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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1.30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악(니느웨)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나1:1

중독이란 어떤 것에 자신을 의지하고 기대는 것입니다. 좀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인가에 지나치게 기대어 사는 현상이 중독입니다. 그래서 중독은 ‘통제 불능 상태’입니다. 연예인들이 잘못된 줄을 번연히 알면서 마약을 복용하거나, 사람들이 도박이나 술, 담배에 심취하는 것 등이 바로 중독된 것입니다. 중독자들은 초기에 자신이 중독대상을 통제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통해서 행복감을 느낍니다. 마약이라든지, 술을 처음에는 사람들이 통제하면서 행복감에 젖습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서 중독의 대상이 사람을 통제합니다. 그것들이 삶을 파괴시켜 버립니다.

멀쩡한 정신으로 무대 앞에 서려니까 쑥스럽습니다. 그래서 마약을 복용합니다. 마약의 힘을 빌어서 무대 앞에 쑥스럽지 않게 선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일’이 마음먹은 대로 잘 안될 때 술 한 잔을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외로움을 느끼거나 갈등을 경험할 때 술 생각이 납니다. 어떤 사람은 특별한 이유 없이 ‘할 일 없고 심심할 때’ 술자리가 떠오릅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특별한 의존 대상 없이도 자신의 ‘일’과 ‘인간관계’ 그리고 ‘취미 및 여가 생활’에 큰 어려움 없이 살아갑니다. 하지만 중독자는 삶에 불만과 갈등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대체할 무엇인가를 찾습니다. 곧 그것이 중독입니다. 어떤 사람은 운하에 중독이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미국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술에, 어떤 사람들은 마약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쟁에 심히 중독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나라의 정권을 잡으면 국민들과 주변을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1절을 보면

니느웨에 대한 중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하나님은 엘고스 사람 Nahum을 들어서 니느웨 곧 앗수르에 심판을 선언합니다. 왜 하나님이 니느웨에게 심판을 선언합니까? 니느웨가 전쟁에 중독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잔인함에 중독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나라가 주변에서 일어나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전쟁에 중독된 이들은 곧 바로 침략을 감행했습니다. 앗수르는 전쟁에 중독되었을 뿐만 아니라 잔인함에 중독되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게 되면, 전쟁포로들을 아주 잔혹하게 죽였습니다. 패전국에게 절대로 긍휼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이러다보니 앗수르 주변의 나라들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잠을 편하게 잘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앗수르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여기저기에서 한숨만 쉴 뿐이었습니다. “저것들 잡아먹는 짐승들은 없나?” “저것들이 언제 망하나?”하고 앗수르가 망하기를 학수고대 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앗수르는 망하기는커녕 반대로 더욱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비밀명령을 하십니다. “니느웨에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라”. 우여곡절 끝에 니느웨는 dramatic한 회개를 했습니다. 앗수르는 요나의 메시지를 통해서 분명히 회개하였습니다. 하는 행동으로 봐서는 100번 망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불같은 진노와 격렬한 심판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요격미사일, 폭격기를 잔뜩 준비하고, 항공모함에서 요나의 행동만 주시하였습니다. 그런데 니느웨는 드라마처럼 회개했습니다. 왕으로부터 짐승까지 회개에 동참했습니다.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죄를 면제 받았습니다(요나 3장). 앗수르는 그 정신 그대로 했더라면 괜찮았을 것입니다. 이웃국가들에게 잘못을 빌고, 내외적으로 긍휼을 베풀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죄에 잔뜩 중독된 이들은 다시 잔인해졌습니다. 니느웨는 다시 교만하여졌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까지 괴롭혔습니다.

앗수르는 전쟁중독을 치료받은 지 불과 150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50년이 지나자 다시 전처럼 전쟁광이 되었습니다. 전쟁중독과 잔인함의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고쳐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순수하게 말로 해서는 앗수르의 전쟁중독을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격리시키려 하셨습니다. Nahum을 통해서 메시지를 발령하셨습니다.

니느웨에 대한 중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yviqol]a,h ;!Wjn" @/zj} rp,se hwEn]ynI aC;m'

massa ninbe seper hazon Nahum haelqoshi

하나님은 니느웨에 대해서 “중한 경고”를 발령했습니다. 이 “중한 경고”는 “전쟁경보”입니다.

우리나라의 전쟁경보는 Defcon(Defense Readiness Condition)입니다. Defcon은 정규전에 대비해 발령하는 전투준비태세입니다.

