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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핍박한 유대인들(사도행전12:3)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에 가장 많은 해를 끼치고, 공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Ioudai'o"/ioudaȋos/이우다이오스)들은 포괄적으로 팔레스타인에 거주하고 있는 유대족속과 로마제국에 분산된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통상 유대인이라면 남왕국인 유다왕국과 베냐민지파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왕하16:6, 25:25, 대하32:18).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시대에 여로보암장군이 열지파를 끌고 북쪽에 북왕국을 세우고 이스라엘이라 하였는데 이와 구분하기 위해서 유다왕국이라 했습니다. 또한 히브리민족을 유대인이라고 합니다(에3:6). 포로귀환후의 히브리민족을 유대인이라고 불렀습니다(스5:1). 그런가 하면 이스라엘이 망한 후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유대인이라고도 했습니다(마27:11, 행2:5). 또한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도 유대인이라 했습니다(에8:17).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과 교회에 대한 적대자들을 유대인이라 불렀습니다. 이들은 계속해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괴롭혔습니다(마28:15, 요3:25,5:10, 고후11:24, 살전2:14-16). 하지만 상징적으로는 모든 신자들을 유대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롬2:28-29).

여러 부류의 유대인들이 성경에 등장합니다. 주로 유대인들은 교회를 핍박했습니다(살전2:14-15). 인종적으로 심한 편견을 가지기도 했습니다(요4:9). 희한하게도 예수를 믿은 유대인들도 있었습니다(요12:10,11)

유대교의 분파는 바리새파, 사두개파, 열심당, 에세네파, 서기관, 헤롯당이었습니다.

바리새파/ 바리새파는 요한 힐카누스의 통치 당시에(주전134-104) 바리새파와 사두개인 사이에 적대감정이 뚜렷했었습니다. 바리새파는 헬레니즘의 타락한 영향으로부터 자신들을 분리시킨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의식적 정결에 관한 율법을 지키는 데 철저했기 때문에 ‘죄인’으로부터 음식이 나 음료 따위를 구매함으로써 자신을 더럽히는 것을 멀리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의식에 대한 모독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자신의 집에 ‘죄인’을 초대하기는 해도, 죄인의 집에 가서 식사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죄인의 옷이 부정하다 하여 예복을 입은 후에 식사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스-로마문화의 변화 속에서도 율법이 실행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리새인들은 다양한 상황에 율법을 적용시킬 수 있을 자신들의 전통들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들 중 유명한 두 사람은 주전 1세기경에 힐렐(Hillel) 학파와 샴마이(Shmmmai)학파였습니다. 힐렐학파는 온건했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관대하였고, 유대 정통주의와 양립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의 법을 수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샴마이학파는 해석있어서 완고하였습니다. 로마에 대해 철저히 배타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주장은 로마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져 70년에 예루살렘에 파괴를 초래했습니다. 탈무드에는 힐렐 학파와 샴마이 학파의 서로 상치되는 316가지의 가르침이 실려 있습니다. 바리새파의 율법 해석의 전통은 율법자체와 같은 권위를 갖습니다. 이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에는 ‘성문 율법’ 혹은 토라뿐 아니라 ‘구전 율법’(oral law)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구전 율법이 관계가 먼 성문 율법보다 평민의 생활에 더욱 친밀하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탈무드의 미쉬나(Mishna)에서는 구전 율법이 성문 율법보다 더욱 엄격하게 지켜져야만 한다고 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율법의 세목에 보다 더 관심을 갖고 있던 바리새 주의에 대하여 신약성경은 전승이 율법의 진정한 의도를 간과했다고 지적합니다(마15:3). 바리새인 중에는 니고데모, 아리마대 요셉, 가말리엘, 다소의 사울과 같은 인물이 신약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의 귀족을 대표합니다.

사두개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신약성경에서 많은 비난을 받습니다. 이들 모두가 예수에 대해 심한 적대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두개란 말은 ‘의로운’이란 뜻의 ‘싸디킴’에서 유래했습니다. 그 기원은 솔로몬의 제사장인 사독(삼하8:17)이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예루살렘의 귀족이나 대제사장 무리들로서, 그들은 정치 지도자와의 협조를 통해 부와 권세의 자리를 획득했습니다. 성전관리와 의식의 집행은 그들이 가진 특별한 임무였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대중과 따로 떨어져 거의 사귐이 없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율법을 새로운 상황에 적응시키려는 바리새인들의 시도는 토라나 십계명에 대한 권위의 개념을 제한하는 사두개인들에 의해 거부되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 영, 천사를 믿지 않았습니다(막12:18, 눅20:27, 행23:8). 따라서 그들의 신앙은 주로 부정의 연속이었기 때문에 적극적인 정치제도나 종교제도를 수립하지는 못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개종자를 환영했지만(마23:15), 사두개인들은 폐쇄적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의 가문이나 예루살렘의 귀족이 아니면 아무도 사두개 일원이 될 수 없었습니다.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자 사두개파도 끝장났습니다.

