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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순종의 결과

예레미야애가1:1-6

 

1789714일에 France 국민들은 심히 분노했습니다. 도저히 국민들이 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은 가난하고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황제는 초호화생활을 했습니다. 국민들은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황제 궁은 먹을 것이 넘쳐났습니다. 이때 France의 황제는 루이16(Louis XVI)였으며, 왕비는 마리 앙뜨와네뜨(Marie Antoinette d'Autriche)입니다. 사람들이 빵을 달라고 했을 때,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라는 말을 해서 유명합니다. 분노한 France 농부들은 파리의 바스티유 감옥을 공격했습니다. 죄수들을 풀어주었습니다. 그 감옥을 파괴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루이16세 치하의 France정부는 극도로 부패했습니다. 엄연히 의회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회의가 없는 의회였습니다. 175년간이나 한 번도 회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Roman-Catholic과 귀족들이 토지를 모두 소유했습니다. 귀족들은 정부와 교회, 군대의 높은 직위를 모두 독점했습니다. 그리고도 세금은 내지 않았습니다. France 인구의 95%가 농민이었는데, 5%Roman-Catholic과 귀족들이 농민들을 착취했습니다. 이에 농민들은 더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내 농민들이 봉기하였습니다. France 국민들은 1793121일에 루이16세를 단두대에 처형했습니다.

 

어느 나라나 어떤 시대이건 간에 국민들의 뜻을 모르는 군주나 왕들은 국민들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왕의 자리에 앉아있지만 국민들이 철저하게 외면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거나 말씀하신 것들을 거절하고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1절을 보면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본래는 열국 중에 공주 되었던 자가····

 

예레미야애가에 들어서서 읽자마자 나오는 詩句는 매우 슬픈 내용의 詩句입니다. 과거와 현재를 적나라하게 비교해놨기 때문입니다.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본래는 열국 중에 공주 되었던 자가····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앉았는고

이제는 과부 같고

이제는 조공 드리는 자가 되었도다

 

오늘 첫 번째로

 

I. 하나님과 같이 했었던 예루살렘(1a).

 

중심(center)이란 말은 한 가운데라는 뜻입니다. 많은 점들의 초점(Focus)입니다. 그래서 중심이 되기를 사람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의 경제중심은 New York입니다. 세계의 정치중심은 Washington입니다. 그러나 세계의 분쟁중심은 중동입니다. 따라서 중심이란 항상 어떤 것의 핵심입니다. 사건의 한 가운데가 중심입니다.

 

우주학을 전공한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현재 우주의 넓이가 150억 광년내지 200억 광년이라고 합니다. 이 거리가 얼마인가? 빛이 1년간 가는 거리를 1광년이라고 합니다. 1광년은 9,4670,7264,0000km입니다(지구둘레4,6250km). 지구둘레를 24693463바퀴를 도는 거리입니다. 서울에서 전주까지 왕복을 22119328598번 하는 거리입니다. 그러니까 150억 광년이라고 하는 거리는 상상이 되지 않는 거리입니다. 그 안에 별들이 약 1000x1000=1022개입니다. 그 속에 지구라는 별이 하나님나라의 중심별입니다.

 

