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모르는 자들의 심판
베트남 전쟁에서 이길 길을 몰라서 패배했다고 시인했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국방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Strange McNamara는 TV 기자회견에서 “국민 여러분! 세계 최강의 군대를 가진 우리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졌습니다. 우리는 이 전쟁에 임할 때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했었습니다. 첫째, 일단 숫자로 환산될 수 있는 모든 것을 환산하기로 했습니다. 둘째, 숫자로 환산될 수 없는 것들은 일단 옆으로 제쳐놓았습니다. 셋째, 숫자로 환산될 수 없는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넷째, 그것들은 사실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바로 이것이 우리가 베트남에 패배한 이유입니다.”
손자병법에서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道, 天, 地, 將, 法 다섯 가지인데 道는 군주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같은 뜻을 가지고 전쟁에 임하는 자세입니다. 손자병법에서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꼽았습니다. 임금이 정하는 전쟁의 명분, 병사들의 전투의지, 백성들의 애국심이 한마음 한뜻이 될 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은 이 道를 알지 못했기에 패전했습니다. Robert Strange McNamara는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당시 미국은 전쟁해야 하는 명확한 vision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道라는 가치가 절대 숫자로 환산될 수 없음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알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5:13에 이러므로 @kel;/lâkēn라는 副詞를 사용했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용서할 수 있을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사로잡힐 것이라는 말은 過去時制가 되었습니다. 1:28-31을 보면
28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29 너희가 너희의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너희의 택한 동산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며 30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31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
따라서 “이러므로”는 심판의 경고와 위협을 동시에 말합니다. 심판의 경고를 들었다면, 이스라엘은 정신을 차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5:8-12을 보면
8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9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찌라도 거할 자가 없을 것이며 10 열흘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지기에는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 11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독주를 따라가며 밤이 깊도록 머물러 포도주에 취하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12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저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의 행하심을 관심치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하나님의 경고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기 할 일들만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라고 했습니다. 무지함을 인하여 t['d: AyliB]mi/mibh-lî
dʽat는 문자적으로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소멸 됨”,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닳아 떨어진”,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다 없어짐”입니다. 여호와의 백성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졌습니다. 애굽에서 430년간 씨종으로 노예 생활하는 것을 면해주셨는데, 가나안 땅에 들어간 지 얼마되지 않아 하나님의 은혜를 사그리 다 잊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하나님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너희들은 나를 몰라도 너무나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마음 가운데는 선천적인 본능에 의해 하나님에 대한 자각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무지를 가장하여 도피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그의 신성한 위엄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모든 사람 속에 주입하셨습니다. 그 기억을 잊지 않도록 요모저모로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더해 주십니다. 가뭄을 통해서, 또는 장마를 통해서, 천재지변을 당하면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한 분이신 하나님이 계시며 그가 그들의 창조임을 깨닫고 있기에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거나 그들의 생명을 그의 뜻에 따라 바치지 않으면 그들 스스로의 증거에 의해 정죄를 받습니다.
야만스런 민족이거나 미개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은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짐승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종교의 씨앗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지창조 이후로 종교 없이 산 지역, 도시, 가정은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모든 인간의 마음에 새겨져 있다는 무언의 고백입니다.
사람들이 우상 숭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믿지 않으면 두렵기 때문입니다. 모두 신들을 믿고 있는데, 자기만 아무 신도 믿지 않으면, 두렵기에 뭐라도 믿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깎아 만든 것이나 부어만든 것들에게 예배하여 두려움을 해소하려는 것입니다.
