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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를 준비하시는 하나님

에스더1:1-22

한때 애굽의 파라오가 될 번한 모세는 한 애굽 사람을 죽임으로 미디안으로 도망갔습니다. 다시는 애굽 땅을 밟지 않겠노라고 맹세하면서 애굽을 떠나 미디안으로 피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에서 가정을 이루고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조국 히브리사람들과도 등지고 하루하루를 십보라와 같이 재미있게 지냈습니다. 다시는 애굽이나 히브리 사람들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살리라고 맹세하고 또 맹세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에 와서 꿈만 같은 세월을 지냈습니다. 애굽의 궁중생활보다 더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0년이 가고 2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조국 히브리도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나이도 먹어가고 몸도 쇠퇴해졌습니다. 60살이 지나고 70이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동안에 아내와 더불어 미디안의 생활에 완전히 적응되었습니다. 그렇게 80을 먹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모세는 호렙산에서 양을 치다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40년 전 그렇게 원하던 때는 오시지 않더니, 이제는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셨지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에 대해서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개구리를 준비하셨고, 파리와 모기와 이를 준비하셨으며, 우박과 독종 등을 준비하셨습니다. 모세는 빈손으로 가기만하면 되었습니다.

오늘 1절에서 1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준비하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이 일은 아하수에로왕 때에 된 것이니 아하수에로는 인도로 구스까지 일백 이십 칠도를 치리하는 왕이라 2당시에 아하수에로왕이 수산 궁에서 즉위하고 3위에 있은지 삼년에 그 모든 방백과 신복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도의 귀족과 방백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 4왕이 여러 날 곧 일백 팔십일 동안에 그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 5이 날이 다하매 왕이 또 도성 수산 대소 인민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칠일 동안 잔치를 베풀쌔 6백색, 녹색, 청색 휘장을 자색 가는 베줄로 대리석 기둥 은고리에 매고 금과 은으로 만든 걸상을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을 깐 땅에 진설하고 7금잔으로 마시게 하니 잔의 식양이 각기 다르고 왕의 풍부한대로 어주가 한이 없으며 8마시는 것도 규모가 있어 사람으로 억지로 하지 않게 하니 이는 왕이 모든 궁내 관리에게 명하여 각 사람으로 마음대로 하게 함이더라 9왕후 와스디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부녀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 10제 칠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어전 내시 므후만과 비스다와 하르보나와 빅다와 아박다와 세달과 가르가스 일곱 사람을 명하여 11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왕후의 면류관을 정제하고 왕의 앞으로 나아오게 하여 그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방백들에게 보이게 하라 하니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12그러나 왕후 와스디가 내시의 전하는 왕명을 좇아오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중심이 불 붙는듯하더라

I. 아하수에로를 통하여 에스더를 준비하시는 하나님(1-12).

영어 속담에 “All water runs to the sea.”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모든 물은 바다로 흐른다.”는 속담입니다. 물은 깊은 계곡에서 나오든지, 아니면 조그만 여울에서 시작이 되든지 강을 거쳐서 바다로 흐르게 되었습니다. 물이 바다로 흐르기 전에 강을 거쳐야 하는데 강은 웬만한 사람들도 그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삼천천은 모르지만, 만경강은 압니다. 마당천은 모르지만, 금강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강들은 어깨를 으쓱이지만, 물이 강물에 남지 못하고 바다로 흘러갑니다. 사람들이 역사를 주관하는 것 같지만, 역사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아하수에로는 주전486년에서 465년까지 21년간 Persia를 다스린 왕입니다. 이때에 유다는 1차로 귀환한 후 Persia에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었습니다(주전536). 아하수에로는 인도에서 구스(Ethiopia)까지 127도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무려 60개국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60개국을 통치하는 아하수에로는 Persia의 겨울궁전인 수산에서 왕에 오른 지 3년 만에 귀족들을 위한 잔치를 벌였습니다. 이 잔치의 규모는 초호화판이었습니다.

