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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알만한 것(로마서1:18-23)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 워터루(Waterloo/Belgium중부의 마을로서 1815NapoléonWellington에게 참패당한 곳)가 하나님이었도다!”라고 관용어 같은 말이 있습니다. Wellington 대신에 Napoléon이 승리를 거두었다면 Europe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최근 세계전쟁의 결말은 결국 역사상의 하나님의 현현이라는 사실을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 제2차 대전이 연합국이 승리하지 않고 추축국인 독일, 일본, 이탈리아가 승리했다면, 지금 세계는 어떻게 돌아갈까요? 구 쏘련과 중공 같은 공산국가와 대립했을 때, 이들이 승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히틀러, 무쏠리니, 메이지유신 같은 작자들이 세계를 집어삼켰다면, 스탈린이나 모택동 같은 사람들, 안중근 의사의 심판의 총탄에 이등박문이 죽지 않았다면, 아마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우리는 보다 강력하고 의로운 국가들에 의해서 고대의 부패한 국가들이 패배했던 사실을 소급해서 말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정복자도 대개는 사악했지만, 피정복자만큼 그토록 도가 지나칠 정도로 죄악에 꽉 차 있지는 아니했습니다. 시편기자는 제왕과 나라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들어 있노라고 담배하게 선포했습니다. “대저 높이는 일이 동에서나 서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니라”(75:6,7/13:1). 바울은 하나님이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오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심이라”(17:26, 27)고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기독교의 체계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에 관한 하나의 계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여러 나라와 관계하고 계신다고 언급했습니다.

 

애굽(9:13-17, 9:17, 46:14-26)

앗수르(10:12~19; 31:1-14, 3:1-7).

바벨론(50:1-66, 51:1-4)메데 바사(44:24-45)

메데 바사와 희랍(8:1-8, 15-21)

알렉산더 제국이 멸망한 후 일어난 4왕들(8:9-14, 22-25, 11:5-35)

로마제국(7:7,23)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지혜롭고 거룩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보다 사악한 나라로 하여금 보다 덜 사악한 나라를 정복토록 허용하시기는 하지만, 결국에 이르러서는 보다 덜 사악한 나라보다는 보다 더 사악한 나라를 호되게 다루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1:1-2:20).

이스라엘은 전쟁만 약3000번을 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강국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조그만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계시해 오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대해 지니고 있는 신관(神觀)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관계하시던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계시해 오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지니고 있던 신관은 특기할만합니다. 온 세계가 다신론(多神論/polytheism)과 범신론(況神論/pantheism)에 절망적으로 빠져 있던 순간에도,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많은 조상들은 하나님을 인격적이고 무한하시며 거룩하시고 자기계시적 하나으로 알았으며, 또 우주의 창조주와 보존자와 통치자로 알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편만 드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잘못했을 때는 호되게 이스라엘을 다른 나라를 들어서 질책하셨습니다. 그러다가도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설 때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이스라엘과 열방에 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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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알만한 것(로마서1:18-23)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연(실은 창조물이라고 해야 함) 가운데서 하나님에 관한 계시를 항상 보아왔습니다. 많은 은사를 받은 사람일수록 시편기자들과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말한 언어와 유사한 언어로 자기들의 확신을 자주 피력해 왔습니다.

 

시편8:1,3 1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3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시편19:1,2 1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이사야40:12-14,26 12누가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으랴 13누가 여호와의 신을 5)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14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공평의 도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뇨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사도행전14:15-17 15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 함이라 16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17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

로마서1:19,20 19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3)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영국의 Hume은 회의론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Adam Ferguson과 별이 뜬 밤을 거닐다가 아담아, 저기 하나님이 계시는구나라고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Voltaire는 알프스 산의 천둥치는 폭풍우에 기도를 했다고 했습니다. 자연과학 및 생물학 분야의 많은 저명인사들이 자연은 하나님을 계시하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과 신성과 자비의 현현으로서의 우주를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과학자들은 일반계시는 인간을 구원하는 데에는 불충분하며, 단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에 관한 보다 충분한 계시를 찾도록 촉구하며,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반적인 부르심을 형성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즉 자연에 나타난 계시로 인해서 하나님께 연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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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알만한 것(로마서1:18-23)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신학의 가능성은 두 가지 사실에서 기인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에 관한 계시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인간의 타고난 기능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계시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로 구분합니다.

 

하나님에 관한 계시(The Revelstion df God): Pascal은 하나님을 숨겨진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숨겨진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신이 없기 때문에 계시도 없습니다. 그런데 존재하지도 않는 신을 찾으러 사람들이 나선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것도 없는 신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이라면 계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지 않으시면 하나님을 알 길이 없습니다. 계시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열어 보이시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피조물에게 자신을 알리시는 것이 계시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계시/일반계시: 일반계시는 자연, 역사, 양심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일반계시는 자연과 역사의 과정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현상을 매개로 전달됩니다. 일반계시는 모든 지적인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전달됩니다. 일반계시가 목적하는 바는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자연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줍니다. 하나님을 찾도록 설득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확실한 자기계시를 자연과 역사 그리고 인성(personlity) 안에서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주셨습니다. 바울사도가 말한 인간에 대한 심판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Millard J. Erickson