과거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좋든 싫든 그들은 때때로 그들이 믿고 싶어 하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해 어렴풋하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로마의 3대 황제인 칼리굴라(G. Caligula/37-41)는 하나님을 심히 대적한 자입니다. 하나님께 아주 모욕적인 말을 한 자입니다. Tiberius Caesar의 증손 조카이며 후계자인 Suetonius의 말에 의하면, Caligula는 천둥만 치면 벌벌 떨면서 침대에서 뛰어나와 그 밑에 숨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무신론자라고 하는 자들도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은 있습니다. 사람이 실제적인 무신론은 불가능합니다. 건전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워지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인간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불경한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외치지만, 그들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내쫓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존재한다는 확신을 입증해주는 것이고, 하나님이 각 사람 속에 선천적으로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세상은 하나님에 대한 모든 지식을 가능한 한 쫓아 버리려 합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파괴해 버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이 창조의 법칙에서 이탈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저를 만든 분이 누군데, 지옥을 누가 관장하시는데, 이 세상을 누가 다스리시고 관리하시는데 자꾸 이탈하느냐입니다. 지구를 떠나도 내가 관장하고, 땅속 깊이 들어가도 거기도 내 관할인데 나를 떠날 수 있느냐고 하십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누구의 백성입니까? 13절에 “이러므로 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았으면 존재하지 않았을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을 불가마 같은 애굽에서 빼내신 하나님이십니다. 핏덩이 같은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초자연적으로 그들을 돌보셨습니다. 그때 상황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출애굽기19:4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그런데 어떻게 이들이 하나님을 잊었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무지와 악의에 의해 소멸되거나 부패해집니다. 그들이 이방의 각종 미신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종교의 씨를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뿌려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마음 속에 간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것을 잘 자라게해서 시절을 따라 열매를 맺게 하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미신에 빠져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고의로 악의를 품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지식으로부터 이탈한 것입니다. 사람이 미신에 빠져든 사람들은 순진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겪고 있는 무지는 거의 대부분 교만한 허영과 강퍅함과 혼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유한한 인간이 마땅히 자신을 초월하여 하나님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쓸데없는 사색으로 달려가기 때문입니다. 미신에 빠지는 것은 교만과 결합된 허영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대로 이해하지 않고 자신의 상상 속에서 지어낸 모습대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영역에 도전하고, 쓸데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마귀의 자식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토속신앙인 바알과 아스다롯이라는 미신에 깊이 빠져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했습니다. 상상 속의 신을 믿으려는 부패함이 자기 자신을 망친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반항합니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배반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시14:1)라는 말은 선천적인 빛을 꺼버리고, 고의적으로 자기 자신을 바보로 만들고 있는 자들입니다. 많은 사람이 무례하고 습관적인 죄로 인해 강퍅해집니다. 다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사납게 내쫓습니다. 내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부여받았음에도 내쫓습니다. 그들의 이 미친 행동이 얼마나 혐오스러운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다윗은 그들이 하나님을 단적으로 부인한다고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지 않으신다면, 사람들의 사악한 행위가 눈 뜨고 못 볼 지경일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면 사악한 앗수르나, 바벨론 등과 같은 나라들이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을 것입니다.
Calvin은 악한 자들의 마음에 지방이 덮여서 그들이 눈을 감아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보아도 보지 못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공정한 처벌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악인의 죄얼이 내 마음에 이르기를 그 목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시36:1)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가장 잘 해석한 것입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이 보지 않으신다고 확신하기에, 그들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매우 거만하게 찬양합니다.
그들이 비록 자신들의 의식과 다투어 거기에서 하나님을 추방하려고 하지만, 그를 심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맹목적인 충동에 사로잡혀 있기에 그들은 짐승처럼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세상이 이러한데 하나님이 계실까? 정의와 공의는 사라지고, 불의와 악의가 판치고 있는데, 하나님은 뭐하고 계실까라고 반문할 때가 많습니다. 과거에도 그랬습니다.
많은 사람이 미신을 그럴듯하게 꾸며 내놓아 그것들을 좇았기에 사람들이 극도로 악해졌습니다. 종교적 열심이 신앙은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종교가 하나님의 뜻에 반한 행동을 열심히 합니까? 이것이 종교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지만, 전혀 아닌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미신적인 신앙은 하나님이 관심조차 없다고 명시한 것들만 고수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못된 짓만 골라서 합니다. 미신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열왕기하23:10 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사람으로 몰록에게 드리기 위하여 그 자녀를 불로 지나가게 하지 못하게 하고
예레미야32:35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을 건축하였으며 자기들의 자녀를 몰렉의 불에 지나가게 하였느니라 그들이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하여 유다로 범죄케 한 것은 나의 명한 것도 아니요 내 마음에 둔 것도 아니니라
에스겔 16:20,21 또 네가 나를 위하여 낳은 네 자녀를 가져 그들에게 드려 제물을 삼아 불살랐느니라 네가 너의 음행을 작은 일로 여겨서 나의 자녀들을 죽여 우상에게 붙여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느냐
암몬 자손들이 섬기는 밀곰(Milcom)은 몰렉(Moloch), 몰록(Moloch), 말감(Malcam)으로 불리던 암몬인들의 민족신입니다. 이 신을 섬기는 제의(祭義)의 특징은 인신제사였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가증한 신으로 언급되었습니다(레20:1-5). 유아(幼兒) 희생제사였습니다. 이 우상의 재료는 놋이었고, 그 머리는 힘센 황소(bull)의 모양이었습니다. 팔은 마치 어린이를 맞아들이려는 듯이 앞으로 쭉 뻗어 있었습니다. 또한 이 우상 바로 전면 좌우측에 맹렬히 불을 타오르게 했습니다. 고대 이방 족속들은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불인 태양을 섬기기위해 이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부모들은 자식 중 하나를 택하여 이 우상에게 바치면 남은 자녀들에게 복이 온다고 생각하여 자기 자식을 이 우상에게 바쳤습니다. 아하스(Ahaz) 시대 때 벤힌놈(Ben-Hinnom) 골짜기에서 아이를 죽여 뜨겁게 가열된 몰렉의 팔에 안겨 결국 불태우는 유아제사가 있었습니다(겔16:20, 21; 20:31; 렘32:35; 왕하23:10). 이같은 사실은 예루살렘 근처 벤 힌놈(Ben-Hinnom) 골짜기에서 행해진 이 제사를 가리켜 선지자 에스겔이 학살이라 불렀고(겔16:21), 예레미야가 불에 살랐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종교에 열심을 내면 어떻게 됩니까? 가정을 파괴하고, 지역을 파괴하며, 국가를 파괴하게 됩니다. 국가가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하는데, 무당의 혀를 빌어서 정치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엉뚱한 곳으로 국정이 흘러가 파선하게 됩니다. 현재 일본과 미국의 식민지가 되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누구의 짓입니까? 무당의 짓거리입니다.