지구라는 별이 별 속에서 그리 크지 않습니다. 태양 속에 지구를 130만개 넣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Antares라는 별이 있습니다. 이 별 속에 태양을 6,400만 개나 넣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Hercules의 별자리 가운데 있는 어떤 별은 1억 개의 안타레스가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보다 더 큰 별 EpsilonHercules 별자리 가운데 있는 수 백 만개의 별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비교해 볼 때 지구라는 별은 정말 작고 작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별들의 중심이 지구라는 것입니다. 그 지구의 중심이 유대라는 것이며, 그 중심이 예루살렘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행복했었습니다. 과거 예루살렘은 항상 세상의 중심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예루살렘의 뜻대로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도 함부로 예루살렘을 비웃지 못했습니다. 그날 저녁에 바로 하나님의 재앙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세상은 신비의 지역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안의 사람들이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였을 뿐입니다. 그들의 열심이 예루살렘을 번영시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머리가 예루살렘을 번영시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국가관이 예루살렘을 번영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애국심이 예루살렘을 번영시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우셨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번영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세상의 중심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전의 예루살렘을 회상했습니다. 그리고 시적으로 읊조립니다.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본래는 열방 중에 공주 되었던 자가라고 좋았던 시절을 회상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함께 할 때는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무엇도 이스라엘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누구도 이스라엘을 막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430년간 애굽을 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까? 바로의 권위 때문이었습니다. 바로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압제했기 때문에 빠져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바로 빠져나왔습니다. 바로가 이스라엘을 바로 보내주었습니다. 하나님과 전쟁을 해보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에게 보낸 군사들은 전사들이 아니었습니다. 곤충부대였습니다. 파충류였습니다. Superman보내지 않았습니다. Batman도 아니었습니다. 007도 아니었습니다. 자그마한 파충류와 곤충들과 파리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바로가 이들한테 꼼짝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막상 애굽을 나와 도착한 곳이 홍해 앞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이스라엘은 이제 죽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까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매일 새벽마다 만나가 내렸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요단강이 갈라졌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예루살렘이 든든해졌습니다. 지구상의 철옹성이었습니다. 누구도, 어떤 나라도 예루살렘을 건들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을 觀念的으로 믿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관념이란 현실에 의하지 않는 추상적이고 공상적인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전능하신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을 삶의 수양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 생활의 수행을 위해서 알지 못할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처럼 교회를 다니는 것입니다. 이것이 관념적인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은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면 제대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사무엘상1:3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이름은 일반 세속역사뿐 아니라 구속역사를 다스리는 전능하신 왕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실제로 믿어야 합니다.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을 실제로 믿어야 합니다.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실제로 믿어야 합니다. 다윗을 도우신 하나님, 아브라함을 도우신 하나님, 이삭과 함께 하신 하나님을 실제로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필요하며, 성령을 믿는 믿음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주의 중심에 있고, 세상의 중심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의 한 중심에 있습니다. 큰 별 보다 중요하고 태양보다 중요하다고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함께 하셔야 합니다.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골리앗을 어떻게 보느냐입니다. 이스라엘에게 골리앗은 너무 커서 죽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골리앗이 너무 커서 빗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가능성이 없어보여도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현 난국을 우리는 타개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말씀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믿는 것이지,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노아는 120년 후에 있을 일을 믿은 것이지, 현실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지 현실을 바라보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심으로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같이했던 예루살렘은 해가 질 줄을 몰랐습니다. 다음으로 1절에서 6절을 보면

 

1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앉았는고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 본래는 열방 중에 공주 되었던 자가 이제는 조공 드리는 자가 되었도다 2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 3유다는 환난과 많은 수고로 인하여 사로잡혀 갔도다 저가 열방에 거하여 평강을 얻지 못함이여 그 모든 핍박하는 자가 저를 쫓아 협착한 곳에 미쳤도다 4시온의 도로가 처량함이여 절기에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이 황적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저도 곤고를 받았도다 5저의 대적이 머리가 되고 저의 원수가 형통함은 저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곤고케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6처녀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감이여 저의 목백은 꼴을 찾지 못한 사슴이 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림 같도다

 

예레미야는 망한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슬프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II. 하나님을 떠난 예루살렘(1b-6).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누나 허초희(許楚姬/許蘭雪軒1563-1589)의 곡자(哭子)라는 시가 있습니다.

 

去年喪愛女 지난 해 사랑하는 딸을 잃었고,

今年喪愛子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哀哀廣陵土 슬프고 슬픈 광릉 땅이여,

雙墳相對起 두 무덤이 마주 보고 있구나.

 

天才詩人 許楚姬/許蘭雪軒27살에 夭折했습니다. 삶도 그의 시만큼이나 崎嶇했습니다. 그러한 許蘭雪軒이 두 아이를 잃은 슬픔을 시로 적은 것입니다. 절절이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슬픔을 글로 나타낸 것입니다. 자신이 먼저 죽어야 하는데, 아이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슬픔, 어디에 이 슬픔을 표현하겠습니까? 정말 슬프고 또 슬플 것입니다.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저미는 듯 한 詩句입니다.

 

예레미야애가도 이처럼 시로 구성되었습니다. 슬프다(hk;yae/ekah/에카) 시작하는 예레미야의 글은 일정한 형식에 의해서 기록했습니다(acrostic). 이 시를 읽고 있노라면 예루살렘의 이전의 정경과, 망하고 난 정경을 바라보는 듯합니다. 과거에는 찬란했던 지구의 중심이요, 우주의 중심이었던 곳이 이제는 마치 거름더미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전 세계에서 귀빈이었던 예루살렘이 이제는 노숙자보다 못한 신세로 전락했다는 슬픈 노래입니다. 어째서 세계의 중심이었던 예루살렘이 이렇게 되었습니까?