왜 규모가 큰 파티를 얼었습니까? 아하수에로는 얼마 전에 이집트를 손에 넣었습니다. 다음으로 그리스를 공격하기 위해서 왕국의 책임자들을 수산 궁으로 불러들인 것입니다. 아하수에로는 헬라를 침공하기 위해 전략회의를 수산 궁에서 했습니다(주전483년). 그리스를 침공하기 위해 180일간 전략회의를 한 후에 정원에서 7일간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만큼 아하수에로는 이 잔치를 매우 성대하게 계획해서 베풀었습니다. 왕국의 번성함을 나타내기 위해 모든 것을 최고급으로 했습니다. 호화로운 휘장을 대리석 기둥에 매었습니다(6절). 잘 다듬어진 정원에 금의자, 은의자를 놓았습니다. 초청된 사람들을 거기에 앉게 했습니다. 술도 금잔으로 마시게 했습니다. 각종 술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셔도 먹어도 다함이 없는 잔치였습니다. 남자들만 잔치를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왕후 와스디를 시켜서 부녀들까지 잔치를 하게 했습니다(9). 아하수에로는 곧 있을 전쟁의 승리를 자축하면서 성대하게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127도를 다스리는 최고의 통치자답게 잔치를 연 것입니다.

잔치를 연지 칠일 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술이 거나해진 아하수에로는 갑자기 왕후 와스디(yTiv]w"/vashithî/아름다운 여자)를 여러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 이유는 와스디가 ‘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왕후가 페르샤 왕비의 정복을 입고 나와서 그 아름다움(ypiy?/yōpî/요피)을 보이라고 일곱 내시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아하수에로는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술이 들어가니까 “나같이 행복한 사람 있으면 나와 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왕후 와스디를 기다렸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많은 찬사를 받을 것을 기대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내시들이 와서 하는 말이 ‘와스디’가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와스디가 왕명을 거절한 것입니다. 왕후라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신하일 뿐입니다. 백성에 불과할 뿐입니다. 아하수에로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왕후더러 오라고 했어도 열이 날판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와스디가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왕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화가 났습니다. 그 마음이 분노에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 줄을 몰랐습니다.

우리가 아가서나 에스더서를 읽으면 하나님이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만 ‘아가서’에 한번 나오고(아8:6)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인데 하나님이나 여호와라는 말씀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아가서나 에스더서가 당당히 정경에 들어갔습니다. 정경이 아닌 많은 위경들과 외경들이 하나님의 이름이 많은데 성경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이 없는데도 당당히 성경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성경들에서도 하나님은 계신다는 것입니다. 계시되 하나님은 거의 숨어계십니다. 밖으로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지 않은 것뿐입니다.

성경이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의도적(deliberate)입니다. 하나님께서 사건이 일어나는 방식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사건들 가운데 하나님의 손(야드)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역사(history)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개입(intervention)하시지만, 우리의 삶속에서 이것을 체험한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도저히 나타나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옆에 계십니다. 그래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도 믿음으로 굳게 서야 합니다.

모처럼 에스더서를 읽으려고 하는데 웬 잔치이야기입니까? 아하수에로의 수산 궁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뿐입니다. 아하수에로가 수산궁에서 party를 열었던 이야기입니다. 금잔으로 술 마시고, 잔치를 7일이나 합니다. 궁전 decoration 이야기이고, 호화로운 잔치 이야기입니다. 금의자, 은의자에 앉아서 먹고 마시는 이야기입니다. 술취한 아하수에로의 왕비 자랑하려는 이야기입니다. “뭐 이런 것이 있어?”하고 성경을 덮어버리면 큰 것을 놓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하수에로가 심히 분노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하수에로는 오라고 하는데, 와스디는 못가겠다고 거부하는 데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하수에로를 통하여 이스라엘에 역사하시고 계셨습니다.

우리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야단입니다. 우리와 전연 관계가 없는데 화들을 냅니다. 자기들이 우리를 보고 공연히 열을 냅니다. 그리고 우리를 어떻게 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만만하게 생겼다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최종적으로 행동하기 전에 하나님께 물어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그들의 신상에 변화가 옵니다. 우리를 최고의 자리에 어쩔 수 없이 올려놓게 됩니다. 그들이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더 높은 곳에 우리를 올려놓게 만드십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와 함께 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두 번째로 13절에서 22절을 보면 불똥이 엉뚱하게 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3왕이 사례를 아는 박사들에게 묻되 (왕이 규례와 법률을 아는 자에게 묻는 전례가 있는데 14때에

