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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11:1-9

 

노벨상은 평생에 한 번 타기도 어려운 상입니다. 우리나라는 김대중 대통령이 탄 노벨평화상(2000)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한 집에서 두 번이나 노벨상을 탄 사람이 있습니다. 퀴리부부(Maria Skłodowska-Curie/폴란드 바르샤바/1867.11.7.-1934.7.4.)입니다. 이들이 1895년 결혼식을 올렸을 때 독일의 빌헬름 렌트겐이 X선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1896년에는 프랑스 물리학자 앙리 베크렐이 방사능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방사능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는 밝히지 못했습니다. Curie부인은 이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를 했습니다. 그리하여 우라늄보다 더 활동적인 다른 물질이 있어 거기에서 에너지가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18986월 말에 두 사람은 우라늄보다 방사능 강도가 330배나 높은 새 원소를 발견했습니다. 마리아는 자기의 조국 폴란드의 이름을 따서 Polonium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Polonium을 제거했는데도 또 강한 방사능이 남아 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두 사람은 다시 실험을 거듭하여 마침내 우라늄의 900 배에 달하는 방사능을 함유한 원소의 결정을 추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우리는 방사능을 지닌 물질에는 새 원소가 함유되어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 새 원소에 Radium이란 이름을 붙일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라고 학회에 제출했습니다. Curie 부부가 제출한 보고서를 받은 학회는 발각 뒤집혔습니다. 두 사람은 Radium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4년간 우라늄 광석을 20킬로그램씩 꺼내어 체질을 해서 불순물을 제거한 다음 분쇄하였습니다. 진한 황산으로 졸여서 침전시켜 결정을 만드는 일을 수십 수백 번 반복했습니다. 그리하여 1902년 두 사람은 순수한 Radium 결정을 추출해냈습니다. 4년의 세월을 바쳐 8톤의 광석에서 추출한 Radium의 양은 0.1이었습니다. 그의 34세 때였습니다.

1903년 퀴리 부인은 지금까지의 연구를 총괄하여방사성 물질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을 파리 대학에 제출했습니다. 파리 대학은 그에게 이학박사 학위를 수여했습니다. 그해 11월 스웨덴에서 퀴리 부부와 베크렐에게 노벨 물리학상을 수여했습니다. 노벨상이 생긴 지 3년째 되는 해였습니다. 퀴리 부인은 여성으로서 노벨상을 받은 최초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퀴리 부부는 수상식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906년에 피에르 퀴리가 마차에 치여 사망하였습니다. 그러나 퀴리부인은 남편 대신 파리 대학 이학부 물리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여성으로서 이 학교 강단에 선 사람은 그녀가 처음이었고 그의 나이 39세 때의 일이었습니다. 방사성 원소 Radium의 발견으로 원자력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퀴리 부인은 1911년에 또 노벨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퀴리부부는 8000의 광석에서 0.1의 라듐을 추출했습니다. 1/8000만의 확률입니다. 일반인으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보통 1차원 2차원 3차원이라고 말합니다. 1차원은 점으로 이어진 선의 세계입니다. 2차원은 선과 선이 만나는 면의 세계입니다. 3차원은 면과 면이 만나 높이가 등장하는 입체의 세계입니다. 여기에 차원을 하나 더 높인 4차원이 되면 시간 속을 유영하는 세계가 됩니다. 수학에서 사용하는 좌표식으로 표현하면 1차원은 [X], 2차원은 [X, Y], 3차원은 [X, Y, Z], 4차원은 [X, Y, Z, T]입니다. [X]는 가로, [Y]는 세로, [Z]는 높이, [T]는 시간입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것이 소속되어 있는 차원이 따로 있습니다. 모든 무생물, 물체, 식물 등 의식작용을 하지 못하는 것은 일차원적 존재입니다. 동물 등은 이차원적 존재입니다. 단지 동물적인 충동에서만 사는 사람들은 이차원적 존재입니다. 삼차원적 존재는 주체의식을 가지고 자유와 도덕을 알고 어떤 이상을 가지고 그것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하는 세계는 이 모든 차원을 넘는 고차원적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차원이란 앞서 말한 모든 차원을 초월해 있는 차원입니다. 모든 차원을 포함하고 그것을 지배하고 그것의 가능성의 근거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인간은 1차원에서부터 고차원의 세계까지는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차원에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차원에는 하나님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 그 신비를 알 수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엄청난 상황으로 떨어진 욥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황금률로 생각했던 선한 사람은 흥하고 악한 사람은 망한다는 것이 그대로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욥은 고민했습니다. 죄를 범하지 않았는데 왜 내가 이러한 처참한 고난을 당해야 하느냐? 도무지 그 뜻을 알 수 없었습니다.

 

