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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3.17
- 2011.05.21
성전건축을 독촉하시는 하나님
학개 1:1-6
1618년도부터 1648년도까지 있었던 30년 전쟁은 대규모 종교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독일에서 시작되었지만, 보헤미아, 항가리, 서반아, 덴마아크, 스웨덴, 프랑스 등 수많은 나라들이 참가한 서구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칼빈주의와 로마-카톨릭의 충돌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루터교를 포함하여 프로테스탄트가 합세한 전쟁이었습니다.
이 전쟁이 일어난 이유는 1555년 독일의 아우구스부르그 종교화약을 로마-카톨릭이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프로테스탄트에게 모든 것을 불리하게 적용을 시켰습니다.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으면 프로테스탄트들을 멸절시키려고 했습니다. 이로 인해서, 30년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프로테스탄트의 승리로 아우구스부르그 종교화약을 재확인했습니다. 하지만 3개월도 아니고, 3년도 아닌 30년 전쟁은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냈습니다. 그리하여 30년 종교전쟁은 서구인의 종교적 열정을 식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성인들이 기독교신앙을 무시하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이로부터 유럽에서 기독교가 점점 사라지게 한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1절에서 4절을 보면
1 다리오왕 이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3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4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I. 손 놓은 성전건축(1-4)
이스라엘에는 역사적으로 성전이 세 개 있었습니다. 첫 번째 성전은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입니다(왕상6:37-38). 그러나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두 번째 성전은 스룹바벨성전입니다. 주전 516년에 완공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성전도 로마의 Pompeius에 의해 주전 63년에 파괴되었습니다. 세 번째 성전은 헤롯성전입니다. 그러나 주후70년에 로마의 Titus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선지자 학개가 여호와의 말씀을 받은 때는 다리오왕 2년 유월입니다. 이때가 주전 520년입니다. 유대는 하나님께 죄를 지음으로 인해 바벨론에 포로로 붙잡힙니다(렘52:1-30).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서 70년 만에 풀려나리라고 했습니다(렘25:11). 그러는 사이에 바벨론은 메데와 페르시아에게 망합니다(단5:30-31). 유다 역시 페르샤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유다는 주전 538년에 고레스(vr</K/Kowresh/Cyrus)로부터 귀환명령을 받았습니다. 본국인 예루살렘에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라고 했습니다(스1:2). 말로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건축에 필요한 경비까지 지원했습니다(스1:4).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4,2360명이(스2:2)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을 착공했습니다(스3:8).
하지만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고레스가 카스피해 부근에서 전사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고레스의 첫째 아들은 애굽 전장에 있었기 때문에 어린 둘째아들 스메르디스의 이름으로 가우마타(Gaumata)가 정권을 잡습니다. 그때 성전공사를 방해하는 사마리아와 주변국들이 가우마타(Ahasuerus Longimanus)에게 로비를 해서 성전재건공사 중지명령을 받아냈습니다(스3:8, 4:24). 그 후로 16년이 지났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전520년 6월1일에 하나님께서 학개를 찾았습니다. 그 말씀을 받을 사람은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였습니다. 스룹바벨은 당시 페르시아의 유다총독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유다의 대제사장이었습니다(1절). 이들은 고레스 때에 유대인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입니다(4,2360명/스2:64). 예루살렘에 도착한 이들은 예물을 드리고 옛 성전 터에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주전536년) 성전착공을 했습니다. 너무도 좋았습니다.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잠깐이었습니다. 사마리아와 주변국의 훼방이 있자 성전에 대한 열정이 금방 식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에게 말씀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t/ab;x] hw:hy])가 말한다’ 하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란 ‘전 우주에 대한 통치권자’라는 말입니다. 모든 세력을 지배하는 주인이 말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안 됐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2절). 다시 하나님께서 학개에게 말씀했습니다(3절). 여호와의 성전은 황폐했는데(brEj;/hareb), 너희들은 화려한 집에서 살고 있냐? ‘그것이 말이 되냐’고 했습니다(4절). “잘하고 있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냐?”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지금 이 말씀을 들을 때 부담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우리교회를 보고 우리들의 집을 비교해볼 때,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까? 우리교회는 건물로 볼 때 황폐의 수준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집을 보면 그래도 낫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부담을 갖게 됩니다. 대체적으로 많은 교회들이 교회건축을 하려면 학개서를 설교합니다. 그러면 헌금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여간 강심장이 아니면 헌금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이 헌금을 하는데 안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는 집에 가서 다시 생각합니다. 교회를 옮겨야 하나? 그대로 있어야 하나? 심히 갈등을 합니다.
