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신비(사도행전22:4-16)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10절)
바울사도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서 계속 묻지 않았습니다. 왜 내가 다메섹에 들어가야 하며, 누가 나를 만나줄 것이며, 그 후에는 어떻게 되며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지 않았습니다. 요즘의 신비주의자들 같다면 반드시 물어야 할 사항을 바울사도는 묻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교회는 그 자체가 신비입니다. 우리는 신비하신 하나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을 주님께서는 하셨습니다. 소위 신들이라고 했던 것들이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하나님께서는 하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자체부터가 신비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 우주공간에서 사는 것 자체가 신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mystery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3장을 보면 모세가 호렙산에서 불붙은 나무를 보았습니다.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불이란 것은 태우는 것입니다. 즉 나무가 불에 붙으면 나무는 재로 변해서 나무의 고유 형상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떨기나무가 불에 타고 있었으나 나무의 형상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와서 바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에서 40년간을 생활합니다. 당장 물이 필요했습니다. 먹을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것도 약 300만 명의 물과 식량입니다. 광야이기 때문에 길러서 먹는다는 것은 아예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이스라엘이 물과 식량을 조달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매일 물과 만나를 제공하셨습니다. 신비입니다. 창세기1장1절부터 요한계시록22:21절까지 신비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권능이 무한하고 영원불변하십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무한하기 때문에 증가되거나 소멸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뜻하시는 바를 다 하실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지구의 자전을 멈추실 수도 있고, 태양을 없앨 수도 있으신 분입니다. 천문학자들이 상상하고 있는 것들을 직접 다루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들을 인간들에게 많이 맡기셨습니다. 즉 인간의 전 생애를 100% 하나님의 신비로만 생활토록 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경우, 다메섹에 들어가면 너를 도울 사람이 있으니까 그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다메섹에선 이미 아나니아에게 사울이 오면 이래저래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신비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곳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에게 모두 신비로움으로만 채우시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하실 일을 지정하셨습니다. 물론 그때그때 다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돕기도 하시지만 모든 것을 신비로움으로만 해결하시지는 않으십니다. 또한 그 신비로움의 용도가 어떤 개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위하려고 할 때에 나타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비함의 사람이지만, 신비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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