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받는 성도
요한삼서1:1-4
바울 곁에는 항상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바나바를 비롯해서 실라, 마가, 디도, 디모데, 의사 누가, 브리스길라, 아굴라 등 이름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바울과 같이 했습니다. 바울이 3차전도 여행까지 한 것도, 그와 같이 한 사람들의 덕택입니다.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한 것도 모두 그들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었던 일들입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일들도 이들의 도움으로 복음을 빨리 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종교개혁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르틴 루터를 도왔던 선제후 프리드리히는 루터가 위험에 처했을 때 도왔습니다. 루터 혼자하지 못했습니다. 칼빈 혼자서 그 일들을 다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곁에는 항상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도왔기 때문에 종교개혁을 할수 있었습니다. 복음의 전파는 복음을 옮기는 사람들을 돕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복음의 일을 돕는 것은 복 받을 일입니다. 1절과 2절을 보면
1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편지를 보내는 자신을 장로라고 하는 사람이 가이오에게 편지를 보낸 내용입니다. 오늘 첫 번째로
I. 가이오에 대한 장로의 간구(1-2절)
이 편지는 장로가 가이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기쁨(Gavi>o")이라는 뜻을 가진 가이오에게 사도요한이 보내는 편지입니다. 성경 66권 중에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에게 보낸 편지는 요한삼서밖에 없습니다. 요한삼서는 이중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사도요한의 편지를 통해서 가이오에 대한 인물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1세기의 교회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이오는 휼륭한 성도였습니다(th'/ ejkklhsiva//9절).
사도요한의 편지체로 보아서 가이오는 사도요한의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가이오는 요한에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 기쁨도 그냥 기쁨이 아닙니다. ‘참 기쁨’입니다(ejn ajlhqeiva/). 시도요한의 편지에 의하면 가이오는 진리를 굳게 붙잡는 사람입니다. 바르게 생활하는 성도였습니다. 얼마나 가이오가 장로의 마음을 시원케 했습니까? 장로는 가이오가 아까워서 부를 수 없을 만큼 표현했습니다.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 사랑하는 자여…”라고 몇 번이고 말합니다.
가이오는 사도요한의 심중에 항상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이오는 소아시아에 있는 한 교회의 신실한 성도였습니다. 무엇보다 가이오는 진리 안에서 행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교회에는 순회전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순회전도자들이 교회마다 돌아다니면서 교회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이런 순회자들을 각 교회는 영접하고 잘 돌봤습니다. 이런 순회전도자인 데메드리오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이오는 이들을 극진히 대했습니다. 순회전도자들이 불편이 없도록 배려를 잘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교회 안에 디오드레베(Diotrefhv")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에 대한 장로의 평가는 교만하다고 했습니다.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순회전도자들 및 사도들을 접대하지 않았습니다. 요한의 편지를 교회에서 읽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도요한을 헐뜯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교회를 반대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한답시고, 말은 하면서 행동은 반대로 했습니다. 장로요한이 이 편지를 쓰는 목적도 디오드레베를 경계하도록 함이었습니다. 디오드레베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것’(filoprwteuvw)입니다. 교회에서 첫째가 되고자 했습니다. 자질이 있어서 첫째가 되면 좋습니다. 그런데, 자질도 없으면서 첫째가 되려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동기로 인해서 디오드레베는 교회의 모든 일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형제사랑은 늘 강조했습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손님을 접대하는 것이 기본적인 윤리였습니다. 그런데 디오드레베는 이러한 것들을 교회 안에서 행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도요한은 가이오를 위해서 이렇게 간구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jAgaphtev, peri; pavntwn eu[comaiv se eujodou'sqai kai; uJgiaivnein, kaqw;" eujodou'taiv sou hJ yuchv.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은 말할 수 없이 잘되고 있다. 그와 같이 너의 모든 일이 잘 되기를 바란다. 항상 건강하기를 바란다. 이것을 내가 기도하고 있다. 가이오의 영적상태를 장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이오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와 건강이 항상 잘되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을 위해서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왜 기도합니까? 영육간에 안녕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가이오의 영적인 상태에 대해서 장로요한은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 사랑하는 자여…”라고 했습니다. 가이오는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그 영혼은 말할 것도 없이 잘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kaqwv") 너의 육신적인 일도 잘되기를 간구한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위해서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영혼이 잘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됨같이”입니다. 영혼이 먼저 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신이 아무리 강건하고 좋아도 영혼이 잘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멀리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앞으로 100년 후인 2109년을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어디에 있을까요?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 1000년 후인 3009년을 생각해도 마찬가지, 10000년 후인 12009년 후를 생각해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영혼이 어디에 있을까요? 곰곰이 생각하면 심각한 것이 영혼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이 먼저 잘되어야 합니다. 영혼이 잘되면 다음으로 육신이 잘되어야 합니다. 육신을 위해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은 고용불안시대입니다. 계속 해고된다고 하는 뉴스뿐입니다. 이 세상은 만만치 않음을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습니다. 고용불안사회, 그 안에서 생존 경쟁해야 하는 우리,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영혼이 잘됨같이 우리들의 범사(pavntwn)가 잘되어야 합니다. 장로가 가이오에게 바라는 것입니다. 장로가 주님의 이름으로 가이오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들의 범사가 잘되기를 축복합니다. 성도들이 속해 있는 직장이 튼튼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들의 사업장이 튼튼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들의 자녀가 잘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는 모든 일마다 영혼이 잘됨같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장로는 하나님의 교회에 열심인 가이오에 대하여 마음껏 축복했습니다. 오늘 두 번째로
II. 가이오에 대한 장로의 기쁨(3-4절)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 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基督敎新聞 7월19일자(1981호) 1면에 [장로교회의 ‘화합’과 ‘일치’를 다짐]하자는 기사가 났습니다. 뉴스앤조이를 보면 ‘세습 삼총사를 탄생시킨 감리교의 수치’라는 기사가 났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 교회들이 다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이런 일들은 기자들이 신문에 게제하거나 방송을 할 때만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인터넷매체가 있기 때문에 즉시 전 세계로 뉴스들이 즉시 알려집니다.
