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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근심과 고통(로마서 9:1-5)

 

로마서는 크게 네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a. 서문 1:1~17

b. 구원과 교리 1:18~1l:36

c. 그리스도인의 삶 12:1~15:13

d. 결론 15:14~16:27

바울사도는 1:18~32에서 이방인의 죄를 지적했습니다. 2:1~3:2에서는 유대인의 죄,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방인-유대인)의 죄의 심각성과 심판의 불가피성을 3:3~20까지 부각(浮刻)시켰습니다. 다음으로 믿음으로 인한 구원을 3:21~5:11에서, 5:12~8:39에서는 은혜로 인한 구원을 강조했습니다. 9장에서 11장까지는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김상훈 2006, 143).

특권(privilege)이란 어떤 개인이나 집단 또는 국가기관에 대하여 인정하는 특별한 권리나 이익 또는 의무의 면제입니다. 그래서 특권은 일부에게만 해당됩니다. 모든 사람이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특권이란 한정된 권리입니다. 그래서 자칫 특권을 가진 자들은 자신의 마음대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고는 합니다. 이스라엘은 창조주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었습니다. 수천 년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사는 것이 일상화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버리고, 이방사람들을 버리면서까지 이스라엘만을 위하셨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순종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바라심대로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특권이 있기 때문에 괜찮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특권은 위선적인 특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일차로 유대인의 회당을 찾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무척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저주를 받아에서 저주/ajnavqema 는 고전 헬라어문헌에서 신들의 진노에 바쳐지는 것, (파멸에) 저주의 힘 아래로 떨어진 것이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70인역본에서는 헌신, 금지, 저주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사도의 논증에 의하면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동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면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어디에 나타나 있습니까?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만큼 유대인의 구원을 바라고 있음이 간절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위한 바울의 심정은 정말 간절합니다(1-3). 그것은 바울사도의 근심과 고통으로 이어집니다(3).

어쩌면 특권이 그들을 이상하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특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저희들은 자신들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에도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엄청 많습니다. ‘우리교회는, 우리교단은, 우리목사는, 우리들은, 우리들의 공동체는라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혀서 전혀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늘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과 같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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