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쌓아야 할 성벽
느헤미야8:1-9 / 2023.6.4
지금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1953.7.27). 군사분계선은 휴전선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일본과 군사분계선이 있습니다. 서쪽과 남쪽으로 중국과 군사분계선이 있습니다. 삼국시대에는 세 나라로 갈라졌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입니다. 이때는 군사분계선이 복잡했습니다. 고구려는 북방의 당나라도 지켜야 했습니다. 남쪽으로 신라와 백제도 지켜야 했습니다. 전선이 뒤엉켜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중요했던 요새지가 옛날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radar網으로 감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삼국 시대에는 군사 요새지가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산에 군사기지를 만들어 돌로 성을 쌓았습니다. 사람들이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성터가 오늘까지 남아 있는 남고산성이나 위봉산성을 봐서 알 수 있습니다. 국가가 성을 쌓는 것은 적을 막고 백성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오늘날에는 국경을 computer와 사람들이 병행해서 지키고 있습니다. 성을 쌓거나 computer로 지키는 것은 같습니다. 우리 역시 국가처럼 성벽을 쌓아야 합니다. 그리고 국경을 상시 감시하는 군인들처럼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한순간만 방심하면 우리의 대적 사단이 들어와 신앙에 장애를 발생시켜서 어떻게 하든지 우리 영혼을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첫 번째로 우리가 제일 먼저 쌓아야 할 벽이 있습니다. 1절에서 5절을 보면
1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서기관)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2 일곱째 달 초하루에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 곧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 이르러 3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4 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고 그의 곁 오른쪽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의 왼쪽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5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I. 우리는 말씀의 벽을 쌓아야 합니다(1-5).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7월1일은 나팔절입니다(레23:23-25). 7월10일은 대속죄일입니다(레23:26-32). 7월15일부터 한 주간은 초막절입니다. 초막절이 끝난 제8일에는 거룩한 大會의 날입니다. 이렇게 절기가 정해져 있었지만, 초막절은 여호수아 시대 이후로 거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가나안에 들어온 지 900년 만에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일 년 중 여러 절기가 들어있는 칠월을 지키기 위해서 백성들이 모였습니다. 백성들이 유다의 각 성과 마을에서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은 살 집이 있었습니다. 마을의 성벽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 그들에게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습니다. 에스라를 비롯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던 사람들이 비통해했습니다. 그들이 포로가 된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포로 되었다가 풀려난 서기관이자 제사장인 에스라는 제사장들 가운데 강단에 섰습니다. 서서 하나님의 율법책을 펴들어 읽었습니다. 청중들은 모두 일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이들은 말씀을 알아들을 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학사 에스라가 낭독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성경을 믿지 않았습니다. 법관에게 육법전서가 없이 제멋대로 판결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로인해 그들 생활은 뻔해졌습니다. 세상인지 교회인지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없을 때 위기가 닥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등한히 하십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은 일곱 교회에게 말씀하시고,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들어야 할 말씀은 듣지 않고, 듣지 말아야 할 말에 많이 노출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의 관심사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일들입니다. 이 세상의 일들에 우리의 귀가 너무나 열려 있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말씀에는 심히 둔해졌습니다.
사사기2:10절을 보면 여호와의 백성이 여호와께서 하신 일을 모두 잊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이스라엘은 수많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중에서 좋은 기회를 놓친 때가 여호수아와 갈렙이 죽고 난 후입니다. 그들은 번성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다른 나라의 정복을 받지 않을 기회를 놓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번성하고 복될 기회를 제공하였음에도, 그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래서 국가적인 재앙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고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신문이나 방송의 말들은 100% 믿습니다. 우리가 과거 국민학교 때 기자들을 무관 제왕이라고 배웠습니다. 왕관만 쓰지 않았지, 사실상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옛날에는 기자가 진실만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 믿을만한 방송국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희귀합니다. 많은 신문사가 있습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신문이 진실만(fact)을 쏟아낼까요? 그런데도 언론사들이 쏟아내는 말들은 매우 잘 믿습니다. 말도 안 되는 말들을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믿지 않습니다. 교회에서조차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들을 교회에 자꾸 끌어들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하게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불행입니다. 말씀이 없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고자 하실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말씀이 없을 때 하나님의 뜻을 모릅니다. 말씀이 없을 때 우리는 한낱 종교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결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선진은 성경을 일생의 지침서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으로 회개하도록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하나님의 동산에서 살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함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살길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복 있는 길을 알려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상고해야 합니다. 말씀을 잘 배워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처럼, 베뢰아 사람처럼 말씀을 읽고, 배우고,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살길을 바르게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들이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말씀과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II. 우리는 예배의 벽을 쌓아야 합니다(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에스라는 하나님을 맘껏 송축했습니다. 위대하신 여호와를 찬양하였습니다. 백성들은 ‘아멘,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백성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에스라가 광대하신 엘로힘 여호와를 송축했습니다. ‘송축하다’(바라크)의 의미를 보면 무릎을 꿇어서 받는 복과 관계가 있습니다. 즉 무릎을 꿇는 것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곧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나 자신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무릎을 꿇는 것, 여호와를 경배하는 것’은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자기가 받은 복에 대하여 여호와를 찬양함으로 복을 받게 됩니다. 시편28:6-7에서 다윗은 여호와를 매일 찬송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찬송이 없을 때 사탄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챕니다. 세상의 노래는 하나님을 위한 찬양이 아닙니다. 모두 육신과 인생의 허무함을 찬양합니다. 이 세상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모두 인간을 찬양하고, 물질을 찬양합니다. 결과적으로 사단이 기뻐하는 노래들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염려하는 노래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찬송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면 하나님은 두레박 안에 복을 채워 돌려보내십니다. 찬송은 우리 즐거움의 시작이요, 줄거리이며, 완성입니다. 