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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로마서6:1-11)

 

United Nations/UN/國際聯合은 전쟁방지와 평화유지를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입니다. UN활동은 크게 평화유지활동, 군비축소활동, 국제협력활동입니다. 설립목적은 전쟁방지, 평화유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의 국제협력 증진입니다. 현재 가입된 국가만 193개국입니다. 상당한 양의 분담금을 부담해야 함에도 UN에 가입하는 이유는 UN이라는 기구가 주는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이해관계가 많은 나라라도 가입하는 것입니다. 연합의 혜택을 받고 누리기 위해서 가입하는 것입니다. 가입되지 않으면 혜택을 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제재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3절을 보면 무릇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와 합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합하여란 헬라어로는 eij"/eis입니다. ‘~안으로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합하여그리스도 안으로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어떤 혜택이 우리에게 돌아옵니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824항을 보면 삼위 중에 제2위이신 하나님의 아들은 참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오, 성부와 한 본체이시며, 또한 동등하신 분으로 때가 차매 인간의 본성을 입으셨다. 또한 인간의 본성에 속한 모든 본질적인 성질들과 일반적인 연약함들을 아울러 취하셨으나 죄는 없으시다. 그는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시고, 그녀의 피와 살을 받아 태어나셨다. 이 직분을 주 예수께서는 아주 기꺼이 맡으셨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어 사망의 권세 아래 있었으나 결코 썩지 않으셨다. 사흘 만에 그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으되 그가 고통 당하셨던 바로 그 몸을 가지고 또한 하늘에 오르셨다. 그는 거기서 그의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셔서 간구하시고 세상 끝 날에 사람들과 천사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이다.

경기도 화성시에서 차범근 전 감독을 기념하는 명예도로(名譽道路) 조성을 추진 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교계가 적극 반대하였습니다.
해당도로는 화성시 기안동 67-1 지점에서 안녕동 6-10 지점까지 서부로 5.2km 왕복 6차선 구간입니다.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와 융건릉을 가로지르는 도로입니다. 이 도로는 지난 4월초 화성시의 고시를 거쳐 422일 화성시 도로명주소위원회에서 차범근 명예도로로 확정공고됐습니다. 위원회는 화성시 출신으로 대한민국 축구사에 큰 족적을 남긴 차범근 선수의 공을 기리기 위해이 같이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불교계의 주장은 수백 년 역사를 지닌 문화유산보다 차범근 선수의 가치가 더 크다는 말이냐고 반대이유를 축구와 교회만 안다는 차범근 집사의 이름을 딴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차범근 선수가 불교인이었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것인데 교회의 집사라서 반대했다는 것 같습니다.

때가 차매”/h\lqen to; plhvrwma tou' crovnou/ȇllthen tô pllêroma toȗ chrônou/갈라디아서4:4 란 하나님께서 준비해 오신 때가 다가왔다는 말씀입니다. 당시 상황은 유대인 Diaspora는 로마제국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헬라인들은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으로 성경이 제공하는 신학적 권위와 매력에 눈을 돌렸습니다. 국제상황은 큰 교통중심지를 통해 거의 모든 곳까지 잘 왕래할 수가 있었습니다. 헬라어라는 언어를 통해 로마제국이 효율적이고도 통일된 다스림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형태의 여행이나 상업거래가 가능해졌다. 한때 기승을 부리던 헬라철학 사상은 그 위세가 위축되어 회의론으로 바뀌어 당시 고대세계를 개선하려 했던 인간지혜를 추구하는 운동에서는 전혀 희망이 없었습니다. 소위 문명인이라는 사람들이 심히 도덕적 타락에 빠졌습니다(1:21-32). 이방인들조차 자신의 주위에 만연한 부도덕한 현실을 개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습니다. 율법 아래로 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자로 세우셨습니다.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셨다고 해서 하나님을 포기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지신 모든 것을 조금도 감하시지 않으시고 성삼위중 한분 신격과의 연합을 취하셨습니다. 또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인성을 충분히 갖추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자 사람이셨습니다. 육신적으로 예수님의 조상에 대해서 마태는 다윗까지 또 아브라함까지 추적하여 기록하였습니다. 누가는 아담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3:23-37).

