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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8.01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솔로몬
역대하1:1-17
역사적으로 볼 때 어느 나라나 왕권이 바꾸어질 때 국가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문제는 지금까지도 유효합니다. 최고통치자가 바뀔 때마다 나라는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주전4세기 Greece의 알렉산더는 유명한 정복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자 그리스는 곧 기울었습니다. 로마의 Julius Caesar 역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암살을 당하자 그의 정책도 변하고 나라가 한 동안 요동을 쳤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세종대왕은 위대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자 점점 조선의 역사는 기울었습니다.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여러 나라들의 상황이 대통령이 바뀔 때에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서 약 400년간 왕 없이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초 대왕 사울을 거쳐서 다윗이 왕으로 있었을 때에 왕권이 강화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나이가 들어서 왕위에 있지 못할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Solomon이 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Solomon은 다윗 왕에 비해서 아직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그의 마음은 아버지 다윗 같은 왕이 되기를 염원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여 하나님 앞으로 갔습니다. 1절에서 6절을 보면
1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왕위가 견고하여가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사 심히 창대케 하시니라 2솔로몬이 온 이스라엘의 천부장과 백부장과 재판관과 온 이스라엘의 각 방백과 족장들을 명하고 3온 회중과 함께 기브온 산당으로 갔으니 하나님의 회막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것이 거기 있음이라 4다윗이 전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장막을 쳤었으므로 그 궤는 다윗이 이미 기럇여아림에서부터 위하여 예비한 곳으로 메어 올렸고 5옛적에 훌의 손자 우리의 아들 브살렐의 지은 놋단은 여호와의 장막 앞에 있더라 솔로몬이 회중으로 더불어 나아가서 6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단에 이르러 그 위에 일천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
오늘 첫 번째로
I. 하나님께 예배하는 Solomon(1-6절)
국가의 최고 통치자는 국민들보다 빼어난 덕목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을 하나님께로 이끌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mission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명예와 권력을 위해 최고통치자로 나섰다면, 그로 인해서 국민들이 슬픈 일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울의 길을 걷기 때문입니다. 최고 통치자는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최고의 도덕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바른 사람들을 골라서 일할 수 있고, 바른 통치를 할 수 있습니다. 최고 통치자는 국민들을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법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스스로도 법을 지켜야 합니다. 민심이 무엇인가 정확히 알아야 하고, 항상 국민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항상 소통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든든히 서 갈수 있습니다.
Solomon은 그 왕위가 든든해졌습니다. 갈수록 나라가 성장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Solomon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1절). 매사에 하나님께서 Solomon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Solomon은 겁이 났습니다. 나라는 점점 성장해가고, 신장되어 가는데 자신은 옛날 그대로였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큰 일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아버지 다윗왕의 반만 되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Solomon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똑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막상 왕위에 오르기는 하였지만 심히 고민되었습니다. Solomon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너무나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아버지 다윗 왕이 물려준 나라에 대해서 묵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가서 물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Solomon은 이스라엘의 모든 대표들을 소집했습니다. 천부장, 백부장, 재판관(fp;v;), 방백(aycin:)들, 각 족장들을 전부 소집했습니다.
잠시 Solomon은 어디로 갈까 망설였습니다. 기브온 산당으로 갈까, 언약궤가 있는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릴까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Solomon은 소집된 모든 사람들과 기브온 산당으로 갔습니다. 여호와의 회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법궤는 없었습니다. 다윗이 기럇여야림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대상13:-15:). 3절에서 5절을 보면 회막과 번제단의 이력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회막은 여호와의 종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것입니다. 번제단 역시 모세시대 브살렐이 만들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출31:2-9). 성경의 기자가 Solomon의 예배가 합법성이라는 것을 성경이 말하는 것입니다. Solomon은 기브온 산당에 오기까지 많이 번민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언약궤가 예루살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브온 산당이 크고(왕상3:4), 모세 때 만든 회막과 번제단이 있었기 때문에 기브온 산당에서 희생을 드렸습니다. Solomon은 회막 앞에 있는 번제단에서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6절).
국가의 대통령이나 왕들은 책임이 막중합니다. 여름에 가물어도 왕의 탓, 홍수가 나도 왕의 탓으로 돌리기 때문입니다. 국가적으로 무엇이 잘못되면 왕의 탓으로 돌립니다. 닭이 AI로 죽을 때도, 농사가 너무나 풍년이 들어도, 태풍이 불어와 피해를 입어도 모두 대통령 탓으로 돌립니다. 그래서 풍년도 적당히 들어야 합니다. 왕은 국민들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왕은 항상 stress를 받습니다. 그래서 폭군들은 강권을 쓰고 공안정국으로 몰아 공포의 정치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왕은 한 마디로 왕의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왕은 항상 위민(爲民)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국민을 위할까? 무엇을 하면 국민들에게 득이 될까?”하고 고심을 해야 합니다. 왕의 자리에 앉아서 권력만 휘두르면 폭군입니다.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으면 무능한 군주입니다. 왕은 국민들을 위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입니다. 백성들의 피를 빠는 흡혈귀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왕이 되려는 자는 신중해야 합니다.
