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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길

시편1:1-6

우리나라에서 매국노라 함은 일본에게 나라를 바친 사람들을 말합니다. 賣國奴는 사사로운 이익을 위하여 나라의 주권이나 이권을 남의 나라에 팔아먹는 행위를 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 중에 을사오적(乙巳五賊; 1905)이 있습니다. 을사5적이란 조선 후기에 을사조약의 체결에 가담한 다섯 매국노입니다. 외부대신 박제순, 내부대신 이지용, 군부대신 이근택, 학부대신 이완용,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입니다. 이들은 일신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우리나라 사람이지만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했습니다. 나라의 주권을 몽땅 일본에게 바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지구가 다하는 날까지 영원한 매국노입니다.

이들의 후손이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에서 영원히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한순간 애국의 길과, 매국의 길에서 나라를 파는 쪽에 섰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두 길 중에서 잘못된 길을 선택하여 자신과 후손들이 영원한 매국노로 남았습니다. 1절에서 3절과 6절 상반절을 보면

1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3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6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길은

I. 복 있는 사람의 길(1-3, 6a)

복을 사전에서는 “삶에서 누리는 만족한 현상과 거기서 얻는 즐거움”입니다(국어사전). 복은 “하나님에게 은총을 받는 것”입니다(영어사전, blessed). 또한 복은 “풍족하고 행복한 것”이라 했습니다(라틴어; beátus). 어느나라 사전을 찾아보아도 복을 받았다고 하면 “풍족하고 부유해서 만족한 것”입니다.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우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풍족하고 부유하면 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복(rv,a,)은 그런 것 외에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똑바로 가는 사람, 즉 올바로 행하는 사람을 복 있는 자라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무나 복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로 히틀러는 부유하고 부족함이 없이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히틀러가 복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완용은 다른 사람들 모두 고통과 고난을 당할 때 잘나갔었습니다. 일본에서 후작이라는 작위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완용이 복되도다 하지 않습니다. “대대로 망할 놈!”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여호와를 섬기고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복된 사람입니다(시128:1).

