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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가 치는 밤, 가난한 어부 자니는 오막살이 집안 화덕 가에 앉아 넝마 조각으로 낡아빠진 돛을 깁고 있었다. 강한 바람에 비가 유리창을 갈기고, 파도가 바닷가를 치며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밖의 소리가 쉴새 없이 자니의 귀를 올리고 있지만 가난한 어부의 오막살이 방은 포근하고 아늑했다. 방바 닥은 흙바닥 그대로 되어 있기는 하나 깨끗하게 쓸려 있고, 화덕에는 마른 나뭇가지가 빠짝빠짝 소리를 내면서 타고, 찬장에는 깨끗하게 닦은 접시들이 가지런히 얹혀 있고 방구석 한쪽에는 하얀 보료를 깐 낡은 침대가 놓여 있었다. 침대에는 아무도 없었으나 방바닥에 깐 요 위에는 어린것들 다섯이 시끄러운 파도 소리 속에서도 곤히 자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지금 바다에 나가고 없었다. 이렇듯 어둡고 추운 날씨에도 사나운 밤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나간 것이다. 이런 날 일 나가는 것은 매우 무서운 일이지만, 그러나 달리 살아갈 뾰족한 수가 없었고, 남편으로서 집안 식구들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자니는 파도 소리와 사나운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따금 애끊는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비는 줄기차게 퍼붓고 있었다. 자니는 괴로웠다. 그녀의 눈에는 난파선의 처절한 장면이 그림처럼 떠올랐다. 배는 바위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고 사람들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 같았다. 아! 무서워!

낡은 괘종시계의 지친 듯한 소리가 똑딱똑딱 밤을 저미고 있다. 똑딱…. 그래도 어린것들은 곤히 자고 있다.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남편은 몸을 돌보지 않고 추위와 폭풍우를 무릅쓰고 바다에 나가 언제 다가올지도 모를 위험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아침부터 밤까지 방에 틀어박혀 쉴새 없이 일해야 했다. 이렇게 힘들여 일해야만 살아 갈 수 있다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어린 자식들은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맨발로 살아야 하고, 밀빵 같은 건 아예 엄두도 못 낸다. 귀리밥이 입에 들어가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이따금 생선은 먹는다. 아무튼 어린 것들이 탈 없이 튼튼히 자라주는 것만도 하나님의 고마운 은총이다.

어쩌면 바다가 저렇게 사나운 소리를 내고 있을까! 그이는 지금 어떻게 하고 계실까? 하나님, 은혜의 손길로 그이를 보호해 주옵소서.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아직 잠자리에 들기에는 일렀다. 자니는 일어나 두툼한 외투를 걸치고 간데라 불을 켜 들고 밖으로 나섰다. 남편이 지금쯤 돌아오는 것은 아닌지, 바다는 좀 잠잠해지지나 않는지, 등대 불은 제대로 켜져 있는지 모두가 궁금하고 초조해서였다.

밖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가랑비가 오는가 했더니 억수처럼 퍼붓는 장맛비였다.

동네 어귀 바닷가에는 낡아서 반쯤 무너진 오두막집이 하나 있었다. 벽은 썩어서 시커멓고 낡은 문짝이 떨어질 듯 매달려 있었다. 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문짝이 흔들리며 삐그덕거리며 소리를 냈다. 바람은 마치 그 초라한 오두막집을 날려 버리기라도 할 듯 몰아치고 있었다. 문짝은 가엾게도 부서지는 소리를

내고 지붕 위의 썩은 지푸라기는 구원이나 청하듯 바스락거렸다. 자니는 오두막집 문 앞에 걸음을 멈추고 찌그러진 창문으로 들여다보았다. 집안은 캄캄했다.

그 가엾은 환자를 돌봐줄 걸 깜박 잊었구나! 밤이 되면 더 나빠진다고 바깥양반이 말씀하셨지. 정말 저 이는 외로운 분이야. 아무도 돌봐 줄 사람이 없으니 하고 자니는 생각했다. 그래서 들여다본 것인데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문 앞에 선 채 생각에 잠겼다.

‘가엾어라! 자기 손으로 어린것들을 돌봐야 할 처지에 병이 들다니! 무슨 팔자가 그럴 수 있을까! 둘째 아이를 뱃속에 가진 채 과부가 됐으니 딱하기 그지없는 일이야. 제 몸 하나에 자식들의 목숨이 달려 있는데 병이 들다니! 무슨 팔자가 그런가!’

그녀는 몇 번 노크해 보았다.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이봐요, 별일 없어요?”하고 자니는 소리쳐 보았다.

“그럼 좋아요. 주무시거든 그냥 계셔요.”