욥기1:1-5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2 그 소생은 남자가 일곱이요 여자가 셋이며 3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4 그 아들들이 자기 생일이면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 누이 셋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므로 5 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b/Yai/’iyhôb 괴롭힘을 받는, 고통당하는이란 뜻입니다. 욥은 아람의 자손, 셈의 아들로 우스 땅에 거주하였습니다. 아마도 아브라함과 동시대인이었으며, 240세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성경은 욥을 소개할 때 먼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라고 소개합니다. 순전!T;/thâm하다는 말은 완벽하다는 말입니다. 정직rv;y:/yâshâr하다는 것은 올바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악에서 떠나 빗나가지 않는 사람으로 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욥은 자녀가 열 명이었습니다. 아들 일곱에 딸 셋. 양이 7000마리. 낙타가 3000마리. 소가 1000마리. 암나귀가 500마리. 그를 섬기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巨富가 겸손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죄에서 피하려고 했습니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잔치가 끝나면 반드시 하나님께 자녀들 숫자대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혹 잔치 중에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실수하지나 않았을까? 하고 꼭 예배를 드렸습니다. 욥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전무후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루아침에 날 거지가 되었습니다. 일곱 자녀가 몽땅 죽었습니다. 거기에 욥마저 살아있으나 죽은 것 같았습니다. 죽을병까지 들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힘이 들고 괴롭겠습니까? 순간에 전 재산과 아들을 잃고 급기야 몸에 악창으로 인하여 재에 앉아서 깨진 기왓장으로 몸을 긁고 있는 참상이었습니다. 이것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냥 그런가보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중에서 어떤 한 가지라도 당하면 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욥이 거의 죽게 생겼다고 소문을 듣자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죽기 전에 얼굴이라도 한번 봐야겠다고 친구들이 서로 약속하고 찾아왔습니다.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소발, 부스 사람 엘리후가 문병 차 찾아왔습니다. 막상 욥을 만나니 소문보다 아주 심각했습니다. 어쩌다가 이 지경을 당했을까? 아마도 우리와 욥이 모르는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차례차례 욥의 처지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중에 나아마 사람 소발이 욥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이렇게 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아무래도 하나님께 네가 잘못한 점이 있지 않을까? 라고 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나 네가 어찌 알겠느냐 그 도량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욥이 품었던 생각을 완전히 깨우쳐 주는 말입니다. 물론, 소발은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함께 좋은 인물로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욥의 상황을 모르고 비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욥에게 한 이 말이 중요한 말입니다. 욥이 미처 몰라서 고민 하고 있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에 욥은 무슨 말이냐고 했습니다. 나도 그런 것쯤은 다 알고 있다고 합니다(12:13-13:2).

 

13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모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나니 14 그가 헐으신즉 다시 세울 수 없고 사람을 가두신즉 놓이지 못하느니라 15 그가 물을 그치게 하신즉 곧 마르고 물을 내신즉 곧 땅을 뒤집나니 16 능력과 지혜가 그에게 있고 속은 자와 속이는 자가 다 그에게 속하였으므로 17 모사를 벌거벗겨 끌어가시며 재판장으로 어리석은 자가 되게 하시며 18 열왕의 맨 것을 풀어 그들의 허리를 동이시며 19 제사장들을 벌거벗겨 끌어가시고 권력이 있는 자를 넘어뜨리시며 20 충성된 자의 말을 없이 하시며 늙은 자의 지식을 빼앗으시며 21 방백들에게 멸시를 쏟으시며 강한 자의 띠를 푸시며 22 어두운 가운데서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며 죽음의 그늘을 광명한데로 나오게 하시며 23 만국을 커지게도 하시고 다시 멸하기도 하시며 열국으로 광대하게도 하시고 다시 사로잡히게도 하시며 24 만민의 두목들의 총명을 빼앗으시고 그들을 길 없는 거친 들로 유리하게 하시며 25 빛 없이 캄캄한데를 더듬게 하시며 취한 사람 같이 비틀거리게 하시느니라 13:1 나의 눈이 이것을 다 보았고 나의 귀가 이것을 듣고 통달하였느니라 2 너희 아는 것을 나도 아노니 너희만 못한 내가 아니니라

 

욥은 이렇게 알고 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 여호와께서 나에게 얼굴을 돌이키시지 않는가(13:24,25) 하는 것입니다. 욥이 무엇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까? 욥이 잘못 생각한 것이 무엇입니까? 욥의 잘못은 인간의 차원으로 하나님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을 판단하려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오묘를 인간의 지혜로 측량하려 한 것입니다. 오묘란 말은 하나님의 깊은 일입니다. 깊은 곳에 있는 하나님의 진리는 사람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1짜리 계량컵으로 바닷물을 측량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의 조그만 망원경으로 온 우주를 측량했다고 발표를 하고 있는데 웃기는 말입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지름6.5m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우주에서는 점 하나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우주창조의 비밀을 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니들이 천체를 측량한들 정확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런 어리석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전능자를 어찌 알 수 있으랴?사람이 전능자의 지혜의 영역에 도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전능자가 소유하고 사용하는 지혜의 범위를 인간은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지혜를 자꾸 알려고 합니다. 상대적 존재요 무능자인 인간은 전능자인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욥은 이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려고 하다가 안 되니까 불평을 했습니다. 하늘보다 높은 하나님에게 인간의 지혜가 어떻게 도달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소발도 여기에서 하나님의 존재 위치를 잘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보다 높은 곳에 계십니다. 그런데 하늘은 끝이 없습니다. 하늘보다 높은 곳에 계십니다. 하늘이 얼마나 높고 방대한가? 명왕성 탐사가 주목적인 뉴호라이즌스호는 20061월에 발사했습니다. 13년 뒤인 20191월에 명왕성보다 16km '울티마 툴레'라는 소행성 3500km를 근접 비행했다고 합니다. 이 거리는 지구에서 약 65km의 거리라고 합니다. 이 거리를 13년이나 걸렸습니다. 명왕성은 겨우 태양계 끝에 있는 별입니다. 우주의 끝에 겨우 점 하나를 찍는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가도 끝이 없는 것이 하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주가 그의 손안에 있습니다.

