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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생각하는 신(사도행전28:1-6)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더니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6절)

 

고대 헬라세계에서 신개념은 본질적으로 다신론적입니다. 많은 개개의 신들이 존재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신들의 질서정연한 전체성이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신들에 대한 다수 개념에서부터 신들의 계보와 계급이 발전되었습니다. 높고 낮은 신들, 신들의 집안, 그리고 만신전이 그 예입니다. Zeus Apollo 등을 신이라고 하며, 우주도 신으로 여깁니다. 따라서 Greco-Roman시대에는 원시적인 힘들에 대해서도 신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의 신 개념으로서 신들은 하나의 주어진 요인(factor)입니다. 신들은 비록 영원한 것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신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존재하게된 것들로 인식했습니다. 그들은 신들이 무로부터 세상을 창조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혼돈과 투쟁하여 원시적으로 존재하는 거대한 힘들을 통제하여 다스리는 질서요 형태(그러므로 세상의 의미)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신 개념은 신들은 국가에서의 질서와 같은 인간적 질서와 동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신들은 우월한 능력과 지복을 누리지만 도덕적 진지성은 결여합니다. 신들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그들의 감정과 관습도 인간의 것과 비슷하다고 인식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유일하시고 자신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역사 이래로 다양한 神觀念들을 형성시켜 왔습니다. 어릴 때에 무슨 신이 이 땅에 많은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신이란 무엇일까? 무덤에 가서 절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에게 신의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죽음의 저 너머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하나님을 믿어야 정상인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통상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精靈信仰/animism / 인간의 육체를 떠난 亡靈들이 떠돌아다니며 인간생활에 좋고 나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 영혼들을 달래거나 숭배하는 신앙입니다. 즉 Shamanism입니다. 샤머니즘은 샤먼에 의하여 주도되어 생겨나는 종교현상입니다. 샤먼(Shaman)이란 병자를 고치고 저 세상과 교통할 수 있는 힘을 소유한 것입니다. Shamanism은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에서 두드러졌습니다.

2. 多神論/polytheism / 여러 신들의 존재를 신용하는 것으로 Greece 신화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대개 여러 신들은 영웅들이나 자연의 대상들 즉 행성이나 호수, 산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나 로마의 신화들을 보면 신과 인간의 불륜들이 수없이 많이 나옵니다. 따라서 신인가 하면 인간이고, 인간인가 하면 신인 것이 그리스 로마 신관입니다.

3. 汎神論/pantheism / 대표적인 예가 인도의 브라만교입니다. 우주를 지배하는 제l원인을 신으로 생각하며 신과 만유를 통일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모든 것이 신입니다. 개구리도 죽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신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나 소를 죽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별과 태양 달도 신으로 착각합니다.

4. 理神論/deism / 17, 18세기에 주로 영국의 자유사상가나 과학자들에 의해 제창된 바 있는 합리주의적 유신론으로서 역사 속의 초자연적인 것들 일체를 배격하는 신사상입니다. 이신론자들은 하나님을 초월적 존재로서만 파악하며 내재하셔서 인간들과 인격적 관계를 맺으시는 하나님을 강력히 부인합니다.

이상과 같이 사람들은 신도 아닌 것을 믿고 있습니다. 신이라고 하면 창조하고 거룩하며 인간들의 모든 것을 섭리하고 관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신들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따라서 신이라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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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전문가인가? (사도행전27:9-11)

사람들은 흔히 전문가(professional)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전문가라는 말을 너무나 많이 사용하고 있어서 어떤 사람이 전문가인지, 어떤 사람이 비전문가인지 구별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이 사람도 전문가, 저 사람도 전문가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전문가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누가가 본문에서 묘사한 바울의 항해와 난파의 기록은 생생하게 고전적인 필치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단순하게 파선에 대한 기록만이 아닙니다. 본문은 “고대 항해에 대한 지식을 제공해 주는 매우 시사적인 문서 중의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9-11절을 보면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고 누가는 기록했습니다. 바울은 죄수 아닌 죄수로 Roma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호송책임자는 역시 Roma의 백부장 율리오였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백부장들은 모두 괜찮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리오도 Roma로 가는 길에 바울사도가 성도들에게 대접받음을 허락한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음을 허락하더니/3절). 바울일행은 바람의 거스림을 피하여 항해하였습니다(4절). 소아시아와 고대 시리아 지방의 지중해 연안지방에서는 여름에 서쪽에서 바람이 거세게 불어왔습니다. 이 바람을 맞으면 항해가 곤란했기에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면을 타고 항해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순조롭게 소아시아의 한 동쪽지점에 도착해서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항해를 계속했습니다.