왕에게 가까이 하여 왕의 기색을 살피며 나라 첫자리에 앉은 자는 바사와 메대의 일곱 방백 곧 가르스나와 세달과 아드마다와 다시스와 메레스와 마르스나와 므무간이라) 15왕후 와스디가 내시의 전하는 아하수에로 왕명을 좇지 아니하니 규례대로 하면 어떻게 처치할꼬 16므무간이 왕과 방백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왕후 와스디가 왕에게만 잘못 할뿐 아니라 아하수에로왕의 각 도 방백과 뭇 백성에게도 잘못하였나이다 17아하수에로왕이 명하여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도 오지 아니하였다 하는 왕후의 행위의 소문이 모든 부녀에게 전파되면 저희도 그 남편을 멸시할 것인즉 18오늘이라도 바사와 메대의 귀부인들이 왕후의 행위를 듣고 왕의 모든 방백에게 그렇게 말하리니 멸시와 분노가 많이 일어나리이다 19왕이 만일 선히 여기실찐대 와스디로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되 바사와 메대의 법률 중에 기록하여 변역함이 없게 하고 그 왕후의 위를 저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 20왕의 조서가 이 광대한 전국에 반포되면 귀천을 무론하고 모든 부녀가 그 남편을 존경하리이다 21왕과 방백들이 그 말을 선히 여긴지라 왕이 므무간의 말대로 행하여 22각 도 각 백성의 문자와 방언대로 모든 도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남편으로 그 집을 주관하게 하고 자기 민족의 방언대로 말하게 하라 하였더라

II. 와스디를 통하여 에스더를 준비하시는 하나님(13-22)

사상 최대의 작전인 Normandy 상륙작전을 개시하기 전 연합군은 여러 가지 호재가 겹쳤습니다. 독일은 절대로 연합군이 Normandy로 올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을 가진 롬멜(Erwin Rommel 1891-1944)이 히틀러에게 Normandy 해안에서 기갑전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무시당했습니다. 그리고 연합군 측에서는 일기예보까지 정확히 관측했습니다. 그러나 독일은 대충 관측했습니다. 더구나 Normandy에 20년 만에 오는 강한 폭풍이 D-1일(전날)에 몰아쳤습니다. 독일 측에서는 더욱 안심을 했습니다. “이런 날씨에 어떻게”하고 아주 안심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되던 날(1944,6.6), Hitler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전날에 수면제를 복용하고 잠을 청할 때 절대로 깨우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롬멜 장군도 부인의 생일을 맞아서 베를린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전선에서 기민한 지휘를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전선이 급히 돌아가는데도 독일은 전혀 손을 쓸 수 없었습니다. 전선은 급히 돌아가고 있는데 누구하나 전선을 잡고 연합군과 싸울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에 연합군측은 하나님께 한없이 감사했습니다. 이 작전으로 Hitler는 전쟁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의 종전이 눈앞에 온 것입니다.

아하수에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갔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왕비인 와스디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은 60개국의 최고통치자입니다. 127도를 다스리는 제국의 왕입니다. 그런데 내 명령을 거부하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내가 누군데, 감히 내 성질을 건드려?”사실 아하수에로는 좋은 왕이 아니었습니다. 아하수에로는 잔인하고, 사치하며 방탕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한번은 그의 군대가 그리스로 진군하는 길이었습니다. 부유한 리디아 사람 Pythius라는 사람이 그의 군대를 친절히 대접하고 막대한 금액을 전쟁비용에 제공하였습니다. 그리고 아하수에로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군대에 있는 자기 아들 다섯 명 중에서 장자만 제대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노후에 위안이 되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런데 아하수에로는 이 장자를 두 쪽으로 쪼개고 그 사이로 군대가 지나가도록 명했습니다. 또한 폭풍이 헬레스폰트의 다리를 파괴하자 그 다리를 만든 자들의 목을 베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바다를 징벌하고 묶기 위한 족쇄 몇 개를 집어 두라고 명하기도 했습니다. 거기다가 거의 여색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아하수에로인만큼 “지가 왕비면 다냐, 내가 누군데”했습니다.

