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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로마서4:13-17)

 

13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4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15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16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엄청난 언약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상의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을 통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보여준 믿음과 신뢰, 신임 그리고 복종 때문에 온 것입니다.

 

창세기12:1-3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2절에서는 아브라함이 큰 민족을 이룬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3절을 보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유대인들만의 조상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의 조상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해서 아브라함에게 어떠한 능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창세기11:30절을 보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는 어떠한 자녀도 없었습니다. 자녀가 없다는 것은 대가 끊어진다는 것입니다. 대가 끊어지면 후손이 없기 때문에 미래가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입니다. 따라서 무가치하고 무능한 인간일 뿐인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는 이스라엘하고만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의 재형성입니다. 민족들의 변화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소망대로의 소극적인 부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다 큰 목적들을 향한 부르심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궁극적인 이유는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너그러우신 은총에 다만 응답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값없으신 은총과 아브라함의 완전한 믿음으로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은총일 뿐입니다.

 

언약/ejpaggeliva/epanggellîa/에팡겔리아는 무조건적으로 만들어진 약속입니다. 에팡겔리아는 항상 하나님의 약속을 뜻했습니다. 에팡겔리아는 약속뿐만 아니라 약속한 것의 성취 모두를 의미했습니다. 무능하고 무가치한 아브라함을 선택하셔서 모든 족속에게 은총을 주시기 위해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통한 은총밖에 없습니다. 행위나 공로는 선택한 사람들의 구원에 아무런 기여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에 구원에 행위가 개입이 된다면 하나님의 은총은 사라져버립니다.

And

삯과 은혜(로마서4:1-8)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곳이냐? 이에 대해서 많은 논란을 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차이, 그리스도인과 이교도의 차이, 목사들 상호간의 차이, 신학자들 간의 차이 등 많습니다. 4절을 보면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당연한 귀결입니다. 일을 하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의 행위, 공력에 의한 칭의를 좋아하고 지지합니다.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의 차이입니다. 아브라함을 보는 관점부터 서로 다르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로마인들에게 설득을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바리새파의 교리로 철저하게 훈련이 된 사람들입니다. 바르게 훈련이 되었다면 무엇이 걱정입니까? 이들은 철저하게 행위와 율법만을 강조합니다. 율법도 성경대로의 율법이 아닙니다. 자신들을 위한 율법입니다. 이들은 사람의 공력에 의한 칭의의 대표적 인물로 아브라함을 내세웁니다. 유대교의 랍비들과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아브라함은 그의 당대에 유일한 의인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거룩한 민족의 조상으로 선택되었던 주된 이유는 아브라함의 의로움에 있다고 그들은 주장을 할 정도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공력에 의해 쉐키나(Shekinah/빛나는 구름/출24:15,16)를 불러들여 장막에 머무를 수 있게 하였던 일곱 사람들 중의 첫 번째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교리입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아브라함은 3살에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가 할례와 율법을 豫期的으로 수행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의가 완전케 되었다고 합니다. 외경 므낫세의 기도는 더 과장된 의인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오 주님, 의의 하나님이시여, 당신은 당신을 향하여 죄를 범하지 않았던 의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회개할 것을 명하지 아니하시고 죄인인 저에게 회개할 것을 명하셨나이다” 또한 주전2세기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외경 유빌리(Jubilees)서는 족장들의 약점을 극소화합니다. “아브라함은 주님에 대한 그의 모든 행위에 있어 완전하였고 평생 동안에 의안에서 즐거워하였다?(23:10)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인정하는데 저들은 이토록 행위의 조상 아브라함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만큼 아브라함을 의인으로 만들어놓고는 자신들을 거기에 대입시켰습니다. 의인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확실한 의인의 육신적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이 행위로 인해서 간다고 생각하면 과연 누가 가며, 어떤 사람이 가야 할까요? 아마도 한 사람도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여겨주시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은혜로 습득하는데 하나님의 칭의없이(은혜없이) 본인들이 자격을 취득하겠다니 기가 막힌 일입니다.

