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
레위기 1.1,2
우리나라는 미국의 募兵制와 달리 병역의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20세 이상이 되면 신체검사를 하고 그에 따라 정한 날짜에 국가에서 부르고 있습니다. 사실 한 사람을 나라에서 부르려면 엄청난 경비가 듭니다. 먹이고 입히고 재워야 합니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고 수십만 명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르고 있습니다. 나라의 안녕을 위해서입니다. 훈련을 시켜서 나라를 지키게 하려고 부르는 것입니다. 직장이든지 사업장이든지 국가든지 사람을 부르는 데는 뚜렷한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부름받은 사람들을 사용하려고 부르지만, 하나님은 부름 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복 받게 하려고 부르십니다.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11).
하나님께서 성소에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전에도 모세를 수시로 부르셨습니다. 따라서 이 부르심은 공적인 문제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대표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대화의 창구를 모세로 정하였습니다. 즉 대화의 채널이 이스라엘에 여럿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세 하나로 정하셨습니다. 모세가 위대해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모세는 위대하지도 않습니다. 깨끗하지도 않습니다. 이전에 애굽에 있을 땐 살인까지 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깨끗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이 말씀은 사람이 그 앞에 설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대면하셨습니다(민12:8).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앞으로 나오겠지만 회막에서 정한 불을 쓰지 앉고 다른 불을 붙였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죽는 일이 나옵니다. 이러한 모든 일은 거룩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성경이 누누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여호와 앞에 수시로 섰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사람들이 어떻게 설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초청하심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 초청에 사람이 응하면 됩니다. 하나님 앞에 서려면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데 이 자격증을 하나님께 주십니다.
성도란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을 얻은 사람입니다. 즉 예수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을 성도라 말합니다. 성도 역시, 이전에는 사망이 함께 하였습니다.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상황이 바뀌어졌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것입니다. 이전에는 그 사람을 사망이 주관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사망이 그를 주관하지 못합니다. 이전에 우리를 세상이 주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우리를 주관한지 못합니다.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인이 바뀐 우리를 부르십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바뀐 우리들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서너 가지가 있다고 존 머레이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성취하도록 부름 받은 부르심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고전7:20.24).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교회에서 특별한 직분으로의 부르심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롬1:1, 고전1:1). 복음과 관련해서 죄인들에 대한 차별 없는 회개와 믿음의 호소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지칭된다(잠8:4, 마 22:14).
Millard J. Erickson은 하나님의 부르심 중 특별소명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특별소명(special calling)이란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에게 특별히 효과적인 방법으로 역사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회개와 신앙으로 응답하도록 하시며 그들이 확실히 그렇게 역사 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별한 소명이 주어지는 상황은 매우 광범위하게 다양하다. 우리는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 가운데 주요한 인물들이 될 사람들에게 특별한 소명을 베푸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마4:18-22; 막1:16-20).
박형룡박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말하기를 “성경은 죄인을 인도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神的使役의 시작을 소명(vocation or calling)으로 제시한다.”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목적이 있는 부르심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범죄 한 아담을 부르심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은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국가에서 군인들을 부르심같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복을 주시려는 부르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은 은혜로운 부르심입니다. 우리를 하나님나라로 초대하는 부르심입니다. 우리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모두 멸망하기 때문에 부르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엡4:1-3). 이 합당한 삶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분이 누구입니까?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주만물을 누구 때문에 창조하셨습니까? 우리 때문에 우주만물을 지으셨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복을 주시려고 부르셨습니다(신 28:1-7).
11.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시는 하나님(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하셨습니다. 예물(코르반)이란 하나님께 드려진 것을 말합니다. 이 예물은 “희생으로 드려질”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또는 성소에서 사용될 것이라는 의미에서 하나님께 “바치는 헌물”을 의미합니다. 왜 갑자기 하나님께서 예물의 이야기를 하십니까? 우리는 예물하면 생각하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람들은 드린다는 것의 밑바닥에는 자기의 희생을 생각합니다. 어딘가 물질에 손해를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짙게 나타냅니다. 이것이 우리의 좁은 생각이며 좁은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물을 가져오려거든 하면서 형식을 주셨습니다. 제물의 종류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르게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예물은 내가 하나님께 선물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물을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레1-7장). 하나님이 지정한 장소로 가져와서 예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사람은 에덴에서 죄를 지은 이후로 하나님께 예물(제사)을 드리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영원히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죽음을 죽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무작정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 대신 죽음을 가져가야 합니다. 바로 그 죽음이 제물입니다. 궁극적으로는 그 제물이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의 열납은 하나님의 표준에 부합하여야 합니다. 희생 제사용으로 구별해 놓은 산 제물에 안수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헌물자의 의향뿐만 아니라 죄까지 그 제물에 전가시켰기 때문입니다. 즉 여기에서 예물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입니다. 드릴 수도 있고 드리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드려야 하는 의무사항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죄를 용서받아야할 사람들입니다. 죄를 용서받으려면 죄 용서함의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즉 그리스도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야 안전합니다.
죄를 용서받을 대상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누구든지’입니다. 그가 지혜자든지 우매한 자든지 인종차별이 없이 누구든지 입니다. 사람이면 모두 해당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설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신분상 제한도 없습니다. 다만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믿으면 됩니다. 호흡이 붙어 있는 한 소망이 있습니다. 하지만 호흡이 끊어지기 전에 해야 합니다. 죽은 제물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살아 있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롬3:10). 죄인은 죽어야 합니다(롬 6:23). 죽되 영원히 죽어야 합니다(마25:41). 그런데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할 길이 열린 것입니다.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 예물은 제물입니다. 우리 대신 죽는 제물입니다. 우리의 죄를 뒤집어쓰고 죽은 소입니다. 또는 양입니다. 이 제물 때문에 우리가 죽지 않습니다. 이 양과 소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대신 죽었습니다. 우리를 살리려고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을 인간에게 소개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십자가에 대학 죽으심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끄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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