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야고보서는 많은 오해를 받은 서신이다. 하나는 사도적 권위에 대한 의심 때문에 초대교회 당시 제기되었던 정경성의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종교개혁당시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와 마찰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오해를 받아왔는가? 바울사도와는 상반된 것 같은 이행칭의(justification by works)를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개혁당시 루터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까지 말했다. “…야고보서는 다른 책들, 즉 요한복음, 로마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베드로전서와 비교했을 때 의로운 지푸라기 서신”(ein recht strohern Epistel)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오해들은 수신자와 그들의 상황을 간과했기 때문이다.1
1. 저자
본서의 저자는 야고보라 했다(1). 그런데 신약성경에 야고보라는 이름이 여섯 명이나 된다. “주의 형제" 야고보(갈1:19), 세베대의 아들이자 요한의 형제인 게네사렛 호수의 어부인 야고보(막1:19),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막3:18), 작은 야고보(막15:40), 사도 유다(가롯 유다가 아님)의 아버지 야고보(행1:13) 등이다. 이 중에 야고보의 저자는 주님의 형제 야고보이다. 이에 대한 외증으로 로마의 클레멘트의 ‘고린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바나바서신’, ‘12족장의 서신’, 풀리갑의 ‘빌립보편지’등에 주님의 동생 야고보가 언급되어 있다. 내증으로는 사도행전15:13-21, 21:17-25, 갈라디아서1:19, 2:9-10에서 보여준 야고보와 본 서신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2
2. 저작 장소
여러 설이 있다. 로마,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 등을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님 부활이후에 예루살렘 밖으로 나갔다고 한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점으로 보아서 예루살렘으로 추정하고 있다.3
3. 야고보서 수신인
야고보서 수신자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이다(약1:1). 본 서신의 일차적인 수신자는 유대 그리스도인 독자들로 바빌론과 메소포타미아에 흩어져 있던 동방의 신자들이다.4 하지만 로마제국전체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 신자들이지만, 동시에 흩어져 있는 일반 기독교인들이기도 하다.5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여러 곳에 있는 신자들이다.6
4. 저작 연대
야고보서의 정확한 연대는 언제인지 확실하게 말하지 못하지만,7 45-48년경으로 보기도 하는데,8 대체적으로 야고보의 순교직전인 주후62년경으로 본다.9
5. 저작의 동기와 목적
야고보는 죽은 정통, 즉 입으로만 신앙이 있다고 하면서 아무런 생활의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을 보고 그것을 시정하려고 했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주로 믿음의 실천적인 문제에 대해서 지적했다.10 특히 선한 행위는 무시되어도 믿음에 대한 단순한 동의만 있으면 구원받기에 충분하다는 주장을 반박하려고 쓴 글이다.11
초대교회 당시 교회 내에 신앙과 행위가 타락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죄의 창조자라고 주장하며, 알맹이 없는 신앙으로 생활이 뒷받침하지 못하는 신앙고백만 가지고 자신들의 구원은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자유주의적 교리가 편만했었다. 이에 야고보는 시험과 박해를 당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안일함에 빠져 있는 유대인 동료들을 각성시켜, 심판이 임박했지만 그 사실에 대해 무감각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하여, 어떻게 시험을 견디며 말씀을 듣고 악한 정욕을 죽이고 혀를 재갈 먹이며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하여, 다가올 심판을 대비하여 살게 하려 했다.12
마르틴 루터가 왜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했을까? 야고보서를 읽으면 행위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행위로 구원받는 다는 인상을 야고보서에서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는 믿음과 행함과의 관계를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야고보서의 핵심적인 문제는 구원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말미암아 행함이 결여된 신자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큰 고민 중 하나는 교회 생활을 오래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아리송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즉 예수 믿는 증거가 삶으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입증되어야 하는데 순종 없는 신앙고백만 무성하다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게 되는가? 그 원인은 한국교회가 이신칭의의 은혜의 교리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신칭의의 교리를 ‘칭의와 성화의 균형 잡힌 것’ 보다는 일방적으로 받아들여 성화와 선행에 대한 강조는 소홀히 하고 칭의적인 측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기독교의 구원을 ’값싼 구원’으로 만든 것이다. 