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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루살렘교회를 돕는 안디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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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시는 주님
  3. 2015.01.14
    복음을 훼방하는 사람들
  4. 2015.01.12
    선지자의 자손/언약의 자손
  5. 2015.01.10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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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5.01.08
    누구의 능력이냐?
  8. 2015.01.05
    성령에 사로잡힌 초대교회

예루살렘교회를 돕는 안디옥교회(사도행전11:27-30)

초대교회는 신약시대와 구약시대가 공존하는 시대였습니다. 사도들이 있었고,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예언의 은사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영감에 의하여 사람들에게 임했습니다. 이때 사람들에게 임하는 은사는 방언의 은사와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평상시의 언어로 표현했습니다(F.F.Bruce). 여기에서 나오는 아가보라는 선지자는 빌립의 네 딸과 마찬가지로 앞을 내다보는 은사가 있었습니다(Calvin). 이러한 은사가 초대교회에 내려지는 이유는 아직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은사가 어느 정도 허용된 것입니다. 이러한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갔습니다. 아마도 박해로 인해서 피하거나 안디옥교회가 새롭게 부상함으로 인해서 갔을 수도 있습니다.

아가보는 성령으로(dia; tou' pneuvmato"/diâ toȗ pneûmatos) 말했습니다. 아가보의 예언의 원천이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소위 어떤 사람들의 말들은 자신의 소리들입니다. 우리나라는 천국에 갔다 왔다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그들이 말하는 것은 요한계시록의 내용들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진정성이 없음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가보는 인간적인 방법에 의해서 추론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은밀한 영감에 의해서 하나님의 미리작정하심을 공표한 것입니다. 아가보는 ‘천하에 큰 기근이 들리라’였습니다. 이 기근은 클라우디우스(Klaudivou"/kllaudîous)때에(46-48년) 일어났습니다. 1

안디옥교회는 아가보 선지자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예언자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예언대로 팔레스타인 지방이 더 극심했습니다. 그래서 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교회를 돕기로 작정했습니다.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을 위해서 헌금을 했습니다. 그리고 바나바와 사울의 손에 예루살렘교회에 보냈습니다.

Calvin은 안디옥교회가 궁핍한 형제들에게 사랑의 의무를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복음의 본원지에 영예를 돌림으로써 복음에 대해 가지는 큰 가치성을 입증했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앞에서 이웃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것이 교회의 임무이자 특권입니다. 이것을 잃으면 교호가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더는 교회일 수 없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1 클라우디우스는 로마 제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1세(41-54년)이다. 드루수스(Drusus)와 안토니아(Antonia)의 아들이며, 디베리우스(Tiberius) 황제의 조카이다. 그는 신체적으로 불구자였다. 지능이 약간 박약했기 때문에, 젊은 시절 디베리우스 황제 밑에서 격리된 생활을 했었다. 클라우디우스는 갈리굴라(Caligula)에 의해 37년에 집정관이 되었고 그 후에 기타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여 황제가 되었다. 헤롯대왕의 손자 아그립바1세는 그를 도와서 황제가 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 결과 아그립바1세는 전 팔레스타인의 통치자가 되었다. 글라우디오 황제는 아그립바의 영향으로 종전까지 금했던 유대인의 종교 행위를 다시 인정하고 유대인의 관습과 전통에 대해 박해하지 않았다. 사도행전9:31에 보면 그는 통치 초기에는 유대인들에 우호적인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통치 말기에는 유대인들을 모두 로마에서 추방했다(행 18:2). 역사가들은 클라우디우스 통치기간에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하여 재난과 기근이 따랐다고 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후계자 문제로 그의 마지막 아내 아그립피나(Agrippina)에 의해 54년에 독살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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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니아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사도행전9:10-18)

다메섹은Damaskov"(다마스코스)은 시리아의 아주 오래된(창14:15)도시입니다. 당시만 해도 상당히 번영한 도시였습니다. 현재도 시리아의 수도로서 약600만명이되는 큰 도시입니다. 유대인들과 시리아는 역사적으로 많은 마찰이 있기도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인해서 시리아의 다메섹까지 성도들이 피하며 복음을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아나니아는 다메섹에 있던 제자였습니다. 아나니아에게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직가라는 거리의 유다집에서 다소사람 사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가 기도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기도중에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보게 될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아나니아는 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사울에 대해서 들은 정보를 말했습니다. 즉 성도들에게 많은 피해를 입힌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시리아에 온 것도 주의 성도를 체포하러 온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지금 네가 알고 있는 사울이라고 하는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들과 임금들에게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해 주께서 택하신 나의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해서 많은 해를 당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나니아는 주님의 말씀에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습니다. 주의 말씀대로 유다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사울에게 안수했습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을 형제라 불렀습니다. 네가 다메섹으로 오던 길에서 만났던 주께서 나를 보내셨다. 예수께서 나를 보내시어 너로 다시 보게 하셨다. 성령으로 너를 충만하게 하신다고 하면서 사울에게 안수를 했습니다. 그러자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즉시 세례를 받았습니다.