엣세네파/ 엣세네파와 바리새파는 모두 그 근원을 마카비 혁명 중 헬레니즘에 반대하여 정통주의를 표방하던 지도자들에 두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역사적 유대주의 가운데서 엄격한 정통주의를 고수하기는 했으나, 그들이 유대공동체 자체로부터의 분리를 주장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두개인에 의해 주관되던 성전예배를 바리새인들 또한 자신들의 중요한 종교유산의 일부로 받아들여 존중하였고, ‘죄인들’로 부터의 분리를 주장하면서 그들 가운데 살면서, 그 ‘죄인들’의 기득권을 탐내기까지 했습니다. 유대인의 생활을 타락시키는 영혼들에 대해 더욱 극단적으로 반대하던 분파들을 필로, 요세푸스, 플리니와 같은 고대 학자들은 엣세네파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사해 북부 근처의 쿰란에 근거지를 두었던 일단의 무리들처럼 대부분 금욕공동체를 이루고 살았습니다. 엣세네라는 용어는 생활방식에 있어서 다양했던 여러 금욕주의 유대인들을 널리 지칭하는 포팔적인 용어였습니다. 엣세네파들은 여자를 멀리하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 플리니의 견해가 있는가 하면, 요세푸스는 엣세네파가 결혼의식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고대의 저자들은 엄격하고 청빈한 삶을 영위한 엣세네인들에 대해 호의적으로 말했습니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경전이나 다른 종교서적을 연구했으며, 공동체가 자급자족하기 위해 육체노동을 해야만 했습니다. 재산은 공동소유였고, 엄격한 훈련이 감독에 의해 실시되었습니다. 결혼을 포기한 이들은 엣세니즘의 사상을 터득시켜 그 사상을 영원히 존속시키기 위해 어린 아이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노예제도와 전쟁은 거부했습니다. 엣세네인들은 개종자를 환영했는데, 신입자는 충분한 자격이 있는 구성원이 되기까지 엄격한 훈련의 기간을 거쳐야만 했습니다.

유대인의 죄악들은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겼습니다(사1:4).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겼습니다(렘5:19). 술객이 되며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아 하나님을 배척했습니다(사2:6).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항상 거슬렸습니다(사3:8). 자기의 의를 내세웠습니다(롬10:2,3). 심히 외식했습니다(마23:1-31). 교회를 핍박했습니다(살전2:14,15).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게 했습니다(마27:24-26). 복음을 거절했습니다(행13:46). 이방인을 선동하여 사도들을 핍박했습니다(행14:2). 영적인 진리에 무지했습니다(요3:10).  


 1. 칼빈주석. 

 2. 카일,델리취주석

 3. 구약신학.

 4. 기독교백과사전

 5. 성경관용어사전

 6. 톰슨성경

And

그리스도교와 박해(사도행전12:1,2)

예루살렘의 박해를 피하여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교회가 한참 확장되고 있을 때, 박해는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항상 이 일에는 헤롯가가 유대에서 앞장을 섰습니다. 헤롯은 신약성경에 네 명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사도시대에 유대에서 세력을 휘둘렀던 작자들입니다. 헤롯대왕(이두매의 Antipater/주전40년에 유대의 왕으로 임명되어 주전4년에 사망) 헤롯 안티파스, 헤롯 아그립바1세, 헤롯 아그립바Ⅱ세입니다. 이증에서 12:1의 헤롯은 헤롯아그립바I세입니다. 이 사람이 세베대의 아들 사도 야고보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투옥시켰습니다. 그러나 바로 54세의 나이로 가이사랴에서 죽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스데반이순교했습니다.

