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하는 자의 태도(사도행전22:4-16)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10절)
바울사도는 주님을 만나기전까지는 정상적인 유대인으로 살았습니다.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유대의 엘리트생활을 했습니다. 다소에서 태어나 유대의 한 일원으로 촉망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거기에 유대교에 열심히 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유대인을 위해서라면 앞장을 선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리아의 다메섹까지는 상당한 거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러 갔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여 누구십니까? 바울의 질문에 주님은 ‘나는 네가 그렇게도 핍박하는 예수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바울은 주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일어나서 다메섹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누가 너에게 할 일을 알려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말씀대로 했습니다.
순종하는 태도와 불순종하는 태도와의 차이는 대답은 yes와 no입니다. 그리고 그 대답과 똑같이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은 쉬워도 행동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의 질문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바울이 주님께 순종하려면 회심할 각오가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회심은 180도를 유턴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궤도수정을 하는 것입니다. 180도로 돌아서서 지금까지의 길의 반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와 같은 언행일치가 쉬울 수가 없습니다. 즉 아무라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사도가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로마제국의 전도판도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만일에 바울사도가 순종하지 않았다면, 복음의 전파속도와 전파율이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주님의 음성을 듣자 곧바로 순종의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주여 무엇을 제가 하리이까?’ 바울의 이 질문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수시로 이 세상에서 시험을 받습니다. 순종과 불순종의 가운데에서 망설임 없이 순종으로 가야하는데도 불순종에 많이 기울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포기하고, 인내하고, 또 포기하고, 또 인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면 고통과 환란이 덮치기도 함으로서 이 세상에서의 삶이 힘들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사도와 같은 마인드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순종의 길로 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내 사정에 얽매이다보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명령하시는데, 우리는 행여 불이익을 받을까봐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즐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순종이 없는 제사는 신성모독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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