사도바울도 갈라디아교회에게 “너희가 그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갈4:8) 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모호하고 그릇된 견해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라고 경고했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이 한 분이신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이 방황할 때 그들은 하나님 없는(엡2:12) 자들이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들은 위선자들입니다. 정의와 공의를 외치고 있는 나라들 일본, 중국, 러시아, 아프리카를 초토화했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하나님을 섬겼습니까? 우상숭배에 미쳐서 날뛰던 국가였습니다. 오늘날 이들 국가는 어떤 나라들이 되었습니까? 괴물들이 되었습니다. 백성을 학대하고 사람들을 무참히 학살했습니다.
하나님의 의(義)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심판대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이것이 무너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을 가지고 그들은 하나님께 대항하여 싸우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나 심판 하시지 않는 하나님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피할 수 없는 힘을 제거할 수도 없고 그것으로부터 도망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을 두려워하여 외양이 흡사한 어떤 종교를 꾸미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범하고 하나님의 의를 소멸시킬 뿐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전 생애에 걸쳐 하나님께 끊임없이 순종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진리와 정의를 쏟아야 하는데, 헛된 곳에 소비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쟁의 패배로 인한 포로 생활, 궁핍한 생활, 죽음의 공포를 당한다는 말씀입니다.
13 이러므로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 사로잡힐 것이요 그 귀한 자는 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며 14 음부가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중에서 연락하는 자가 거기 빠질 것이라 15 천한 자는 굴복되고 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로되 16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공평하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시리니 17 그 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 같이 먹을 것이요 살찐 자의 황무한 밭의 소산은 유리하는 자들이 먹으리라
흥청망청 먹고 떠들었던 자들이 전쟁의 패배로 인한 참상을 겪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아무리 귀한 자들이라 하더라도 전쟁에 패하면 노예가 됩니다. 돈이 많고, 학식이 풍부하며, 권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죽음은 그를 매우 하찮게 여깁니다. 사망은 환락을 애곡으로 변하게 합니다. 사망은 희락을 울음으로 변하게 합니다. 천한 자와 귀한 자가 하나님의 심판에서 함께 만나게 됩니다. 아무리 높은 사람일지라도 죽음은 그를 낮아지게 합니다. 천한자들은 더 낮아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이 심판의 결실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이신 거룩한 하나님께서 그 심판과 이 섭리의 의로우심으로 인하여 높임을 받으십니다. 스스로를 높이는 자들을 낮추심으로써 거기서 하나님의 정의가 인정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거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닌 하나님으로서의 영광을 받으십니다. 가장 강한 자를 꺾으시고, 가장 교만한 자를 낮추시며, 가장 다루기 힘든 자를 길들일 수 있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높임을 받으실 것입니다. 흠 없이 택한 하나님으로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거룩하신, 무한히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의롭게 심판하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실 것입니다. 교만한 자가 낮아질 때는, 위대하신 하나님이 영광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선한 사람들은 구제되고 구조됩니다. “그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같이 먹을 것이라” 했습니다. 어린 양(예수)을 따르던 자들, 이 땅의 온유한 자들, 그래서 교만한 압제자들에 의해 학대받아 두려움에 빠져있던 자들이 평안하게 푸른 초장에서 먹을 것입니다. 교회의 원수들이 멸망될 때, 교회는 비로소 휴식을 얻고 그들은 기쁘게 먹을 것입니다.
Closing 세속적인 철학자들은 한때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질문했습니다. 이에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어디에 안 계시는지를 네 자신에게 먼저 물어보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의 참으심은 계속되지만, 결코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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