무라는 애굽과 로마사이를 왕래하는 곡물선단의 주요항구입니다. 거기에서 율리오는 아드라뭇데노라는 배를 만났습니다. 그 곡물선단은 Roma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Ramsay는 ‘그 배는 정규항로로 운행하여 아마도 빨리 Roma로 가기위해 빨리 달렸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가을에는 바람의 방향이 북풍으로 바뀔 위험이 항상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항해하기가 점점 어려웠습니다. 7절을 보면 무라에서부터는 강한 북서풍이 불어와서 천천히 그리고 어려운 항해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니도에 도착한 배는 잠깐 생각할 시간을 가졌습니다. 니도항은 애굽으로부터의 상선이 자주 드나들기 때문에 백부장은 니도항에서 알렉산드리아호에 올라타고서 순항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때 바울이 말합니다. 금식하는 절기가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보통 금식하는 절기는 9-10월 10경이었습니다. 금식하는 절기는 9월 중순경이었습니다. 9월 중순경이후에는 지중해를 항해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11월11일 이후에는 아예 항해가 불가능했습니다. 이것을 바울사도는 여행을 하면서 익히 알고 있었기에 백부장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었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위험한 일을 결국 자초한 것입니다. 소위말해서 자격들을 많이 따지는데, 자격이 꼭 능사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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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Roma행(사도행전27:1-8)

 

1 우리의 배 타고 이달리야로 갈 일이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사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행선할쌔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3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음을 허락하더니 4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바람의 거스림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5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성에 이르러 6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7 배가 더디 가 여러 날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8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성에서 가깝더라

 

우리라는 것으로 보아 바울사도는 혼자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사도 곁에는 항상 바울을 돕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사도는 행복한 사도였습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주님이 함께 하시며, 그리고 늘 그 곁에 누가와 그외 다른 성도들이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21:18에서 ‘우리’라는 말이 나온 후로 뚝 끊겼다가 다시 시작합니다.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아마도 바울이 구금되어 있었을 때 누가는 가이사랴 근처에서 바울사도의 동향을 살폈을 것입니다. 2년간은 바울사도가 구금되어 있을 때였습니다.

바울사도는 Roma의 황실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Roma의 행정관은 Roma에 보내기로 작정하여 모든 준비를 끝냈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죄수 몇 명과 함께 Roma로 출발했습니다. 바울사도를 호송할 책임자는 Augustan부대 소속의 백부장 Julius였습니다. 그는 Roma까지 가는 동안에 다수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가이사랴에서 출발하여 그들이 탄 배는 소아시아 북서쪽의 Lesbos섬의 맞은 편에 위치한 Mysia의 항구도시인 아드라뭇데노에 속한 배였습니다. 이 배는 연안을 항해하는 배로서 아시아 각도의 여러 항구에 머무를 예정이었습니다. 이 항구 중에서 Roma로 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갈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중에 마케도니아의 데살로니가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승선했다고 했습니다. !Arivstarco"/Arîstarchos는 역시 바울의 신실한 여행 동반자였습니다. Arîstarchos는 에베소에서 소요에 연류되었습니다. Arîstarchos는 에베소에서 바울의 전도로 말미암아 자신의 사업에 위협을 느낀 은장색 데메드리오가 폭동을 선동했을 때 흥분한 폭도들에게 잡혀 연극장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폭동은 진정되고 그는 무사히 풀려났습니다. Arîstarchos는 바울의 제3차 전도여행에 동참했습니다(행20:4). Arîstarchos는 바울과 함께 로마 감옥에 갇히기까지 했습니다(골4:10). 이런 신실한 동역자들이 항상 바울 곁에 있었습니다.