예수님의 이야기는 어떤 종교들같이 황당한 이야기를 교묘하게 꾸며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누가는 예수의 생애 중에서 그의 나이 12살 때 일어났던 일에 대해 서술했습니다(2:41-51). 예수님께서서는 역사적 인물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사역을 하셨을 때가 Tiberius Caesar Augustus가 통치하던 기간입니다.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이었습니다.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있던 때입니다. 또 안나스와 가야바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으로 있었던 때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에도 예수의 참된 인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의 초자연성은 다름 아닌 거짓된 신화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And

아담과 그리스도의 유비(로마서5:12-21)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 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한나라의 대통령이나 왕은 그 나라의 외교 국방 등 모든 것을 대표합니다. 외국에 나가서 조약을 맺을 때 그 나라가 조약을 맺은 것으로 인정합니다. 대통령이 해외에 나가서 조약을 맺은 것은 국민들이 맺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왜냐하면 대표성을 띄기 때문입니다.

알래스카/Alaska는 미국 면적의 약 1/5이나 됩니다. 1867년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윌리엄 수어드(William Herry Seward/1801~1872)가 러시아 정부로부터 720만 달러(현시세로 약77억원)에 구입했습니다. 1959년에 49번째 주로 편입되면서 정식으로 미국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수어드는 매국노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러시아에서는 축하파티를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물리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국가의 대표들이 매매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있지 않아서 반대로 되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물리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얼음으로만 구성된 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15절과 16절을 보면 그러나 이 은사는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또 이 선물은 범죄 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은사는 범죄보다 더 큰 효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단 하나의 죄를 범한 아담은 이 세상에 저주를 초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구속사역을 통해서 그 하나의 죄뿐만 아니라 그것에서 야기되는 모든 죄까지도 사하셨습니다. 정죄(定罪/katavkrisi")가 칭의(稱義/dikaiovw)로 바뀐 것입니다. 인류는 아담과 하나였습니다. 아담과 하나이기 때문에 사망과 정죄를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인류는 그리스도와 하나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얻고 죄가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우리는 아담과는 선택하거나 거부할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서 떠나버린 것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와 우리와는 관계는 자발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받아들이거나 거절하거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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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그리스도의 유비(로마서5:12-21)

 

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담의 대표성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억지로 믿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데 이것처럼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역사이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학살당하고 몰락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이고 간에 국방이라는 이름으로, 영토 확장이라는 이름으로, 자기이름을 날리기 위해서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소위 동서양의 영웅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모두 살인자들입니다. 알렉산더나, 씨저, 나폴레옹 등등 어떤 사람할 것없이 모두 살인자들입니다. 그들의 야욕에 의하여 천하보다 귀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살해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위에서 부조리한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죄악이 근본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최초의 인간인 아담으로 인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그 죄는 소멸되지 않는 죄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죄입니다. 일단 최초의 인간 아담이 지은 죄는 사망의 죄입니다. 사망의 죄라는 것은 영혼과 육신이 용서받지 못해서 영원한 형벌에 처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형벌은 인간이라고 하면 피할 수 없습니다. 동양이고 서양이고 간에 어떤 종교를 가졌든지 간에 이 형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분명히 죄를 짓기는 했는데 경찰에서 체포를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법적용을 하려해도 법적용의 조항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분명히 죄를 지은 것 같아서 체포했는데, 막상 그를 벌할 법조항이 현재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장은 풀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법조항을 만들어서 다시 체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법조항이 없기 때문입니다. 죄는 세상의 법이 있기전에 이미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그 죄를 죄라고 공동으로 인정하는 것은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비로소 율법이 나오기전까지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사도는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의 기간에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었습니다. 왕 노릇했다는 것은 인간을 죄가 왕처럼 압박했다는 것입니다. 왕은 국가의 최고통치자였습니다. 그처럼 인간을 죄로 옥죄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오실자의 모형이었습니다.