전쟁경보 Defcon은 5단계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Defcon-five는 적의 위협이 없는 안전한 상태입니다. Defcon-four는 대립하고 있으나 군사개입 가능성이 없는 상태입니다. 우리나라는 1953년 정전 이래 Defcon-four가 상시적으로 발령되어 있습니다. Defcon-three는 긴장상태거나 군사개입 가능성입니다. Defcon-two는 적이 공격 준비태세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때 발령됩니다. Defcon-one은 전쟁이 임박해 전쟁계획 시행을 위한 준비가 요구되는 최고준비태세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Defcon-three가 발령되면, 한국군이 가지고 있는 작전권이 한미연합사령부로 넘어갑니다. 전군의 외출·외박·휴가가 금지됩니다. Defcon-two가 발령되면 전군에 탄약이 지급되고, 부대 편제인원이 100% 충원됩니다. Defcon-one이 발령되면 동원령이 선포되고, 전시체제로 돌입됩니다.

나훔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경고한 “중한 경고”는 “Defcon-one”상태입니다.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 1세(주전 1115-1071)부터 니느웨가 확장되었습니다. 그는 “온 세상의 왕”을 자칭했습니다. 주전 9세기부터 7세기에 걸쳐서 앗수르 제국은 매우 강성했습니다. 끊임없이 이웃에 있는 국가들을 침략했습니다. 거기에는 이스라엘도 포함되었습니다. 주전731년에 유다 왕 아하스는 디글랏빌레셀III세의 신하가 되었습니다. 주전722년에는 사마리아를 함락시켜 북왕국을 멸망시켰습니다.

21년 후인 주전 701년에 산헤립은 유다를 침공했습니다. 46개의 도시 및 성읍을 파괴했습니다.

산헤립은 그의 신하 랍사게를 시켜 히스기야에게 협박했습니다. 이때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18,5000명의 산헤립 군대가 하룻밤 사이에 죽었습니다. 산헤립은 니느웨로 철군하고, 그의 아들 에살핫돈에게 살해당합니다. 이후로도 약간 흥하는가 싶더니 결국 주전 612년에 바빌론, 메대, 스구디아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Nahum의 목적은 앗수르의 멸망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앗수르가 멸망된다는 것은 곧 유다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나훔(!Wjn") 뜻은 “위로”입니다. 앗수르의 죄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것입니다. 사람들이 알든지, 모르든지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을 꼭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면 하나님께서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Nahum이 선포한 “중한 경고”는 나훔서의 목적입니다. 즉 ‘앗수르는 망한다’입니다. 왜 망합니까? 하나님의 백성에게 못되게 굴었다는 것입니다.

Nahum은 니느웨에 전쟁경보를 발령했습니다. Nahum의 말은 니느웨에 위협적인 경고를 했습니다. 니느웨의 망하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했습니다.

1:8 그가 범람한 물로 그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1:11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너희 중에서 나와서 사특한 것을 권하는도다

1:14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하여 명하였나니 네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 내가 네 신들의 집에서 새긴 우상과 부은 우상을 멸절하며 네 무덤을 예비하리니 이는 네가 비루함이니라

2:1 파괴하는 자가 너를 치러 올라왔나니 너는 산성을 지키며 길을 파수하며 네 허리를 견고히 묶고 네 힘을 크게 굳게 할찌어다

2:8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못 같더니 이제 모두 도망하니 서라 서라 하나 돌아보는 자가 없도다

3:7 그 때에 너를 보는 자가 다 네게서 도망하며 이르기를 니느웨가 황무하였도다 누가 위하여 애곡하며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할 자를 구하리요 하리라 하시도다

Nahum은 니느웨에 심판을 말했지만, 유다는 위로했습니다.

1:1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비록 강장하고 중다할찌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그가 없어지리라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게 하였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1:15 볼찌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보하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찌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2:1 파괴하는 자가 너를 치러 올라왔나니 너는 산성을 지키며 길을 파수하며 네 허리를 견고히 묶고 네 힘을 크게 굳게 할찌어다

Nahum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깡패들이 모두 사형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폭력범으로 5년, 10년 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기징역도 아니고, 사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안심하고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Nahum서의 목적은 니느웨의 멸망선포입니다. 아울러,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확신을 성도들에게 심어주는 말씀입니다. 유다에게 또는 우리들에게 위로를 주기 위한 말씀입니다.