찬송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기쁨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의 찬송은 가치 있는 찬송입니다. 그것을 보고 간증이 되어 내 주위의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순서 중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묵상기도, 찬송, 기도, 헌금, 성경봉독, 말씀선포, 찬양, 축도를 하면서 하나님과 우리가 communication을 합니다. 예배로 우리 사정을 하나님께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정을 우리에게 역시 알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어떤 의식을 치르고 만족하는 것이 예배가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순서 하나하나마다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생활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제대로 예배를 드린 예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400년 중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습니다. 대신 우상숭배와 이교의 신들은 사력을 다해 섬겼습니다. 가나안의 신 바알과 아스다롯을 매우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니었습니다. 항상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예배하고, 바알도 섬겼습니다. 복이 두 곳에서 올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온 것은 저주였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신들은 사람들이 만든 헛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소홀히 드리거나 아무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레위기10:1-2절을 보면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의 불에 의해 살라졌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불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라, 다단, 아비람, 온은 제사장 없이 하나님 앞에서 분향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때문에 지진이 일어나 땅이 그들을 삼켰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것을 그 첫째가는 의무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신대로 예배해야 합니다. 모든 예배는 하나님께만 드려져야 합니다. 예배는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서만 드려져야 합니다. 예배의 기도는
‘성자의 이름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려 분별과 경외심과 겸손과 열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기도는 합당한 것들과, 모든 종류의 생존하는 사람들이나, 장차 생존하게 될 자들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흠 없는 설교와 하나님께 순종하여 사려 분별과 믿음과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정성껏 들어야 합니다. 마음에 은혜로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예배는 성령과 진리로 드리되 경솔하게 행하거나 고의적으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자녀 됨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예배를 드립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읍시다.
우리는 말씀의 벽과 예배의 벽을 쌓아야 할 뿐만 아니라
III. 우리는 회개의 벽을 쌓아야 합니다(7-9).
7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이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토라)을 듣고 울었습니다. 해석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비탄에 잠겼습니다. 제사장이며 서기관인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했습니다. 그리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 말씀을 바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말씀의 뜻을 해석하여 백성들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엉엉 울었습니다. 해석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백성들이 모두 비탄에 잠겼습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심히 알고 슬퍼했습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살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신년인 칠월이 되자 백성들은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나팔을 불어 성회를 공포했습니다. 초막절과 대속죄의 날이기 때문에 백성들은 수문 앞 광장 곧 성전 터의 남동쪽에 모였습니다. 수문 앞에서 이스라엘은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돌이켜보니 과거가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바알을 섬겼던 과거가 원망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것에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수문 앞 광장에 모인 이스라엘은 대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이전에 살았던 삶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삶입니다. 회개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이전의 삶과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회개는 그리스도인의 첫걸음입니다. 회개에는 분리될 수 없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회개와 신앙입니다. 회개란 불신자들이 죄로부터 돌이키는 것입니다. 신앙은 회개한 신자들이 그리스도에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회심은 하나님께로 자유롭게 전향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권세에 있다가 복된 하나님께로 귀를 기울이며 얼굴을 돌리는 것입니다. 모세나 여호수아, 士師時代에 이스라엘 백성은 자주 여호와를 배반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한 후에야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유다 왕국에는 히스기야와 요시야 시대에 국가적 회심이 있었습니다. 요나의 전도 때문에 니느웨 사람들은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습니다(욘3:10). 오늘 우리도 가슴을 쳐야 합니다. 가슴을 치고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없습니다. 회개하는 심령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개시킬 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복 주시려고 회개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마음에 회개를 거부하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회개하지 않는 마음은 강퍅한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참으로 불행한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소유하고 있다면 빨리 돌이켜야 합니다. 바로는 모세가 하나님의 재앙을 내려도 그 마음에 전혀 동요가 없었습니다. 나일 강이 피로 변해도 마음이 돌같이 강퍅했습니다. 개구리 해병대가 나일 강으로부터 상륙해도, 메뚜기 공격이 있어도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바로는 그 자신까지 멸망 당해야 했습니다. 창세기 42장을 보면 요셉에게는 양식이 풍부하였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예전의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요셉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죽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풍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으면 혜택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풍부한데 회개하지 않아서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진정한 회개는 우리를 살립니다. 우리 가족이 모두 회개할 때 이미 번영이 우리 문 앞에 도착하였음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이 모두 회개할 때 이미 부흥은 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내가 회개할 때 어둠의 세력이 물러갑니다. 그리고 빛이 나를 비추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일어납니다. 바르게 해석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살길이 열리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높게 쌓여 있는 허물어야 할 벽이 많이 있습니다. 내자신의 무능함을 허물어야 합니다. 내 자신의 견고한 자만심을 허물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쓸데없는 자존심을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쌓아야 할 신앙의 성벽이 많습니다. 허물어야 할 벽들을 허물지 못할 때 신앙이 점점 쇠퇴해 갑니다. 쌓아야 할 벽들을 우리가 쌓지 못할 때 영육이 점점 더 병들어 갑니다.
Closing 느헤미야가 바벨론에서 돌아와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여 대적들을 막아낸 것처럼 우리도 신앙의 벽들을 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의 성벽을 쌓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의 성벽을 쌓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찬양의 성벽을 쌓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개의 성벽을 쌓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성벽 쌓기를 결단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