“복 되도다”라는 말을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복되다”는 것입니다. 신명기33:29을 보면 복된 사람은 여호와께서 항상 함께 하십니다. 시편128:1을 보면 집안이 평안하고 자녀들이 모두 잘된다고 했습니다. 손을 대는 모든 것에 함께 하신다 했습니다(사32:20). 그래서 성경에 복된 사람이라고 지명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절을 보면 복있는 사람은 “ ∙∙∙ 아니하고, ∙∙∙ 아니하고, ∙∙∙ 아니하며”라고 말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하지 말아야 할 것 세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악한 자들의 권고악한 자들의 생활방식그들과의 교제입니다. 이것들이 왜 시편 첫머리에 기록되었습니까? 세상사람들이 이것들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비리가 이 안에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잘못된 것들이 이 안에 있습니다. 각종범죄들이 이 안에 있고, 인간들을 괴롭히는 것들이 이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불손한 사람들의 간계를 좇지 않습니다. 나쁜 사람들의 삶에 끼어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비웃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성도여러분, 사람이 타락해 갈 때 나쁜 사람들의 꾀를 내고, 그 꾀에 따르며, 그 꾀를 행합니다. 죄를 생각하고, 행동하며, 그 죄에 깊이 빠지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들을 아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 첫머리에서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피하라! 악한 자들의 권고를”, “피하라! 악한 자들의 생활방식을”, “피하라! 악한 자들과의 교제를” 성도들이 이것들을 피하지 않으면 고통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자녀를 키울 때 친구를 잘 사귀라고 말합니다. 잘못된 친구를 사귀게 되면 일생을 망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 주변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널려 있는 것이 나쁜 사람들이고 널려 있는 것이 죄된 것이기 때문에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나쁜 사람들을 피하고, 나쁜 것에서 피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피해야 할 것 세 가지가 있는 반면에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율법)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율법)을 항상 묵상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즐거워해야($p,je) 합니까? 좋아서 죽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척이나 탐을 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탐이 나야 합니까? 창세기34:19을 보면 하몰의 아들 세겜이 야곱의 딸 디나를 보고 기뻐했다($pej;)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 ‘기뻐했다’와 ‘즐거워했다’가 같은 말입니다. 세겜이 디나를 보자마자 상사병이 걸렸습니다. 확 돌아버렸습니다. 디나가 없으면 죽음이었습니다. 마치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즐거워하라고 하니까 억지로 즐거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욕심나게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아니면 죽음이라는 심정으로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말씀을 묵상하라고 성경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라 했습니다. 묵상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눈을 감고 말없이 마음속으로 생각함”이라 했습니다. 성경의 원뜻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묵상한다( hg;h;)는 말은 사자가 먹이를 놓고 ‘서로 으르렁거리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누가 뺏어 갈까봐 살피면서 말씀을 읽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된 사람의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탐을 내고, 하루 종일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면서 생활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시편 1편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기대하고 받아들이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인생에 지대한 공을 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말씀을 중얼거린다는 것은 무언가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3절이 그 결과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란 사막에 있어서 최고의 자리입니다. 나무에게 필요한 햇볕은 많은데 물이 없어서 복잡을 당하는 지역이 사막입니다. 그런데 그 나무가 물이 풍부한 시냇가에 옮겨졌습니다. 그 나무의 일생은 뻔합니다. 안될 수가 없습니다. 계속 과실을 맺습니다. 계속 열매가 익습니다. 또 열립니다. 또 익습니다. 계속 우리들의 일이 잘됩니다. 또 잘됩니다. 모든 일들이 잘 풀립니다. 안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우리들을 인정(야다)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식량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주식(主食)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우리들이 날마다 육신을 위해서 먹는 것은 부식(副食)릴뿐 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까? 말씀으로 세상을 지었습니다. 말씀으로 여리고를 무너뜨렸습니다. 말씀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먹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에서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우리성도들은 항상 말씀에 목숨을 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는 일마다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열매를 맺고 또 맺어 항상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두 길중에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길은 복있는 사람의 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인정하지 않는 길이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입니다. 4절에서 5절을 보면

4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길은

II. 망하는 사람의 길(4-5 6b)

성경은 복 있는 사람의 결과를 말하자마자 강한 부정을 합니다. “사악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음이여” 그 결과가 아주 나쁘다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나무인데 비해 사악한 사람은 겨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인데 비해, 사악한 사람은 바람에 날려가는 쭉정이입니다. 벌써 듣기만 해도 안 좋을 것 같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일어나는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잘못할 때 언어로 비웃습니다. 사악한 도시 니느웨가 멸망할 때 하나님께서는 나훔 선지자를 통해서 니느웨를 비웃었습니다. “적군들이 쳐들어오네. 막아야지, 저런, 큰일 났네, 이쪽에서도 밀려오고, 저쪽에서도 몰려오네, 어쩌지, 왕비가 위태롭네, 왕자들을 어이할고, 어허 큰일일세, 이제 니느웨는 망하겠네. 망해서 어쩌지.” 하고 니느웨를 조롱했습니다.

시편에서는 $[e(에츠), $Wl(레츠), $mo(모츠)로 사악한 자들의 결과를 말합니다. ‘에츠’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입니다. ‘레츠’는 오만한 자입니다. ‘모츠’는 왕겨입니다. ‘에츠’인 나무는 복을 받는데 ‘레츠’인 오만한 자들은 ‘모츠’ 즉 왕겨가 되어 바람에 날려버린다는 것입니다. 사악한 자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의인들과 함께 영원을 같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에츠’(나무)와 ‘모츠’(쭉정이)를 통해 의인과 악인의 종말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오만한 자’(레츠)를 통해 악인의 미래가 쭉정이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악한 자들과 의인들을 어떻게 구분합니까? 겉으로는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말하고 행동하는 것들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올림픽(Olympic Games)은 국제올림픽위원회가 4년마다 개최하는 국제스포츠경기대회입니다. 원래 올림픽은 철저한 스포츠맨쉽과 fair-play정신으로 임해야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정치적인 올림픽이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공정한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양궁개인전을 할 때에 중국 관중들을 퇴장시켜야 했습니다. 왜 우리가 활을 쏠 때 호르라기를 불고 시끄럽게 합니까? 우생순 핸드볼팀의 오심판정은 영원히 기록에 남을 것입니다. 쿠바와의 야구경기를 할 때는 더욱 심했습니다. 주심은 쿠바 편을 들었습니다. 볼도 스트라익이라고 했고, 스트라익 존의 공도 볼로 판정을 해서 우리나라가 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포수가 시정요구를 하자 퇴장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의의 편이었습니다.