성도여러분, 이 세상은 누가 주인입니까? 우리 아버지입니다. 우리의 전능하신 아버지입니다. 우리아버지께서 이 세상의 주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들을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잊지 않으면 됩니다. 언뜻 보면 이 세상은 무질서하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가진 자들이 횡포하고 그러나 지나고 보면 하나님의 섭리아래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the absolute soverreignty God) 아래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이란 ‘자연영역과 도덕영역에 관계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란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이란 말을 쓸 때에 우리와는 별로 관계가 없는 듯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창조세계나, 우리와는 별로 관계없는 큰 틀만 관여하시는 분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우리들이 어려울 때마다 지키시는 분입니다.

우리들은 현재 이 나라의 통치자를 믿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가계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맨 날 운하나 파려고 하고, 경찰과 검찰로 약자와 가난한 자들을 핍박하고 재벌위주의 정치를 하기 때문입니다. 1%를 위해서 99%를 희생시키기 때문입니다. 장로라는 직책을 뺏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이나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과거 우리나라의 왕들도 우리들은 별로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진정 백성을 위해서 정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통치자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최고통치자인 하나님은 다릅니다. 최고의 통치자로서 가장 낮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도덕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진리, 과학, 예술 등의 영역등 모든 분야에 미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지배를 하십니다. B. B. Warfield는 ‘모든 현상 배후에서 하나님을 발견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주변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생활가운데에서 하나님의 긍휼의 손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어려움 속에서 구원하는 하나님의 손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발을 동동 구를 때에 우리로 하여금 그 발을 멈추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은 남북을 합해서 우리나라 경상북도 보다 약간 큰 나라입니다. 그러나 당시 앗수르는 아프리카 넓이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군사력으로 이 나라를 제어할 수 있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훔에게 앗수르를 심판하겠다고 하시면서, 군사작전은 바벨론과 메대, 스구디아에 맡기셨습니다. 유대는 그들이 망하는 것을 구경만 했습니다. 일은 하나님이 하시고, 유대는 은혜만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큰 틀에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려고 마련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혜택을 받습니까? 예수그리스도는 사람들이 구원 얻을 기회를 마련하셨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밖에 계시면 우리가 주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떨어져 있는 동안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살아야 하십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어떻게 우리 안에 살도록 하십니까?

그 일을 성령께서 하십니다. 성령님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오도록 초청하십니다(계22:17). 성령님은 성경을 감동케 하십니다(요14:26, 16:13-14, 엡6:17, 벧전1:1, 벧후1:20-21).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정죄합니다(요16:8-11). 교회를 세우십니다(엡2:22). 성령님은 우리에게 복과 은혜를 주시려고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욜2:28, 요7:38, 행2:17, 8:15-17). 세례를 베풀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얻게 하십니다(요일5:1). 우리로 하여금 죄를 이기게 하십니다(요일3:9, 5:18). 의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요일2:29). 신자들로 하여금 예수를 주로 시인케 하십니다(고전12:3).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섬기게 하며(롬8:15-16, 갈4:6). 신자들을 강하게 하여 담대함과 사랑과 근신을 얻게 하십니다(행4:29, 딤후1:7). 우리들을 성결케 하며(고전 6:11, 롬15:16, 갈5:16-18), 신자 안에서 거룩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갈5:22-23).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은사’를 주십니다(고전12:1-11). 우리들이 갈팡질팡 어찌할 바를 모를 때에 우리들을 위하여 중보해 주십니다(롬8:26-27).

지금 이 시대는 마치 악이 승리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돈이 있어야 학교에 다니고, 돈이 있어야 법관이 되며, 돈이 있어야 국민으로 인정받는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정부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아가는 시대입니다. 법에 호소해도 안 됩니다. 말로만 삼권분립이지 1인 독재체제의 나라입니다. 물가는 잡지 않고 물가를 잡아달라는 사람을 잡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아야 할 정부는 다른 사람들은 부자일 때 왜 가난하게 사느냐고 핀잔을 합니다. 그래서 도심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몰아냅니다. 돈 있는 사람들만 한강변에서 살게 하고, 돈 있는 사람만 강남에서 살게 합니다.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미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한 대법관의 비리를 보고 전국의 법관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악의 무리들이 판을 칠 것 같은데 실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적 악의 무리들이 승리할 것 같은데 실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할 때 악이 승리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에 우리들의 형편이 나아집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악한 우리들의 상황이 역전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는 한 결코 악한 무리들이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하시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언제나 보호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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