 

만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정죄하는 것이 정당하고 인간이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알지도 못한 채 죄인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인간이 특별계시 없이도 하나님의 정죄를 피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로마서2:14에서 바울은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그들이 율법의 요구들을 다 이룰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율법을 가지고 있는 이들조차도 해낼 수 없는 것이다(로마서3장뿐 아니라 갈3: 10-11을 보라). 바울은 또한 갈라디아서3:23-24에서 율법이 우리를 의롭게 하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죄를 깨달아 알게 해 주는 몽학선생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여 믿음에 이르도록 인도해 준다는 사실을 명확히 한다. 불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내적 율법도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그 율법이 수행하는 것과 같은 기능을 행한다. 자연에 나타난 계시로부터(1) 인간은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영원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결론을 내려야만 한다. 그리고 내적인 계시로부터(2) 인간은 그 기준에 맞는 삶을 살고 있지 못함을 깨달아야 한다. 도덕적인 법조항의 내용은 여러 다른 문화적 상황 속에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그들이 고수해야 하는 하나의 내적 충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기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시 말해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만일 그들이 그것을 억누르지만 않는다면,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가 어떤 근거를 가지고 제공되는 것인지를 알지 못한 채, 그 하나님의 자비에 우리 자신을 맡겨 버린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러면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구약의 신자들과 같은 형편에 있지 않은 것인가?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 사역에 대한 교리들은 아직 그들에게 온전하게 계시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그들은 죄를 용서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준비된 것과 그들 자신의 공로로 인하여 용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온전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복음의 형식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구원받았다. 만일 자연을 통해 알려진 하나님이(바울이 사도행전17:23에서 주장한 것처럼 보이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시라면, 한 분의 능력 있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갖고 그 거룩하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어떤 행위로 말미암은 의를 단념하고 그 선하신 하나님의 자비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은 구약의 성도들이 그랬듯이 용납될 것이다 비록 그 연관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구원을 위한 작업이 준비되었는지 모르고 있다 하더라도, 그가 용납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때문이다. 우리는 구원의 근거가 신약과 구약에서 분명히 동일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구원은 항상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3:6-9). 이 구원은 우리를 율법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구원하심에 달려 있는 것이다(3:10-14, 19-29). 그렇다면 로마서2:1-16에서 바울이 언급한 내용들로부터 우리는 어떠한 추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가? 특별계시가 없어도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바울은 이러한 이론상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이론상의 가능성일 뿐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특별계시를 받지 않고서도 실제로 구원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의문시된다. 바울은 로마서3장에서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10장에서 그는 사람들로 믿도록 하기 위해 복음(특별계시)을 전파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이처럼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계시의 빛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책임은 전적으로 그들에게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참으로 하나님을 알고서도 그 진리를 의도적으로 억눌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일반계시란 사실상 율법처럼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를 정죄하는 일을 한다.

 

신자와 불신자 혹은 복음과 불신자의 생각 사이에는 하나의 공통된 기반 또는 접촉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핑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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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사도행전22:4-16)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14절)

아나니아는 바울사도가 다메섹에서 제일먼저 만난 사람입니다. 이미 성령께로부터 사울에 대하여 들었기 때문에 사울에 대한 루머를 일축하고 사울에게 하나님의 사명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나니아는 하나님을 바울에게 그냥 하나님으로 말하지 아니하고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으로 묘사했습니다. 아나니아는 사울(바울)에게 우리조상들의 하나님으로 묘사함에 따라 그리스도의 도가 신흥종교가 아닌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만들어진 종교가 아니고 구약시대부터 약속된 도(道)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그리스도의 도를 믿는 우리들을 유대인들은 심히 오해를 했습니다. 마치 신약시대에 처음으로 생긴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아브라함과 다윗과 선지자들을 말씀하셨어도 그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했던 것입니다. 또한 ‘천주교는 큰 집이고 기독교는 작은 집이다’고 하는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오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선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과 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온갖 미신들을 혼합시키고 살을 불렸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멀리 갔었습니다. 따라서 로마 카톨릭 또는 로마교라고 불러야 맞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로마 카톨릭에 있었다가 종교개혁을 해서 마치 로마 카톨릭은 구교, 개신교는 신교로 그들(로마 카톨릭)이 조롱하는 말로 썼던 용어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루터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심하게 오염되고 변질된 로마교를 떼어내고 홀로서기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큰집, 작은집 하고 운운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이후 모든 성도들은 ‘저 의인’을 보는 것입니다.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말한 ‘저 의인’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저 의인입니다. 이 의인 때문에 예루살렘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예루살렘의 종교권자들이 난리법석을 떨었습니다. 관원들이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종교권자들은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왜 스데반이 기쁨으로 그 의인을 위해서 순교를 당했는지를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에서 막강하게 종교권을 행사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을 전혀 몰랐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들이 모세의 자리에 올라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교권주의자들은 모세의 자리에 많이 앉아있습니다. 분명히 다른 도를 전파하는 사람들에게 면책권을 주기도 하고, 자기마음대로 전횡을 휘두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두렵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두렵지 않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의 은혜에서 배제를 당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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