과연 학개서는 ‘예배당 건축을 위한 본문인가?’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학개서를 꼭 교회건축에만 국한시키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당 건축은 아주 좁은 의미입니다. 학개서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 나라를 건축’하는 것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은 성전건축이 반대에 부딪히자, 성전건축의 열망이 팍 식었습니다. 성전건축을 늦출 핑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자꾸 늦추었습니다. ‘나중에 하자.’ ‘다음에 하자’ ‘봐, 사마리아가 방해하고 여러 나라들이 못하게 하지 않느냐?’ ‘우리도 건축하고 싶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산업에는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무관심했습니다.
레위기에 보면 이스라엘의 한가운데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었습니다. 출발할 때는 언약궤가 맨 앞이었습니다. 숙영지에서는 한 가운데에 위치했습니다. 솔로몬 시대에는 성전이 왕궁 옆에 있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아주 성도들 안에 들어와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서 우리와 함께 하고자 하시는데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여러 가지 핑계를 댑니다. 예배에 핑계를 대고, 기도에 핑계를 대고, 하나님의 말씀에 핑계를 댑니다. 우리들의 일에는 철저한 관심을 기울이지만, 하나님의 일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예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드려도 되고, 안 드려도 되지 않겠느냐? ‘쇠털같이 많은 날 한번쯤 빠졌다고 무슨 일이 있을라고?’하는 마음들이 우리들의 대다수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33에서 예수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zhtei'te de; prw'ton th;n basileivan tou' qeou' kai; th;n dikaiosuvnhn aujtou',)하셨습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 중심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교회 중심한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바른 물질을 사용하고, 은사를 잘 활용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손을 놓지 말 것을 촉구합니다. 더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다운, 직분 자 다운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들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손을 놓으면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명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명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손을 놓으면 안 됩니다.
II. 자신을 살피라고 하시는 하나님(5-6)
5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찌니라 6 너희가 많이 뿌릴찌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찌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찌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워싱턴 대통령이 군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워싱턴장군으로부터 직접 상황보고를 받으려고 정부에서 파견된 사람이 워싱턴이 있는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워싱톤장군을 평가하여 정부에 보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워싱턴으로부터 공식적인 영접을 받은 후,어려운 상황에서도 군대를 잘 지휘하는 장군을 칭찬했습니다. “워싱턴 장군,당신은 참 위대한 지도자요,우리 모두에게 영감을 주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워싱톤은 “그런 것은 신경쓰지 마시오. 그보다도 내가 이렇게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당신은 어떤 입장입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다 그 사람과 같습니다. 우리는 매 주일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의 위대함을 인정하며 주님이 계신 현장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매 주일,만약 우리가 진짜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면,주께서 우리들에게 “그런 것을 신경 쓰지 말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너는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말해다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독촉하십니다.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보라’했습니다. 어떻게 할 것인지 ‘너희의 마음을 길 위에 놓아라.’는 말씀입니다. 이대로 갈 것인지, 아니면 성전건축을 하든지 정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성전건축공사를 도저히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기억 속에서 성전건축은 멀어져갔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경제적인 상황까지 최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건축의 시기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누가 생각해도 맞는 말입니다. 흉년이 연이어 들어서 죽게 생겼는데, 성전건축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계속된 흉년으로 사람들의 삶은 찌들어갔습니다.
백성들의 생각은 성전건축의 시기가 아니라고 하는데, 학개는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흉년의 원인을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6절을 보면 “너희가 많이 뿌릴찌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찌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찌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학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금까지의 삶을 반성해보라 했습니다. 흉년이 왜 들었는지 반성해보라는 것입니다. 흉년이 무엇 때문에 왔는지 찬찬히 살피라 했습니다. 그 흉년은 의도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씨를 많이 뿌리면 많이 수확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너희들이 많이 먹으면 배가 부를지 생각했지만, 너희가 많이 마시면 갈증이 해소될 줄 알았지만, 많이 입었어도 따뜻했느냐?, 품삯을 많이 받으면 네 재산이 될 줄 알았지만 한 가지라도 된 것이 있느냐? 너희들은 날씨 탓을 했겠지?, 이상기후의 탓만 했겠지?, 과연 그럴까? 기상전문가들이 나와서 기상이변의 말을 하면 듣지만 여호와의 말씀은 들었는가? 입이 있으면 말 좀 해봐?
성도여러분, 우리는 믿음과 현실사이를 놓고 갈등을 할 때가 많습니다. 믿음과 현실사이는 심한 괴리(disparate)가 있습니다.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 믿음으로 해야 할 것 같은데, 닥친 현실은 영 아닙니다. 믿음대로 할까? 현실을 따를까? 도저히 선택할 수 없어서 목사에게 상담요청을 하면 특별한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기도합시다.’, ‘믿음으로 하십시다’라는 말뿐입니다. 특별한 기대를 하고 갔는데, 겨우 하는 말이 ‘그거야’라고 급 실망합니다. 믿음을 따르자니 해결이 되지 않을 것 같고, 현실을 따르자니 하나님이 뭐라고 하실 것 같고, 이런 상황을 우리가 만날 때가 많습니다.