바울사도의 논증은 4절에 일하는 자들은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마땅한 보수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일한 것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십니다. 경건치 않는 자들을 의로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왜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습니까? 불의한 우리를 의로 여기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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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은혜를 갚게 하시는 하나님(사도행전28:7-10)

 

보블리오는 바울일행을 친절하게 사흘이나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로 고생을 하며 누워 있었습니다. 그것을 안 사도바울은 기도하고 안수하여 고쳤습니다. 이 소문이 삽시간에 섬 전체에 퍼졌습니다. 이러저러한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보블리오를 비롯한 섬 주민들이 바울일행을 후하게 대접하고 Roma에 갈 때까지 쓸 것을 배에 실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기도와 손을 통해서 병을 낫게 하셨습니다. 바울사도 독자적으로 병을 고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마치 자신들이 병을 고친 양 말을 하고 떠벌립니다. 자신이 위대해서 병을 고친 것 같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무엘상6:1-12을 보면

1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의 지방에 있은지 일곱 달이라 2블레셋 사람이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꼬 그것을 어떻게 본처로 보낼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라 3그들이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려거든 거저 보내지 말고 그에게 속건제를 드려야 할찌니라 그리하면 병도 낫고 그 손을 너희에게서 옮기지 아니하는 연고도 알리라 4그들이 가로되 무엇으로 그에게 드릴 속건제를 삼을꼬 가로되 블레셋 사람의 방백의 수효대로 금독종 다섯과 금쥐 다섯이라야 하리니 너희와 너희 방백에게 내린 재앙이 일반임이니라 5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독종의 형상과 땅을 해롭게 하는 쥐의 형상을 만들어 이스라엘 신께 영화를 돌리라 그가 혹 그 손을 너희와 너희 신들과 너희 땅에서 경하게 하실까 하노라 6애굽인과 바로가 그 마음을 강퍅케 한것 같이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겠느냐 그가 그들 중에서 기이하게 행한 후에 그들이 백성을 가게 하므로 백성이 떠나지 아니하였느냐 7그러므로 새 수레를 만들고 멍에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소에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 보내고 8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 드릴 금 보물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하고 9보아서 궤가 그 본 지경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 손이 아니요 우연히 만난 것인줄 알리라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싸워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전리품으로 취합니다. 그런데 그 언약궤가 블레셋에서 큰 재앙을 일으켰습니다. 무려 블레셋사람 5만 명쯤이 죽었습니다(삼상6:19). 그래서 블레셋은 연방회의를 합니다. 회의결과 여호와의 궤를 보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보내되 금독종 다섯과 금 쥐 다섯 형상을 만들어서 멍에메지 아니한 젖 나는 어미 소 둘을 끌어다가 새 수레에 메우고 송아지는 집에 매어두고 어미 소가 가면 여호와께서 재앙을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블레셋에 여러 재앙들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미 소는 이스라엘 쪽으로 갔습니다. 암소들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였습니다. 갈 때에 새끼 때문에 울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나보려고 블레셋 방백들이 벧세메스 경계까지 따라 갔지만 암소들은 그대로 갔습니다.

이 상황을 어떤 유명하다고 하는 목회자가 설교를 했는데 성도들이 소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는 새끼들을 돌보지 않은 암소들처럼 행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분은 암소만 생각했지, 암소를 움직이게 한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소는 특성상 새끼를 떼고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벧세메스로 향한 암소들은 갔습니다. 누가 움직인 것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소같이 되라고 설교하는 것은 무리한 설교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들을 낫게 하셨습니까? 바울로 하여금 은혜를 갚게 한 것입니다. 죽음의 바다에서 살아난 276명을 사흘간이나 융숭하게 대접한 보블리오를 비롯한 섬주민들에게 은혜를 갚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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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사도행전27:22-26)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이 배에 승선한 사람은 276명입니다. 이 사람들이 거의 보름동안에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태풍이 그들을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바울사도가 그들의 가운데 서서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들에게 권하는데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문자적인 의미는 ‘기운을 내라, 기뻐하라’(eujqumevw/euthuimêo)입니다. 그 이유는 한 사람도 생명을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만 배는 부서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 사실을 믿을 수 있습니까?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말했다는 것입니다. 바울 너는 가이사 앞에 서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너와 같이 이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을 네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안심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한 섬에 상륙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끝이 없습니다.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을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상태는 어떤 상황에 처해있습니까? 소위 자신이 무죄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죄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교만한 사람들은 자신이 도통을 해서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에 나의 가르침을 받는다면 죽어도 가장 좋은 곳에 갈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어떤 비참한 상태에 있는 줄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아마도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안다고 하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상태는 전적으로 부패한 상태입니다. 인간은 모태에서 나올때부터 그의 상태는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심히 오염되어 있습니다. 그의 모든 부분이 죄로 감염되어 있습니다. 모든인간의 지성은 심히 어두워졌습니다. 모든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의 행동하는 의지는 어둔 지성과 반동적인 마음에 예속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가슴은 오염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감성은 왜곡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감정은 매우 악합니다. 그래서 불경건한 것에 이끌리고 있습니다. 이런 양심을 누가 믿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인간은 반드시 죽음을 당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한없이 낮아지셔서 우리를 위해서 대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 앞에 나아가면 됩니다. 그를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돈을 주거나 몸을 바치거나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그 이름 예수를 믿으면 됩니다.

