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Suez運河痲痹事故는 이집트 시간(UTC+2)으로 2021년 3월 23일 오전 7시40분에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Ever Given)가 Suez運河에서 7일간이나 좌초된 사건입니다. 400m 길이의 배가 시속 74km의 모래폭풍을 맞고 넘어진 것이 좌초의 원인입니다. 그 결과 Suez運河의 통행을 가로막게 되었습니다. 좌초된 지 하루가 채 되지 않아 최소15척의 선박이 묘박지에 체류하였습니다. 이후에 237척의 선박이 운하를 통과하기 위해 줄을 서고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좌초가 이 운하의 하부에서 발생한 까닭에 이를 우회할 방법도 현재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1869년 개통된 Suez運河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교통로입니다. Africa대륙을 우회하지 않고 Asia와 Europe을 직접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Suez運河는 세계 물동량의 12%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2020년 기준 통행선박은 1,8500척 이상으로 하루 평균 51.5 척입니다.
문제는 전 세계 물류의 약 10%가 Suez運河를 통과하는 까닭에, 이 사건으로 인해 유류, 일용품 등의 운송에 심각한 차질이 생길 것으로 내다보았습니다. 매 시간 4억 달러(4518억원)의 손해가 발생하고 있으며,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추가로 매일 90억 달러(약10조원) 상당의 상품운송이 지연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Suez運河를 주요 통로로 이용하고 있던 석유운송이 차질을 빚자 국제유가는 6% 이상 상승하였다고 합니다. 이집트에서는 매일 158억원의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더구나 코로나정국, 코로나사태, 코로나상황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들이 망가졌습니다. 이전에 잘 나가던 사업장이 송두리째 없어졌습니다. 이로 인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도미노처럼 무너졌습니다. 어떻게 해볼 래야 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못살겠다고 합니다. 너무나 어렵다고 모두 말합니다.
이사야 1절을 보아도 그런 시기였습니다. 양상은 달라도 국가가 매우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국제적 상황으로 국내의 상황이 안정적이지 못했습니다.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오늘 첫 번째로
I. 여호와의 선지자 이사야(1)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때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 시대였습니다. 이때는 팔레스타인이 굉장히 암울했었습니다. 유다의 형제국인 북 왕국 이스라엘은 주전722년에 멸망했습니다. 그리고 유다도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예루살렘만 외롭게 남아 있었습니다. 히스기야 왕 통치중간에는 유다도 점점 쇠퇴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거기에 주변의 강대국이 부상함으로 인해서 유대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졌습니다. 이사야는 주전791년부터 주전 681년까지 네 왕에 걸쳐 약 60년간 사역을 했습니다. 이미 망해버린 이스라엘을 바라보면서 유다는 이러한 전철을 밟지 말라고 준엄하게 유다에게 경고를 했습니다.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과 구원의 메시지를 동시에 선포했습니다.
이사야부터 선지서입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5)은 대선지서라 하고,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12)를 소선지서라 부릅니다. 사람들이 위대해서 대선지서라 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분량이 많고 적음에 따라 대선지서, 소선지서로 구분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선지자를 aybin:(나비)라 불렀습니다. nabi는 ‘대변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정규적인 대변자로 그의 말에 신적 권위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선지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다음 그것을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직분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라는 직분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먼저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후에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전해야 합니다. 점치듯이 앞일을 훤히 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으면 선지자가 아닙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거짓 선지자이며 박수무당입니다. 귀신들의 조종을 받고 있는 아주 나쁜 사람들입니다.