 

욥은 그러한 먼 곳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고 불평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음부보다 더 깊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음부를 이 지상에서 제일 깊은 곳으로 생각했습니다. 산사람은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지혜는 그러한 음부보다도 더 깊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욥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곳에 못 간다고 불평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량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습니다. 도량이란 하나님의 지혜의 범위라는 뜻입니다. 땅과 바다로 비교한 것은 도저히 측량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점에 있어서도 욥은 자기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까지도 받아내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잘 안 된다고 불평을 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욥의 잘못은 자기 능력의 한계선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차원에 속하는 일을 인간의 차원에서 풀어보려고 한데 있습니다. 그 결과는 철저하게 실패였습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L'existence précède l'essence)고 한 실존주의자 Jean-Paul Charles Aymard Sartre(1905.6.21.-1980.4.15.)은 인간은 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해서 계획이 망가진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계획적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오늘도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친구한테서 갑자기 전화가 오거나 손님이 불쑥 찾아왔다. 아니면 급한 볼일이 생겼다, 가족 혹은 내가 병에 걸리거나 다쳤다.” 살다 보면 이렇듯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늘 발생해서 열심히 세워둔 인생의 계획표를 무참하게 망가뜨립니다. 이런 식이라면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정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인생의 계획을 세울 수 없습니다. 이렇게 초조해하는 사람이 분명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계획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정말로 좋은 인생일까요? 계획적으로 살지 못하는 자신을 못난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전에 계획대로 살아가는 것이 본디 가능한 일인가,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좋은 인생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내일을 알 수 없는 지금을 확신하며 살고 있는 아이러니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중국의 내지 선교사인 Hudson Taylor는 우여곡절 끝에 중국으로 들어갑니다. 중국으로 떠나기 전 선교를 위해 병원의 의과대학 실습생으로 들어가 의학을 공부하고서 21살 때 상하이로 가는 배에 타고 중국으로 떠납니다. 도착한 상하이는 전쟁으로 인해 위험한 도시였습니다. 방도 구하지 못한 채 한참을 지나야 했습니다. 겨우 방을 얻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전도는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2년 정도가 지나자 상하이 주변을 순회하며 전도하기 시작합니다. 파송한 중국선교회가 재정적으로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해 상하이를 떠나야 할 처지였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인과 완전히 동일한 옷차림을 하고 내륙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내륙선교를 하면서 허드슨 테일러의 생애는 한 번도 평온한 적이 없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큰 딸을 잃었습니다. 광저우 사건으로 선교지로 활용하던 집들이 불에 탑니다. 또 얼마 후에 갓 태어난 아들과 아내를 잃었습니다. 그녀의 나이 겨우 33세였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허드슨 테일러는 다리가 마비되고 결국 다시 영국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러나 비록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지만 그곳에서도 중국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후원자를 모집합니다. 몸이 회복되자 다시 중국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실존주의자 Sartre나 신앙의 사람 Hudson Taylor가 같은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해서 고난이 비껴가거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결과를 뒤집을 수는 없습니다. 물론 기도와 믿음으로 은혜를 바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이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며 살지는 않았습니다.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나는 양탄자를 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위기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면서 위기를 타개하며 살았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욥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범하고 있는 과오가 무엇입니까? 왜 나만 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해야 하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수시로 범할 수 있는 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끝이 없으신 무한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요새 같은 때 200살을 살았다고 하면 big-News입니다. 그런데 눈 씻고 볼 래야 없습니다. 무한하다는 것은 이것을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 섭리나 개개인에 대한 지배에 대하여 선의 뜻을 추구하기보다 자기가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 해놓고는,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억지로 해석합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면 전능자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들에 의하면 전능자는 신비적인 체험을 통해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비적인 체험이라는 것은 매우 주관적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자기의 마음에서 그려보는 환상까지도 예수님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전능자를 알 수 있는 유일의 길은 전능자의 차원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차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비로소 그것이 가능합니다. 성서해석에 있어서 주관적 해석은 제이계명을 범하게 됩니다. 우리가 올바른 성도가 되려면 자기 스스로를 좀 더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지배하도록 합시다. 하나님의 차원에 속한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써 풀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풀립니다. 욥의 고난은 왜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욥을 자랑하고자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의인 욥을 보았느냐? 얼마나 신실하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 욥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다. 이에 사단이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욥을 밟아버리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욥을 믿고 계셨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고난도 욥과 같은 고난일 수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시험해도 내 사람은 절대 견딜걸. 하시는 하나님의 부응하심에서 떠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Closing 욥기는 다음을 증명하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사람을 어렵게 하실 수 있다는 것; 선은 비이기적이고 공평무사할 것이라는 것, 의인은 아무런 대가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으며, 심지어 그가 원수가 될지라도 그 분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삶의 고통스런 수수께끼는 복된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 의인의 고난은 반드시 그 자신의 죄 때문인 것은 아니라는 것, 이생의 불평등은 다가올 생에서 시정될 것이라는 것, 정의는 어떤 식으로든, 언젠가, 어디선가 실현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에 관한 책이며, 욥기의 위대한 주제는 십자가의 신비입니다. 의인의 고난이 어떻게 하나님의 공의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욥은 의인, 나라, 교회, 그리스도자신에 대한 표상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욥에게서 고통당하는 의인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현명한 목적을 위해 그를 상하게 하면서까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욥을 그를 죄인으로 간주하는 자들의 판결을 뒤집어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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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1:6-12

 

인간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공중의 새들처럼 날 수 없습니다. 땅위의 짐승들처럼 빠르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보다 빠르게 날 수 있습니다. 짐승들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받은 은혜입니다. 만일에 사람들이 스스로 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스스로 짐승처럼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면 현재 우리들이 쓰고 있는 각종 교통수단이 지금보다 더디게 나오거나 아예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주심으로 날수 없고, 빠르지 못하나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천상에서 하시는 일들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시지 않은 이상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News도 보도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볼 수 없습니다. 인간들은 머리가 좋다고 하지만 초월할 수 없기에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처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존재들은 다릅니다. 공간을 넘나들 수 있습니다. 시간도 넘나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초월하는 존재는 사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욥기서의 저자(writer)는 욥을 $W[/‛ūtz우스 땅에 사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우스의 정확한 위치는 모릅니다. 추정만 할 뿐입니다. 다메섹남부 하우란을 우스라고 하고, 어떤 학자들은 에돔과 북아라비아 사이의 지역으로 추정합니다. 남으로 아랍과 북으로 아람지경을 포함하는 지역으로 농경과 목축업을 충분하게 할 정도로 비옥한 땅이라고 했습니다.