오심(誤審)하는 사람들을 보아도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재판관들이나 판정관들은 정치적인 조류에 휩쓸려서는 안 됩니다. 양쪽에 공정한 심판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디 그럽니까? 돈을 주면 이기게 합니다. 권력이 있는 편에 유리하게 판결합니다. 재판결과와 수사결과를 보면 가관입니다. 겉으로 보면 사람인데 하는 짓이 사악합니다. 겉으로 보면 신사입니다. 그런데 하는 짓을 보면 개차반입니다. 왜 이들이 개차반입니까? 겉으로는 멀쩡한데 속은 썩었습니까? 복 있는 사람들이 피하는 것을 이들은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복있는 사람들은 “∙∙∙ 아니하고, ∙∙∙ 아니하고, ∙∙∙ 아니하는데” 사악한 자들은 “∙∙∙ 좋아하고, ∙∙∙ 좋아하며, ∙∙∙ 더 좋아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날마다 모여서 모의를 합니다. 날마다 모여서 못된 짓을 합니다. 날마다 모여서 치고받고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생활양식에 깊이 배어서 결국은 쭉정이처럼 바람에 날리다가 태워져버립니다. 겉으로는 괜찮은 것 같았는데, 아침안개처럼 사라져버립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악인은 심판하시고 의인에 속한 우리들은 하나님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또 기뻐해야 할 것이 있는데 ‘의인들은 번성한다’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혼자입니다. 그런데 사악한 사람들은 여러 명입니다. 이런 속에서 의인들은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strike zone에 strike 볼을 던졌는데 볼로 잡아주니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공에 맞으면 1루로 진루해야 하는데 일부러 공을 맞았다고 했을 때 얼마나 힘이 들었습니까?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데 혼자더라는 것입니다. 가족 중 누구도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살다보니 삶에 변화가 옵니다. 6절을 보면 바뀝니다. 의인들이 악인들을 상대합니다. 악인들은 줄어들고 의인들은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사악한 자들의 입지조건이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미디안과 기드온의 싸움에서 기드온에게 300명을 붙여주셔서 10,0000명 이상과 싸워서 이기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318명으로 메소포타미아 연합군을 물리치게 하셨습니다. 엘리야는 갈멜 산에서 850명의 바알제사장을 물리쳤을 때 하나님께서는 7000명을 몰래 숨겨놓으셨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들을 직접 도와주십니다. 집안에서는 믿는 가족이 늘어납니다. 밖으로는 하는 일들이 번창 하게 하십니다. 어려운 일들을 우리 혼자 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돕는 자들을 붙여주십니다. 우리들을 훼방하는 사람들을 심판을 견디지 못하게 하십니다. 사악한 자들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독립군처럼 혼자 두시지 않습니다. 외로이 시베리아 벌판에 두시지 않습니다. 남극의 빙하에 떨렁 우리혼자 떼어놓지 않으십니다. 사하라사막에 우리들 혼지 두시지 않습니다. 만일에 두셨다면 먹을 것, 입을 것, 훈훈한 잠자리, 시원한 것들을 준비하셔서 휴가를 주실 때입니다.

우리가 믿고 신뢰하는 예수님은 우리들의 원수를 다스리시는 왕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왕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정하시는 왕입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의 손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우리들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그 뜻대로 살아가려는 우리들에게 확신을 줍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번성케 하십니다. 그러나 사악한 사람들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사악한 자들의 꾀를 좇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즐거워할 때 우리들은 매일 번성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 곧 복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갑니다. 우리 모두 지혜롭게 세상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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