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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 개관

서론

학개 당시의 이스라엘의 상황은 깊은 회의(skepsis)에 빠져 있었다. 페르시아에서 귀환하면 모든 것이 순탄하게 풀릴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귀환하고 성을 쌓고, 성전을 건축하려하자 대적들이 벌 떼처럼 들고 일어나 성전재건공사 방해공작을 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상황도 더 나아지지 않았다. 이때 학개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성전공사를 하도록 촉구한다.

1. 저자

학개(yG'j')는 ‘축제’라는 뜻이다. 곧 학개가 이스라엘의 절기들 중의 한 시기에 태어났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시사한다.1) 1:1, 2:1,10,20의 내증과 에스라 5:1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었다.

2. 저작 연대

학개의 사역은 1:1에 기록된 대로 다리오 왕 2년(주전520년/521년)에 시작되었다. 이 시기는 유대인이 포로에서 돌아온 뒤(주전538년), 대략 16년이 지난 후이다. 학개는 2차포로들이 귀환한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백성들에게 성전공사를 하도록 설교를 통해서 촉구했다. 학개의 설교는 네 번으로 그 기간은 대략 4개월 정도이다.2) 학개서는 주전 520년 8-12월경에 주어진 본문이다.

1:1 다리오왕 2년 6월1일(주전 520년 8월29일)

2:1 다리오왕 2년 7월 21일(주전(520년 10월17일)

2:10 다리오왕 2년 9월24일(주전520년 12월18일)

2:20 다리오왕 2년 9월24일(주전520년 12월18일)

3. 저작의 목적

학개의 임무는 성전을 재건축하도록 격려하는 일이었다. 백성들은 “건축할 시기가 되지 않았다”(12)고 했다. 학개는 그들의 잘못된 태도를 돌이키라고 했다(1:5,7). 그들이 열심히 노력할지라도 그 결과가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다(1:6,9-11). 이유는 언약의 불순종으로 인한 저주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중요시한 ‘그들의 집’(판벽한 집)에 대한 우선권에 도전을 주었다. 즉 ‘하나님의 나라 건설’ 인 성전 건축을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18)이라는 하나님의 의도를 전달했다.3)

학개의 메시지는 액션명령이었다. 포로에서 귀환한 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고, 여러 가지 이유들로 백성들은 자득자의하고 있었다. 생활도 근근이 생계를 꾸려 나갔기 때문에(1:6) 행복하지 않았다. 이때 학개는 역경에 대한 책임을 그들에게 돌렸다. 그들의 상황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평가하도록 요청함으로써 무관심과 자기만족으로부터 그들을 일깨웠다. 학개는 더 나아가 여호와와, 성전재건에 충성을 다하고 여호와가 축복하는 새 시대에 대한 지속적인 기대를 잃지 않을 것을 권고하였다. 성전과 그것이 상징하는 모든 것(여호와의 임재와 메시아 소망)은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였다. 간단히 말하면, 성전건축은 하나님의 임재와 그의 왕국의 보다 큰 증거를 예기하는 포로 후기 공동체를 위한 신앙의 필수적인 단계였다. 성령은 공동체가 선지자의 도전에 반응한 태도는 참신한 것이었다. 합리주의와 자기정당화와 자기방식을 주장하는 태도는 사라졌다. 대신 그들은 행동으로 그들의 죄를 인정했다. 하나님의 영이 지도자들과 남은 자들의 마음에 역사하였기 때문이다.4)

4. 신학적인 가치

하나님의 성전, 나라 / 학개가 왜 성전건축을 하라고 했을까? 교회를 호화롭게 지으라고 했을까? 성전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곳이 없어서일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야 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학개서는 종교적이라기보다 역사적이나 이 책은 포로기 이후의 유다 지역에서 발달한 제의와 특별히 영적인 문제와 중요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선지자는 백성의 빈곤을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무시와 관련시켰으며 둘째와 넷째(2:1-9; 2:20-23)에서는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종말론적 소망을 되풀이했다. 하나님의 성전은 구약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이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실 장소가 바로 성전이라고 했다(신14:23-25). 이 성전은 솔로몬을 통해서 건축되었고 다시 포로에서 돌아온 후 하나님께서 회복하시기를 원하셨다. 성전의 회복은 하나님의 나라와 언약의 회복으로 이해된다(겔40-48장; 렘31장).

하나님의 성령 / 성령은 하나님의 왕국의 계속성을 확정한다. 성령의 함께하심으로 이미 그들에게 회복은 증표로 주어졌다. 특히 2:4-5에 세 번의 ‘강하게 하라’(히/하자크)와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강조되어 있다. 즉 하나님은 그분의 종국적인 역사로 회복하시지만 그들의 백성들과 함께하심과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이 일을 이루시는 것이다. 성령이 오시는 이러한 새 언약은 세계화(이방민족들에게도 성령이 오실 것임)와 대중화(차별 없이 남녀노소에게 임하는 성령)를 통해서이다.5)

결론

오늘날 교회에서 교회를 건축하려면, 학개서를 본문으로 정한다. 하나님께서 성전건축을 하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맞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학개서에서 성전건축을 독려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스라엘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귀환한 후에도 예배중심, 성전중심, 즉 하나님의 중심으로 살려고 하지 않았다. 성전재건공사를 하라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그들은 하나님 중심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성전이 우리들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곳이 곧 하나님의 성전이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볼 때 우선순위를 확정해야 한다. 즉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실현과 계획을 우선적으로 하기보다는(14) 하나님의 성전(18)과 나라 회복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 학개서는 교회 건축 때에 강조되고 설교되는 정도가 아니라 종교 개혁자들이 즐겨 설교했던 능력의 말씀이다(사보네롤라 존 낙스 등). 이 말씀은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 우선권을 두라고 명하신다. 우리들이 계속 인지해야 할 것은 약속은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나 성취의 실현을 앞당기는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1) 레이몬드 딜러드·트렘퍼 롱맨,『최신구약개론』박철현 옮김 (경기: 크리스챤다아제스트, 2003), 645.

2) 이학재,『구약성경에서 배운다』, 495.

3) 이학재,『구약성경에서 배운다』, 497.

4) 반 게메런,『예언서 연구』김의원·이명철 옮김 (서울: (주)엠마오, 2004), 324-326.

5) 이학재,『구약성경에서 배운다』, 498-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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