요셉이 꿈을 꾸었습니다. 두 번에 걸쳐서 꾼 꿈은 참으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모두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꿈 이야기를 형제들에게 들려주었을 때,형제들이 자신을 외면했습니다. 심하게 배척했습니다. 요셉이 오면 피했습니다. 왕따를 시켰습니다. 심지어는 죽음의 구덩이에 빠트리더니 미디안상인들에게 팔았습니다. 애굽에 팔려가서도 갈등의 삶이었습니다. 나는 잘했는데, 억울한 옥살이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옥사했더라는 말이 없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2인자가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요셉을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현실에 어려움을 불러옵니다. 현실에 어려움이 올 때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길 위에 올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현실적인 고난과 영적인 삶과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뭐라고 하십니까? ‘만군의 여호와’라 했습니다. 온 우주의 통치자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전건축을 하라고 독촉하십니까? 이스라엘은 성전중심의 나라입니다. 속죄제를 드려야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각종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성전이 없으면 하나님과의 만남은 단절된 것입니다. 일 년 삼차 남자는 반드시 성전을 찾으라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무엇 때문에 풀려났습니까? 성전공사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 손을 놓고 있으니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말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왜 존재합니까? 사람들이 반드시 해야 할 교회만의 기능이 있습니다. 예배와 진리증거, 전도, 성례시행, 봉사, 질서유지, 구제입니다. 이 기능들은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점합니다. 하지만 교회가 없으면 이 모든 것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습니다. 복의 통로가 막혔기 때문입니다. 갈증이 나서 물을 써야 하는데, 수돗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용담댐에서 우리 집 사이 중 어느 곳이 고장 났기 때문입니다. 고산 가압장이 고장이 났든지, 중간에서 터졌든지 막혔든지 하기 때문에 물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즉 복의 통로가 막히면 복이 오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마음에 있는 교회를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답답한 현실을 타개하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지 않고 화려한 이 세상에 있을지라도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먼저 교회를 세우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성도여러분, 첫 번째 세상은 에덴이 지구의 중심이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잘 되어야 세상이 잘되었습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을 누가 망쳤습니까? 아담이 망쳤습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을 망쳤기 때문에 오늘 세상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의 지구의 중심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경상북도의 면적밖에 되지 않는 유대 땅에 예루살렘은 아주 작았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편안해야 다른 나라들이 평안했습니다. 예루살렘이 고난당했을 때 다른 나라들은 공연히 벼락을 맞았습니다. 예루살렘을 때렸다고 맞고, 예루살렘에게 잘못했다고 맞았습니다.
현재 지구의 중심은 교회입니다. 에덴동산도 아니고, 유대 땅도 아니며, 예루살렘도 아닙니다. 우리가 세우고 있는 교회입니다. 첫 번째 에덴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그 사고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에서 잘못함으로 전 유대가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 대가로 포로생활까지 했습니다. 현재 교회들이 잘못함으로 해서 사회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도 교회를 세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중심입니다. 세상의 중심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가정의 중심입니다. 가정의 중심은 교회입니다. 교회가 평안해야 가정이 평안합니다. 가정이 평안한 것은 교회가 평안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교회를 바르게 세울 때 가정이 밝아집니다. 우리들의 하는 일들이 평안합니다.
사도시대 때는 로마의 박해 때문에 예배를 드릴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카타콤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프랑스의 리용에서는 로마카톨릭의 박해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왈도파들은 동굴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영국에서 화란에서 예배의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마음껏 드리기 위해서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미국은 남북전쟁을 하면서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나라의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일본의 박해로 죽음을 무릅쓰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런 예배가 있는 교회를 우리들이 너무 소홀하게 생각하지 않는가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에 교회를 빨리 세워야 합니다. 나중에 세우자는 핑계를 대지 말고 지금 세웁시다. 1절에서 6절을 다시 한 번 읽읍시다.
1 다리오왕 이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3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4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5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찌니라 6 너희가 많이 뿌릴찌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찌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찌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물망초입니다. 잘 번식합니다.
이름을 잘모릅니다.
패랭이 꽃입니다. 항상 풍성하게 피어있습니다.
국화입니다. 꽃이 피기전에 세번을 잘라주면 풍성해집니다.
작년가을에 심은 양파가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이래보여도 매일 딸기를 조금씩 수확합니다.
도라지입니다. 2년이 되어갑니다.
감자와 완두콩입니다.
강낭콩입니다
고추를 몇포기 심었습니다.
이름을 모르는데 노란꽃이 예쁘게 핍니다.
작약과 백합입니다.
들깨입니다.
옥수수도 심었습니다.
한여름에 즐겨먹는 오이와
방울토마토
대파를 모종한 것입니다.
매발톱입니다.
꽃잔디입니다. 화려하죠.
허브입니다.
이 외에도 호박, 가지 등이 있습니다.
성전건축을 독촉하시는 하나님 (0) | 2012.0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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