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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0.20
    의에 이르는 순종의 종
  2. 2017.12.04
    잘못된 결정
  3. 2015.08.04
    순종한다는 것
  4. 2014.12.30
    회개의 권고

의에 이르는 순종의 종(로마서6:15-23)

 

면역성이 있다는 것은 어떤 개체가 면역을 가지고 있는 성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죄는 죄인을 자기의 종으로 만들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예로 어떤 사람이 처음 거짓말을 했을 때, 자학하면서 공포를 느낍니다. 그러나 두 번째 거짓말을 할 때는 첫 번째보다 덜 양심의 가책을 가집니다. 세 번째 거짓말에 가서는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마침내 거짓을 말하는 죄가 그를 꼼짝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타 다른 죄들에 있어서도 인간들은 이와 같기 때문에 죄 가운데 살아가며 그것의 종노릇을 하고야 맙니다. 죄에 이미 면역이 된 인간은 자신이 죄를 짓고 있는지, 짓고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즉 사람은 어떤 주인에게 속하느냐에 따라서 센 주인을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즉 자신에게 있어서 죄가 그 자신을 잡고 있으면 죄의 종으로 전락되고 맙니다.

죄의 노예에서 ‘노예’란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피상적인 종이 아닙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직장에 속해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낮에는 즉 정해진 시간에는 직장에서 일합니다. 이 일은 하기 싫어도 합니다. 돈 때문입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입니다. 돈이 필요 없으면 굳이 직장에 예속되지 않습니다. 어쨌든 직장에 근무하다가 근무시간이 끝나면 내 시간으로 돌아옵니다. 이 시간은 직장에 예속된 시간이 아닙니다. 내 시간으로 얼마든지 다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당시의 종은 24시간 중 단 일초라도 자기시간은 없었습니다. 노예에게 지위란 전혀 없었습니다. 종의 시간은 주인의 독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두 주인을 섬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랬던 그들에게 바울사도는 말했습니다. 이제는 너희가 과거에 섬겼던 주인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그러니 새 주인에게 순종해야 하지 않겠는가? ‘과거에 순종했던 지독한 죄를 주인으로 삼든지, 아니면 영생에 이르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든지 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사도의 이 말은 죄를 주인으로 삼으면 멸망이라는 말이고, 순종의 종으로 즉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면 의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밖에는 다른 주인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 생의 일부는 하나님께, 다른 일부는 이 세상에게 바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전부 아니면 안 됩니다. 크리스천이 자기 생의 얼마만큼은 하나님 없이 살게 하려하는 것은 진정한 그리스도인 아닙니다. 바울사도가 계속 로마서에서 논증하고 있는 것은 죄가 사람에게서 왕노릇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필경은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그리스도인은 엄한 율법아래 있(엄하면서도 구원할 수 없는)지 않고 은혜아래 있다. 그래서 너희들은 진정한 자유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 자유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란 방종하라는 자유가 아니라 너희를 살리는 자유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함부로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것에 걸려있습니다. ‘나는 구원받았다. 그러므로 이런 죄쯤 짓는다고 해서 뭐 어쩔라고…’하면서 말입니다. 죄의 폭군휘하에서 벗어났다 할지라도 얼마든지 그 안에 다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And

잘못된 결정(사도행전27:12-13)

 

그 항구가 과동하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편은 동북을, 한편은 동남을 향하였더라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

 

사람들이 바울의 말보다 경험이 많고 전문적인 지식이 많다고 하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들은 이상 그 항구(미항)는 겨울을 나기가 불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나자고 했습니다. Foi'nix/Phoȋnix는 Krhvth/Krête의 항구였습니다. Krête는 지중해에 있는 큰 섬들 중에 하나로서 길이가 256㎞, 넓이는 11.2㎞-53.3㎞ 가량되는 섬입니다. 구약성경에서 Caphtor이며, 아모스9:7을 보면, 블레셋 영토였습니다. Krête는 미노아 문명(주전3,000-1,500년경)의 요람지로 최상의 정치, 문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Phoȋnix는 한편은 동북을, 한편은 동남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뜻같이 남풍이 순하게 불었습니다. 그들은 휘파람을 불었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잘못된 결정을 너무나 많이 했습니다. 지난 정권만 봐도 국민들 대다수가 하지 말라고 하던 4대강(실은 운하공사)을 고집을 부리면서 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좋은 일은 하나도 없고 나라의 돈만 강바닥을 뒤집고 허무는데 사용했습니다. 4대강은 환경파괴공사였습니다. 4대강공사가 아니라 4대강 파괴공사를 한 것입니다. 얼마나 잘못된 결정입니까?

옆의 나라 일본은 아시아를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으려고 아시아 사람들에게 아주 못된 만행을 저지른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을 살육하고, 저들의 정책에 맞추어서 사람을 실험하고 식민지를 만들어서 짐승처럼 부렸습니다. 그러다가 원자폭탄을 맞은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일본의 정권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잘못된 결정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전후에 유럽에 사과하느라고 총리들이 정신이 없는데, 일본은 아직도 웃기는 나라입니다. 얼마나 잘못된 결정입니까?

