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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8.23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에스라1:1-4

타국의 지배를 받고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나라의 주권을 잃으면 모든 자유가 박탈되기 때문입니다. 먹고사는 것에서부터 일상적인 말에 이르기까지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숨 쉬는 것까지 간섭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남의 나라에 지배를 받고 살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과거 일본제국주의의 치욕의 36년간(1910.8.29-1945.8.14) 주권 없이 살았기 때문에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지, 주권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습니다. 나라를 잃은 백성들은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닙니다. 짐승입니다. 더구나 지배국이 어떤 나라냐에 따라서 고통의 도가 더할 수 있습니다. Assyria나 독일(Germany)같은 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은 거의 살아남을 확률이 없었습니다. 완전히 초토화를 시켰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도저히 나올 수 없다면 사람들은 아마도 제 명에 살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한 가닥 희망을 잡고자 합니다. 그 희망마저 없다면 영원히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회복하신다고 했을 때도 믿지 않았습니다. 1절을 보면

바사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이스라엘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마어마한 소식을 새롭게 들어선 왕궁으로부터 들었습니다. 무슨 소식입니까? 첫 번째로

I. 고레스를 감동시키신 하나님(1절)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간 지 약 800년 만에(사사시대400년, 왕정시대400년) 외세의 압제를 받게 됩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Assyria에 멸망이 됩니다. 남왕국유다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합니다. 그런데 Assyria는 주전612년에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합니다. 남북왕국 모두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특히 유다는 3차에 걸쳐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바벨론은 주전539년에 페르시아에 멸망을 당합니다. 같은 지역이 주인만 달라진 것입니다.

고레스는 정권을 잡자 바로(주전538년) 그의 칙령을 내렸습니다. 고레스는 온 나라에 특별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담화문은 秋霜같았습니다. 고레스의 담화문은 전령을 통해 전국에 전해졌습니다. Persia에 내려진 vr</K(Cyrus)의 칙령은 시각을 다투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텔레비전으로, 또는 전문으로 보내면 되는데 당시는 전령이 말을 달려서 각 지역에 전했습니다. 그러므로 전령들은 있는 힘을 다해서 고레스의 명령을 전한 것입니다. 칙령의 내용은 유대민족은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레스는 유대와 아무 이해관계가 없었습니다. 고레스는 유다인도 아닙니다. 그런데 고레스는 왜 유대인들을 본국으로 돌아가게 합니까? 고레스가 유다를 풀어주기 위해 돈을 받은 것도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고레스에게 lobby를 한 일도 없습니다. 아버지가 유언으로 유대인들을 풀어주라는 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레스는 왕권으로 전국에 특별 명령을 내렸습니다. 고레스의 추상같은 명령은 전령들을 통해서 속속 전달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마음(j"Wr)을 감동시키셨기(rW[)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약속하신 말씀을 응하게(hl;K;) 하신 것입니다. 즉 고레스의 자작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사야는 고레스에 대해서 말하기를 바벨론을 멸망시킬 자라 했습니다(사13:17-22). 압제하는 바벨론을 칠자라 했습니다(사21:2). 모든 나라들이 고레스에게 무릎을 꿇을 것이라 했습니다(사41:2). 심지어 고레스는 하나님의 목자라 하였습니다(사44:28). 고레스를 메시야라고까지 했습니다(사45:1-4). 고레스가 나의 백성을 놓을 것이라 했습니다(사45:13). 고레스는 이 일을 반드시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사46:11, 사48:14-15). 누구의 말씀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예레미야의 말씀을 응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레미야 25:11-13을 보면 “11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12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13내가 그 땅에 대하여 선고한바 곧 예레미야가 열방에 대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니”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예언한 70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소식이 전해진 것입니다.

유다왕 여호야김 4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습니다(단1:1). 이때가 주전 606년입니다. 그로부터 70년은 주전 536년입니다. 이때가 고레스 통치원년입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딱 70년이 되는 때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고레스는 어느 날 140년 전의 기록 문서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랐습니다. 140년 전의 문서인데 자신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사44:28, 사45:1-4). 140년 전의 문서에 “고레스는 나의 목자라, 나의 메시야 고레스는, 내가 고레스에게 이르기를”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고레스는 온 몸에 힘이 쭉 빠졌습니다. 자신이 전략을 잘 세워서 전쟁에 승리한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머리가 좋고 힘이 좋아서 왕이 된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이에 고레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즉시 시행한 것입니다.

오늘의 이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다양한 종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관리하십니다. 회교국가인 아프카니스탄도 하나님이 관리하시고, 우상을 섬기는 아프리카도 하나님이 관리하시고, 불교국가인 인도도 하나님께서 관리를 하시며, 카톨릭의 국가들도 하나님이 관리하십니다. 신들끼리 나누어서 “나는 하늘을 만들고, 너는 땅을 만들어라. 그리고 너는 동물을 만들어라. 너는 식물을 만들어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드신 세상입니다. 저절로 되어 진 세상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들을 위해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주적 통치를 하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살고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을 우리에게 응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우연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이 세상은 돌아가고 있습니다. 내 직장도 하나님이 섭리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내 사업장도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관리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내 하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섭리하심을 믿고 그의 말에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고레스에 대해서 감동하기보다,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피조물들은 이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들은 천사들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들은 인간들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들을 지으셨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입을 만들기 전에 고기를 먼저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을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로 조명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한 우리들의 삶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약속을 낳고, 하나님의 섭리는 그 약속을 이루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잘해야 우리들의 삶이 편안합니다.