바울의 Roma행은 결코 외롭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열악한 교역자들은 인물난입니다. 대형교회에는 일할 사람이 넘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형교회, 어려운 교회는 사람이 없어서 인물난입니다. 참 아이러니 합니다. 초대교회에서 점점 현대교회는 멀어져 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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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무죄를 선언한 Roma 행정관들(사도행전26:30-32)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바울과 Roma의 행정관들이 생각하는 바울의 죄에 대한 관점은 달랐습니다. 유대의 법에 통달한 아그립바도 바울의 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베스도도 어느 누구도 바울에게서 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죄가 있다고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했지만, 바울에게서는 전혀 죄만한 것들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아그립바는 황제에게 상소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석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베스도는 황제에게 보낼 바울의 건에 대해서 충분하게 납득했습니다. 죄는 없지만 황제에게 호소했기 때문에 문서를 작성해야 했습니다.

선교라고 하는 것, 전도라고 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 등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사항입니다. 누구나 공동적으로 받은 사명입니다. 특별히 선교에 열정을 가진 성도들은 자신의 모든 것들을 접어버립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참 이상한 일입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이, 또 실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모든 것을 접어버리고 오지의 선교지로 훌쩍 떠나는 뒤에 혀를 끌끌하고 찹니다. 이것이 세상과 교회와 다른 점입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교회의 가치관은 다릅니다. 성도의 가치관과 불신자들의 가치관은 다릅니다.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도 다릅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추구하는 것도 다르고 실천이 다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색다른 사람들입니다. 2세기경의 저자미상의 작품으로 Diognetus에게 보내는 서신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색다른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은 나라와 언어 혹은 풍습에 의해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도시에 살거나 어떤 이상한 방언을 말하거나 혹은 어떤 독특한 생활양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의 이 가르침은 호기심이 강한 사람들의 재능이나 사색에 의해 고안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 하듯이 단순히 인간적인 가르침을 전파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면 헬라의 도시와 외국의 도시, 어디에나 살았다. 그들은 의복과 음식 그리고 삶의 다른 면들에 있어서 지방의 풍습을 따랐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그들 자신의 시민권의 놀랍고 유별난 형태를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은 고국에 살고 있으나 이방인이다. 시민으로서 그들은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눈다. 그러나 이방인처럼 모든 어려움을 겪는다. 모든 외국은 그들에게 고국과 같고, 또한 모든 고국은 외국과 같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결혼하고 자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원치 않은 아기를 죽이지 않는다. 그들은 식탁에 앉아 함께 식사하지만 잠자리를 함께 하지는 않는다(성적문란이 없음을 가리킴). 그들은 “육신”으로 존재하지만 “육신을 따라” 살지 않는다. 그들은 지상에서 그들의 생애를 보내고 있으나 하늘의 시민들이다. 그들은 제정된 법을 준수하고 또한 그들 자신의 삶에 있어서는 그 법보다 탁월하다.

그들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나 모든 사람은 그들을 박해한다. 그들은 무명하나 비난받는다. 그들은 사형을 당하나 생명을 얻는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부요해지고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이 모자라지만 모든 것이 풍족하다. 그들은 굴욕을 당하나 그 굴욕을 통해서 영광을 얻는다.

그들의 이름에 누명을 씌우나 그들은 깨끗하다. 그들은 조롱당하나 대신 축복한다. 그들은 부당하게 다루어지나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행동한다. 그들이 선을 행할 때 그들은 악행자처럼 처벌받는다. 처벌을 받을 때 그들은 새 생명을 얻은 자처럼 기뻐한다. 그들은 외국인으로서 유대인의 공격을 받으며, 헬라인의 박해를 받는다. 그러나 그들을 미워하는 자들은 그들의 적의의 어떤 이유도 제시할 수 없다.