우리나라 교회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사참배, W.C.C.가입, 세속화, 교회의 Mega-Church화, 교회의 정치화, 교회세습화, 이단과 함께하는 목사들 등 잘못된 결정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때는 남풍이 순하게 불어서 득의한 줄 알았는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오늘날 한국교회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한때를 풍미하던 목회자들이 오늘날에는 줄줄이 잘못되는 것을 볼 때, 아마도 잘못된 어떤 결정일 수 있습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어떤 결정을 할 때 신중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신중하게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결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신중하게 한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으면 이미 그 결정은 잘못된 결정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중하되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당장에 순한 남풍을 믿다가는 큰 일을 당할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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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순종한다는 것(사도행전16:6-10)

바울사도는 아시아로 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막으셨습니다. 그러자 그 마음을 바로 접었습니다. 드로아에서 밤에 바울사도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환상을 보고 바울사도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하고’ 마케도니아로 향했습니다. 즉 바울사도는 아시아로 가고자 계획을 했습니다. 그런데 못하게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인데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그 마음을 바로 접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역사이래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대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순종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대략 250만-300만 명으로 추정합니다. 이들이 그야말로 척박하고 물도 없는 광야에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의 누구도 견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마솥 같은 애굽에서 건져내신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물을 주시지 않을 분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노예시절의 물먹던 때만 생각했습니다. 곧바로 하나님께 불평을 했습니다. 그 불평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땅을 무조건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창15:18-21/출3:8).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모세에게 스파이를 보내자고 제안했습니다. 마지못해 하나님께서 이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면 충분히 정탐한 것을 믿어야 했습니다. 정탐한 것을 참고하여 가나안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12명의 정탐군은 40일간의 정탐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정탐보고는 안하느니만 못했습니다. 12명중에서 10명이 가나안 정복자체를 부정했습니다. 가나안을 악평했습니다. 두 명만 하나님의 뜻에 맞게 보고했습니다. 12명중에서 10명(83.3%)이 못 간다고 했습니다. 나머지 두 명(16.7%)만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300만 명 중에서(정확한 숫자는 아님) 단 두 명만 가나안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2/300,0000입니다. 순종한 두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나안에 갔습니다. 그러나 불순종한 사람들은 광야에서 40년간 지내다가 모두 죽었습니다. 광야에서뿐만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전장에서도, 삶에서도 제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신앙생활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순종입니다. 왜 순종이 중요합니까?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에 베드로나 요한, 사도단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신들의 뜻에 따라서 했다면, 과연 오늘날의 교회가 존재했을까요? 어림없습니다. 그래서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보고에 눈을 뜨게 합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첩경입니다. 순종은 우리의 이성을 거스르는 것이지만, 우리보다 훨씬 앞서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은 좋은 그리스도인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순종을 연기하는 것은 곧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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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의 권고(사도행전2:37-42)

성령의 역사가 강렬하게 역사하신 예루살렘에서는 사도들에게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보도 듣도 못한 기적이 사도들에게 일어났는데 자기나라 말로 알아들은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하심을 본 예루살렘 사람들은 마음이 심히 찔렸습니다. 자신들이 십자가에 못을 박도록 종용한 사람이 하나님일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말을 듣고 보니 큰 일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가 어찌할고’(Tiv poihswmen/티 포이에소멘)하면서 전전긍긍했을 것입니다. 어떤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질렀는데 어떤 대책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보긴 해야 하는데 어떤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그들에게 살 방법을 제시합니다. ‘너희가 회개하라(metanohvsate/메타노에사테),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각각 세례를 받으라‘(baptisqhvtw e{kasto" uJmw'n ejpi; tw'/ ojnovmati jIhsou' Cristou'/밥티스쎄토 헤카스토스 휘몬 에피 토 호노마티 이에수 크리스투)입니다. 이것이 너희들의 죄를 용서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단체로 대표가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

이 세례는 단순한 세례가 아닙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받기 때문입니다. 이 회개는 말하기 좋게 잘못했다고 한 다음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는 그런 회개가 아닙니다. 예수님과 십자가를 진 한쪽 편 강도, 평생 남을 못살게 한 삭개오, 그리고 이스라엘의 산헤드린의 의원인 니고데모 등의 회개처럼 이전의 잘못을 완전히 뒤집는 것입니다. 이전의 삶을 180도로 유턴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습니다. 이전에는 나의 주인이 나거나, 세상이거나, 마귀이거나 했던 사람이, 이제는 예수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삶이 회개입니다. 그래서 구원받는 회개는 단회적(單回的)입니다. 계속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회개를 해야 그리스도예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회개를 함으로서 죄를 용서받을 수 있으며, 약속된 성령을 받게 됩니다. 39절을 보면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회개함으로 죄를 용서함 받는 약속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고 하셨습니다. 너희, 너희자녀, 모든 먼데 사람, 그리고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이라 했습니다. 곧 동양이나, 서양, 과거나 미래에 모든 회개하는 사람들을 모두 구원하신다는 약속입니다.

회개의 신비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을 구원시키는 동인(動因)입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어떤 죄인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비입니다. 40일전에 주님을 배반했던 사람도, 주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도록 종용한 사람도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신비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회개한 자들은 어떤 상태에 있거나, 어떤 사람도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심판은 형벌을 동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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