욥은 족장시대 사람입니다. 노아, 다니엘과 함께 구약시대를 대표하는 의인입니다. 욥은 시련과 인내의 대명사로 간주합니다. 그러한 욥의 상황이, 아주 좋은 상황이 1절에서 5절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욥에게 갑자기 먹구름이 끼기 시작합니다. 6절에서 8절을 보면 어느 날 천상에서 이상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7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8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욥의 고난은 욥을 사단에게 자랑하시는 여호와로 인해서 발단되었습니다(6-8).

 

욥기저자는 우리를 땅에서 하늘무대로 옮겨놓습니다. 하늘은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의 보이지 않는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여호와께서 회의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 아래 있는 하늘존재들을 불러 모으셨습니다. 하늘궁정이나 하늘 보좌회의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22:19 미가야가 가로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시편82:1 하나님이 하나님의 회 가운데 서시며 재판장들 중에서 판단하시되

여호와 앞에 모여 있는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립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천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위해서 천사들을 부리십니다. 이상하게도 사단도 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사실 회의라고 할 수 없습니다. 회의라는 것은 어떤 문제를 놓고서 논의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여호와하나님께서는 욥을 좋게 평가하셨습니다. 사단에게 욥을 평가하신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 곧 천사와 사단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 하나님, 천사, 마귀입니다. 천사들은 비물질적, 무형적인 존재들입니다. 천사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영원히 없어지지 않으며,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천사들의 능력은 하나님에 의해 허용되거나 명령적입니다. 요셉이 마리아에게 수태되었음을 알고 가만히 끊고자 했을 때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알려준 천사는 가브리엘이었습니다. 이처럼 거룩한 천사들은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합니다. 특별히 구원의 후사들을 돕는 일을 합니다. 천사들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고 항상 그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자기들에게 할당된 어떤 봉사들을 수행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은 시험단계를 거치는 동안 자기들의 처음지위를 일부는 지켰지만, 일부는 지키지 못했습니다. 범죄 한 천사들입니다. 이사야14:12-15을 보면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15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밑에 빠치우리로다

 

계명성/lleyhe/hēllēl은 금성입니다. 금성은 태양보다 먼저 뜹니다. 그래서 마치 태양의 원천인양 행세합니다.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라 불렀습니다. 태양이 아닌데 태양의 행세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닌데 하나님의 행세를 합니다. 마귀/Lucifer가 교만하여 자기가 하나님이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사탄은 자신의 졸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사가 타락했을 때 함께 타락한 악령들입니다. 이것들이 무수히 많아서 세상의 권세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심판하실 때까지입니다. 사람들을 귀신들리게 하고 갖은 못된 행위들을 이 악령들이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통제 안에서 행해집니다. 신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내 종 욥을 자세히 살펴보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냥 욥이라 하지 않고 내 종 욥이라 했습니다. 일단 욥은 하나님께 속해서 하나님의 관리를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 혜택을 받습니다. 그 첫 번째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이 세상을 하직했을 때 무덤에 비문을 어떻게 작성합니까? 모두 부활에 대한 문구입니다. 영원히 살고,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경륜(consilium creationis)을 성경에 반포하셨습니다. 창조경륜은 창조계획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가지시고 그들 가운데 거하시며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목적으로 사람을 그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사람과 언약을 맺어 자기의 백성삼기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곧 인격체로 지으셨습니다. 사람으로 존엄성을 갖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백성을 가지시려고 사람을 남녀로 지으셨습니다(11:27). 그리고 둘을 혼인시켜 많은 백성을 생산하게 하셨습니다(2:22-24). 창조주께서는 사람과 언약을 맺어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셔서 창조주 하나님만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이 언약체결로 아담을 창조세계의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으로 세우셨습니다. 언약은 사람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는 약정입니다.

창조주께서는 선악계명으로 아담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2:17). 善惡誡命선악계명은 창조주만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을 선으로, 하나님 섬김을 거부하는 것을 악으로 정한 계명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면 그것이 선이어서 생명에 이릅니다. 하나님 섬김을 거부하면 그것이 악이어서 죽음에 이르도록 정하셨습니다. 선악계명은 하나님을 섬기느냐, 섬기지 않느냐를 죽고 사는 법으로 정한 계명입니다.

창조주께서는 아담과 언약을 체결하실 때 하나님의 명령으로 체결되었지만 쌍무관계(雙務關係)의 언약입니다. 인간언약 당사자가 언약을 파기했을 경우나 하나님은 언약을 성취하도록 하는 책임을 자신에게 지우셨습니다. 언약을 이루시므로 자기 백성을 가지시고 그 백성 가운데 거하사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는 것을 기어이 성취하기로 하셨습니다. 이렇게 아담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자기의 지식의 영역을 더욱 넓혀 나갔습니다. 그런 중에 유혹이 왔습니다. 뜻밖에 하나님의 선한 창조세계에 반역이 들어왔습니다. 유혹자 사단이 나타나 뜻하지 않은 결정을 하도록 촉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악결정에 매여서 종처럼 살지 말고 선악결정을 스스로 하라고 촉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처럼 살라고 유혹하였습니다(3:1-5). 첫 인류는 피조물인 유혹자의 말을 진리라고 판정하여 하나님을 반역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의 결정을 실행하였습니다. 첫 인류가 선악과를 먹어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하였습니다. 창조주의 인격의 엄위를 완전히 짓밟았습니다. 창조세계에 반역이 확실하게 수행되었습니다. 따라서 창조세계의 질서가 모두 바뀌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자들에게 죽음을 선언하셨습니다. 온 땅에도 죽음과 저주를 선언하셨습니다. 저주가 선언되므로 땅을 싸고 있는 모든 생활공간들의 상태와 질서가 바뀌었습니다. 사물들도 본래의 기능을 다 발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범죄자들에게 구원경륜을 펴셨습니다. 창조주께서는 사람의 반역을 무효화하여 범죄자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시키기로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자기의 창조경륜을 이루기로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은 매우 길었습니다. 창세기3:15의 약속 이후 요한복음3:16까지 긴 기간 동안 구원 작정의 성취를 준비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내종이라 하셨습니다. 욥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냐는 것입니다. 완벽하고, 올바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을 보았느냐고 하셨습니다. 내가 이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단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9-12을 보면

 

욥을 치려하는 사단이 행동개시를 했습니다(9-12).