간단히 말해서 몸에 대한 영혼의 관계는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영혼은 몸의 모든 지체를 통하여 퍼져 있고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모든 도시들에 걸쳐서 존재한다. 영혼은 몸 안에 있으나 몸에 속하여 있지 않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안에 있으나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다.

성도들은 분명히 색다른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으나 이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렇고, 사도들이 그러하며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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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생각들 (사도행전26:24-29)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이 가로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나이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 아그립바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 뿐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 하니라

 

바울의 변명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누구나 바울에게 죄가 없다고 했을 것입니다. 왜 우리가 이런 재판의 청문회를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 들었을 것입니다. 법에 대해서 문외한이라고 하더라도 바울의 증언을 들은 사람이라면 바울에게 죄 없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유대적인 변명과 도를 들었던 베스도가 갑자기 큰소리로 바울에게 말하기를 미쳤다는 것입니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했다는 것입니다. 베스도는 바울에게 성경을 너무 많이 알더니 미쳤다고 했습니다. 바울을 조롱한 것입니다. 바울은 미친 것이 아니고 똑똑한 정신으로 말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이 도에 대해서 베스도는 잘 알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말합니다. 선지자를 믿는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아그립바도 적은 말로 권해서 나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사도는 말이 적으나 많으나 오늘 나와 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복음에 붙잡혀야 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4:3을 보면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그 층이 다양합니다. 국가도 다양하고, 쓰는 언어도 다양합니다. 그리고 학력도, 직업도, 연령층도 다양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들여서 예수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사단에게 눈이 어두워진 불신자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미련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행여 전도를 당할까봐 그들은 걱정을 합니다. 그리고 대신할 것을 찾습니다. 열왕기하5:8을 보면 엘리사가 요단강물에 일곱 번 씻으라고 했을 때 나아만은 시리아의 ‘아마나’와 ‘바르발’강에서 씻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했습니다. 시대마다 불신자들이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복음을 대체할 어떤 것을 찾았습니다. 실상(fact)은 없는데 그들은 있다고 합니다. 복음을 대체할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픈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많은 불신자들이 지옥을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그것도 안심하고 갑니다. 막상 지옥문을 통과해서야 늦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지옥에 가서야 사람들은 깨닫습니다. 그러기 전에 복음을 받아들이면 되는데 복음을 대체한다는 교만한 자신감 때문에 복음을 우습게 여깁니다. 세상에 종교는 많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것도 허구입니다. 오직 복음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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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이미’와 ‘아직’의 구속적 긴장(사도행전26:1-3)

 

박형용 교수는 바울과 오늘날 신학자들은 바울과 똑같은 구속역사의 긴장 속에 처해있다고 했습니다. 바울사도는 예수님의 구속사역 즉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되돌아보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는 형편에 있었고, 오늘날의 성도들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되돌아보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는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이 무려 2000이란 간격이 있지만 아직도 똑같습니다. 따라서 바울사도와 우리는 같은 긴장 속에 있습니다. 바울사도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성취된 구원사건이 어떻게 인간과 세상에 적용되느냐에 관심을 기울여 서신을 기록했습니다. 오늘날도 같습니다. 바울사도와 함께 ‘말세를 만난’(고전10:11) 사람들로서 그리스도의 사건을 되돌아보고, 다른 한편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리는’(살전1:10) 사람들로서 미래를 내다보는 입장에 있습니다. 이처럼 바울사도와 우리는 ‘이미’와 ‘아직’/already-not yet 이라는 구속역사적 긴장 속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바울사도는 현실만의 말을 하지 않고, 미래적인 요소를 반드시 말했습니다. 우리 역시 구속의 성취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효과가 있느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만 미래적인 요소를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점에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순례자(pilgrim)로 살아가야 합니다. pilgrim은 짐이 가벼워야 합니다. 짐이 가벼워야 빨리 옮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성도들은 그러지를 못하게 됐습니다. 이 땅에 너무나 많은 미련을 두고 있습니다. 이 땅에 좋은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어서 천국으로 떠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mammoth 교회당, 상아궁전과 같은 집들, 화려한 agit, 최고급 승용차 등이 너무나 좋아서 쉽게 떠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마치 절대로 천국이 없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천국과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과 천국이 불연속선에 있다고 생각하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뒤돌아보고 재림을 기다리는 구속역사의 입장으로 볼 때 긴장이 되지 않습니다. 즉 바울시대보다 현시대는 많이 세속화되었습니다. 성도들은 현실을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미래지향적임을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이세상과 오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현실에 너무나 미련을 두고 이 세상을 천국처럼 여긴다고 하면 큰 문제입니다. ‘이미’와 ‘아직’사이를 모르고 현실에만 안주하고 있다면 더는 성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바울사도는 어떻게든지 당시 세계의 중심이라고 하는 Roma에 가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말한 죄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의 사정에 밝은 Agrîppa왕 앞에서 변명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그의 원수들이 격렬하게 비난을 퍼부었을 때도 담대하게 조용히 변명했고, 지혜와 능력으로 그들의 고소내용을 반증했으며, 그들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분노를 터뜨리지 않고 깨끗한 양심으로 그들을 대하였습니다. 아직 그의 사명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사명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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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ce인과 유대인(사도행전25:6-12)

