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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하나님의 은혜들

하박국1:1

교육(education)이란 라틴어 ēdúco에서 유래했습니다. ēdúco라는 말은 빼낸다는 의미와 끌어올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내부적 능력을 개발시키고 미숙한 상태를 성숙한 상태로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교육은 인간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행위이며 그 과정입니다. 그래서 교육은 글자그대로 사심 없는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그럼에도 말들은 백년 후를 바라보는 교육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교육에 교자도 모르는 사람들의 정치성 교육정책에 지금 우리나라의 서민들은 시퍼렇게 멍들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땅에 떨어져도 교육의 정직성만은 더욱 올라가야 하는데 오히려 땅에서 뒹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교회입니다. 교회는 내세와 현세를 연결하는 접점이기 때문에 교회는 가장 중요한 기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잘못 되어 가면 아주 큰일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지나칠 수 있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기관이기 때문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오로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말씀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교만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말씀을 잊어버리고 이 세상과 타협하며 세속화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면 큰 문제입니다. (오늘 첫 번째로)

I. 말씀전파자가 있음의 복(1a).

선지자 하박국의 묵시로 받은 경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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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는 구약시대에 앞의 일을 예견하는 사람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한다든지, 바벨론이 멸망한다든지 등을 예언합니다. 사람들이 듣고서 대비를 시키고자 함입니다. 그 일은 스스로 생각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에게 꿈이나 환상을 통해 그 뜻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선지자였지 사람의 선지자가 아닙니다. 자칭 선지자도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부름을 받아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이후에 선지자는 사라졌습니다. 성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두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참선지자와 거짓 선지자입니다. 참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대로 전했습니다. 그러나 거짓선지자는 하나님께 말씀을 받지 않았는데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사람들은 거짓선지자인지, 참선지자인지 모르기 때문에 각각의 말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받는 내용으로 봐서는 거짓선지자의 말이 훨씬 좋았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전부 좋은 말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선지자들의 말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잘나가고 있는데 조심하라든지,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든지 하기 때문에 인정도 못받고 미친 사람 취급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참선지자들의 말을 받아들여야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말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들어서 좋은 소리만 합니다. 그러므로 그 말을 믿었다가는 큰 낭패를 당합니다. 선지자의 직책은 2000년 전에 사라졌지만 그 직분은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선지자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선지자를 세웠습니다. 교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을 세웠습니다.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져야 하기 때문에 선지자를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사람들에게 임하도록 선지자들을 세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그 개인을 위해서 살지 못합니다. 선지자들은 따로 직업도 가지지 못합니다. 있던 것 모두 정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해야 합니다. 선지자들은 그 나라 또는 그 지역을 위해서, 그 시대를 위해서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의 사명이 막중하고, 교회의 사명이 막중한 것입니다. 교회는 선지자가 있어야 하고 선지자를 지원해야 합니다. 선지자는 교회를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항상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들려질 때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게 되고, 하나님의 칭찬을 듣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하나님의 대언자들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순순히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죄의 특성상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사람들의 근본이 교만하고 무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사람들을 멸망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거듭날 때 복음의 증인으로 모두 부름 받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말씀을 잘 받아 들여도, 또한 배척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전하여야 합니다. 홍수 때의 노아처럼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그들에게 계속 전해야 합니다. 망해가는 소돔과 고모라를 기도한 아브람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의 바른 목회자는 자신의 뜻대로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존 오웬은 “성직자의 가장 큰 임무는 영적인 능력을 총동원하여 많은 영혼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바른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교회건물이 좋으면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교회조직이 잘되어 있으면 사람들이 감탄합니다. 찬양대도 좋고, 모든 교육시설이 잘되어 있으면 더욱 좋습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바른 말씀을 전하지 않고, 거짓을 전한다면 그 교회를 빨리 부셔야 합니다.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목회자의 일은 한 가지입니다. 정치하는 선지자가 아닙니다. 금배지를 달지 않아야 합니다. 선지자는 국가의 모사가 아닙니다. 망해가는 이 세대를 위해 외치는 직분입니다. 화려하게 대접받는 직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전하는 대언자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그렇게 되도록 성도여러분께서 적극협력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선지자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사는 길이고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우리에게 말씀전파자가 있는 것이 복된 것일 뿐만 아니라 두 번째로