이사야는 Amos의 아들입니다. 선지자 Amos가 아닌 다른 Amos의 아들입니다. 이사야는 이름에서부터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hy:[]v'y](예샤야)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이사야는 가족적으로도 하나님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그의 아내는 여선지자였습니다(사8:3). 그의 큰 아들은 bWvy: ra;v](스알야숩)입니다. “남는 자가 돌아오리라”입니다. 이스라엘이 앗수르를 통해 징벌을 받은 후에 남은 자가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암시한 이름입니다(사10:21). 다른 아들 이름은 zB' vj' ll;v; rhem'(마헬살랄하스바스)입니다. “약탈에 날래고 포획에 신속하다”입니다. 앗수르에 의해 유다가 약탈될 것을 예언한 이름입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철저하게 하나님중심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를 세우든지, 선견자를 세우든지 그의 대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겨우 여호수아가 살아 있을 때만 제대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왕정시대의 다윗 왕 때 40년간만 제대로 신앙생활을 할 정도였습니다. 800년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내놓을 시간은 약 70년이 채 못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들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러한 결과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큰 파란을 겪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나라가 둘로 쪼개졌습니다. 북쪽의 나라 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남쪽나라 유다 역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망해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유대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너희들이 계속적으로 잘못 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빨리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국가나 어떤 단체의 안녕을 위해서 여러 가지 안전장치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전장치는 불안정한 안전장치입니다. 환경과 여건에 따라 사람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서 환경과 여건이 불리하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안전장치만 믿고 갑니다. 세상의 모든 여건을 쥐고 계시는 하나님을 의지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알량한 지식에 의존하여 사람들은 죽음으로 달려가고 있을 뿐입니다. 알량한 이상한 교리에 혹하여 자신의 영혼을 팔고 있습니다. 결국 그로 인해서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데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뛰쳐나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내 말대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장 좋은 안전장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정국을 코로나정국이라고 합니다. 다들 못살겠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추후에 있을 세상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오직 현세(Only this life)만 신경을 쏟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세상은 필연적으로 오는데, 오직 숨이 붙어있을 동안의 삶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죽음이란 아예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람들이 경제경제 하는데 경제 즉 이 세상의 부만 좇다가 망한 사람의 예를 이스라엘의 오므리와 아합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16-28을 보면 오므리 왕은 근동문헌에 팔레스타인을 오므리의 집이라고 기록될 만큼 탁월했습니다. 모압과의 전쟁과 외교에 탁월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쟁의 승리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의 사적도 13절의 기록으로 끝냈습니다. 아합도 시리아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성경은 침묵하고, 그가 이방종교를 섬겼던 배교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습니다.
죽음이란 말은 창세기2:17에 나옵니다. tWmT; tWm/mût thâmût “죽고 죽으리라”를 반복하심으로 반드시 죽을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데 대한 결과라고 아담과 하와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죽음은 불순종에 대한 필연적인 결과였습니다. 구약성경의 주요주제는 하나님의 거룩 성입니다. 이 거룩 성이 그의 속성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모든 것에서부터 그를 떼어 놓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죽음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궁극적으로 분리되는 것’/ultimate separation from God due to sin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대한 반역이거나 그 뜻에 순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던 인간은 그 실재를 눈으로 보았습니다. 아벨이 형 가인에게 죽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이고자 철저하게 계획하였습니다. 창세기4:8을 보면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물은 받으심에 가인은 언젠가 아우 아벨을 죽이리라고 살해계획을 세웠습니다. 두 형제가 들에 있을 때에 형 가인은 아우 아벨을 쳐 죽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기 위해서 계획적으로 아벨을 들로 유인한 것인지, 아니면 우연한 기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을 때 가인이 아벨을 죽였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아주 모호하게 기록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은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무엇을 말했는지 그 목적어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의 번역본들은 “우리가 들로 가자”는 말을 첨가하였습니다. 원문의 흐름을 유연하게 할 뿐만 아니라 가인의 범죄가 계획적인 것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개역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바른성경 가인이 그 동생 아벨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들로 가자” 그들이 들에 있을 때 가인이 자기 동생 아벨을 대적하여 일어나 그를 쳐죽였다.
공동번역 그러나 카인은 아우 아벨을 "들로 가자"고 꾀어 들에 데리고 나가서 달려들어 아우 아벨을 쳐죽였다.
개역개정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3)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3)고대 역본들에 의하면 '우리가 들로 나가자'가 있음
CEV(Contemporary English Version) Cain said to his brother Abel, "Let's go for a walk." And when they were out in a field, Cain killed him.
NIV Now Cain said to his brother Abel, "Let's go out to the field." And while they were in the field, Cain attacked his brother Abel and killed him.