헤롯 아그립바1세는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유대인들이 자신에게 대하는 태도가 달랐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헤롯 아그립바1세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더 사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형제인 사도야고보를 칼로 죽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엄청난 박해를 받았습니다. 초대교회는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에게 양면으로 공격을 받았습니다. 주후64년부터 시작된 박해는 313년까지 250년간 잔인하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황제에 의해서 시작된 1차 박해기간(64-96), 일부지역이나 어떤 지역에만 있었던 2차박해기간(98-249), 전국적인 박해기간(250-313)으로, 이 기간에 많은 성도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1차 박해기간은 네로이전과 네로, 도미티안의 박해, 2차 박해기간은 트라얀의 박해, 하드리안의 박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박해, 3차 박해기간은 데시우스의 박해, 디오클레시안의 박해, 갈레리우스의 박해 등입니다. 박해기간에 엄청난 성도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살을 찢었고, 인두로 지졌으며, 원형경기장에 넣고는 굶주린 맹수들을 풀어서 성도들을 잔인하게 잡아먹게 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즐겼습니다. 특히 로마의 황제들은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철학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잔인하게 성도들을 박해했습니다.

모든 박해의 배경에는 사단이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한참 복음이 번창일로에 있을 때 그 맥을 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세례요한, 예수님, 스데반, 사도야고보 등을 죽임으로써 더 이상 복음이 퍼지지 못하도록 진화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파죽지세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쓰나미처럼 밀고 나갔습니다.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복음의 길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죽이면 죽일수록 계속 두배 세배 늘어나면서 앞으로 나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주관하시기 때문에 누구도 막지 못합니다. 박해는 계속되지만 결국 그들은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박해를 풀 사람을 보내시고 기독교를 장려할 사람을 보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일들이 결코 하나님의 일들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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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사울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사도행전8:1-3)

1절a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1절b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 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쌔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사울의 교회에 대한 핍박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우선 스데반이 죽어서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유대교를 배반하는 사람들은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국법을 어기고 종교법을 어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죽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스데반이 순교당하는 날부터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스데반을 죽인 유대인들은 마치 이리떼 같았습니다. 성도들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입니다. 성도들을 보는 족족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산헤드린은 이 기회에 그리스도인들을 없이하지 못하면 기회가 없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하여 혹독하게 박해를 했습니다. 그리하여 사도들을 제외하고는 여러 곳으로 흩어졌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유대와 사마리아와 모든 땅으로 핍박을 피해 흩어졌습니다. 일부 성도들이 스데반을 장사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크게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신명이 났습니다. 아예 교회자체를 없이하려 했습니다. 사울이 회심하기 전에는 그야말로 살기등등했습니다. 자신이 믿는 도가 정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없이하고자 한 것입니다. 후에 바울사도는 그런 자신을 회상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1: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디모데전서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 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주님께서는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만일에 예수님의 십자가죽음이 사단을 궤멸시킨다는 것을 사단이 알았다면, 절대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기세등등하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자신들이 100%승리라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였습니다. 그로 인해서 사단의 나라는 궤멸되고, 유대인들은 엄청난 재해를 당했습니다. 스데반을 기세등등하게 죽인 산헤드린은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 선두에 사울이 있었습니다. 산헤드린은 오랜만에 사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의 도를 선동하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듯했고, 선봉에 서는 사람들은 감옥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反轉(반전)을 몰랐습니다. 타고 있는 불에 기름을 붓는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교회가 예루살렘에서 유대로, 사마리아로 땅 끝으로 가고 있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오히려 유대인들이 기독교가 땅 끝까지 전파되도록 기여했습니다. 그들의 심한 박해로. 그들의 잘못된 종교관으로, 그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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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박해하는 재판장들(사도행전7:1)

재판관이 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裁判席(재판석)에 앉아서 사람들을 심판하는 예가 허다합니다. 재판이란 공의를 행하는 것인데, 재판으로 불의를 행하였던 것이 역사적으로 너무나 많습니다. 히틀러의 유대인재판, 각국의 혁명재판, 쿠데타의 군사재판 등은 공의와 정의가 사라진 재판입니다. 재판이라는 要式(요식)을 갖추려는 것뿐 오히려 재판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행위입니다. 1절에 ‘이것이 사실이냐?’의 대제사장의 질문이 그와 같습니다. 이 사람은 가야바입니다. 예수님을 재판한 불법재판관입니다. 소위 이스라엘 최고법정의 수장으로서 자리 값을 못한 사람입니다.

