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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3.05
이단의 처리방법
유다서1:1-4
짝퉁이라는 말은 가짜라는 말입니다. 모조품, 유사품, imitation 등의 뜻입니다. 진짜가 아니고 가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꼭 진짜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용한 사람들이 과거에도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 짝퉁 히틀러라는 말이 있습니다. 히틀러는 자신의 목숨은 금쪽 같이 여겼습니다. 명색이 총통이기 때문에 가야 할 곳이 많았습니다. 물론 경호원들이 있었지만 웬만한 곳에는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꼭 가야할 자리에는 짝퉁 히틀러를 보냈다고 합니다. 겉으로 볼 때는 히틀러입니다. 경호원들도 그대로고, 동행하는 사람들도 높은 자리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히틀러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요새 짝퉁 명품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유명메이커의 상품을 단 짝퉁들이 진짜같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자신이 볼 때는 짝퉁이지만 남이 볼 때는 명품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짝퉁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역시 짝퉁이 있습니다. 바로 이단들입니다. 1절과 2절 그리고 4절을 보면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2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I. 우리는 이단의 정체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4).
유다서를 기록한 사람은 예수님의 동생 유다입니다(카일·델리취, 톰슨, 틴텔, 레이몬드 E. 브라운 등). 예수님의 동생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였습니다(마13:55). 이 중에 유다가 본서를 기록했습니다. 따라서 유다는 사도들보다 인간적으로 예수님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럼에도 유다는 예수님을 형님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자신은 그 노예로 여겼습니다. 30년이나 형님, 동생하며 한 집에서 살았는데, 유다는 예수님을 형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주인으로 여겼습니다. 자신은 인간이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예수그리스도에 의해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1절).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e[leo")과 하나님의 평강(eijrhvnh)과 하나님의 사랑(ajgavph)이 많을 것을 축복합니다. 이 내용으로 보아서 유다의 편지를 받는 성도들은 평강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상당히 필요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편지를 받는 성도들이 상당히 위축되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위축되었습니까? 이단들 때문입니다. 이단들 때문에 유다의 편지를 받는 성도들이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유다는 그들을 위로하고 이단의 정체에 대해서 말한 것입니다.
유다는 이단에 대해서 말하기를 교회에 몰래 숨어들어왔다(pareisevdusan)고 말합니다. 벌레가 몰래 기어들어오듯이 몰래 교회에 숨어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이단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최소한 두 명 이상입니다. 이단들은 절대 혼자 다니지 않습니다. 떼로 다닙니다. 그런데 이단은 이미 심판(krivma)을 받기로 작정된 자들입니다. 이단은 불경건하여(ajsebei'")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이단은 하나님의 호의를 색욕거리로(ajsevlgeia) 변질시켰습니다. 색욕거리란 온갖 악을 모두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부인하였습니다(ajrnouvmenoi). 유다는 이단의 생태를 정확하게 짚어서 말하였습니다.
이단이란 헬라에서 독특한 주장이나 교리를 갖고 있는 철학자를 이단이라 했습니다. 유대교에서는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를 이단으로 규정했습니다(행5:17[당파], 15:5[파], 24:5,14[이단], 26:5[파], 28:22[파], 고전11:19[편당], 갈5:20[이단], 딛3:10[이단], 벧후2:1[이단]).. 따라서 이단들은 기독교의 근본적인 교의나 교리를 부인합니다. 삼위일체되신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저들이 삼위 중에 하나라고 말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부인합니다. 아예 예수님이 필요 없다고까지 합니다. 그리고 이단들은 돈과 연결되었습니다. 이성문제가 복잡합니다. 그리고 권력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단들에 대한 정체입니다.