이후 죽음은 사람들에게 묘하게 다가옵니다. 므두셀라가 얼마나 오래 살았습니까? 969년입니다. 고려의 11대왕 문종 왕 6년 1052년에 태어났다고 가정하면 올해 2021년이 그의 죽는 년도입니다. 그래도 죽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광개토태왕은 북경까지 땅을 넓혔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죽었습니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장군 같은 분들이 지금까지 살아서 국가를 위하여 고문역할을 해주시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나쁜 사람들 즉 을사오적인 이완용 외 4명은 아예 태어나지 말아야 했습니다. 아베나 천황이라는 작자들은 아예 어렸을 때 죽어야 했습니다. 이승만이나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등은 우리나라에서 없었어야 할 인물들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못살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우리생각에 나쁜 자들은 일찍 죽거나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죽음은 신비입니다. 착한 사람도 죽고, 나쁜 사람도 죽습니다. 돈이 많아도 죽고, 돈이 없어도 죽습니다. 죽음은 나이순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죽음이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까? 죄 때문입니다.
결국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것을 밝히셨습니다(사59:16-18,20). 그리스도의 탄생과 통치를 말씀하셨습니다(사7:14, 9:1,6,7, 11:1-9). 예수님 앞에 올 세례요한의 사명을 예언했습니다(사40:3, 마3:3). 그리스도의 임무를 말씀하셨습니다(사61:1,2, 눅4:17-19). 예수님은 왕이 아니라 종으로서 오심을 말씀하셨습니다(사42:1-4).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구원하심을 말씀하셨습니다(사53:7-8,10,12, 61:1-11). 사람들을 복음으로 초대하셨습니다(사55:1-3, 행13:34). 죄인들이 구원 얻는 길을 말씀하셨습니다(사1:18-20).
오늘을 사는 이 시대에도 굉장히 암울합니다. 좋은 news는 하나도 없습니다. 100% 모두 암울한 news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없이 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모두 다 못산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살 길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구원의 길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은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뜻이 성경이고, 여호와의 섭리를 알려주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구원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육신은 그것을 전혀 모르지만, 사람의 영혼은 구원되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죄인들을 초대하는 하나님의 목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영육 간에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지 않아야 합니다.
II.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2-9)
2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 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7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무하였고 8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원두밭의 상직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9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옛날에 자식들이 부모의 말을 듣지 않을 때 갑자기 문을 열어놓고 크게 외치면서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동네사람들, 내 말 좀 들어보세요. 우리 자식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하며 동네방네 다 들으라고 외칩니다. 도시에서야 누가 들은 척도 하지 않지만, 시골에서는 그런 일이 있으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는 모습들이 모두 동네사람들에게 open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있으면 창피해서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해서 탄식을 하십니다. “들으라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땅이여”왜냐하면(yKi) 이스라엘이 나를 배반하였다는 것입니다. 지금 속이 터진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전부 타버려 숯검정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죄가 하나님의 속을 터지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내가 자식들을 아주 귀하고 귀하게 키웠는데, 그 놈들이 나에게 역적 짓을 했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못 참겠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땅과 하늘은 귀를 기울여 들어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를 낱낱이 지적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W[v]P;/2절). 3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짐승만도 못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여호와를 버렸습니다(Wbz][/4절). 이스라엘은 심판을 자초했습니다(5절). 하나도 빠짐없이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6절).
하나님이 왜 이스라엘에게 분노하셨습니까?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씀입니다. 소와 말은 제 주인을 알아보는데 이스라엘은 저희를 구원해 낸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핏덩이를 데려다 키웠는데 저희들 혼자 자란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탄식하시고 분노하십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영역 안에서 사라지겠다는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특별히 대하셨습니다. 항상 국빈으로 그들을 대우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많은 민족 중에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 신명기7:6-8을 봅시다.
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하나님께서는 지상의 모든 민족들을 제치시고 오직 이스라엘만 사랑하셨습니다. 이스라엘보다 똑똑하고 잘난 민족들을 제쳐두시고 오직 이스라엘만 사랑하셨습니다. 로마서3:1,2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위에 엄청난 복들을 쏟으셨습니다(롬9:4,5).
“저희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무엇보다 인류의 구원자이신 메시야가 그들 중에서 나게 하셨습니다(행2:22-39).