바람은 멋질 않았다. 자니는 추위와 비에 젖어 와들와들 떨렸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발길을 돌리는 순간 외투를 날려 버릴듯한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 그 바람에 그녀는 중심을 잃고 문에 부딪쳤다. 그로 인해 문짝이 활짝 열려 버렸다. 얼결에 자니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든 간데라 불이 캄캄한 집안을 비쳐 주었다. 집안이라지만 바깥이나 다름없이 축축하게 젖은 채 침침하고 추웠다. 오랫동안 불을 때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장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마치 키질하듯 빗물이 새어내리고 있었다. 문을 등지고 벽가에 지저분한 지푸라기를 쌓아 놓은 위에 과부의 사체가 놓여 있었다. 머리는 뒤로 내던져지고 싸늘하고 푸릇푸릇한 얼굴은 입을 벌렁 벌린 채 오뇌와 절망의 표정이 얼어붙은 채로였다. 무엇인가 휘어잡으려는 듯이 내뻗은 푸르스레한 손은 맥없이 지푸라기 침대 위에서 아래로 내려뜨리고 있었다. 어미의 시체 발치 쪽에 덜렁 요람 속에 어린애가 둘이 있었다. 핼쑥한 얼굴이기는 했으나 곱슬머리에 예쁜 뺨을 한 어린것들이 상을 찡그리고 금발머리를 서로 비벼대며 고요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죽음이 다가오는 줄도, 폭풍우의 아우성도 모르는 듯. 어미는 죽어 가면서도 어린것들의 발을 큼직한 누더기 조각으로 감싸주고 자기의 옷을 어린것들에게 덮어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한 아기는 오동통한 작은 손으로 뺨을 고이고 있었다. 다른 쪽 한 아기는 형의 목에 귀여운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아기들의 숨소리는 조용하고 순조로웠다. 그 무엇도 그들의 잠을 깨우지 못하리만큼 깊고 편안한 잠을 자고 있었다. 폭풍우는 점점 더 거세어지고 있었다. 천장에서 새어 내린 빗물이 죽은 어미의 이마 위에 떨어져 뺨으로 흘렀다. 수심에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 위의 눈물과도 같이.

자니는 줄달음질쳐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외투 자락 속에 무엇인가 감춰 가지고 왔다. 그녀의 가슴은 몹시 뛰었다. 그녀는 누가 뒤를 쫓아오는 것만 같아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죽은 사람 집에서 무엇을 훔쳐온 것일까?

자니는 가지고 온 물건을 침대 위에 놓고 얼른 보료로 덮었다. 그리고 의자를 가져다 침대 곁에 놓고 주저앉아 침대 끝에 이마를 대고 엎드렸다. 그녀는 새파랗게 질린 채 흥분해 있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 매우 괴로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따금 비명 같은 고함을 질렀다.

‘그이가 뭐라고 하든 난 몰라! 내가 무슨 짓을 했담! 아이들의 뒤치닥거리에 지쳤어…. 나는 바보야, 아아 돌아오셨나요? 아니, 아니야…. 차라리 나를 실컷 때려 주기나 했으면 좋겠어. 난 매 맞을 짓을 했어…. 아아, 그이가! 아아, 좋아, 차라리 내가!’

문소리가 났다. 누가 온 것 같았다. 자니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일어섰다.

‘이번도 아니잖아! 하나님, 어쩌면 제가 이런 짓을 했을까요? 이런 짓을 하고 어찌 그이를 바로 볼 수 있어요!’

자니는 또 생각에 잠겨 오랫동안 침대 곁에 앉아 있었다.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바람은 여전히 사납게 울부짖고 바다도 역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홀연히 문이 열렸다. 동시에 방안으로 축축하고도 신선한 공기가 한 줄기 흘러들었다. 키가 헌칠하게 크고 햇볕에 타 거무스레한 어부가 젖고 찢어진 그물을 질질 끌고 오막살이 안으로 들어왔다. “자니, 나 왔소.” “오. 이제 오셨군요.” 자니는 대답은 했으나 일어선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참 사나운 밤이었어, 지독한 날씨야.”

“참 그래요. 무서운 날씨였어요. 그래 많이 잡았어요?”

“망했어, 아주 망했어! 고기 꼬리도 걸리지 않아, 그물만 찢기고 왔지. 아주 멍들었어! 참 지독한 폭풍우였어! 간밤 같은 폭풍은 지금까지 만나 본 적이 없는 걸, 악마같이 울부짖으면서 배를 공기놀이하듯 들까불러댔어…. 밧줄이 끊어져 배와 함께 바다 속으로 묻히는 줄 알았지. 그래도 요행히 살아서 돌아온 거야.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지냈소?”

남편은 그물을 방안까지 끌고 들어와 난로 옆에 앉았다.

“저요?” 자니는 새파랗게 질려서 되물었다. “전 앉아서, 여기 앉아서 뜨개질하고 있었어요…. 바람 소리가 어찌나 심한지 혼자 있기가 무서웠어요. 밤새도록 당신 걱정만 했어요….”

“그랬을 거야. 정말 지독한 바람이었거든. 그런데 어떡하지?”

남편은 중얼거리다 말끝을 흐렸다. 내외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이윽고 자니는 떨면서 무슨 죄나 저지른 사람처럼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여보, 시몬 아줌마가 죽었어요. 언제 죽었는지는 몰라도, 아마 엊저녁 당신이 그의 집에 다녀온 뒬 거예요. 죽을 때 괴로웠을 거예요. 어린것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막히고 숨이 막힐 것 같아요. 젖먹이를 둘이나 남겨 놓고 죽었으니, 아랫놈은 아직 말도 못하고 윗놈은 이제 겨우 기기 시작했어요…”

자니는 입을 다물었다. 남편은 눈을 끔뻑거렸다. 선량하고 정직한 그의 얼굴은 엄숙하고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참 안 됐어. 딱한 노릇이야.” 그는 참다못해 목덜미를 빡빡 긁으면서 말했다.

“어쩐담? 우선 어린 것들을 데려와야지. 잠이 깨면 어미를 찾을 텐데, 어떻게든 해야지! 빨리 가서 데려오구려!”

그러나 자니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왜, 싫은가? 어린것들을 데려오는 게 마음에 걸린단 말이지, 자니 뭣하고 있는 거야? 어서….”

자니는 일어섰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남편을 침대 옆으로 끌고 가 보료를 치켜들었다. 거기에는 죽은 홀어미의 두 어린 아기들이 평화 스런 꿈을 꾸고 있었다.

Victor Marie-Hu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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