사울의 회심은 극적입니다. 가말리엘로부터 철저한 유대의 교육을 받아 누구도 그를 주의 제자로 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런그에게 주님께서는 스데반의 순교를 목도하게 하시고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조직적으로 하려는 그를 불러서 엎드리게 하시고 다메섹의 유다, 아나니아를 통해서 사울을 회심하게 했습니다. 사울은 이제 비로소 주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1절을 보면 ‘주의 제자’(tou;" maqhta;" tou' kurivou/투스 마쎄타스 투 퀴리우), ‘그 도를 좇는 사람들’(tina" th'" oJdou' o[nta"/티나스 테스 호두 온타스/2절), ‘주의 성도(들)’(toi'" aJgivoi" sou/토이스 하기오이스 수/13절),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tou;" ejpikaloumevnou" to; o[nomav sou/투스 에피칼루메누스 토 오노마 수/14절) 대열에 사울도 서게 되었습니다.

아나니아는 신실한 주의 사람인 다메섹사람입니다(행22:12). 사울을 바울되게 한 사람 중에 아나니아는 사울의 회심이야기에서 잠깐 나왔다가 사라집니다. 사울을 첫형제로서 환영해준 첫 기독교인입니다. 주의 사명을 사울에게 충실히 전해 준 사람으로서 결코 작지 않은 사명입니다. 오늘의 교회들은 어떻습니까? 큰 교회들의 목회자들과 작은 교회목회자들을 과연 같이 취급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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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훼방하는 사람들(사도행전4:1-4)

복음은 항상 도전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항상 세상의 훼방을 받았습니다. 사단은 교회의 전진을 매우 싫어합니다. 따라서 사단은 세상과 대적들을 충동시켜 교회를 대적하게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을 박은 후에도 지금까지도 교회를 대적하며, 성도들을 대적합니다. 악한 영들의 능력과 행위는 성경에 무수하게 많이 나와 있습니다. 모든 곳에서 활동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 접촉합니다. 사단은 자연과 인간의 마음속을 작용하는 존재입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선과 악을 대조시킵니다. 그런데 이들이 진리를 비틀어서 왜곡하여 대조시킵니다. 하나님과 사탄을 同級(동급)으로 놓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단을 상층구조에 놓습니다. 그러나 사단마저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단지 심판 때까지 이들이 발악을 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은 아무리 발악을 하지만, 하나님의 통제와 허용에 의해서만 활동할 수 있습니다. 사단의 작용은 자연법에 따라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단은 인간들의 자유와 책임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의 능력은 탁월합니다. 인간들은 사탄에게 사로잡혀 이끌린 다고 말해지고, 악의 영들은 불순종하는 자들의 마음속에 역사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 의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도록 권고를 받습니다.

악한 영들의 행위에 너무나 사람들이 과장된 견해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폭풍, 화재, 질병 등과 같은 자연적 재난들뿐만 아니라 모든 슬픈 일들을 그 영들에게 귀속시키고 그리하여 그들은 인간들과 함께 언약 속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탄으로부터 잠시 초자연적 능력을 받고 그 대신에 자신의 영혼을 그에게 저당 잡히는 조건으로 사탄과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17세기와 18세기에 모든 기독교 국가들의 업적을 무력화시켰던, 무수한 요술과 마술들은 바로 이 생각에 근거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유럽에서조차 어린아이들을 비롯한 무수한 남녀가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처형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지지와 지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역사가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자 다시 5000명쯤이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이라고 하는 자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제동을 걸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경찰을 동원하여 사도들을 잡아가두었습니다. 이틀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들이 사도들을 체포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도를 전함입니다. 즉 복음전함을 싫어한 것입니다. ‘싫어하여’diaponevw/디아포네오)는 ‘디아’(diav/ 때문에)와 ‘포노스’(povno"/노동)에서 유래한말로 diaponouvmenoi/남성, 복수, 동사로 ‘그들이 심히 불쾌하게 여겨’입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잘 섬긴다고 하는 작자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심히 훼방한 것입니다. 복음을 훼방하는 사람들은 사단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양심에 화인을 맞은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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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의 자손/언약의 자손(사도행전3:22-26)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22), 또한 사무엘 때부터 옴으로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23),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25절).