 

Greece에서 조국을 떠나 의국으로 이주하는 것을 의미하는 diaspora는 오늘날에는 유대인만의 전용어처럼 여기고 있지만, 조국을 떠나 외국으로 이주하는 일에서는 Greece족이 유대인들보다 먼저였습니다. 하지만 Greece인의 이주와 db대인의 이주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Greece인은 아무것도 없는 땅에 도시를 건설하고, 그곳을 기지로 하여 수공업이나 무역업으로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미 존재하거나 번영하고 있는 도시로 이주하여 수공업이나 무역업, 금융업으로 부를 축적했습니다. 주전1000년에 시작된 그리스인들의 이주로 지중해 세계는 서방과 동방을 막론하고 곳곳에 Greece인 도시가 건설되었지만, 유대인이 건설한 도시는 전혀 없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통일왕국이었기 때문에 굳이 가나안을 떠나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주전주후를 아우르는 시대에도 지중해의 동방에 있는 여러 도시에는 대규모 유태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지만, Roma를 비롯한 서방도시에는 동방만큼 규모 가 큰 유태인 사회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Pax Romana의 확립과 사회간접자본의 보급은 서방의 경제력을 향상시켰습니다. 그때까지는 불균형했던 동방과 서방의 경제력이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지배자인 로마로 부가 집중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실제로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로마 제정시대에 제국의 3대 도시는 Roma와 Alexandria와 그리고 Antioch이었습니다. 그러나 서방은 Roma였고, Alexandria와 Antioch은 동방이었습니다. 지배자인 Roma인 자신이 제국전역의 부의 흐름은 중요시했지만, Roma에만 부가 집중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속주세도 피지배자가 지배자 Roma에 바치는 상납금이 아니라 그들의 거주지역을 포함한 제국전역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안전보장비였습니다. Augustus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서방의 경제력향상은 유대인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대민족의 이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는 조건이 서방에도 갖추어진 것입니다. 이 시기에 황제에 즉위한 사람이 Tiberius였습니다.

불신자들 편에서 보면 유대인들이 편협하게 보였습니다. 물론 당시의 그리스도인과 유대인들을 비교할 때도 역시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우상을 섬겼고, 돈을 좋아했으며, 하나님을 수시로 떠난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결여되었기 때문입니다.