값없이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신자의 선행은 그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래서 구원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거나 또는 신자의 ‘상급론에 종속시켜 버리든지, 아니면 구원받은 사람은 자동적으로 선행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오해하는 경향에 있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을 말할 때 절대로 행함과 분리된 믿음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믿음과 행함은 바늘과 실처럼 혹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다닌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행함으로 증거가 나타나야 한다”는 교훈은 야고보서가 특히 강조하지만, 이런 강조는 성경 전체에 나타나고 있는 핵심적인 교훈이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이중기준’을 제시하시는 것 같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인데,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리라”고 ‘행위구원’을 동시에 주장하는 것 같다. 과연 야고보가 그리고 예수님께서 바울과 대조적으로 ‘행위구원’을 주장하는 것일까? 결코 그런 의미가 아니다. 믿음과 행함은 항상 함께 나타나야 하는 것이기에, 구원받은 자는 그 ‘구원의 표’가 선한 삶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야고보의 사상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갈5:6)을 주장했던 바울과 정확 히 일치하는 것이다. 특별히 이런 강조는 바울 서신에서 더 잘 찾아 볼 수 있는데 바울이 기록한 모든 서신은 그것이 교리적이든 신학적이든 언제나 행함과 실천을 강조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오직 믿음을 강조하는 바울 또한 믿음과 행함과의 관계를 서로 나눌 수 없는 통합적인 관계로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바울이나 야고보나 행함은 믿음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성경의 모든 권면은 “상급을 위해 선한 행실”이 아니라, 정상적인 신자의 삶 자체가 행함이 동반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남보다 더 하는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상급논리가 아니라 한국교회 성도들을 교만과 공로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13
6. 신학적인 문제
이상으로 살펴볼 때 바울과 야고보는 서로 대립관계가 아니었다. 야고보서의 대상은 믿음은 있지만 실천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이었기에 야고보는 성숙한 삶을 위해 행함’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바울은 행위구원을 주장하는 유대교와의 긴장 속에서 ‘오직 믿음으로’만을 강조해야만 했다. 즉 야고보와 바울은 ‘상황’이 달랐고 독자가 서로 달랐다. 이런 차이를 보지 못한 채 마치 한쪽은 옳고 우월하고, 다른 한 쪽은 틀렸고 열등하다는 흑백논리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죄인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그러나 이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하기 때문에(갈5:16)m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 제일 먼저 물으실 질문은 ‘무엇을 믿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행했는가?”하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이 질문에 무엇이라 대답할 수 있을까? 이제는 우리들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신분을 즐기기만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성숙’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역사와 민족 앞에 책임을 감당하는 ‘실천적 그리스도인’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1. 한천설, “야고보서 설교를 위한 배경연구”『히브리서,야고보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목회와신학편집팀 편 (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04), 290.
2. 신성종,『신약총론』(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5), 252.
3. 두안 리트핀 외,『BKC강해주석시리즈28/디도서ㆍ빌레몬서ㆍ히브리서ㆍ야고보서』김운성 외 옮김 (서울: 도서출판두란노, 1996), 157.
4. 신성종,『신약총론』, 157.
5. 한천설, “야고보서 설교를 위한 배경연구”『히브리서,야고보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296.
6. 토마스 맨튼,『핸드릭슨 패턴 주석 야고보서(上)』이길상 옮김 (서울: 아가페출판사, 1987), 29.
7. 토마스 맨튼,『핸드릭슨 패턴 주석 야고보서(上)』, 28.
8. 두안 리트핀 외,『BKC강해주석시리즈28/디도서ㆍ빌레몬서ㆍ히브리서ㆍ야고보서』, 156.
9. 한천설, “야고보서 설교를 위한 배경연구”, 293.
10 신성종,『신약총론』, 255.
11 신성종,『신약총론』, 255.
12 토마스 맨튼,『핸드릭슨 패턴 주석 야고보서(上)』, 29.
13 토마스 맨튼,『핸드릭슨 패턴 주석 야고보서(上)』,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