으리라tWmT; tWm/mûwth thâmûwth 는 말씀은 죽으리라는 말씀의 반복입니다. ‘죽는다 꼭 죽는다입니다. 죄를 지은 아담만 죽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 이래로 모든 사람이 꼭 죽는 것입니다. 즉 한 사람과 많은 사람의 연대관계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싫든 좋든지 간에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든지, 안하든지 간에 사실(fact)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대체를 하려고 합니다. 즉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대신 다른 신을 믿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검증이 되지 않은 것입니다. 구원에 관한 한 대체는 없습니다. 분명히 심판은 있고, 대체도 없습니다. 그러면 구원에 관한 한 自明합니다. 심판 아래 있고, 심판은 반드시 있으며, 또한 모든 사람들은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이 구원의 소식을 위해서 성경이 기록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말씀을 믿고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심판이 있다는 말씀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구원을 위해 성경은 더 멀리 갔습니다. 로마제국에서 영국으로, 화란으로 구미로 아시아로, 다시 중동으로 전 세계에 걸쳐서 구원의 말씀은 멀리멀리 퍼져나갔습니다. 지금도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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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사람들의 생각들 (사도행전26:24-29)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이 가로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나이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 아그립바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 뿐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 하니라

 

바울의 변명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누구나 바울에게 죄가 없다고 했을 것입니다. 왜 우리가 이런 재판의 청문회를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 들었을 것입니다. 법에 대해서 문외한이라고 하더라도 바울의 증언을 들은 사람이라면 바울에게 죄 없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유대적인 변명과 도를 들었던 베스도가 갑자기 큰소리로 바울에게 말하기를 미쳤다는 것입니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했다는 것입니다. 베스도는 바울에게 성경을 너무 많이 알더니 미쳤다고 했습니다. 바울을 조롱한 것입니다. 바울은 미친 것이 아니고 똑똑한 정신으로 말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이 도에 대해서 베스도는 잘 알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말합니다. 선지자를 믿는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아그립바도 적은 말로 권해서 나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사도는 말이 적으나 많으나 오늘 나와 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복음에 붙잡혀야 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4:3을 보면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그 층이 다양합니다. 국가도 다양하고, 쓰는 언어도 다양합니다. 그리고 학력도, 직업도, 연령층도 다양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들여서 예수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사단에게 눈이 어두워진 불신자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미련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행여 전도를 당할까봐 그들은 걱정을 합니다. 그리고 대신할 것을 찾습니다. 열왕기하5:8을 보면 엘리사가 요단강물에 일곱 번 씻으라고 했을 때 나아만은 시리아의 ‘아마나’와 ‘바르발’강에서 씻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했습니다. 시대마다 불신자들이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복음을 대체할 어떤 것을 찾았습니다. 실상(fact)은 없는데 그들은 있다고 합니다. 복음을 대체할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픈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많은 불신자들이 지옥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그것도 안심하고 갑니다. 막상 지옥문을 통과해서야 늦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지옥에 가서야 사람들은 깨닫습니다. 그러기 전에 복음을 받아들이면 되는데 복음을 대체한다는 교만한 자신감 때문에 복음을 우습게 여깁니다. 세상에 종교는 많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것도 허구입니다. 오직 복음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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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한 아그립바를 심판하심(사도행전12:20-23)


헤롯 아그립바는 두로와 시돈사람들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 없습니다. 아마도 두로와 시돈사람들이 전에 헤롯 아그립바에게 죄를 지은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두로와 시돈은 언제인가는 헤롯의 보복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헤롯의 두로와 시돈에 대한 노여움은 전혀 풀릴 기미가 없었던 같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헤롯과 화해하려고 했습니다. 더구나 두로와 시돈사람들은 헤롯이 식량제재를 하면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상업도시이기 때문에 식량을 가나안에서 수입해야 했습니다. 그 수입처가 헤롯 아그립바가 다스리는 지역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조건으로든지 해결해야 했습니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헤롯의 신하 블라스도를 만나서 화해하기를 청했습니다. 이 일은 성사가 되어서 두로와 시돈은 헤롯과 화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헤롯 아그립바가 어느 날 왕복을 입고 쇼를 했습니다. 왕위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을 했습니다(ejdhmhgovrei/edēmēgôrei). 그러자 백성들이 그 말을 듣고 헤롯을 신으로 여겼습니다. 그때 헤롯은 마땅히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했는데, 헤롯은 그러지를 않았습니다. 이에 주의 사자가 헤롯을 쳤습니다. 그러자 헤롯은 죽었습니다. 이 상황을 요세푸스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아그립바는 씨저의 안녕을 비는 축제가 가까웠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곳(가이샤라)에서 씨저를 기념하는 show를 열기로 했다. 축제가 다가오자 각지에서 귀족들과 유력 인사들이 수없이 가이사랴로 몰려들었다. 쇼가 열린지 2일째가 되는날 아그립바는 은으로 만든 멋들어진 옷을 입고 이른 아침 극장으로 나갔다. 때마침 떠오르는 햇살이 그의 옷에 달린 은에 비치자 어찌나 휘황찬란한지 쳐다보는 자들이 공포감을 느낄 정도로 현란했다. 이에 이곳저곳에서 아그립바가 바로 신이라는 아첨의 소리가 튀어 나왔다. 군중들은 이같이 함성을 질렀다: “신이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가 지금까지는 왕을 한 인간으로서 존 경해 왔으나 이제부터는 왕을 인간과는 다른 존재로 인정하겠나이다” 그러나 아그립바 왕은 이런 불경스런 아첨을 듣고서도 군중들을 꾸짖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러자 다음 순간 아그렵바 왕이 하늘을 쳐다보았을 때 올빼미가 머리 위에 있는 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 순간 전에 기쁜소식을 안겨 주었던 새가 이제는 흉한 소식을 전해 주러 나타났음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그때 갑자기 배에 무서운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그립바는 복부의 통증으로 5일간 기진할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더니 결국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때 그의 나이는 54세였으며 왕 위에 오른 지 7년째의 일이었다. 그는 4년간은 카이우스 씨저의 통치 밑에서 왕으로 통치했다. 그중 3년간은 필립(Philp)이 다스리던 분봉국의 왕위에 올라 다스리다가 4년째 되던 해에 헤롯의 영토를 손에 넣었다. 그는 7년 중 후반 3년 동안은 클라우디우스 씨저 밑에서 왕의 자리에 있었는데 앞서 언급한 영토 외에도 유대와 사마리아와 가이사랴까지 통치할 정도로 그 판도가 넓었다.

헤롯 아그립바는 야고보를 죽였습니다. 베드로도 죽이려고 하다가 실패했습니다. 야고보도 헤롯의 기민함에 죽은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으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하신일입니다. 어쨌든 아그립바는 그냥 두어서는 안 될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의 사자를 보내어 죽인 것입니다. 더구나 헤롯은 신성모독죄까지 졌습니다. 신이라고 사람들이 불렀을 때에 아니라고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만둘 리 없었습니다.

교만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속성 중에 하나입니다. 어떻게든지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성도들 중에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은 자신도 몰래 자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높아지려는 것, 문제입니다. 연합사업만 하면 무슨 감투들이 그렇게 많은지 모릅니다. 회장, 부회장, 총무, 서기, 회계면 될터인데 부회장이 몇인지 모릅니다. 총무도 몇 명, 서기도 다수, 회계도 다수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만해서 그렇습니다. 정말 우리들 회개해야 합니다. 교만함을 회개해야 합니다. 교만은 성도들을 넘어뜨리는 선봉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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