사도시대에도 이단들은 극성을 부렸습니다. Ebionism, Essenes, Docetism, Cerinthus 등입니다. 이들은 철저한 율법주의자들(Ebionism)이었고, 극단적인 금욕주의자들(Essenes)이었으며, 예수님이 실제로 이 땅에 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Docetism). 그리고 예수님의 동정녀탄생을 부인하였습니다(Cerinthus).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니케아 종교회의 시대 이단들도 많았습니다. 주후 3세기와 4세기 있었던 이단들인데 Gnosticism(영지주의), Origenism(오리게네스주의), Marcionism(말시온주의), Monarchianism(모나키아니즘), Montanism(몬타니즘), Paulicians(바울파), Manichaeism(마니교) 등입니다. 이들은 육신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인간은 물론 마지막에는 악마도 구원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을 반대했고,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아니라 단일신론을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의 직통계시를 주장했습니다. 세례를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니케아 종교회의 이후에도 많이 발생했습니다. Ariaanism(아리우스주의), Apollinarism(아폴리나리우스주의), Nestorius(네스토리우스), Pelagianism(펠라기우스), Eutychianism(유티게스주의) 등입니다. 이들은 삼위일체를 배격하거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부인하였습니다. 아담의 죄의 전가를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단의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교회와 신앙』에 나온 이단만 해도 그 숫자가 엄청납니다. 굵직굵직한 것만 들어도 금방 몇 십 개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들이 운영하는 단체들도 많습니다. 이들이 운영하는 회사들도 많습니다. 이들 회사에서 만들어낸 제품들을 알게 모르게 사람들이 많이 사용합니다. 국제적인 대회들을 개최하기도 합니다. 국제적인 신문(journal)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돈을 모읍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교회들을 파괴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단들은 교회에 암적인 존재들입니다. 각 교회들이 이단 때문에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소문난 이단들은 그래도 주의하여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소문나지 않은 이단들도 있습니다. 기독교 television에 205번이나 버젓이 설교한 이○○ 목사의 설교가 늦게나마 검증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윤○○ 목사는 성령님을 예수님이라고 하며, 예수님을 성령님이라고 하는 양태론을 주장하며, 베뢰아귀신론을 주장한다고 합니다. 역시 텔레비전에 설교를 하는 ○○○○교회의 이○○목사는 낙원에 있는 사람들도 천국과 지옥으로 갈 사람이 나누어졌다고 했습니다. 예수의 공로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말씀, 율법, 계명을 지켜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참으로 황당합니다.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을 모르는 어리석은 말입니다.
이단을 우리가 왜 주의해야 합니까? 이단에 빠지면 영혼과 육신이 한꺼번에 죽습니다. 나는 잘 믿는다고 생각하면서 믿었는데, 심판 때에 지옥에 있다면 얼마나 절통합니까? 그리고 이 땅에서 엄청난 착취를 당합니다. 그래서 한번 이단에 빠지면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살아서는 잘못된 교리로 노예처럼 삽니다. 그리고 죽어서는 지옥에 빠집니다. 이것을 우리들이 보고 있습니다. 통일교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다미선교회에 빠져서 패가망신한 사람들, 귀신론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우리들이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집회에 가서는 안 됩니다. 검증이 되지 않은 설교도 위험합니다. 모르는 사람과 함부로 성경공부에 참여해서는 더욱 안 됩니다. 지금 마귀들이 영혼을 빼앗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단은 사람이 아닙니다. ○○○마귀, 통일교마귀, 다락방마귀, 몰몬교마귀, 여호와의증인마귀 등입니다. 그들은 사람의 탈을 뒤집어쓴 마귀입니다. 그들이 비록 우리와 같이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들은 마귀라는 것, 그래서 우리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애쓰는 ○들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 이웃에 살고 있더라도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제대로 되어갑니다. 이단에 이자만 들어도 아예 상종치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영혼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지옥에 끌고 가려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두 번째로 3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II. 우리는 이단에 대처해야 합니다(3절).
의사는 환자가 병원에 오자마자 수술하거나 치료하지 않습니다. 먼저 환자들을 진단합니다. 여러 가지를 검사하고 진단한 후 병에 대해서 치료를 합니다. 유다는 편지를 받는 사람들을 진단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강력하게 권하여야 할 필요를 가졌다(e[scon)고 했습니다. 무엇을 권할 필요를 가졌습니까? 우리가 가진 구원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단에 대한 대처방법입니다.
유다는 구원을 일반으로 얻은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말했습니까? 바른 성경은“우리가 함께 받은 구원”이라 했고, 표준새번역 성경은 “우리가 함께 가진 구원”, 공동번역은 “우리가 함께 받은 구원”이라 했습니다. 또한 영어성경도 “우리가 함께 받은 구원”; to you of our common salvation)이라고 했습니다. 함께 받은 구원은 어떤 구원입니까?
또한 유다는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이라 했습니다(a{pax paradoqeivsh/ toi'" aJgivoi" pivstei). 이 역시 구원하는 믿음입니다. 단번에 베푸신 구원하는 믿음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은 과거에 받았습니다. 현재 확신 있는 구원입니다. 미래에는 구원받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누립니다. 한번 구원 받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받습니다. 한번 믿음이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는 신앙에 단계라는 것이 없습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어떤 단계를 밟지 않습니다. 오늘 10%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일 20%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최소한 구원받기 위해서 10번을 믿어야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번에 구원을 받습니다. 한번 구원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받았습니다. 한번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한 번 구원으로 하나님나라의 영주권을 영원히 받았습니다. 유대인이라고 해서 특별대우하고 이방인이라고 해서 홀대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구원, 똑같은 믿음입니다.