바울사도는 276명 앞에서 말합니다. 너희들은 이제 걱정마라.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말씀하신 하니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무엇을 믿습니까? 나만의 knowhow를 믿습니까? 무엇을 믿든지간에 자유지만, 성도들은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가 말씀하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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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부터 들리는 음성(사도행전26:12-18)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바울의 다메섹행은 정의감과 진리감에 불타서 다른 사람들은 바울처럼 열심히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독히 바울은 더했습니다. 그렇게 다메섹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정오쯤에 하늘에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바울에게 쏟아졌습니다. 중동의 사막은 태양빛이 다른 지역하고는 다릅니다. 작열하는 태양빛은 그 어떤 것하고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작열하는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이 바울과 동행하는 사람들에게 쏟아진 것입니다. 그 밝은 빛으로 인해서 가던 사람들이 다 엎어졌습니다. ㅅ그리고 하늘에서 히브리방언으로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이 말은 오직 바울밖에는 듣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는 것입니다. 네가 그렇게 해봤자 너 자신만 고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네가 나를 본 것과 주님의 재림 시에 나타날 일에 대하여 바울을 종과 증인으로 삼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유대인)과 이방인(Roma인)의 손에서 구원하셔서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보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보내시는 목적은 그들의 눈을 뜨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두움에서 빛을 보게 하시고 사단의 권세에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병원마다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그만큼 아픈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요양병원에도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옛날보다 수명은 늘어났지만, 건강하지 않기 때문에 병원에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이 세상에 오래 있기를 원합니다. 죽음 저 너머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오래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면 차라리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잠깐 살다가 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사람마다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이 구원받음에 있어서는 누구나 받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어떤 종교나, 인품이나, 학벌이나, 재력이나, 선행이나 불구하고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어떤 것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바울을 돌아서게 하셨고, 수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일에서 돌아서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 저 너머에 있는 가지 말아야 할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사명이 큽니다. 책임도 크고 부담도 큽니다.

And

바울을 위한 천부장의 역할(사도행전23:23-30)

 

천부장의 이름은 글라우디아 루시아입니다. 바울의 조카로부터 사도바울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한 천부장은 바울을 총독에게 보내기로 했습니다. Fh'lix/Phȇllix/벨릭스는 52-59년에 11대 유대총독이었습니다. Phȇllix와 그의 형제 Pallas는 원래 노예였습니다. 자유인이 된 후에 52년에 Klauvdio"/Kllaûdios/글라우디오 황제에 의해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Phȇllix는 성격이 잔인했습니다. Phȇllix가 유대의 총독으로 있는 동안에 유대의 반란이 일어나면 잔인하고 사정없이 진압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유대인들은 그를 싫어했으며, 더욱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Roma의 역사가 Tscitus는 Phȇllix에 대해 ‘그는 노예의 근성을 가지고 왕처럼 군림했다’고 했습니다. Phȇllix는 결혼을 세 번했는데 그들은 모두 공주들이었습니다.

천부장은 백부장 둘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밤3시(오후9시경)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步兵)200명과 마병(馬兵)70명, 창군(槍200)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거기에다가 바울을 태워서 총독인 Phȇllix에게 보내기 위해 짐승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총독인 Phȇllix에게 편지까지 썼습니다. 26-30절을 보면