하나님은 고레스를 감동시키셨습니다. 오늘 두 번째로

II.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고레스(2-4절)

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4 무릇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우거하였든지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찌니라 하였더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음에도, 그 은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그러한 인물입니다. 사울왕도 처음에는 무척이나 겸손했습니다(삼상9:21). 사무엘이 사울더러 이스라엘의 왕이 되라고 했을 때 자신은 작은 지파중의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출발한 사울은 시작은 참으로 좋았습니다. 은혜로 시작했습니다. 누가 그를 비방했어도 대응하지 않았습니다(삼상10:27). 왕이 되기 전에 적을 크게 이겼습니다(삼상11:11). 그러고도 자신을 나타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제사장인 사무엘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제사장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을 만나고서부터 더욱 곁길로 갔습니다. 즉 시기심이 발동한 것입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라고 예루살렘의 처녀들이 노래한 것을 가지고 평생 불순종하는 사람으로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그 사람은 어떻게 해볼 수가 없습니다. 이후 사울왕은 하향곡선을 급히 긋게 됩니다. 그리고 불명예스런 왕이 됩니다.

그런데 고레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나도 잘 듣습니다. 유대인도 아니고 이방인인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합니다. Persia 제국(empire)의 막강한 왕이었는데, 마치 말잘 듣는 어린아이 같았습니다. 먼저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나를 왕으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2절). 그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어디 있든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 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했습니다. 거기에 축복까지 했습니다.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3절).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그의 백성들을 귀하게 여긴 것입니다.

고레스는 사람들만 돌아가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어디 있든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유대인들이 본국에 돌아갈 수 있도록 조치하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경비를 지출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편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라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별도로 경비를 지출하라고 했습니다(4절).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고레스는 세 단계를 거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절을 보면 유대인들을 위한 조서를 선포합니다. 3절은 고레스의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지원책입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포로에서 돌아갈 완전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고레스는 재무관 미드르닷에게 성전의 기물들을 유대까지 운반한 후에 스룹바벨(세스바살)을 만나서 성전이 완공될 때까지 잘 보관하였다가 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지도자들에게 주라고 지시하였습니다. 또한 시리아의 총독인 사트라부사네스에게 유다의 성전건축은 내 명령하에 하는 공사니 모든 경비를 사마리아에서 나오는 세금으로 충당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누구든지 방해를 하지 못하게 조처를 한 것입니다. 재무관이나 총독들은 고레스에게 잘 보이려고 고레스보다 더 잘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끔씩 이방의 왕들을 그의 종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역대상5:26을 보면 이스라엘이 범죄 했을 때 앗수르왕 디글랏빌레셀의 마음을 일으키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했을 때 이웃나라들을 채찍으로 여러 번 사용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이방나라의 왕들까지 움직이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시대를 볼 때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보다 이방인들이나 소외된 자들이 더 잘 믿었습니다. 세리나 창기, 사마리아인, 이방인들이 훨씬 잘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도가 비교도 안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교회를 다른 교회와 비교를 해보았습니다. 이왕이면 서울의 대형교회와 비교해보았습니다. 교회규모가 달랐습니다. 그 교회는 수만 명입니다. 우리교회는 삼십 명이 채 안됩니다. 그 교회는 세계에서 몇째 안가는 교회건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교회건물의 모습이 없습니다. 그 교회는 감리교회입니다. 우리교회는 장로교회입니다. 그 교회는 얼마 전에 이단에게 분당에 있는 교회를 팔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 교회는 세습을 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우리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 교회도 말씀이 있다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말씀이 있다고 하는 교회가 이단에게 교회를 팔았습니다. 따라서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비교해보았을 때 우리교회는 무엇 하나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교회에 내세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여러분과 저의 소망이자 자부심입니다.

순종의 구약적인 의미는 [m'v;(듣다)입니다. 듣고 이해하며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순종의 신약적인 의미는 복종(uJpakohv)입니다. 듣고 복종하는 것입니다. 시키는 대로 복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준행하는 것입니다. 고레스의 순종에 지구의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고레스의 순종에 유대인들은 비로소 고국에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순종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순종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면 내 뜻에 맞지 않아도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좋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이 우리의 생활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인 설교자가 전해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순종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순종한다고 말은 합니다. 그러나 대개 부분적인 순종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것은 순종하지만 어떤 것은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마치 돌같이 단단한 땅을 파지 못하는 쟁기와도 같은 것입니다. 모두 순종하면 포크레인같은 힘이 나오게 되는데 부분적인 순종으로 인해서 송곳밖에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안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합니다. 노아의 시대 때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노아의 여덟 사람만 제외하고. 소돔과 고모라 아드마와 스보임의 모든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롯과 두 딸만 제외하고. 광야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다 죽었습니다. 여호수아 갈렙만 제외하고. 억지로 순종하든지. 자발적으로 순종하든지 순종만이 우리의 살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실행에 옮기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믿음이 필요합니다. 나의 살점을 도려내는 아픔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순종을 하면 하나님의 동산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없었습니다. 고레스는 이스라엘이 할 수 없는 일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을 모두 보냈습니다. 그에 따른 경비를 소집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소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것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의 범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습니다. 교회가 생각하는 것보다 넓습니다. 세상이 생각하는 것보다 넓습니다. 우리들 개개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넓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반드시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비록 오늘 우리가 힘들어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들의 삶에 나타날 것입니다.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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