Solomon은 제단에서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혼자 간 것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을 데리고 여호와 앞에 먼저 섰습니다. 아마도 천명 내외가 가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일천번제는 천 마리의 짐승을 1000일 동안 드린 것이 아닙니다. 1000마리를 한꺼번에 드린 것입니다. 기브온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갑자기 바빠졌습니다. 1000마리의 짐승을 각을 떠야 했습니다. 번제단에서 화제로 하나님께 태워 올렸기 때문입니다.
Solomon은 국가의 시작을 예배와 함께 했습니다. 솔로몬은 시작이 밝았습니다. 거기에 다윗의 아들이란 이점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잘 섬겼던 왕의 아들이라는 것은 그에게 큰 이점이었습니다. 신앙을 물려받았다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을 물려받았음을 말합니다. 다윗에게서 하나님 섬기는 것을 물려받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법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하는 일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왕이 되었다고 폭탄주나 마시면 정권내내 폭탄주정권 밖에 되지 않습니다. 왕이 되었다고 잘난 척이나 하면 간신배들이 그의 주위에 파리 몰려들듯 모여듭니다. 그래서 그 정권은 불 보듯 뻔합니다.
그러므로 왕이 바른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국정을 예배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가장 안전하고 확실합니다. 왜 예배로 시작해야 합니까? 우리 인간들은 상당히 많은 것들이 가리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불순종하기 전에는 인간의 능력은 천사보다 나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많은 것들이 제한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무한한 능력이 그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많은 청사진(blueprint)을 그립니다. 이 청사진은 주로 학생 때 그립니다. 그런데 그 청사진이 수정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수능점수에 맞춘 청사진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그 청사진을 보고 사람들은 달립니다. 열심히 training을 합니다. 그리고 전진합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계획이 틀렸음을 느낍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무능을 단적으로 지적했는데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16:9)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의 인생계획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무능력하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우리들이 우리들의 인생계획을 세우지만 그대로 진행할 수는 없습니다. 그대로 진행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무능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따라서 무능한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께 다가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다가가는 것은 지혜로운 일입니다. 내 인생계획을 정확하게 아시는 분을 찾는 것은 탁월한 선택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든 것을 예배로 시작해야 합니다. 예배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입니다. 예배란 무엇을 시작하든지 하나님께 의뢰하는 의식입니다. 우리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표식입니다. 우리의 주권도 하나님께 있다는 표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림으로 우리의 인생이 제대로 갑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림으로 계획대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숨이 붙어있는 한 예배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Solomon은 왕에 올라서 첫 번째 한일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로 통치를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로 7절에서 17절을 보면
7이 밤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8솔로몬이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께서 전에 큰 은혜를 나의 아비 다윗에게 베푸시고 나로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니 9여호와 하나님이여 원컨대 주는 내 아비 다윗에게 허하신 것을 이제 굳게 하옵소서 주께서 나로 땅의 티끌 같이 많은 백성의 왕을 삼으셨사오니 10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11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존영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너로 치리하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12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존영도 주리니 너의 전의 왕들이 이 같음이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이 같음이 없으리라 13이에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 회막 앞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이스라엘을 치리하였더라 14솔로몬이 병거와 마병을 모으매 병거가 일천 사백이요 마병이 일만 이천이라 병거성에도 두고 예루살렘 왕에게도 두었으며 15왕이 예루살렘에서 은금을 돌 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 같이 많게 하였더라 16솔로몬의 말들은 애굽에서 내어 왔으니 왕의 상고들이 떼로 정가하여 산 것이며 17애굽에서 내어 올린 병거는 하나에 은 육백 세겔이요 말은 일백 오십 세겔이라 이와 같이 헷 사람의 모든 왕과 아람 왕들을 위하여도 그 손으로 내어 왔었더라
Solomon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릴까, 기브온 산당에서 예배를 드릴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 날 밤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기 때문입니다.
II.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Solomon(1-6절)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극적인 사례는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엘리야가 갈멜산상에서 바알과 아스다롯의 제사장들과 겨루는 장면이 압권입니다. 경쟁자가 무려 850:1입니다(왕상18:19). 도저히 game이 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숫자로 봐서도 압권인 바알의 제사장 450과 아스다롯의 제사장 400인은 그 배경 또한 엘리야와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법원, 검찰, 경찰, 언론, 여론이 모두 엘리야의 반대편에게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지지자가 없었습니다. 있다고 해도 한 사람도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game은 이미 끝난 game이나 다름없다고 모두들 생각했습니다. 국가의 비호를 받는 종교와 단독game을 하기 때문입니다.
game의 법칙은 하늘에서 불 내리기입니다. 그래서 벌려놓은 제물을 태우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이것도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먼저 양보했습니다.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은 금상첨화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바알이 틀림없이 응답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마나한 game이라고 생각했습니다. 850명은 국가의 비호아래 show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오전이 지나가고 저녁이 되어도 제물을 태울 불은커녕 작은 불씨하나도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해가 저물 무렵에 엘리야 차례가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어떤 show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하옵소서”였습니다. 그랬더니 즉각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850:1의 경쟁률에서 엘리야가 승부수를 잡은 것입니다.