와스디 편에서도 참으로 아하수에로가 야속하게 느껴졌습니다. 술 취한 손님들 앞에 자신이 나간다고 하는 것은 왕이 잘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왕후로서의 위엄도 서지 않고, 아내로서의 위엄이 깎인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이 생각해도 아하수에로의 잘못이 100%입니다. 와스디는 잘못이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일하시고 계셨습니다.

아하수에로는 아하수에로 대로, 와스디는 와스디 대로 모두다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하수에로는 자신의 위엄에 큰 손상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왕명에 복종하지 않으면 통치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반드시 수습을 하려고 했습니다.

아하수에로’에게는 7명의 책사가 있었습니다. ‘아하수에로’는 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이미 덮어둘 사항도 아니었고, 덮어둘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 므무간이 왕에게 조언했습니다. ‘와스디’가 왕에게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와스디’가 왕에게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 페르시아의 각 도의 방백에게도 잘못했고, 백성들에게도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오늘의 일을 제국의 귀부인들이 안다면, 남편들을 심히 멸시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와스디’를 폐위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즉시 조서를 내리되 후에라도 바꾸지 못할 법률대로 처리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아하수에로는 므무간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하수에로는 전국 127도에 방을 내렸습니다. ‘와스디를 폐위하노라’는 조서를 내렸습니다. 누가보아도 아하수에로의 잘못입니다. 그렇게 해서 ‘와스디’는 왕후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아하수에로는 술자리에서 자신의 왕비 자랑을 하려다가 일이 커져버렸습니다. ‘와스디’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왕명을 어긴 죄는 용서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하수에로는 술김에 사랑하는 ‘와스디’를 폐위시켰고, 와스디는 왕명 불복종죄로 왕후의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당연히 왕후의 자리가 비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말하려고 길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와스디가 왕후의 자리에서 쫓겨났다는 그 연유를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페르시아의 왕후자리가 궐위되었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성경은 다른 세계로부터 온 말씀입니다. 우리들은 ‘우주 밖’으로부터 온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우주도 초월하여 삼위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화성 하나도 제대로 연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화성의 밖, 우주 밖으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온 성경을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한자 한자가 중요하고 단어마다 중요하고 모든 문장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바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한가한 책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필요 없는 말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역사에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러한 의도로 기록된 성경이므로 쓸데없는 말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선택하여 기록하였습니다. 당대에 일어난 일을 상세히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적고 겁 많은 기드온은 기록했지만, 징기스칸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얍삭한 야곱은 기록했지만 그 땅의 왕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인간역사에서 위대하다고 해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하수에로와 와스디의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그들의 잔치상을 세밀하게 묘사했습니다. 금잔으로 마셨느니, 금의자가 어떻고, 기둥이 어떤지 시시콜콜하게 기록했습니다. 와스디가 어떻게 폐위되었는지, 왜 폐위되었는지를 자세하게 묘사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고레스의 귀환명령으로 기회를 잡은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극히 적은 숫자였습니다. 약 5,0000명에 불과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페르시아 제국에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을 신봉했기 때문에 어디서든지 좋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예 유대인들을 몰살코자 했습니다. 이때 에스더가 등장합니다. 궐위된 왕후자리에 유대인인 에스더가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들을 완전히 몰살할 계획을 사전에 제거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아무렇게나 왕후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라, 그 자리는 이유 있는 자리였습니다. 왜냐하면 에스더가 그 자리에 올라가야 유대인들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하수에로가 이유 있는 성깔을 부린 것이고, 와스디가 이유있는 자존심을 부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주변을 돌아볼 때에 도무지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좌로 보아도, 우로 보아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은 도우시는 것 같은데, 유독 우리들에게는 숨어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가 필요하실 때 정확히 오십니다. 모세는 죽음의 강인 나일강에 띄워졌지만 정확히 바로의 공주가 건졌습니다. 요셉은 그 형들이 구덩이 속에 던졌지만 거기에 물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아들 이삭을 잡으려고 내리치려 했을 때 하나님께서 제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셔서 24시간 우리들을 관리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을 의지하는 자녀들에게 신실함을 보이십니다.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들은 오늘 살아 있고, 확실한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오늘 우리들은 아직 살만합니다.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들을 그의 오른팔로 안고서 인도하심을 인지하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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