베드로는 이스라엘을 향해 선지자의 자손이라 하고 언약의 후손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세 직분이 있었습니다. 선지자, 제사장, 왕입니다. 이들은 모두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先知者(선지자/prophet)는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전하는 사람입니다. 선지자들은 주로 꿈이나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받았습니다. 선지자들은 그 직책상 사람들을 책망하는 직책입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듣든지 아니 듣든지 책망해야 하는 직책입니다.

祭司長(제사장/priest)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직분입니다. 또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지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전달하는 사명을 맡았으며, 주로 레위지파의 아론 계열이 담당했습니다. 제사장은 아무나 하지 못했습니다. 하고 싶다고 해서 하는 직책이 역시 아니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과 사도시대의 대제사장들은 사기꾼들입니다. 로마에게서 돈 주고 산직분입니다.

(왕/king)은 왕정에서 최고의 통치자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사무엘 때부터(사울왕) 왕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은 다른 국가의 왕과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그 위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은 봉신왕에 불과합니다.

베드로는 이스라엘을 선지자의 자손이라 말했습니다. 선지자의 자손이라 함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맺으신 약속들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맺으셨던 언약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언약의 자손들이기도 했습니다. 선지자의 자손, 언약의 자손이라 함은 그만큼 다른 나라보다도 機會(기회/chance)였습니다. 다른 나라는 복음이 전해지기 전에 이미 복음의 혜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악함을 버리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나라는 교회가 없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하지만 아직도 교회 없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만큼 불신자들에게 기회가 많습니다. 악함을 버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회개하면 됩니다. 이어서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됩니다. 修養(수양)도 아니고, 修行(수행)도 아니며, 得道(득도)도 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지상에서 가장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어떤 종교보다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계획하시고 기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실행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지금도 구원받을 사람들에게 활동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주시려고입니다. 영원한 복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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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사도행전3:17-22)

신명기18:9-22 중 15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찌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선지자’를 말할 때 단수로 나옵니다. 선지자(aybin:/nâbîy’/나비)의 기능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에는 통일왕국부터 분열왕국, 포로 시대, 포로귀환 때까지 수많은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왜 선지자들을 세우셨습니까? 이스라엘을 위하여서 입니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선지자를 세웠습니다. 즉 선지자를 세운 근본목적은 범죄 한 이스라엘을 제대로 가게 하기 위하여섭니다. 모세가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운다고 하는(15절) 전에 말씀을(9-14절) 보면, 들어갈 땅에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복술자, 길흉을 말하는 자, 요술자, 무당, 진언자, 신접자, 박수 등을 용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가증한 자라 했습니다. 따라서 범죄 하지 않기 위해서 선지자들을 세우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메시야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메시야상을 유대인들은 잘못 알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다윗 같은 메시야가 와서 이방인들로부터 억눌리지 않고 멋있게 해방할 메시야를 기대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의 압제 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유대인들의 죄를 심판할 메시야를 보내기 원하셨습니다. 이 메시야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이 세상의 모든 죄를 심판할 메시야였습니다. 이런 相馳(상치)함 속에서 유대인들은 기대하였던 메시야가 아니라고 생각해 십자가에 못을 박게 했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그(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정하신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게 했습니다. 만일에 예수께서 메시야가 아니라면 부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일으키셨습니다. 성경대로 사흘 만에 일으키셨습니다. 사흘 만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심으로 하나님 자신의 판결을 분명히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루는 것입니다. 요한복음5:45-47에서 예수님은 모세가 내게 대하여 기록했음을 천명했습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예수그리스도가 곧 신명기에서 예언한 주인공이라는 것을 이스라엘에게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제라도 회개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사건은 보통 이상의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오래전에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한 것이 온전히 성취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인 인물 중에서 예언한 것이 그대로 맞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나폴레옹에 대해서, 시저에 대해서, 공자에 대해서, 고다마 싯다르다에 대해서 줄기차게 예언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줄기차게 예언되었습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끊임없이 예언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너희들이 몰라서 범죄 했지만 이제라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없이함을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종교간 온라인화를 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나 모두 부질없는 짓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세상을 창조했고, 섭리하며, 구원하셨기 때문에 그분만을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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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한 자들이 받을 복(사도행전3:11-16)