가야바는 주후18년에 유대총독 발레리우스 그라투스에 의해 최고 제사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가야바는 빌라도가 총독으로 있었을 때 10년을 포함 18년을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으로 있었습니다. 수리아의 총독이었던 비텔리우스가 36년 빌라도를 소환코자 유대에 왔을 때, 가야바도 해임되었습니다. 그 대신에 안나스의 아들 요나단이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가야바는 안나스의 사위로서(요18:13) 세례요한의 선교 시작 전부터 사도행전 초기 박해시대 동안의 대제사장직을 해먹었습니다(눅3:2, 행4:6,7). 가야바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했을 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한다고 말했습니다(요11:49-52). 그러나 이 말은 그 해에 대제사장이었기 때문에 한 말입니다. 이 말로 인해서 유대인들이 오히려 더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했기 때문입니다(요11:53).

가야바는 즉 당시 대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대제사장이 아니었습니다. 철저하게 사단에게 속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잡으려고 모의 헸을 때, 진위여부도 가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앞장을 섰습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에서 잡히시던 밤에 대제사장 가야바의 아문(뜰)에 모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의논했습니다(마26:3-5). 가야바는 대제사장으로써 바른 직분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거짓증인을 세워 예수님을 죽였습니다(마26:59). 사도들에게도 가야바의 박해는 계속되었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가야바 앞에 수시로 고발을 당했습니다(행4:1-8). 이제 가야바는 스데반에게도 같은 방법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종교들은 대체적으로 순탄하게 전해집니다. 약간의 어려움은 있지만, 순탄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 종교들이 어떤 진리가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우상들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많은 신들을 섬기면, 힘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이 신과 저 신들을 합하려고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종교와 종교 간에 부딪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전하는 우리들은 다릅니다. 오직 하나님은 한분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부딪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군왕들과 종교들은 늘 기독교를 박해했습니다. 자신들의 종교권과 왕권이 위태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 역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들의 이권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단은 이런 것들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박해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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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박해(사도행전4:23-31)

교회는 애초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 구약의 교회 즉 하나님의 사람들도 박해를 받았습니다. 신약시대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박해란 이미 교회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주님께서는 산상수훈 중에 일찍 박해를 예고하셨습니다. 마태복음5:10-13절을 보면 잘 나와 있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따라서 박해는 세상 끝날 까지 함께 있는 훼방거리요, 그리스도의 장애물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 구약 신약의 성도들 할 것 없이 핍박은 항상 예상했습니다. 마음에 이미 다짐을 하여 의연하게 대적했습니다. 이미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은 예고된 것입니다(마20:22, 23:34,35, 24:8-10, 막13:9-13). 그래서 의연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위로하시기 때문입니다(눅6:22,23, 17:33, 요17:14). 잘 견디는 자에게 구원과 상급이 약속되었기 때문입니다(마5:10-12). 핍박으로 인해 교회가 확장됩니다(행8:1,4, 11:19).무엇보다 박해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롬8:35-39).

박해의 칼이 얼마나 교회에 영향력이 있습니까? 사람을 죽이고, 교회를 말살하기까지 손을 놓지 않습니다. 지중해변의 작고 적은 나라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교회는 늘 칼의 위협에 있어야 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박해에서 해방시키고 교회회의를 하기 위해 감독들을 소집했습니다. 그러자 팔이 없고 다리가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로마의 박해로 인함이었습니다. 주후500년경부터 시작된 로마카톨릭은 종교개혁의 때까지 그 이후로 약1000년간을 성도들을 박해했습니다.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하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녀재판을 했습니다. 종교재판으로 종교인들을 엄청죽였습니다. 그럼에도 기독교는 건재했습니다. 구약의 교회도, 신약의 교회도, 초대교회도, 중세시대에도 교회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박해의 칼이 목에 들어와도 선교는 중단 없습니다.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박해의 총알이 날아와도 교회의 전진을 막지 못합니다. 사보나롤라, 위클리프 요한 후스, 왈도파 등 수많은 사람들이 박해를 받았습니다. 서머나교회의 감독 폴리갑 , 이그나티우스 등 많은 사람들이 박해를 받고 순교했지만, 순교의 피들은 또다른 폴리갑을 만들었으며, 또 다른 후스가 일어났습니다. 이들이 용감해서가 아니라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으며 교회와 함께 했기 때문에 이들은 두려움이 이미 없었습니다.

현재도 박해는 계속됩니다. 그 양상만 다르게 나타나지, 박해는 계속해서 교회를 괴롭히고 성도들을 괴롭힙니다. 대 심판 때가 되어서야 박해는 없습니다. 그때는 사단까지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전에는 박해는 산발적으로 전 세계교회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나 박해가 교회를 멸하기는커녕 오히려 교회의 성장에 물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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