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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교회에게 명령하시는 주님

요한계시록2:1-7

히브리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름의 뜻은 반드시 무엇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예로 ‘Noah’란 뜻은 ‘안식’을 의미합니다. Abraham은 ‘많은 무리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이름과 함께 숫자도 성경에서는 심오한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7’이란 숫자는 ‘충만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곱 교회도 이러한 방법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즉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당대로부터 교회사에 나타난 일들이 이 안에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에 일곱 교회의 양상이 들어있다는 말씀입니다.

일곱 교회는 로마총독이 지배하는 아시아의 속주입니다. 오늘날 터키의 서부지방입니다.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가 사마리아, 이두메, 유대지방을 다스리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일곱 교회는 바울사도 때부터 순회하던 순서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에베소(Ephesus)에서 북쪽으로 약 60km를 가면, 서머나(Smyrna)입니다. 더 북쪽으로 60km 지점에 버가모(Pergamum)입니다. 버가모에서 남동쪽으로 70km를 가면 두아디라(Thyatira)입니다. 다시 남쪽으로 40km를 가면 사데(Sardis)입니다. 사데에서 동남동으로 48km 이동하면 빌라델비아( Philadelphia)가 나오고, 남동쪽으로 60km지점에 라오디게아(Laodicea)가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소아시아 지방의 역사, 지리, 경제, 문화를 환히 알고 그것을 토대로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1절에서 3절 그리고 6절을 보면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오늘 첫 번째로

I. 에베소교회를 칭찬하시는 주님(1-3,6)

로마제국시대에 아시아의 총독관저는 버가모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에서 원로원들이 직무를 맡기 위해서 들어오는 첫 도착지가 에베소였습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항구 도시였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는 매우 번창한 도시였습니다. 거기에 에베소에는 달의 여신 다이아나(Artemis)의 신당이 있었습니다. 이 신당은 고대의 7대불가사의 중 하나였습니다. 주전 29년에 그 신전의 일부가 로마의 여신과 로마황제숭배를 위해 주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에베소는 시리아의 안디옥과,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지중해 동쪽의 세 개의 큰 도시였습니다. 아시아의 로마 식민지의 중심지였습니다. 에베소 신당은 아시아의 은행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인구만 해도 22,5000명이나 되는 거대한 항구였습니다. 따라서 에베소는 로마제국 내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사람들이 갈구하는 돈이 풍성하였습니다. 우상의 세력이 강한 도시였습니다. 황제숭배우상이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의 입지는 좁고 좁았습니다.

그러나 에베소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어떤 칭찬을 받았습니까? 내가 네 행위들(e[rga)을 안다(oi\da)는 것입니다. 네가 많이 수고(kovpon)하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인내(uJpomonhvn)하고 있음을 안다는 것입니다. 더욱 악한 자들을 교회에 불러들이지 않은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어떤 자들이 에베소교회에 자신을 소개하기를 ‘내가 사도라’했을 때 진짜 사도인지, 가짜인지 시험해서 가짜인 것을 드러낸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칭찬할 것이 또 있는데, 너희 교회가 내 이름을 위해 참고(uJpomonhv), 견디는 것을(ejbavstasa") 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게으르지 아니한 것(ouj kekopivaka")을 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교회는 복음적인 교회였습니다. 신앙을 위해서 무척이나 인내한 교회였습니다. 구별된 거룩한 교회였습니다. 주님의 가르침과 사도의 가르침대로 하려 하는 정통교회였습니다. 박해를 받으면서도 견딜 줄 아는 교회였습니다. 민주적인 교회였습니다. 에베소교회는 많은 시련이 겹치고 겹쳤습니다. 그럼에도 에베소교회는 참된 교리를 지키는데 열정을 다했습니다. 주님의 교회를 위해 충성을 다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지키는데 지치지 않았습니다. 과거 바울이 세운 교회답게 바울의 권면을 충성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죄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에베소교회는 거짓자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 뭐라 말하십니까? ‘내가 안다.’(oi\da)입니다. 당시 도미티안(Domitianus)의 치하에 있었던 에베소 교회는 심하게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주님께서는 에베소교회를 칭찬했습니다. 칭찬 한 것이 한두 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모두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박해를 받은 것을 알고, 교회의 어려운 상황을 알고 계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주님께서 우리들의 칭찬하실 점을 찾는다면 무엇을 찾을까요? 우리의 어떤 점을 칭찬하실까요? 에베소교회만큼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요? 만일에 에베소교회만큼 칭찬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촌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하시고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너희가 사람 많은 교회를 두고도, 작은 교회인 예수촌교회에 온 것을 안다. 너희가 나의 교회인 예수촌교회를 위해서 일하고 있음을 내가 알고 있다. 너희가 나의 교회를 위해서 밤낮 수고함을 내가 알고 있다는 칭찬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이에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에베소교회는 핍박 속에서 주님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핍박을 받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기에 좋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교회의 칭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마음가짐입니다. 죄안에 있는 우리들의 마음때문입니다.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내가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하겠지 하는 마음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 교회는 여러분의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머리되신 여러분의 교회입니다. 여러분이 하지 않으면 누가 와서 하지 않습니다. 교회와 여러분이 하나 될 때 모든 인생사가 풀리게 됩니다. 하나님께 헌신된 작은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헌신된 자는 세상에서 만족한 삶을 삽니다. 오늘 주님께서 여러분의 헌신을 기다리십니다. 오늘 주님께서 여러분의 헌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 지금 주님께서 여러분의 헌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금 바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바로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서, 여러분의 인생을 위해서, 여러분의 교회를 위해서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에베소교회의 장점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4절과 5절, 7절을 보면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II. 에베소교회를 책망하시는 주님(4,5,7).