헬라인과 유대인들은 서방에서 양대 산맥처럼 행세하였습니다. 유대인은 유대인대로, 헬라인은 헬라인대로 서로 자신들이 잘났다고 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Roma내에서 많은 충돌이 있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지식이나 권력, 그리고 재물들은 바람 앞에 겨와 같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Roma의 영광, 헬라의 영광, 유대의 영광은 지금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 영원한 것을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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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약중간사(사도행전25:6-12)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서 범죄로 인해서 주전586년(북왕국/722)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갑니다. 이후로부터 이들은 계속해서 타국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Persia의 고레스에 의해서 유다로 귀환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Persia의 지배를 받아야 했습니다. Persia(주전450-330)는 유대에 상당히 호의적이었습니다. 느헤미야 시대 이후 약200년 간 Persia는 유대를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종교생활을 허용했습니다. 따라서 이 기간에는 유대의 행정을 책임 맡은 대제사장들이 유대를 다스렸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권력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주전333년에 Alexandros대제가 Macedonia에 주둔하고 있던 Persia군을 격퇴시켰습니다. 이로인해 Persia가 다스렸던 지역이 Greece영향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Alexandros는 Greece 문화가 세계를 통일시키는 유일한 힘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Alexandros는 유대인들에게는 유대법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안식년에는 공물이나 세금을 면제해 주었습니다. 이집트의 Alexandria라는 도시를 건설해서 유대인들이 이주해서 살도록 권유했습니다. 그리고 이주민들에게 Greece인들에게 부여된 몇 가지 특권을 베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구약의 헬라어 번역본인 70인역(Septuagint/주전250년)이 알렉산드리아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더대제가 주전323년에 죽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계자들이 제국을 분할통치합니다. 이들은 Kasandros,1 Lysimachos,2 Ptolemy,3 Antigonus4입니다. 이들은 알렉산더대제처럼 단일체제냐, 집단체제로 갈 것인가 하다가 피차 싸웠습니다. 그러다가 안티고누스를 다른 3명이 제거합니다. 알렉산더 사후 후계자 전쟁(Diadochi War)이 주전323-주전301년까지 계속됩니다. 그러나 Antigonus가 주전301년 Ipsus전쟁에서 죽자 Diadochi시대가 끝나고 네 왕조로 분열되었습니다. 북부 Syria와 Mesopotamia지역을 다스리던 Seleucus, 애굽과 Palestine, 남부 Syria지역을 다스린 Ptolemy, 소아시아 지역을 다스리던 Lysimachus, 헬라(Macedonia/Greece) 지역을 다스리던 Cassander가 이들 네 지역을 대표했습니다. 이 네 왕국 중 성경역사와 관련되는 왕국이 Ptolemy왕조와 Seleucus왕조입니다.

먼저 이스라엘 지역을 점령하여 다스리던 왕조는 Ptolemy왕조였습니다. 이들은 이방종교에 관대해 유대인들을 Alexandria에 이주시켰습니다. Ptolemy2세 지원 하에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을 당시 세계적 공용어인 헬라어로 번역하였습니다(LXX). 헬라어가 당시 세계 공용어가 된 배경에는 Alexandros대제의 정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전198년, Seleucus왕 안티오쿠스3세가 Ptolemy5세와의 파내우스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Palestine 통치권은 Seleucus왕조로 넘어갔습니다. Ptolemy왕조는 유다관습과 전통에 관용적이었던 반면, Seleucus왕조는 Hellenism문화를 강압적으로 이식시키려 하고 많은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성전 보물을 약탈도 했습니다. Seleucus의 왕 Antiochus4세는 자신을 스스로 신의 현현(顯現)으로 자처하여 Epiphanes라 칭하였습니다. 그는 군대를 동원하여 ‘성소’를 더럽혔고(단11:31) 주전167년에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지하였으며 12월8일에는 성전의 제단에 ‘제우스 신상’을 세워 숭배하게 했습니다(단11:31). 심지어 율법을 지키는 자는 사형에 처하고, 왕의 생일을 기념케 하기 위해 매월25일마다 돼지를 잡아 제단에 바치도록 하였습니다. Antiochus Epiphanes에 대하여 “네 뿔 중에 한 뿔에서 나오는 작은 뿔”로 칭하고 그가 영화로운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하늘군대인 이스라엘 백성을 쳐서 별들을 떨어뜨리고 스스로 높아져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매일 드리는 제사를 제하고 성소를 헐어버린다고 기록했습니다(단8:8-11).