 

9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11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1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사단은 사람들의 죄를 들추어내는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낱낱이 들추어내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그 들추어낸 죄를 하나님께 탄핵 합니다(3:1,삼하19:22-23). 사단은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욥의 비난거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만약 사단이 욥을 주의해서 보았다면 하나님 말씀대로 욥의 참됨을 고백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그것을 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지 욥을 물고 늘어지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하여 욥의 경건이 순수한지를 문제 삼았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보상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보상도 있을 동안에만 경건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까닭 없이는 경건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보상의 가망이 없으면 당장 하나님께 불만을 표출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단은 욥이 옛 지혜론의 사고도식에 직면하여 행동할 것이라 했습니다. 옛 지혜론은 사람의 운명은 행동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서를 지키는 영리한 사람은 잘될 것이고, 사람이 불행에 빠진다면 자기 탓이라는 것입니다. 사단은 욥과 아울러 인간 자체를 시험대 위에 올린 것입니다. 사단은 의기양양하게 주장했습니다. 사단은 욥이 하나님께 불평불만 할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로써 욥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정치(政治,politics)는 가치의 권위적 배분입니다(David Easton). 정치는 국가의 운영 또는 이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입니다(막스 베버). ‘정치’(政治)에서 ’()은 바르다의 ’()과 일을 하다 또는 회초리로 치다의 의미인 (등글월문=)이 합쳐서 이루어진 말입니다. 바르게 하기 위해 일을 하거나 회초리로 치는 것입니다. ()는 물(=)과 건축물()이 합하여 이루어진 말입니다. 이것은 물()의 넘침에 의한 피해를 잘 수습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치(政治)는 자신을 닦은 후 남을 돕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이 말의 뜻을 알고나 정치하는지 매우매우 의문스럽습니다. 정치인들은 타 정당이 잘하면 잘한다고 칭찬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물고 뜯습니다. 잘못된 정치인들의 생태가 마귀와 대동소이합니다.

 

요한계시록12:10을 보면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사단은 하나님 앞에서 밤낮으로 하나님의 종들을 고소하는 참소자입니다. 사단은 최종적으로 패망되고 정죄되지 않는 한, 성도들을 참소하는 일을 그치지 않습니다. 사단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모든 경건의 존재사실과 그것이 계속될 가능성을 부인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정당화시키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허락하셨습니다. 피조물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자유로운 발전의 법칙아래 놓여 있기에, 영들의 세계 안에 있는 악()도 영적능력이 나타나 그것을 반대하고 그 능력에 의해 여지껏 갈팡질팡하던 선과 악의 원리들 간의 투쟁이 결정 날 때까지는 자유롭게 유지되고 스스로 확대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장면에 대한 시적 설명입니다. 사단과 그의 무리들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사탄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날이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하나님의 허락 하에 성도들을 참소하고 괴롭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신비롭게 생각되는 것은 사단은 욥기에서 심판을 공평무사하게 집행하는 자, 그리고 하나님의 위임을 받아 도덕을 감독하는 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이 肯定하는 것을 否認합니다. 자기사랑에 근거하지 않은 세상에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단순한 외관 모습으로 생각하여 파괴하려고 결심합니다. 경건이 무디어진 곳에서, 사단은 경건이 애매해진 것을 즐거워합니다. 경건이 없는 곳에서는 사단이 경건의 광채 속에 자기 자신의 자기중심적 성격을 반영함으로써 그 광채를 흐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욥에 대해 잘못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크게 잘못하고 있다고 단언합니다. 사단은 하나님에 대한 욥의 긍휼을, 욥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질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욥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잘한다는 것입니다. 욥의 하는 일마다 복되게 하시기 때문에 그렇지, 그것을 거두는 즉시 하나님께 불평불만이 넘칠 것을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손을 펴서 욥에게 베푸신 모든 것을 거두어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정면도전한 것입니다.

 

이쯤 되면 인간들 세계에서는 무척 난처할 것입니다. 이도저도 안되기 때문에 쉽게 대답을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욥의 경건을 믿었습니다. 욥을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믿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경건자체를 시험하기 위해서 욥의 모든 소유를 사단에게 맡겼습니다. 다만 욥 자신은 제외했습니다. 그의 생명은 건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욥이 가진 모든 것을 사단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사단은 혹시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노심초사한 것처럼 하나님의 허락이, 하나님의 명령과 동시에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타협의 근거가 아직까지도 욥에게 붙어 있는 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욥에 대한 칭찬 가운데서 욥이 절대적으로 죄가 없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죄를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은 모든 불의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의 자손인 모든 의인들에게도 해당됩니다. 그런대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은 보편적으로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욥에게서 독특하게 나타나는 의를 주장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이 경우 하나만을 택하여 구원계획의 발전과의 역사적 관계 속에 연관시킨다면 여인의 씨와 뱀과의 투쟁의 일부입니다. 사단이 불 못 속으로 점차 빠져 들어가는 것의 일부입니다. 여호와의 허락이 있은 후에, 사단은 즉시 물러났습니다. 사단은 파괴 활동을 즐거워하기에 하나님의 허락은 그에게 있어서 환영할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승리하기를 바랐습니다. 자기무덤을 스스로 파는지 모르고.