유다는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힘써 싸우라고 말합니다. “단번에 주신 믿음을 위해 힘써 싸우라” ‘힘써 싸우라’(ejpagwnivzomai)는 말은 운동경기, 레슬링 등의 싸움에서 쓰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헬라작가들은 덕 있는 삶을 이 단어에 비유했습니다. 따라서 이 싸움은 힘든 싸움입니다. 누구들처럼 싸워서는 안 됩니다. 방송국들이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다고 무차별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방송통신위원장이란 사람은 대놓고 나가라고 합니다. 감사원에서는 특별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국세청에서 세무조사를 합니다. 검찰에서는 소환명령을 합니다. 교회가 이렇게 이단과 싸워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지혜로운 싸움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단과 싸울 때에 진지하게 싸워야 합니다. 싸우기는 싸우되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힘든 싸움인 것입니다.
요즘 최고로 문제인 이단이 ○○○○입니다. 이들은훈련된 사람들을 통해서 기존교회에 침투시켜 빼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믿은 사람들은 이단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설듯 말듯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틀림없이 이단들의 먹이의 대상입니다. 이단들은 절대로 전도라는 것이 없습니다. ‘전도는 이단같이 열심히 해야 된다’는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이단들은 절대로 전도하지 않습니다. 기존의 교인들을 빼앗아가지, 전도하지 않습니다. 언제 가르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조금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이단들의 대상입니다. 제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이단으로 많이 넘어갔습니다.
이단들하고 어떻게 싸워야 합니까? 잘못하면 가라지를 뽑으려하다가 곡식마저 뽑힙니다. 가라지가 뽑히는 것은 괜찮은데, 곡식은 조금이라도 다쳐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이단과 맞붙어 싸워서는 안 됩니다. 이단들은 문답식으로 공부를 하기 때문에 웬만한 성경지식으로는 답을 하지 못하고 막혀버립니다. 목사들도, 장로들도 넘어간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들의 말을 100%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토론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든지 넘기려고 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잘못 덤벼들었다가는 그냥 당합니다. 그래서 싸우기는 싸워야 하는데 지혜롭게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도 그렇고 사도들도 이단들은 모두 쓸어버려라 하지 않았습니다. 쓸어버릴 대상이지만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하고 조심을 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이단과 어떻게 싸워야 할지를 알고 있습니다. 디도서3:10을 보면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도 이단들과 교제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힘써 싸우라”는 말은 우리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단과 싸우기 위해서 이단을 알자는 것입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넘어질 일이 없습니다. 손자병법에 보면 제18계에 금적금왕(擒賊擒王) “적을 잡으려면 적의 우두머리부터 잡아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상대방의 핵심을 공격하여 적을 완전히 제압하는 전술입니다. 이 전술의 핵심은 과연 어느 곳을 건드려야 적이 무너질 것인지 정확히 분석하라는 것입니다. 조직마다, 사람마다 가장 취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곳만 무너지면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을 이단들이 찾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예 이단이 발붙일 근거를 우리가 제공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이단과 힘써 싸우는 것입니다. 용감하게 “이단들아 다 나오라”했다가는 큰 일 납니다. 그 용기는 가상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단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아는 것입니다. 통일교는 무엇이고, 여호와의 증인들은 무엇이며, ○○○는 무엇이다,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과는 아예 담을 쌓아야 합니다. 그들과 같이 생활했다가는 넘어가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이단을 우리가 쉽게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신천지에서는 계속 교인들을 기존교회에서 도둑질해가고 있습니다. 통일교는 피스퀸컵을 유치해서 자신들이 못할 일이 없음을 계속 과시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종교리서치조사원 같이 위장해서 교인들에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제칠일안식일교회는 좋은 시설의 요양원을 짓고 국가의 지원금을 받아서 세를 늘리고 있습니다. 신학이 확실치 않은 목사들은 양들을 끌고 가서 잡아먹으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주위에도 수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 안에도 겉은 멀쩡하지만 이단이 있을지 모릅니다. 일단 이단에 빠지면 가정이 파괴됩니다. 심하면 죽임을 당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이단들과는 아예 상종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단들은 성경을 악용하여 부모형제나 부부를 이간질해서 가출토록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영혼을 도둑질해갑니다. 그들은 성경의 지식이 조금 약하다 싶으면 한없이 파고듭니다. 그러므로 항상 성경을 상고해야 합니다. 이단들은 기존교회에서 할 수 없는 일을 자기들은 할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중요한 것은 성도들이 말씀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맡겨진 사명에 충실할 때 유혹을 당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완전하지 못함을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목회자가, 집사가, 그럴 수 있느냐 하면서 불평을 조장하며,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받은 구원입니까?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서 받은 구원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우리에게 구원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수십 년 간 또는 수년간에 걸쳐서 믿음을 고수해왔습니다. 그런데 한순간에 마귀의 입에 톡 털어놓을 수 있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를 떠났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모세가 애굽의 궁중을 떠났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예수님의 피값입니다. 아주 값비싼 구원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지킵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