Seleucus왕조의 反유대인 정책은 유대인들의 강력한 저항과 분열을 가져왔습니다. 헬라문화의 同化정책에 강력하게 반발하며 신앙적 전통을 고수하려는 바리새파 유대인들과 헬라주의에 동조하는 사두개파 유대인들의 관계가 악화되어 갈 때 유대주의자들이 Antiochus4세가 애굽 원정길에서 죽었다는 헛소문을 내고 다수의 헬라주의자들을 죽였습니다(주전169). 급히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Antiochus4세는 유대주의자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모든 종교행사를 금하는 종교박해를 감행했습니다. 당시 제사장 맛다디아는 제우스 신에게 제사하라는 왕명을 거절하고 제단을 파괴한 후 고프나 산지로 도망하여 경건한 유대인인 하시딤과 합류, 반란의 선봉에 섰습니다(주전167). 맛다디아의 아들 유다 마카비는 탁월한 지도력으로 주전164년에 예루살렘을 회복하여 율법의 규례대로 성전을 정화하고 8일간의 봉헌축제(‘하누카’, 또는 ‘수전절’)를 열었습니다. 마카비의 동생 요나단 때에는 이스라엘 북동 지역과 트랜스 요르단 지역을 점령하였으며 마침내 시몬의 지도하에 주전142년 유다는 Seleucus왕조를 완전히 몰아내어 독립을 쟁취하고 ‘하스몬 왕조’를 건립하였습니다(주전142). 하지만 하스몬 왕조는 내부분열과 갈등으로 인해 오래가지 못하고 주전63년 Roma의 Pompeius(Gnaeus Pompeius Magnus)장군에 의해 다시 예루살렘을 내주고 로마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Josephus에 의하면 Pompeius의 군대가 이무나 접근할 수 없고 볼 수도 없었던 성전을 마구 짓밟았다고 했습니다. Pompeius와 그의 부하들은 대제사장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볼 수 없는 것까지 보았습니다. 당시 성전 안에는 금상과 금등대와 그릇들과 다량의 향료들과 2000달란트나 되는 돈이 보관되어 있었지만, 손을 대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1 주전358-297/알렉산드로스대왕의 후계자 중 한 사람으로 안티고노스와 대립하였고 입소스 전투 이후로는 나라와 왕국경영에 전념하였다. 아버지 안티파트로스가 죽은 뒤 안티고노스의 후원을 얻어 그리스 본토 지배권을 획득하였으며, 이어 알렉산드로스제국(帝國)의 재상 폴류페르콘을 제거하고 마케도니아에 세력기반을 구축하였다. 주전305년부터 마케도니아 왕을 칭하였으며, 제국 재통일을 지향(志向)하는 안티고노스와 대립하였다.

2 Lysimachos/주전360~281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계자이며, 대왕의 친위대의 한 사람. 대왕이 죽은 후 트라키아와 소아시아 북서부를 지배하였고 케르소네소스 반도의 기부(基部)에 수도를 건설하였다. 주전306년 트라키아왕이라 하였다. 주전301년 후계자 중 가장 유력한 안티고노스를 입소스전투에서 깨뜨리고, 그 영토 마케도니아를 병합하였으나, 전날의 동맹자 셀레우코스의 공격을 받아, 리디아의 쿠르페티온에서 전사하였다.

3  Ptolemy I 주전367-283 알렉산더 대왕의 부하로 동방 원정에 종군하였고, 주전323년 왕이 죽은 후 이집트의 관구를 통치하였다. 그의 치세에 이집트와 시리아의 전쟁이 벌어져, 그는 주전312년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많은 유대인을 식민 또는 상인으로 하여 이집트로 데려갔다. 주전301년 유대는 정식으로 톨레미의 판도에 가입되었다. 그의 치세 중에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유명한 박물관ㆍ도서관ㆍ세라피움의 성전이 세워졌다. 그는 미술ㆍ문학을 장려, 유클리드와 같은 그리스 학자를 후원하여 알렉산드리아를 학술의 중심지로 삼고 상업에도 힘써 나라를 크게 번영시켰다. 

4  Antigonus I 주전382~301 알렉산드로스 대왕 휘하의 마케도니아 장군으로서 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 왕조를 창건해, 주전306년 왕이 되었으나, 5년 후인 주전301년의 입소스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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