회사에서 안전사고가 나면 참으로 복잡합니다. 바로 감사가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인명피해가 최소여야 하는데 대체적으로 그렇지를 못합니다. 상급기관에서 감사가 나오면 제일먼저 조사하는 것이 안전교육일지입니다. 교육을 제대로 했느냐? 교육을 제대로 시켰느냐? 받았느냐를 따집니다. 그러니 교육을 시키는 사람도 사고를 당한 사람도 기관도 복잡합니다. 따라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려면 계속 반복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반복교육으로 사고를 방지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사도들은 회개(Repentance/metanoevw)의 메시지를 계속 전합니다(2:38,3:19,8:22,17:30). 회개의 메시지는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계속 전한 메시지입니다(신32:29, 대하30:7-9, 욥36:10, 시34:14,18, 잠1:23, 사22:12,31:6,44:22,55:6,7, 렘3:4,1214,19,22,6:16,17,18,7:3,18:11,25:5,6, 26:3,13, 겔12:1

3,5, 18:30,31,32,33:10-12,19, 단4:27, 호6:1,10;12,14:1,2, 욜1:14,2;12,13,15,16,17, 암4:12, 5:4,5,6 욘3:8,9, 학1:7, 슥1:3). 왜 사도들이 회개의 메시지를 전합니까? 죄없이함입니다(to; ejxaleifqh'nai uJmw'n aJmartiva")/토 엑살레이프쎄나이 휘몬 하말티아스/너희의 [그들]죄들을 지워버림을 당하라). 이 죄는 어떤 죄입니까? 영생을 하게 하는데 있어서 막고 있는 죄들입니다. 이 죄는 영혼과 육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죄입니다. 이 죄를 회개함으로 영생을 하지 못하게 하는 바리게이트를 제거해버립니다. 즉 회개함으로 죄에서 해방되게 된다는 것입니다(유쾌하게 되는 날).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영생을 성도들이 전할 때 믿음으로 죄 없이 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레26:40, 신4:29,31,30:3). 회개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받습니다(레26:40-42, 대하7:14, 사57:15).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행11:18). 성령을 받습니다(행2:38-39).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구원을 받습니다(사59:20, 겔18:21-23,2728). 그래서 사람들이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영원히 죽기 때문에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회개의 요청을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이전의 죄를 용서받습니다.

왜 회개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사역을 완성했기 때문입니다. 머레이는 예수그리스도 십자가사역의 완전성을 네가지로 요약했습니다. 역사적 객관성(historc objetvit), 궁극성(finality), 독특성(uniquenss), 본질적인 효능성(intrinsic efficacy). 역사적 객관성이란 그리스도께서 은혜의 수혜자들이 조금이라도 참여하거나 거들어주는 것 없이 2천 년 전에 세계역사 가운데서 객관적인 사역을 성취하셨다는 의미이고, 궁극성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객관적사역이 “결코 되풀이되거나 반복될 수 없는 완성된 사역이며, 독특성은 그리스도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로,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본질적인 효능성이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이 우리의 죄로 인한 긴급한 사정을 해결해주는데 본질적으로 적당하며 선택받은 백성이 온전히 구원받는데 필요한 모든 은혜를 마련해주었다는 의미라고 했습니다.

회개한 자들이 받는 복은 다양합니다. 제일먼저 하나님의 구원하는 은혜를 얻습니다. 다음으로 이 세상에서 받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영생하는 사람은 복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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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능력이냐/내 능력이냐?(사도행전3:11-16)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신비함이 있습니다. 신비함이 있다는 것은 기적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적이란 평상의 상태가 아닌 이해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예를 들면 해가 지지 않는다든지(수10:12), 깊은 바다에 길이 생겨 사람이 지나갈 수 있게 하든지(출14:22), 죽었던 사람이 살든지(막5:41) 등입니다. 이런 일들은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이 신비함이 우리들 즉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습니다.

