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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알만한 것(로마서1:18-23)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신학의 가능성은 두 가지 사실에서 기인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에 관한 계시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인간의 타고난 기능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계시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로 구분합니다.

 

하나님에 관한 계시(The Revelstion df God): Pascal은 하나님을 숨겨진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숨겨진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신이 없기 때문에 계시도 없습니다. 그런데 존재하지도 않는 신을 찾으러 사람들이 나선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것도 없는 신이 있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이라면 계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지 않으시면 하나님을 알 길이 없습니다. 계시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열어 보이시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피조물에게 자신을 알리시는 것이 계시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계시/일반계시: 일반계시는 자연, 역사, 양심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일반계시는 자연과 역사의 과정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현상을 매개로 전달됩니다. 일반계시는 모든 지적인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전달됩니다. 일반계시가 목적하는 바는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자연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줍니다. 하나님을 찾도록 설득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확실한 자기계시를 자연과 역사 그리고 인성(personlity) 안에서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주셨습니다. 바울사도가 말한 인간에 대한 심판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Millard J. Erickson

 

만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정죄하는 것이 정당하고 인간이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알지도 못한 채 죄인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인간이 특별계시 없이도 하나님의 정죄를 피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로마서2:14에서 바울은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그들이 율법의 요구들을 다 이룰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율법을 가지고 있는 이들조차도 해낼 수 없는 것이다(로마서3장뿐 아니라 갈3: 10-11을 보라). 바울은 또한 갈라디아서3:23-24에서 율법이 우리를 의롭게 하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죄를 깨달아 알게 해 주는 몽학선생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여 믿음에 이르도록 인도해 준다는 사실을 명확히 한다. 불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내적 율법도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그 율법이 수행하는 것과 같은 기능을 행한다. 자연에 나타난 계시로부터(1) 인간은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영원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결론을 내려야만 한다. 그리고 내적인 계시로부터(2) 인간은 그 기준에 맞는 삶을 살고 있지 못함을 깨달아야 한다. 도덕적인 법조항의 내용은 여러 다른 문화적 상황 속에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그들이 고수해야 하는 하나의 내적 충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기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시 말해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만일 그들이 그것을 억누르지만 않는다면,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가 어떤 근거를 가지고 제공되는 것인지를 알지 못한 채, 그 하나님의 자비에 우리 자신을 맡겨 버린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러면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구약의 신자들과 같은 형편에 있지 않은 것인가?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 사역에 대한 교리들은 아직 그들에게 온전하게 계시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그들은 죄를 용서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준비된 것과 그들 자신의 공로로 인하여 용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온전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복음의 형식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구원받았다. 만일 자연을 통해 알려진 하나님이(바울이 사도행전17:23에서 주장한 것처럼 보이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시라면, 한 분의 능력 있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갖고 그 거룩하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어떤 행위로 말미암은 의를 단념하고 그 선하신 하나님의 자비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은 구약의 성도들이 그랬듯이 용납될 것이다 비록 그 연관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구원을 위한 작업이 준비되었는지 모르고 있다 하더라도, 그가 용납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때문이다. 우리는 구원의 근거가 신약과 구약에서 분명히 동일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구원은 항상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3:6-9). 이 구원은 우리를 율법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구원하심에 달려 있는 것이다(3:10-14, 19-29). 그렇다면 로마서2:1-16에서 바울이 언급한 내용들로부터 우리는 어떠한 추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가? 특별계시가 없어도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바울은 이러한 이론상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이론상의 가능성일 뿐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특별계시를 받지 않고서도 실제로 구원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의문시된다. 바울은 로마서3장에서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10장에서 그는 사람들로 믿도록 하기 위해 복음(특별계시)을 전파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이처럼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계시의 빛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책임은 전적으로 그들에게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참으로 하나님을 알고서도 그 진리를 의도적으로 억눌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일반계시란 사실상 율법처럼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를 정죄하는 일을 한다.

 

신자와 불신자 혹은 복음과 불신자의 생각 사이에는 하나의 공통된 기반 또는 접촉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핑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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