II. 하나님 말씀이 있음의 복(1b).

(1절에 “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제멋대로 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잠언29:18).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바르게 갑니다. 성경은 인생의 나침반과 같습니다. 길을 잃었거나 잃으려 할 때 방향을 제대로 잡아줍니다. 그래서 성경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성경이 있는 사람은 하늘의 인생을 사는데, 성경이 없는 사람들은 지옥의 인생을 삽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주어진 목적은 말씀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들의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자기를 사람 앞에 드러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자기 백성들에게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여러 가지 모습으로 우리에게 자기를 드러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급하게 드러내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말씀을 공급하심으로 자기 백성을 죄에서 보호하십니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소망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애굽 궁중에서 사라를 도적맞았을 때 나타나셨습니다. 이삭이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바쳐지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야곱이 외삼촌라반의 집에서 떠날 때에 그에게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이토록) 하나님은 사람들을 절대적으로 사랑합니다. 요셉을 애굽에 보내놓으시고 날마다 요셉을 돌보셨습니다. 그리하여 위험한 순간순간들을 넘기게 하셨습니다. 모세를 미디안에 보내놓고 십보라를 만나게 하시고 40년을 날마다 모세와 같이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의사를 우리들에게 전달하실 때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하나님의 직통계시를 받았다고 하면 빨리 그 사람과 단절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광우병보다, 에이즈보다, 멜라민보다 더 나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이 세상은 순식간에 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없이 행하는 자들은 한 결 같이 교만하고 어리석습니다. 사람들과 하나님께 방자하게 행합니다. 그 여파로 가정이 혼란하고 사회가 병이 들게 마련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천국과 지옥 이야기를 하면 “나 같은 사람이 천국에 못 가면 누가 가나?”하고 자신을 높게 평가합니다. 지옥이 그들의 코앞에 있는데 천국의 보좌 옆을 탐냅니다. 무례함의 극치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말씀에 자기기준을 둡니다. 그래서 항상 겸손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합니다. 그렇게 행하기 때문에 그들의 길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입니다. 열매가 가득한 포도나무입니다. 초대교회가 쑥쑥 뻗어가는 비결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는 말씀이 흥왕했습니다. 성령께서 그 말씀에 강권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가는 곳마다 나타났습니다. 말씀이 흥왕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말씀이 로마를 점령했습니다. 말씀이 유럽을 점령하고, 아프리카를 점령하고, 아시아를 점령했습니다. 말씀이 풍성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주후313년에 콘스탄틴의 박해령 해제로 교회는 이상하게 돌아갔습니다. 강단에서 말씀이 점점 희박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예전과 의식이 차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보다, 황제의 권위가 높았고 주교들이나 소위 말하는 대감독의 말이 우선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신앙은 급격히 떨어져서 유럽은 전쟁과 사회의 대혼란이 일어납니다. 무려 1000년간 말씀이 갇혀 버렸습니다. 말씀이 그 행세를 하지 못했습니다. 소위말해서 암흑시대가 온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보다 높았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것을 따랐습니다. 말씀인줄 알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줄 알고 믿었는데 아니었습니다. 무언가 이상했습니다. 어딘가 이상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자 국가와 국가가 전쟁을 하였습니다. 사회가 혼란이었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죽어갔습니다. 미신이 창궐했습니다. 평생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죽어갈 때 사제가 와서 물을 뿌리면 천국에 갔다고 했습니다. 분명 무엇이 잘못되었습니다. 무언가 확 비틀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니까 어둠이 사람들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 전쟁이 그쳤습니다. 사회가 평온해졌습니다.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사랑이 넘쳤습니다. 예전처럼 다시 흥왕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는 곳마다 미신이 타파되었습니다. 죽음이 떠났습니다. 어둠이 물러갔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보좌에 하나님이 좌정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가정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직장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사업장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무엇을 하든지 먼저 말씀으로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활에 기초가 되지 않으면 일어날 것 같다가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을 큰 재산으로 여기고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경이 우리 집안에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성경대로 행하는 우리들은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그러한 성도가 되십시다.

(선지자와 말씀이 있는 것이 복된 것일 뿐만 아니라)

III. 하나님의 경고를 받는 것이 복(1c).

선지자 하박국의 묵시로 받은 경고라

‘경고’라는 말은 듣기에 거북한 말입니다. 대체적으로 출입금지지역에 ‘경고’의 팻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지역은 군사제한구역임을 경고함”, “이 지역을 가까이하는 자는 발포함” 이러한 말들이 경고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경고’란 뜻이 엉뚱합니다. 경고(aC;m')는 무거운 짐입니다. 나귀(출23:5)나, 노새(왕하5:17), 낙타(왕하8:9)와 같은 동물들의 등에 지워진 짐이 ‘경고’입니다. 즉 경고라는 것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짐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때 무거운 짐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앗수르에게 잡혀가는 것,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것 같은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으로부터 무거운 짐을 받은 것입니다. 경고에 응하느냐, 응하지 않느냐는 사람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사람의 자유가 아닙니다. 경고에 응하지 않으면 망하기 때문입니다.