이 신비함의 출처가 어디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시고, 성령님이십니다. 초대교회에서 지금까지 이 출처는 삼위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베푸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서 베푸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서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의 백성들의 평안을 위해서, 전도를 위해서 베푸셨습니다. 영원한 삶을 위해서 초자연적으로 기적을 베푸시고, 베푸셨습니다. 따라서 그의 택하신 백성을 위해서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따라서 신비함을 주신 주체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적을 일으킨 것은 사도들이 아닙니다. 초대교부들이 아닙니다. 중세시대의 교부들이 아닙니다. 종교개혁시대의 신학자들이 아닙니다. 근세현대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종교각성시대의 목사들과 신학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초대교회시대부터, 창세시대부터, 기적을 일으키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자신과 요한이 앉은뱅이를 고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치신 주체는 예수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고침을 받은 사람이 자신을 고친 사람이 바로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았습니다. 베드로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왜 너희들이 왜 놀라느냐? 마치 우리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고친 것처럼 바라보느냐? 빌라도가 놓아주려고 애를 썼는데도 너희들의 반대로 오히려 살인한 자(바라바)를 놓아주고 생명의 주를 너희들이 죽였다. 그런 주님을 하나님이 살리셨다. 따라서 이 고침을 받은 사람은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으로 완전히 낫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베드로와 요한 자신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라 했습니다.

오늘날 사경회라든지, 부흥회포스터를 보면 可觀(가관/spectacle)입니다. ‘능력의 종 ○○에 오시다’ ‘기적을 일으키는 ○○○ 목사 ○○에 오시다’ 정말 낯 뜨거운 문구들이 버젓이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붙여놓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마치 기적을 일으키는 양 행세하고 다닙니다. 그리하여 성도들을 현혹시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까? 신학부재와 신앙부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 때문에 이단이 판을 치고, 교회에 문제가 들어옵니다. 내가 능력자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들은 다만 종입니다. 우리들은 주님의 통로일 뿐입니다. 능력의 종이니, 기적의 종이니 하는 것은 말이 맞지 않습니다. 만일 능력의 종이라고 했을 때는 사도들이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냐? 내 능력이냐를 생각할 때에 망설임 없이 주님의 능력임을 선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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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사로잡힌 초대교회(사도행전2:43-47)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44-45절). 재산이란 참으로 기이한 것입니다. 재물 때문에 역사적으로, 고금을 통하여, 인종을 초월해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재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재산 때문에 법정이 있고, 소송이 있습니다. 재산 때문에 빈부의 격차가 발생합니다. 재산 때문에 사람들이 목숨을 잃습니다. 재산 때문에 모든 분쟁이 시작되고 끝을 맺습니다. 그래서 재산이 항상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중들에게 가르치기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마6:24/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눅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라고 할 때 하나님(qew'//쎄오)는 쎄오스(qeov")의 남성, 단수, 여격, 명사입니다. 그런데 재물도 똑같습니다. 재물(mammwna'//맘모나)는 맘모나스(mammwna'")의 남성, 단수, 여격, 명사입니다. 즉 같은 인격을 부여하셔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래왔고, 사람들의 원래 심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시 대제사장들은 누구보다 淸廉(청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부패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장사를 하게하고, 그 이득을 착복했습니다. 성전이 비리의 온상지였습니다. 이처럼 잘되었거나 잘못되었거나 하나님과 재물을 사람들은 같이 섬기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같이 섬긴다고 했을 때 똑같이 섬겼을 때 둘로 나누어집니다. 50/50입니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돈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재물의 섬김의 비율이 50/50을 유지하기란 힘이 듭니다. 50/70-50/90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은 이토록 재물을 좋아합니다.

이런 상황에 초대예루살렘교회는 그 반대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서로 같이 썼습니다. 모자란 생활필수품이나 식량을 위해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과 소유를 팔았습니다. 그 판 것으로 성도들의 필요에 따라서 나누어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재산과 소유는 소중하여 모든 사람들이 가족끼리 사용하려고 하는데, 그 소중한 것들을 가족들외에게 어떻게 내놓을 수 있었습니까? 바로 성령에 붙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에 사로잡혀 있었던 예루살렘교회였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강했던 사람도 부드러워졌습니다. 성령에 붙들려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의도대로 갔습니다. 성령에 사로잡히면 사람들이 변합니다. 이전에 행했던 행실도 버리고, 새사람으로 바뀝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초대교회를 닮아가야 할 것입니다. 수천억의 재산을 부동산으로 가지고 있지 말고, 나누어야 합니다. 그 재산이 교회들에게 가면 엄청 많은 주님의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부동산으로, 통장으로 재산을 비대하게 가진다면 죄가 될 수 있습니다. 나누지 못한 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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