26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에게 문안하노이다 27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줄 들어 알고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28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송사하는지 알고자 하여 저희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29 송사하는 것이 저희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건이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30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게 하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송사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를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천부장이 바울을 총독인 벨릭스에게 보낸 이유는 천부장은 재판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이사랴에 있는 총독에게 바울을 보낸 것입니다. 또한 로미시민권을 가졌기 때문에 바울을 보호해야 할 책임도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로마시민권을 가진 바울을 결박하거나 때린 것은 빼버렸습니다. 자신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가이사랴에 보내기 위해서 470명과 짐승들을 준비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까지는 96km나 되는 거리입니다. 그래서 한적한 밤 시간에 바울을 이동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사노라면 참 힘든 일들이 많습니다. 이런 일 저런 일로 인해서 고통을 받기도 하고 환란을 받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여러 가지의 상념 속에 젖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하면서 별별 생각을 다 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바울사도를 가이사랴에 보내기 위해서 470명의 군인들이 경호를 했습니다. 비록 어려운 일들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어려워도 힘들어도 살 수 있습니다. 살 희망이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힘들게 하려고 애를 많이 씁니다. 그러나 결정적일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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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사로잡힌 초대교회(사도행전2:43-47)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44-45절). 재산이란 참으로 기이한 것입니다. 재물 때문에 역사적으로, 고금을 통하여, 인종을 초월해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재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재산 때문에 법정이 있고, 소송이 있습니다. 재산 때문에 빈부의 격차가 발생합니다. 재산 때문에 사람들이 목숨을 잃습니다. 재산 때문에 모든 분쟁이 시작되고 끝을 맺습니다. 그래서 재산이 항상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중들에게 가르치기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마6:24/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눅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라고 할 때 하나님(qew'//쎄오)는 쎄오스(qeov")의 남성, 단수, 여격, 명사입니다. 그런데 재물도 똑같습니다. 재물(mammwna'//맘모나)는 맘모나스(mammwna'")의 남성, 단수, 여격, 명사입니다. 즉 같은 인격을 부여하셔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래왔고, 사람들의 원래 심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시 대제사장들은 누구보다 淸廉(청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부패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를 하게하고, 그 이득을 착복했습니다. 성전이 비리의 온상지였습니다. 이처럼 잘되었거나 잘못되었거나 하나님과 재물을 사람들은 같이 섬기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같이 섬긴다고 했을 때 똑같이 섬겼을 때 둘로 나누어집니다. 50/50입니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돈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재물의 섬김의 비율이 50/50을 유지하기란 힘이 듭니다. 50/70-50/90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은 이토록 재물을 좋아합니다.

이런 상황에 초대예루살렘교회는 그 반대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서로 같이 썼습니다. 모자란 생활필수품이나 식량을 위해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과 소유를 팔았습니다. 그 판 것으로 성도들의 필요에 따라서 나누어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재산과 소유는 소중하여 모든 사람들이 가족끼리 사용하려고 하는데, 그 소중한 것들을 가족들외에게 어떻게 내놓을 수 있었습니까? 바로 성령에 붙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에 사로잡혀 있었던 예루살렘교회였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강했던 사람도 부드러워졌습니다. 성령에 붙들려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의도대로 갔습니다. 성령에 사로잡히면 사람들이 변합니다. 이전에 행했던 행실도 버리고, 새사람으로 바뀝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초대교회를 닮아가야 할 것입니다. 수천억의 재산을 부동산으로 가지고 있지 말고, 나누어야 합니다. 그 재산이 교회들에게 가면 엄청 많은 주님의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부동산으로, 통장으로 재산을 비대하게 가진다면 죄가 될 수 있습니다. 나누지 못한 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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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을 선택하신 하나님(사도행전2:1-4)

헬라의 알렉산더(Alexandros the Great, 주전356~주전323.6)는 집요하리만치 자신의 문화를 정복지에 심어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가 지나가는 곳에는 반드시 헬라의 문화를 받아들이도록 했습니다. 그리스·페르시아·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여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시킨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했습니다. 짧은 재위에 광활한 지역에 언어를 통일했습니다.

로마의 황제들은 유럽과 아프리카, 동양에 이르는 지역을 제국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나라들을 정복하여 한 제국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로마는 길을 잘 다듬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라는 말이 있듯이 전 제국의 길을 로마로 통하게 했습니다.

이토록 그리스의 알렉산더나 로마의 황제들은 전 제국을 다스리기 위해서 언어를 통일했습니다. 전쟁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 길을 닦았고, 통치하기 유리하도록 하기 위해서 길을 닦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그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언어가 통일되고 로마의 제국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복음이 전해지기 유리할 때에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복음의 터를 닦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시던 모든 일들을 제자들에게 위임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위임되었던 복음은 순식간에 예루살렘을 넘어야 했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로, 그리고 이방으로 퍼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오순절을 택하셨습니다. 이때에 예루살렘에 절기를 지키러 로마제국의 각국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가 그들이 앉아있던 집을 가득 채웠습니다. 또한 불같은 혀들이 갈라져 그들에게 나타나 각사람 위에 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하게 하심을 따라 그들이 다른 나라 말들로 말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전무후무한 일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선교의 발판을 엄청나게 놓으셨습니다. 이런 지원을 하심으로서 선교사역에 박차를 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예루살렘을 소동케 하신 것입니다. 이제 이 세상은 하나님의 복음으로 꽉 차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신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들은 성령의 역사하심에 제동을 거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틈을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비대해 질대로 비대해진 교회의 구조와 프로그램들, 그리고 조직이 이 사회의 모델들을 그대로 교회로 끌고 들어와 목사는 총재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그의 직원들로 변해버렸습니다. 이러니 성령께서 역사하실 틈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잘못된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간섭하시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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