 

찬송가455(370) 주 안에 있는 나에게(The Trusting heart Jesus clings)Eliza Edmunds Hewitt(1851-1920)은 한 불량소년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교화시키려다가 그 소년으로부터 큼직한 지붕 스레트로 얻어맞았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장장 7개월을 통한 척추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병상에 누워서 꼼짝 못하고 사소한 일도 남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오랜 투병생활로 인해 경건하고 굳세던 신앙은 점차 약화되었습니다. 그녀는 더욱 신경이 날카로와졌을 뿐만 아니라 그 소년에 대한 증오가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화창한 봄날, 병실 청소부인 흑인 여자가 찬송을 흥얼거리며 빗자루 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그녀는 벌컥 역정을 내었습니다. “이봐요, 청소부주제에 뭐가 그리 좋아요.” 그때 청소부는 나에게 닥친 형편과 처지가 찬송으로 바뀔 수 있는 힘을 주님께서 주셨으니 즐거울 수밖에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감전된 듯한 충격을 받고 이제까지 불평과 증오로 가득 찬 나날에 대해 부끄러움을 억누르지 못하고 마음으로는 깊이 애통하며 회개의 눈물을 쏟아 놓았습니다. 입술로는 본 찬송시를 읊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그녀의 투병생활은 기쁨과 찬송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척추의 아픔은 제거되었고, 또한 가해소년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완전히 건강을 회복한 그는 많은 찬송가 작시와 청소년선도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작곡자는 William James Kirkpatrick(1838-1921)이었습니다. 그는 펜실베니아의 던캐논에서 출생하여 아버지(교원)에게서 음악을 배웠습니다. 1878년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사업을 그만두고 교회음악을 위해 남은 생을 바쳤습니다. 그는 감리교인으로 100종 이상의 복음성가집을 내었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의 최고선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오듯이 하나님께서 성도들로부터 받는 최고의 영광은 성도들의 고난을 통해 옵니다. 고난이 우리의 생업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12:38) 종이라 불리고, 또 우리가 어떻게 고난을 받아야 하는 지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딤후2:3) 군사라 불립니다.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신 하나님의 힘을 믿읍시다. 하나님께서 자랑하시는 성도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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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에게 닥친 재앙의 원인

욥기1:1-22

모든 사람들의 꿈은 재물이 많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재물이 많으면 인생이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좋은 곳에서 좋은 집을 짓고,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돈이 많은 도시들은 늘 번창하고 있습니다. 예로 미국의 首都(수도)도 아니면서 유명한 도시가 New York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미국의 수도가 어디냐고 물으니까, 바로 말하기를 New York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중국의 수도는 Beijing입니다. 그러나 Hongkong이 더 유명합니다. 왜 이들의 도시가 수도보다 더 유명합니까? 돈이 많이 유통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은 때로 실력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돈만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건강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수천억 원의 돈을 가지고 있어도 일 년 365일을 병원에 누워있다면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건강이 제일이리고 말합니다. 돈도 있고, 건강하지만, 또한 자녀가 없다면 또 사람들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돈이 많아도 물려줄 사람이 없으면 그것도 불행입니다. “다 쓰고 죽으면 되지”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바로 불행입니다.

사람이 행복하기 위한 절대적인 조건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일단 돈이 있어야 한다. 건강해야 한다. 자녀들이 있어야 한다. 여기까지가 세상 사람들의 행복의 조건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있는 자들은 첫째로 그리스도인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있어야 하며, 건강해야 하고, 돈이 있으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1절에서 5절을 보면

1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2 그 소생은 남자가 일곱이요 여자가 셋이며 3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4 그 아들들이 자기 생일이면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 누이 셋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므로 5 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I. 바른 생활의 욥(1-5)

우리나라에도 바른 생활하신 분들이 역사적으로 많습니다. 그중에 백범 김구 선생님을 꼽을 수 있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 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고 말한 그의 말은 유명합니다. 임시정부를 총지휘하며 오직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분들이 있다는 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평생을 나라를 위해서 바르게 산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스 땅에 있는 욥은 여러 가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욥의 profile을 성경은 한 마디로 말해서 완벽(!T;/tâm/순전), 정직(rv;y:/yâshar),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r/raʽ')에서 떠난 사람이라고 합니다. 거기에 아들딸이 총 열 명입니다. 재산 또한 거부입니다. 양이 7000마리입니다(105억원/150만원). 낙타가 3000마리입니다(240억원/800만원). 소가 1000마리입니다(35억원/350만원). 암나귀가 500마리입니다(13억원/260만원). 대충계산해도 393억 원이 넘습니다. 당시 중동에서 이렇게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여기에 부동산과 다른 것들을 계산하면 아마도 1000억 원 이상 될 것입니다. 욥은 동방에서 소문난 거부였습니다. 재산이 이렇게 많으면 가족관계가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욥의 가정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굉장히 화목했습니다. 누가 생일잔치를 해도 모두 모여서, 함께 잔치를 했습니다. 정말 이상적인 가족관계까지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욥은 돈이 많고 이상적인 가족관계를 형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앙도 좋았습니다. 아들딸들이 잔치를 하게 되면 신앙에서 벗어날 수가 많습니다. 이 문제를 욥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결했습니다. 욥은 잔치가 끝나면, 항상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혹 자녀들이 잔치 중에 죄를 범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만큼 사는 모습이 철저했습니다. 욥은 재난을 당할 어떠한 짓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완벽하지 못한데, 성경은 욥이 완벽하다고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욥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아마도 상상하지 못할 것입니다. 재물이 많은 사람들은 거의 신앙이 밑바닥입니다. 신앙이 있으되 노리개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욥은 모든 것을 다 갖추었습니다. 성경의 기록으로 보아 멋진 신자였습니다. 욥은 완벽했습니다. 아들딸이 많은 유복한 가정이었습니다. 재산도 많았습니다. 무엇하나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욥에게 고난이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고난과 환란을 당할만한 조건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면 욥은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동방에 욥이 있었는데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로 인해서 욥과 아들딸들이 복을 받고, 행복하게 잘살았다고 기록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고통을 받아야 할 근거와 원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욥에게도 고난이 찾아오더라는 것입니다. 6절에서 12절을 보면

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7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8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9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1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II. 하나님의 자랑을 받는 욥(6-12).