사람들의 역사에서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아서 실패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왕들은 바른 말을 하는 사람들을 굉장히 싫어했습니다. 국민들의 마음을 읽으면 바르게 정치할 수 있는데 국민들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제멋대로 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분명히 잘못된 것인데, 옳은 말을 듣지 않고 실패의 길로 갑니다.

이집트의 바로를 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바로자신의 생애에서 그러한 기적을 보지 못했습니다. 나일강이 피로 변했습니다. 무수한 개구리가 육지로 상륙했습니다. 이가 생기고, 불우박이 하늘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항복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가 어떻게 했습니까? 쓸데없는 고집을 부렸습니다. 팔아도 돈 한 푼 받지 못하는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완전히 망했습니다. 이집트의 전쟁무기가 한 순간에 바다에 수장되었습니다. 이집트의 모든 군인들이 홍해에 수장되어 버렸습니다.

주님께서는 에베소교회에게 칭찬을 하신 다음에 뭐라고 하십니까? 책망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책망한다는 말은 ‘꾸짖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너를 대적한다’(kata;/속격)는 뜻입니다. 잠시 불러다놓고 잘못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대적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듣지 않으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호적에서 빼겠다는 것입니다.

에베소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책망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처음사랑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th;n ajgavphn sou th;n prwvthn ajfh'ka". ‘너희가 그 처음 그 사랑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에베소교회에 있었던 처음의 사랑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 책망사항입니다.

에베소교회의 잃어버린 사랑에 대해서 Hendricksen은 이렇게 주석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행위와 수고, 인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행위나 수고 그리고 인내는 사랑이 없어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가족의 내무장관인 아내가 남편과 아들들을 위해서 소문이 날 정도로 충성과 열의를 다 한다 해도 거기에 사랑의 결핍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족들에 대해서 세밀한 부분까지 살피는 것은 임무와 책임감으로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성도가 교회에 잘 출석하고 헌금과 기타 교회의 모든 규례를 잘 지킬 수 있는 것은 첫 믿음 때 가졌던 주님께 대한 헌신의 열정이 없어도 가능한 것입니다.

매튜 헨리는 이렇게 주석했습니다.

좋은 점을 많이 가진 자는 또한 그만큼 잘못된 점도 많이 가질 수 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두 가지를 다 주시하고 계신다. 에베소교회의 잘못된 점은 그들의 사랑과 열심히 부패하고 타락한 것이다. 이는 그들이 사랑과 열심 그 자체에서 떠나거나, 그것들을 버렸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이처음에나타내었던 사랑의 강렬한정도를 잃었다는 것이다. 열정이 전보다 식어졌다는 것이다.

에베소교회는 바울이 설립한지 40년이 넘었습니다. 설립했던 사람들은 모두 주님께 간 것입니다. 사도요한의 시대 에베소교회는 그 후의 세대였습니다. 교회에 봉사하는 성도들은 그들의 부모가 가졌던 열렬한 열정이 없었습니다. 복음을 처음에 대했던 열정(passions)이 없었습니다. 처음의 자발적인 활동의 열정(passions)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의 선대들이 가졌던 그리스도를 위한 사명감이 모두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한 열정(passions)이 없었습니다. 교회를 위한 열정(passions)이 없어졌습니다. 모두 열정(passions)이 없이 의무와 책임감으로만 일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여러 면으로 첫 사랑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다고 일 중심으로 하면 주님의 사랑에 대한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세상을 복음화 시킨다고 동분서주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의무감만 있다면, 주님에 대한 열정(passions)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무의미한 신앙생활에서 첫사랑을 잃을 수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 같이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주님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필요로 하십니다.

우리가 아는 잘 나가는 야구선수들은 원래부터 기술이 좋아서 홈런을 치고 안타를 때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엄청난 연습벌레들입니다. 날마다 셀 수없이 방망이를 휘두르는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연습한 결과 어떻습니까? 홈런을 치고 안타를 치고 도루를 합니다. 팀의 발전에 월등하게 기여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선수들은 팀에 있다는 존재만으로도 한 몫을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열정이 없는 에베소교회에게 세 가지 일을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예전의 사랑의 열정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열정이 어디서 떨어진 것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열정이 지금은 없는 것을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회복하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이것을 어기면 네 촛대를 옮긴다고 하셨습니다. 너의 교회에서 떠나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음에도 에베소교회는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에베소교회의 촛대는 옮겨져 버렸습니다. 회교도들에 의해서 에베소교회가 철저하게 파괴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에베소교회 수km 안에 한 개의 교회가 없다고 합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성령께서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성령께서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계속 들어야 합니다. 이기는 자에게만 생명의 과실을 먹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죄로 인해서 에덴에 숨겨두셨던 영생하는 과실을 먹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칭찬받을 점은 계속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으로 꽉 차 있어야 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열정으로 꽉 차 있도록 날마다 말씀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이기시는 주님을 믿고 열정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비록 생활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주변이 우리를 속이고 압박하더라도 오직 우리는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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