제발 교회들이 싸우지 않았으면 하는데, 교회들이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20년, 어떤 교회는 10년, 어떤 교회는 5년간 계속 싸우고 있습니다. 이들교회들은 교회에서 싸우고, 길거리에서 싸웁니다. 법정에서 신랄하게 상대를 공격하면서 싸우고 있습니다. 교회의 싸움들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줍니까? 아주 악한 영향을 교회에 끼치게 됩니다.
IMF를 기점으로 해서 한국교회는 사람들에게 경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질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IMF상황으로 모두들 죽어가고 있는데, 교회는 마천루를 세우더라는 것입니다. 진리를 행하면서 하면 좋은데 진리는 어디로 도망가고, 교회만 커져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교회대로 싸우더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디오드레베’같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자기가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교회는 영원히 문제의 교회로 전락해버립니다. 디오드레베 같은 장로, 디오드레베 같은 집사들이 있는 한 더는 교회의 영향을 끼칠 수 없습니다. 모든 것들을 제 뜻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시라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장로는 이어서 가이오에 대한 칭찬을 합니다. 너에게로부터 갔던 형제들이 돌아와서 너의 신앙에 대해 말했다는 것입니다. 네가 진리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 안에서 행하더라는 것입니다. 언행이 일치된 생활을 할 뿐만 아니라 나무랄 수 없는 신앙을 가졌다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복음과 예수그리스도가 진리입니다. 즉 가이오는 예수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이며, 성경대로 행하는 사람이더라는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들은 장로요한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내가 심히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목회자의 입장에서 성도여러분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저를 제가 집사 때부터 따라주었습니다. 그래서 전도사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인정한 것입니다. 오랜 기간 축도도 없이 여러분들이 참아주었습니다. 결국 준목을 거쳐 목사안수까지 마치게 해주었습니다. 우리 모두 감사할일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신앙을 보면서 심히 기뻐합니다. 목회자로서 성도들의 신앙성장을 보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습니다. 이제 있을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신앙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만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5:13-16을 보면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주님께서 우리더러 세상의 소금이라 했습니다(ejste to; th'" gh'"). 우리더러 세상의 빛이라 했습니다( JUmei'" ejste to; fw'" tou' kovsmou). 교회 내에서만 빛이 소금이 아니고, 교회 내에서만 빛이 아니고, 세상 속에서 소금이고, 빛이라 하셨습니다. 왜 우리가 빛과 소금입니까? 예수그리스도로 거듭난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하늘의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금의 가치는 어디에 있습니까? 소금은 방부제(antiseptic)가 아닙니다. 소금은 다만 방부성을 가졌을 뿐입니다(aseptic). 방부제는 독을 막습니다. 방부제는 그 독을 제거합니다. 그러나방부성을 가진 것은 독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소금은 독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즉 소금은 결코 부패를 제거하지 않습니다. 소금은 썩는 확산을 방지합니다. 오염된 고기에 소금을 넣는다고 하더라도 그 고기를 신선하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고기가 신선할 때에 소금을 넣었다면 썩지 않습니다.
우리의 옆에 있는 악한 사람을 우리가 고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의 옆 자리에 앉아 일하는 선한 사람에 의해서 영향은 줄 수 있습니다. 선한 사람의행동이나 말이 직장에서일하는 옆 사람에게 기회를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그 행동이나 말이 악한 사람에게 제동을 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소금은 방부성을 가진 것입니다. 악의 확산을 막는 것이 소금입니다. 우리들의 기능은 죄의 상태에 빠져 있는 인간세계 내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진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통해서 악의 확산을 막는 것입니다. 주님 나라의 백성들 타락한 인간들에게선하게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타락의 세력을 억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려면 진리를 소유해야 합니다. 진리를 소유해야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칭찬받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한글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수정과 서상륜입니다. 이수정은 일본에서 서상륜은 만주에서였습니다. 서상륜은 성서의 번역과 함께 목판을 일일이 깎아서 성경을 인쇄까지 했습니다. 서상륜은 1,5000부나 인쇄한 성경을 만주와 서울을 오가면서 그 위험한 행로를 마다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고향인 황해도 솔내에 솔내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마을 58세대 중에서 50세대가 그 교회를 다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