경고에도 잘못된 경고와 바른 경고가 있습니다. 1950년6월25일에 이승만 정부는 서울을리고 피난길에 들어섭니다. 대전에서 방송국에 녹음하기를 ‘우리 국군이 적을 물리치고 있으니 국민과 공무원은 정부 발표를 믿고 동요하지 말며 대통령도 서울을 떠나지 않고 국민과 함께 서울을 지킬 것’이라고 방송을 했습니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서울 사람들은 피난을 가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의 말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한군의 탱크를 보고도 국군의 탱크인줄 알았습니다. 결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후에 서울에 올라와서 이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분명 잘못된 방송입니다. 바르게만 경고를 했더라면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 것입니다.

바른 경고는 무엇입니까?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것입니다. 경고는 하나님께서 돌이키라고 사람에게 은혜로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고를 무시하면 하나님의 은혜에서 제함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에서 분리함을 당합니다. 예루살렘에서 분리한 북왕국 이스라엘은 주전721년에 앗수르에 의해서 영원히 망해버립니다. 그들은 209년간 선지자들의 말을 숫제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멀어지고 우상과 가까워졌습니다.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우상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보다 관능적인 여신의 모습이 그들을 매료시켰습니다. 결국 그들은 우상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처참하고 잔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것을 본 남왕국 유다는 깨달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겸비한 자세로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을 끝으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점점 빠르게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눈으로 보고 만졌는데도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광야에서 수백 만명을 40년간 먹이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깨닫지 못하자 멸망의 길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하박국이 그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신차려야 된다. 하나님께로 빨리 돌아서야 한다. 지금 돌이키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외쳤습니다.

교회는 꾸준히 개혁되어져야 합니다. 개혁된다는 것은 고치는 것이 아니고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 털어내어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준에 들게 되고 그로 인해서 성도들이 복을 받게 됩니다. 이것을 하지 못할 때 교회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예배는 드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안심합니다. 그러나 말씀이 없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교회가 변화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웃이나 주변은 절대로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박국시대에 예루살렘 시내에서 이해하지 못할 악행과 처참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밤에 강도들이 들끓었습니다. 여인들이 마음 놓고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처처에 사건사고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부자들이 살판났습니다. 서민들은 죽어갔습니다.

(이 때에 하박국이 예루살렘에 대한 환상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박국에게 사람이 돌이키면 심판을 거두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박국의 말을 사람들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거짓선지자들의 말은 들으면서 참선지자들의 말은 듣지 않았습니다.

요나 때에 니느웨가 죄에서 돌이키므로 인해서 당분간 심판을 거두셨습니다. 하지만 150년 후 나훔 때에 니느웨는 망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경고 뒤에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심판하시기 위해서 2000년이나 참으셨습니다. 노아에게 말씀하시고 무려 120년을 참으셨습니다. 그러나 심판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오래 참으셨습니다. 그러나 심판하셨습니다. 가나안사람들을 400년간이나 유예기간을 두셨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자 심판하셨습니다. 인간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홍수 후에 2000년이나 참으셨습니다. 곧 오시겠다고 하신 심판주이신 주님께서 2000년 이상 참고 계십니다.

본문에 말하는 경고(맛사)는 아주 급하고 강한 경고입니다. 이 말을 듣지 않으면 곧 돌이킬 수 없는 사태에 이르는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회초리가 아닙니다. 훈계가 아닙니다. 영원한 멸망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의 경고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의 음성이 세미하게 나의 양심에 말씀하시든지, 성경을 읽는 중에 우리에게 감동을 주시든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경고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시시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시시하게 생각하고 무시하여 버립니다.

영국은 타이타닉호라는 세계에서 가장 호화스러웠던 배를 만들고 절대로 가라앉지 않는 배를 만들었다고 자랑했습니다. 이 배가 미국을 향하여 갈 때에 유럽의 많은 귀족들과 장관들 그리고 사회의 저명한 인사들이 밤새도록 무도회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 배가 대서양 한복판에 도착했을 때 타이타닉호는 침몰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고로 1972년에 1,516명이 바다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항로 중에 빙산이 앞에 있다는 경고를 네 번이나 무시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말씀을 전하는 자가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잘못되지 않도록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경고의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경고를 100% 수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순종할 때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말씀을 지킴에서 내려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된 것들을 절대적으로 수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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