Solomon이 일천번제를 드린 그날 밤에 하나님(!yhiOla>)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라(la'v])고 했습니다. 이때 Solomon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것을 지체 없이 말했습니다. 지혜(hm;k]j;)와 지식([D;m')을 구했습니다. 그 지혜와 지식의 사용처는 바른 정치를 펴기 위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이 Solomon에게 감동하셨습니다. 하나님 생각에는 Solomon이 구하라고 하면 ‘부귀영화’나 ‘원수들의 죽는 것’을 구할 줄 아셨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백성을 바르게 치리하는 것을 구하는데, 하나님께서 심히 감동하셨습니다. 그래서 bonus로 Solomon에게 지급하신 것이 ‘부귀영화’입니다. 그러면서 너 같은 사람이 전무후무 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깨고 보니 꿈이었습니다(왕상3:15; 솔로몬이 깨어보니 꿈이더라····).
14절에서 17절을 보면 Solomon이 받은 응답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은금을 쓰기를 돌같이 썼습니다. 귀한 백향목을, 흔한 무화과나무를 쓰듯 하였습니다. 비싼 말들과 전차를 겁 없이 수입했습니다. Solomon이 부유함과 융성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군사적으로 강성했습니다. 경제적으로 번영했습니다. 상업적으로 융성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부귀영화와 지혜를 받아 평생에 그것을 누렸습니다.
Solomon은 계획적으로 기브온 산당에 간 것이 아닙니다. 나라가 걱정이 되어서 총체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자 한 순수한 마음으로 기브온 산당에 갔습니다. 한 두 명 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갔습니다. 같이 간 사람들은 Solomon의 명령대로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순응했습니다. 일천희생을 드릴 때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전심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결과 솔로몬은 이후에도, 이전에도 없을 하나님의 큰 은혜(cavri")를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 말씀을 들으면서 Solomon을 심히 부러워했을 것입니다. Solomon의 1/10만 되어도 괜찮을 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들은 공히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다윗이 모든 재산을 Solomon에게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재산의 1/100만 있어도 우리는 한숨을 돌리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6:25-3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염려하지 말라(mhv)고 하셨습니다. 하늘에 하나님 즉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백성이라고 해도 몸을 가진 우리들이기에 물질이 필요함을 아셨습니다. 250만 명을 사막으로 인도하시면서 그들에게 당장 먹일 물과 음식이 필요함을 아셨습니다. 종일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가르침을 받고 있는 5000명이 먹을 것이 없음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예수님까지 초청한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음을 아셨습니다. 우리가 꼭 해야 하는데 지갑에 돈이 없음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우리가 당장 굶고 있는데 양식이 없음을 주님께서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것들은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선행해야 할 사항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가장 선행(prw'ton)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basileivan tou' qeou')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th;n dikaiosuvnhn)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구하라(zhtei'te)는 말은 “끊임없이 계속 찾으라”는 말입니다. 구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기를 계속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계속 힘쓰라는 것입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선행해야 할 것은 뒤로 미룹니다. 그리고 은혜만을 먼저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장 먼저 할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우리의 왕으로 실제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그러한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생활에서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주일에서부터 토요일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Solomon에게는 예배로 나타났습니다. 예배를 드린 결과 Solomon은 엄청난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예배를 잘 드리고 엄청난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예배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고 했습니다. 특정한 예배가 있고, 포괄적인 예배가 있습니다. 특정한 예배는 순서를 정해서 정해진 날짜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포괄적인 예배는 우리의 전 삶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신 이 세상에서 행할 윤리적인 일입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영화 벤허는 부제가 ‘그리스도 이야기’(A Tale of the Christ)입니다. 주인공인 벤허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시대 유대인입니다. 벤허는 어느 날 친구인 메살라가 로마총독을 보호하는 사령관으로 부임합니다. 그러나 친구인 메살라는 옛친구가 아니었습니다. 로마총독이 부임 행군 중에 동생이 기왓장을 실수해서 떨어뜨리는 바람에 메살라가 벤허의 어머니, 동생, 연인을 몽땅 감옥에 넣고 재산도 몰수하여 벤허는 갤리선의 노예로 고역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선단(船團)을 지휘하는 호민관을 위험에서 구해줌으로써 그의 양자가 됩니다. 호민관이 자기의 반지를 벤허에게 줌으로써 벤허는 이제 더는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호민관의 아들로 신분이 변했습니다.
요한복음1:12을 보면 우리들은 자연인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변하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과 부자관계가 형성됩니다.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에 있을 때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영생을 얻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 앞에 고귀한 미래가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조건을 붙여서 주시겠다고 제의를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없으면 사람들이 미신을 좇게 됩니다. 미신을 좇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면 우리들에게는 미래도 없고 성장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부지런히 예배하여 하나님의 끝없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