“이스라엘 사람들아 ····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복음이 그들에게 먼저 전파되게 하셨습니다(행3:18-26).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 복된 것들을 모두 버렸습니다. 2005년도에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Carcon a la pipe by Pablo Picasso))이란 작품이 1억4백만 달러에 팔렸습니다. 1174억6800만원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별로 볼 것이 없습니다. 한 소년이 파이프를 들고 앉아 있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이 그림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그림보다 수 억 배보다 더 귀하신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아주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버렸습니까? 자신들은 하나님을 절대로 버리지 않았다고 우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절대로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섬기면서 우상숭배를 철저하게 했습니다. 남편인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우상과 갖은 짓을 했습니다(호13:1-4). 그러면서 하나님께 희생은 더 드렸습니다. 무수한 제물을 드렸습니다(사1:11-14). 하나님께서 제물만 원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무수한 제물로 자신들의 죄를 덮으려고 했습니다. 위선적인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또한 철저하게 불순종했습니다(렘7:22-28). 청개구리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예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일단 배척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롬11:1-11). 홍해를 가르신 것도, 요단강을 건넌 것도, 광야에서 먹이신 신앙을 몽땅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았습니다. 듣지를 않으니까 믿을 수도 없었습니다. 괜히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가지고 우리만 귀찮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우리 방식대로 살 테니 상관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스라엘에 대해서 매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우리 같으면 당장 우주 밖으로 보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무척 사랑하셨습니다. 5절을 보면 “너희가 어찌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더욱 패역하느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너무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잘못될까봐 노심초사하셨습니다. 그들이 죄를 지으면 즉시 심판하시지 않았습니다. 오래 참다가 겨우 매를 준비하셨습니다. 블레셋의 매, 아멜렉의 매, 미디안의 매, 애굽의 매, 앗수르의 매들로 그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또 다른 매를 준비하셨는데, 그 매는 기상이변입니다. 비를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메뚜기로 온갖 식물을 다 먹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산업은 잘못되고 소출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치시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천둥치고 번개가 번쩍번쩍하는 매를 준비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바벨론의 매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들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빨리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들도 믿는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라고 했을 때 우리 역시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하나님을 떠나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죄가 됩니다.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기면 죄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역시 죄가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엄청난 복들을 쏟으시고, 쏟으실 텐데, 이것을 받고, 못 받고는 모두 우리들에게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에 위와 같은 것들의 죄를 우리가 회개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혜택이 제한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처럼 예배는 열심히 드리고, 기도는 열심히 하면서도 하나님을 떠날 수는 얼마든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수시로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함을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이지 못함을 회개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회개는 은혜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회개(bWv/suûwb/슈브/metavnoia/메타노이아/repentance)란 마음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며, 행동을 완전히 바꾸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말하는 회개란 쉽게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 했던 것들을 끊어버리고, 잘못된 것으로부터 180도 돌아서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래서 회개는 마음과 행동을 바꾸어야 합니다. 행동만 바꾸어서도 안 되고, 생각만 바꾸어서도 안 됩니다. 둘 다 바꾸어야 합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란 죄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는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결정적으로 돌이키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죄를 향한 변화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회개는 동시에 죄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는 거룩한 생활을 가능케 하는 성령의 역사를 수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일을 계획할지라도 내일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내일 믿어야지, 내일 믿게 해야지 하는데 시간과 기회는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믿어야하고, 지금 믿게 해야 합니다.
청교도인 토마스 왓슨은 회개를 미루면 미룰수록 그만큼 죄는 더 강력해지고, 마음은 더 강퍅해진다고 했습니다. 진실한 회개는 범죄를 그치게 하고,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복이 오는 통로를 마련케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것이 약속되어 있는데도 회개하지 못해서 그 통로가 막혀 있습니다. 우리는 그 통로를 회개함으로 뚫을 수 있습니다. 내가 잘못되었다고 하나님께 고백할 때 그 통로가 뚫어집니다.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하고 나갈 때 막혔던 복의 통로가 뚫어집니다. 삭개오가 회개할 때 삭개오의 주변이 변한 것처럼, 우리가 회개할 때 우리의 주위가 변하고, 우리의 가정이 변하며, 우리가 있는 곳이 변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혜택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가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밝지 않은 인간의 미래에 밝은 미래를 약속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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