아담이 그리스도의 표상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입니다. 자신의 타락으로 인류에게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 준 아담과 세상의 구주되신 그리스도를 어떻게 같이 논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유사점이 있습니까? 그것은 아담이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전했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자기의 사랑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것을 주시기 때문에 아담은 그리스도를 예표 합니다(William Hendriksen). 모든 사람이 아담의 죄에 관여된 것 같이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선에 관여하였고, 아담의 죄가 원인이 되었듯이 예수님의 완전한 선이 죽음을 이기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William Barclay). 한 사람으로 말미 암아 죄가 온 세상에 들어오고, 사망이 죄로 말미암아 들어온 것처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의가 회복되고, 생명이 의로 말미암아 회복되었습니다. 아담과 그리스도는 대조되어 있는 것입니다(John Cal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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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예수 그리스도(사도행전26:24-29)

 

요한복음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3:15-18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사도행전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소요리문답 제7문답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정하신 영원한 계획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장차 일어날 모든 일을 정하셨으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종교적인 전설(saga)이 아닙니다. 종교적인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 의도된 신화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천지창조는 실제(fact)입니다. 그래서 천지창조는 히브리적인 우주기원론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로부터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의 것들이 야기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틀림없이 확실히,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자격을 구비해야 합니다. 창조주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이나 그 어떤 것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천하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믿어야 하는데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요한복음3:16절에서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에서 않고의 헬라어 부정어가 mhv/mê 입니다. 헬라어에는 否定語가 두 개가 있습니다. ou;/oû mhv/mê 입니다. 직설법에서는 ou;를 사용하고 그 밖의 법에서는 mhv 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mhv는 이 ou;와 달라서 ‘…하면 안 되므로’라는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멸망치 않고’는 ‘멸망하면 안 되므로’라는 뜻입니다. 즉 멸망하면 안 되므로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종교간 화합이라는 말을 과연 써야 할 말인지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물론 사람간의 관계는 얼마나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에 관하거나 교리나 도에 관한 것들은 화합이 될 수 없습니다. 없는 것은 없다고 하고 있는 것은 있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없는 구원을 있다고 하고 있는 구원을 타종교와 화합하기 위해 양보내지 없다고 하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하나님께서 구원시킬 자격증을 주신 일이 없고 앞으로도 주시지 않습니다. 오직 모든 사람들을 구원시킬 자격을 예수그리스도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한 구원이지, 다른 어떤 사람, 어떤 것에도 구원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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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만난 바울(사도행전22:5-16)

6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0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우리가 흔히 지나가다가 누구를 만났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만났다는 것은 내가 상대방을 눈으로나 다른 감각에 의해서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만남은 스치는 만남이 아닙니다.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만남이 깊은 만남입니다. 그래서 만난다는 것은 상호적입니다. 상대가 나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고, 내가 상대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만남이 이러할진데 잘못된 만남이 있고, 좋은 만남이 있습니다. 나를 파괴하려고 접근하는 사림이 있는가하면 나를 도우려고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의 향방이 결정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만남으로 해서 인생이 파괴되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좋은 만남으로 해서 그 인생이 꽃을 피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2차세계대전의 원흉들, 히틀러, 무쏠리니, 천황이라고 하는 작자들을 만난 사람들은 엄청난 피를 흘린 것들을 볼 수 있고, 가까운 예로서 국가가 잘못된 정치인들을 만나서 힘든 예를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하늘로서 갑자기 세찬 빛이 둘렀습니다. 당연히 사도바울은 엎드러질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일은 이전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사도바울은 일생에 잊을 수 없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라고 부르시더니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일생 들어보지 못한 음성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더니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하신 말씀에 바울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바울은 음성의 주인의 신분을 물었습니다. ‘주여 누구십니까? 그러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같은 일행들은 빛은 보면서도 말씀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입니다. 오직 바울에게만 일어난 일입니다.

바울은 이제 주님께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일단 다메섹으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네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을 알려줄 것이라 했습니다.

사도바울의 주님을 만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을 핍박하는 것은 곧 주님을 핍박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하는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즉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을 핍박할 때 예수님이 자신을 핍박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입니다. 핍박하는 사람들로서는 소름끼치는 일입니다. 역사적으로 볼때 핍박자들이 회개하지 않았을 때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께서 자신을 핍박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핍박자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을 핍박하는 것은 전능자를 핍박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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