지금까지 욥을 비추던 camera가 천국을 비쳐주고 있습니다. 천상의 회의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천사들을 불러놓고 세상의 일들을 지시하시는 곳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천상의 회의장에는 하나님과 천사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사단도 끼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물었습니다. “어디어디를 돌아다녔느냐” 사단은 “여기 끼웃 저기 끼웃”하며 돌아다녔다고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욥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야, 다니는 중에 내 종 욥을 자세히 보았느냐, 그렇게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 봤어? 또 나를 그렇게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을 본 일이 없지?” 그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단이 뭐라고 말합니까? “주께서 잘 해주시니까 그렇지요. 주신 걸 뺏어보십시오. 바로 주님의 면전에서 욕할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망설임 없이 바로 사단에게 욥을 치시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래 어디 한번 해봐라”하지만 욥의 목숨은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사단은 떠났습니다. 욥에게로 간 것입니다. 욥을 괴롭히고 하나님께 욥의 불신앙을 보여주고자 간 것입니다.

본 6절에서 12절의 내용을 욥은 절대로 모릅니다. 사단과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들을 욥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천사들과 사탄만 알 뿐입니다. 욥은 절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사단이 욥을 치기 전에 사전에 하나님께서 욥에게 알려주시지도 않았습니다. 우리 같으면 바로 알려주었을 텐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욥아 이런 일이 있으니 어떻게든 견뎌라’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의문사항을 가질 수 있는 내용이 어떻게 사단(@f;%C;h'/sâtân/슥3장/대상21:1)이 하나님의 천상회의장에 있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탄은 성경에서 타락한 천사들의 우두머리에게 붙여진 이름입니다. 사탄이라는 말은 ‘대적자로 행동 한다’는 말입니다. 영적세계에는 하나의 사탄과 다수의 귀신들(daimovnia)이 있습니다. 원래 귀신들도 거룩하게 지음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타락해서 자기자리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악령의 타락을 “심히 좋았더라”고 선언하신 때와 인간이 유혹을 받아 타락하게 된 사건(창3장)사이에 일어났다고 봅니다. 마귀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사역을 반대하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마귀는 신자들이 잘되는 꼴을 못 봅니다. 항상 괴롭히고 찢지 못해서 안달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분쟁에는 항상 사탄이 끼어있습니다.

사단이 거룩한 하나님의 천사들과 같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왕상22:19-22(····여호와께서 그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 슥3장(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계12장(하늘에 ···· 이적이 보이니····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에도 나오는데 마치 가룟 유다가 제자들 가운데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단이 하나님께 불만인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지만, 멸망시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떤 계획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과 성도들을 반대하는 것이 사단의 본업이지만,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편재(omnipresence)하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편재하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욥을 매우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에게 욥을 매우 자랑하셨습니다. 얼마나 욥을 인정하셨으면 1-5절까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셨습니다.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이 말씀을 몇 번이나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사단에게까지 하셨습니다. 사단은 욥의 예배를 볼 때마다 눈에 가시였는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욥을 그 자리에서 죽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천상회의에서 욥과 하나님을 떼어 놓을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사단은 생각할 때 욥이 가진 것을 모두 뺏으면, 즉시 하나님을 떠날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네가 아무리 그렇게 할지라도 욥이 절대로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받는 고난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본인들이 잘못해서 받는 고난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법을 어기고 사람에게 해를 끼쳐서 감옥에 갔습니다. 감옥에 가서 “왜 이렇게 나에게 이런 고난이 오는가?”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은 하겠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고난은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시험입니다. 저 신앙이 진짜인가? 짝퉁인가? 저 눈물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그것을 시험하기 위해서 고난이 닥치는 것입니다. 욥기를 기록한 사람은 우리들에게 이러한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욥 같은 경우는 성경을 보아서 알겠지만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욥같이 어려운 상황을 겪어야 한다는 것은 극악무도한 사람이 겪어야 할 재앙입니다. 그런데 욥은 그렇게 고난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느 날 천상회의가 문제입니다. 천상회의에서 하나님이 욥을 자랑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이 고난을 통해서 비로소 욥은 더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욥의 고난이 어느 정도입니까? 벼락천둥치고 지진이 일어나며 세상 고통을 혼자 모두 겪는 듯한 고통을 겪습니다. 13절에서 22절을 보면

13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14 사자가 욥에게 와서 고하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15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16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양과 종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17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갈대아 사람이 세 떼를 지어 갑자기 약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18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더니 19 거친 들에서 대풍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소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한지라 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III.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고난을 받는 욥

