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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만난 바울(사도행전22:5-16)

6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0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우리가 흔히 지나가다가 누구를 만났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만났다는 것은 내가 상대방을 눈으로나 다른 감각에 의해서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만남은 스치는 만남이 아닙니다.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만남이 깊은 만남입니다. 그래서 만난다는 것은 상호적입니다. 상대가 나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고, 내가 상대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만남이 이러할진데 잘못된 만남이 있고, 좋은 만남이 있습니다. 나를 파괴하려고 접근하는 사림이 있는가하면 나를 도우려고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의 향방이 결정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만남으로 해서 인생이 파괴되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좋은 만남으로 해서 그 인생이 꽃을 피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2차세계대전의 원흉들, 히틀러, 무쏠리니, 천황이라고 하는 작자들을 만난 사람들은 엄청난 피를 흘린 것들을 볼 수 있고, 가까운 예로서 국가가 잘못된 정치인들을 만나서 힘든 예를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하늘로서 갑자기 세찬 빛이 둘렀습니다. 당연히 사도바울은 엎드러질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일은 이전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사도바울은 일생에 잊을 수 없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라고 부르시더니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일생 들어보지 못한 음성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더니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하신 말씀에 바울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바울은 음성의 주인의 신분을 물었습니다. ‘주여 누구십니까? 그러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같은 일행들은 빛은 보면서도 말씀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입니다. 오직 바울에게만 일어난 일입니다.

바울은 이제 주님께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일단 다메섹으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네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을 알려줄 것이라 했습니다.

사도바울의 주님을 만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을 핍박하는 것은 곧 주님을 핍박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하는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즉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을 핍박할 때 예수님이 자신을 핍박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입니다. 핍박하는 사람들로서는 소름끼치는 일입니다. 역사적으로 볼때 핍박자들이 회개하지 않았을 때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께서 자신을 핍박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핍박자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을 핍박하는 것은 전능자를 핍박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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