 

예레미야는 일찍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선지자로 살았습니다. 유다를 위해서 온 힘을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유대는 그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백성에 이르기까지 예레미야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친애굽파, 친앗수르파로 나누어 싸움질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가 무슨 말만 하면 반민족주의자라고 비판했습니다. 예레미야의 말을 그들이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심판은 닥쳐오고 있는데,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계속 말씀하십니다. “심판이 임박했다” “그러니 빨리 전하라그래서 그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그러면 유대는 예레미야의 말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자꾸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전하고, 그리고 쫓겨나고, 맞고, 갇힘을 당합니다. 그렇게 40년간을 반복합니다. 예레미야의 irony는 듣지 않는 자들에게 말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만 유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사야도 전했습니다. 하박국도 전했습니다. 요엘도 전했으며, 아모스도 전했습니다. 그 외 여러 선지자들이 유다와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어떤 말씀을 전했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는 한 너희들은 세계 제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가 된다(하나님께 특별히 선택받은 )는 것입니다. 빼어난 민족이 되게 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성전 준공식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너희들이 나를 떠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루살렘이 처참하게 망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에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 자들만 남겨두고 모두 포로로 끌어갔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성도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죄가 무엇입니까? 불신앙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입니다. 불신앙이 모든 죄의 기초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사람들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청지기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걸립니다. 어떠한 것이 그 말씀에 brake밟습니까? 물이 포도주가 될 리 없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포도주를 파는 곳에 가서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교인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치상으로 물이 포도주가 된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물을 항아리에 채웠습니다. 채운다음에 예수님께 그래도 최소한 항아리마다 포도한광주리씩은 넣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없으면 한 송이씩이라도. 그래야 포도주가 되든지 말든지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이성은 자꾸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제동을 거는 것입니다. 그러니 될 리가 없습니다.

 

순종하면 되는데 그것을 우리가 하지 못합니다. 순종하면 우리의 신상이 하나님의 의도대로 가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이는 목사의 말도 믿지 않는데,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그 모습 그대로 우리들의 생활상에 나타납니다. 우리들이 믿은 그대로 우리들의 생활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사실 성경이 요구하는 예배생활 참 힘이 듭니다. 성경이 요구하는 대로의 신앙생활은 정말 힘이 듭니다. 그러나 해야 합니다. 우리들을 위해서 그렇습니다. 저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귀합니다. 그런 만큼 우리가 귀하게 가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보자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그렇습니까?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서 그렇습니다. 우리의 오늘과 내일과 미래를 위해서 그렇습니다. 저는 많이 우리 성도들에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일상의 신앙생활만 요구합니다. 일주일 내내 교회에서 사는 것, 저는 요구하지 않습니다. 일상의 신앙생활만 하자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그렇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항상 불투명합니다. 불투명한 미래를 신앙으로 투명하게 보자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보시고 예수님도 이렇게 탄식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37을 보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하나님에게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서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의 의도에 다가가야 합니다. 그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기 어렵지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좁은 길로 가라고 했습니다. 가는 길은 협착하고 힘이 들지만 그 끝은 우리들이 원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좀 불편하고, 하기 싫어도 해야 합니다.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내일을 위해서입니다. 오늘을 위하고 내일을 위해서입니다.

 

다큐멘터리영화에서 인도네시아 어떤 섬에 희한한 종족이 살았습니다. 그들은 돼지를 기른 다음 날을 정해서 모두 한 번에 잡아먹습니다. 그리고 일 년 내내 고기를 먹지 못합니다. 상당히 많은 돼지인데 한 번에 잡아먹고 일 년 내내 고기를 먹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두 가지 부류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현재 편하고 다음은 곤란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고, 현재는 곤란하지만 다음의 편함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여호와는 신실하시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불순종에 대해서 가차 없이 행하시는 분입니다. 자비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엄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아야 합니다. 순종하는 사람들은 순종의 대가로 상을, 불순종하는 사람에게는 대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할 때 우리의 가는 것을 지도하십니다. 우리의 서는 것을 지도하십니다. 그리고 소망의 항구에 이르게 하십니다. 신명기28:1-14은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했을 때 받을 복을 말했습니다. 28:15-68까지는 불순종했을 때 받을 저주를 말했습니다. 순종과 불순종은 우리가 고를 수 있으나 그 결과까지는 고를 수 없음을 아시고 순종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교회에 순종하며, 해석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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