찬송 470장을 부르면 참으로 편안합니다. 내 평생이 순탄한 길 같습니다. 이 찬송을 듣노라면 모든 근심걱정이 없는 사람이 이 찬송을 작사하고 작곡한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라는 가사에서 그 평안함이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찬송을 作詩한 H. G. Spafford 교수는 시카고 대화재사건 때 재산을 전부 잃었습니다. 그와 가족들은 살 희망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일어나야 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유럽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Spafford는 화재로 타버린 무디 교회를 보살피기 위해 남았습니다. 그래서 부인과 네 딸을 먼저 배에 태워서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 배가 대서양에서 영국 배와 충돌했습니다. 그 배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226명)이 다 죽었습니다. 그는 이 소식을 듣고 가슴이 찢어질듯 했습니다. 가슴이 저미는 듯 했습니다. 그야말로 죽을 것 같았습니다. 아마 Spafford에게 신앙이 없었다면 바로 자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신앙으로 극복하고 1873년에 이 찬송가를 작시했습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면전에서 떠나자마자 욥의 집에 큰 사고가 터졌습니다. 그날도 아들딸들이 큰 아들 집에서 잔치를 했을 때입니다. 한 종이 보고하기를 시바인 들이 종들을 모두 죽이고 소와 나귀를 다 빼앗아갔다는 것입니다(13-15절).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른 종이 보고하기를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양과 종들이 다 죽었다고 했습니다(16절). 또 다른 종이 갈대아 사람들이 세 때로 와서 약대를 빼앗아가고 종을 죽이고(17절), 그리고 열 명의 자녀들이 잔치하는 집을 덮친 태풍으로 인해서 열 명의 아들딸들이 모두 죽었다고 했습니다(18-19절).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 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확실한 것은 모두 잃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은 하나님의 뜻대로, 범죄(af;j;)하지 않았습니다. 꼴사납게 하나님을 원망도 하지 않았습니다(20-22절).

욥은 하루 만에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재산을 빼앗기고, 아들딸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욥의 재산이 가축만 약 380억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없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이쯤 되면 사람들이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욥은 다 내려놓았습니다. 아니 내려놓아야만 했습니다. 욥은 조용히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하나님께 직접 원망하지 않고, 돌려서 불평을 하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당장 하나님께 범죄 하지 않았습니다. 욥은 이 고난을 통해서 신앙이 점점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욥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다. 우스(Uz/에돔의 남쪽, 아리비아의 서쪽에 위치한 지역)라는 땅은 이스라엘 땅밖의 지역입니다. 그러나 욥은 항상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고난을 당했습니다. 욥이 당한 고난은 어떤 고난입니까? 욥은 이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는 모든 사람들의 대표입니다. 욥의 고난은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고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고난입니다. 하나님께서 시험하는 고통이지, 욥이 잘못해서 형벌로 당하는 고통이 아닙니다.

즉 하나님은 의인을 시험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욥의 경우를 통해서 인간의 고난이 꼭 죄를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들에게도 고난이 옴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성도들에게 고난과 환란이 올 때 우리들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합니다. 왜 내가 고통당하지? 저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의 형벌일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저런 고통을 당하지 하고, 豫斷(예단)해버립니다.

그런데 욥의 경우를 보니 고난이 꼭 잘못해서 당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고난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십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고난은 신자들을 성숙하게 하는 선생입니다. 고난의 연단을 통해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부족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고난은 인간에게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입니다. 모세는 40년을 미디안에서 고난당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까지 13년의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고난의 쓴잔을 마시지 않고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고난은 신비이며, 우리들과 뗄 수 없는 관계요, 우리들의 스승입니다.

욥의 고난 즉 우리들이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받는 고난은, 하나님의 영광을 세우기 위한 고난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인생이 성숙되지 못하고, 신앙 또한 자라지 못합니다. 우선 성도들은 고난을 받으면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평소에 하지 않던 기도회에 참석합니다. 그리고 전보다 강한 믿음을 가지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래서 신앙이 성숙하게 됩니다. 성도들은 욥처럼 하나님과 사단의 가운데에서 샌드위치적인 고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 사단은 우리를 아예 밟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눈동자같이 우리를 지켜보시는 하나님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목적은 멸망시키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를 더 복된 자리에 올려놓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섭리하심을 우리는 모릅니다. 욥기는 고통 중에 있는 우리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섭리를 찾아가는 지에 대한 모델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된 사람이 가장 복되지 않은 곳에 내려가도 거기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는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한 가운데에 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가장 복된 자리에서 가장 저주된 자리에 떨어져도 범죄 하지 않아야 할 것을 제시합니다. 가장 큰 자의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의 자리에 떨어져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아야 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단을 무력화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찾는 이유가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심리적인 안정을 찾기 위해 교회를 찾습니다. 또한 생활의 안정을 위해서 교회를 찾기도 합니다. 삶의 행복을 위해서 교회를 찾습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생의 것을 위해서 교회를 찾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이 이것만을 추구한다면, 종교적인 용어로 기복종교(祈福宗敎)가 됩니다. 이것도 사탄이 원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을 하나님처럼 섭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을 믿기 때문에 때로는 사탄에게 허용된 시험을 하십니다.

사탄이 원하는 것은 신자들의 파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사탄은 우리들을 참소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고 있는 한 사탄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주신자도 하나님이요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라고 할 때에 사탄은 무력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리들이 하나님을 그렇게 신뢰하면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과 은혜만 열릴 뿐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시험하도록 내주는 것은 욥을 자랑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아직도 미성숙한 욥을 원숙한 자리에 올려놓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고통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特攻隊(commando)는 특수임무나 기습공격을 실시하기 위하여 특별히 편성된 特殊部隊입니다.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반복훈련과 인내, 그리고 죽음의 계곡을 몇 번이나 넘는 훈련을 거친 후에야 임무수행에 들어갑니다. 그 훈련과 인내가 바로 고난입니다. 우리의 최고선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서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도들로부터 받는 최고의 영광은 성도들의 고난을 통해서 옵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첩경이요, 우리들의 신앙이 성장하는 것이며, 고난 후에는 하나님이 더 높은 위치에 우리를 올려놓으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고난은 우리의 선생이며, 우리를 더 높은 자리에 올려놓는 크레인입니다. 우리를 더 높이 올려놓는 스승과 크레인인 고난을 기쁨으로 받읍시다. 고난 저 너머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기쁨을 기대하면서 고난에 임합시다. 많은 기쁨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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