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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7.09
    여호와를 모르는 자들의 심판
  2. 2022.09.02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여호와를 모르는 자들의 심판

이사야5:13-17

베트남 전쟁에서 이길 길을 몰라서 패배했다고 시인했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국방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Strange McNamaraTV 기자회견에서 국민 여러분! 세계 최강의 군대를 가진 우리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졌습니다. 우리는 이 전쟁에 임할 때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했었습니다. 첫째, 일단 숫자로 환산될 수 있는 모든 것을 환산하기로 했습니다. 둘째, 숫자로 환산될 수 없는 것들은 일단 옆으로 제쳐놓았습니다. 셋째, 숫자로 환산될 수 없는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넷째, 그것들은 사실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바로 이것이 우리가 베트남에 패배한 이유입니다.”

손자병법에서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 , , , 다섯 가지인데 는 군주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같은 뜻을 가지고 전쟁에 임하는 자세입니다. 손자병법에서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꼽았습니다. 임금이 정하는 전쟁의 명분, 병사들의 전투의지, 백성들의 애국심이 한마음 한뜻이 될 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은 이 를 알지 못했기에 패전했습니다. Robert Strange McNamara는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당시 미국은 전쟁해야 하는 명확한 vision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라는 가치가 절대 숫자로 환산될 수 없음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알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5:13에 이러므로 @kel;/lâkēn라는 副詞를 사용했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용서할 수 있을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 사로잡힐 것이라는 말은 過去時制가 되었습니다. 1:28-31을 보면

 

28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29 너희가 너희의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너희의 택한 동산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며 30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31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

 

따라서 이러므로는 심판의 경고와 위협을 동시에 말합니다. 심판의 경고를 들었다면, 이스라엘은 정신을 차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5:8-12을 보면

 

8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9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찌라도 거할 자가 없을 것이며 10 열흘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지기에는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 11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독주를 따라가며 밤이 깊도록 머물러 포도주에 취하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12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저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의 행하심을 관심치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하나님의 경고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기 할 일들만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라고 했습니다. 무지함을 인하여 t['d: AyliB]mi/mibh-lî

dʽat는 문자적으로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소멸 됨”,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닳아 떨어진”,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다 없어짐입니다. 여호와의 백성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졌습니다. 애굽에서 430년간 씨종으로 노예 생활하는 것을 면해주셨는데, 가나안 땅에 들어간 지 얼마되지 않아 하나님의 은혜를 사그리 다 잊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하나님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너희들은 나를 몰라도 너무나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마음 가운데는 선천적인 본능에 의해 하나님에 대한 자각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무지를 가장하여 도피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그의 신성한 위엄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모든 사람 속에 주입하셨습니다. 그 기억을 잊지 않도록 요모저모로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더해 주십니다. 가뭄을 통해서, 또는 장마를 통해서, 천재지변을 당하면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한 분이신 하나님이 계시며 그가 그들의 창조임을 깨닫고 있기에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거나 그들의 생명을 그의 뜻에 따라 바치지 않으면 그들 스스로의 증거에 의해 정죄를 받습니다.

야만스런 민족이거나 미개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은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짐승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종교의 씨앗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지창조 이후로 종교 없이 산 지역, 도시, 가정은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모든 인간의 마음에 새겨져 있다는 무언의 고백입니다.

사람들이 우상 숭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믿지 않으면 두렵기 때문입니다. 모두 신들을 믿고 있는데, 자기만 아무 신도 믿지 않으면, 두렵기에 뭐라도 믿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깎아 만든 것이나 부어만든 것들에게 예배하여 두려움을 해소하려는 것입니다.

과거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좋든 싫든 그들은 때때로 그들이 믿고 싶어 하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해 어렴풋하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로마의 3대 황제인 칼리굴라(G. Caligula/37-41)는 하나님을 심히 대적한 자입니다. 하나님께 아주 모욕적인 말을 한 자입니다. Tiberius Caesar의 증손 조카이며 후계자인 Suetonius의 말에 의하면, Caligula는 천둥만 치면 벌벌 떨면서 침대에서 뛰어나와 그 밑에 숨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무신론자라고 하는 자들도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은 있습니다. 사람이 실제적인 무신론은 불가능합니다. 건전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워지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인간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불경한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외치지만, 그들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내쫓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존재한다는 확신을 입증해주는 것이고, 하나님이 각 사람 속에 선천적으로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세상은 하나님에 대한 모든 지식을 가능한 한 쫓아 버리려 합니다.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파괴해 버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이 창조의 법칙에서 이탈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저를 만든 분이 누군데, 지옥을 누가 관장하시는데, 이 세상을 누가 다스리시고 관리하시는데 자꾸 이탈하느냐입니다. 지구를 떠나도 내가 관장하고, 땅속 깊이 들어가도 거기도 내 관할인데 나를 떠날 수 있느냐고 하십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누구의 백성입니까? 13절에 이러므로 나의 백성이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았으면 존재하지 않았을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을 불가마 같은 애굽에서 빼내신 하나님이십니다. 핏덩이 같은 이스라엘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초자연적으로 그들을 돌보셨습니다. 그때 상황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출애굽기19:4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그런데 어떻게 이들이 하나님을 잊었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무지와 악의에 의해 소멸되거나 부패해집니다. 그들이 이방의 각종 미신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종교의 씨를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뿌려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마음 속에 간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것을 잘 자라게해서 시절을 따라 열매를 맺게 하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미신에 빠져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고의로 악의를 품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지식으로부터 이탈한 것입니다. 사람이 미신에 빠져든 사람들은 순진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겪고 있는 무지는 거의 대부분 교만한 허영과 강퍅함과 혼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유한한 인간이 마땅히 자신을 초월하여 하나님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쓸데없는 사색으로 달려가기 때문입니다. 미신에 빠지는 것은 교만과 결합된 허영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대로 이해하지 않고 자신의 상상 속에서 지어낸 모습대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영역에 도전하고, 쓸데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마귀의 자식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토속신앙인 바알과 아스다롯이라는 미신에 깊이 빠져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했습니다. 상상 속의 신을 믿으려는 부패함이 자기 자신을 망친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반항합니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배반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14:1)라는 말은 선천적인 빛을 꺼버리고, 고의적으로 자기 자신을 바보로 만들고 있는 자들입니다. 많은 사람이 무례하고 습관적인 죄로 인해 강퍅해집니다. 다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사납게 내쫓습니다. 내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부여받았음에도 내쫓습니다. 그들의 이 미친 행동이 얼마나 혐오스러운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다윗은 그들이 하나님을 단적으로 부인한다고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지 않으신다면, 사람들의 사악한 행위가 눈 뜨고 못 볼 지경일 것입니다. 만일에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면 사악한 앗수르나, 바벨론 등과 같은 나라들이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을 것입니다.

Calvin은 악한 자들의 마음에 지방이 덮여서 그들이 눈을 감아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보아도 보지 못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공정한 처벌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악인의 죄얼이 내 마음에 이르기를 그 목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36:1)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가장 잘 해석한 것입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이 보지 않으신다고 확신하기에, 그들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매우 거만하게 찬양합니다.

그들이 비록 자신들의 의식과 다투어 거기에서 하나님을 추방하려고 하지만, 그를 심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맹목적인 충동에 사로잡혀 있기에 그들은 짐승처럼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세상이 이러한데 하나님이 계실까? 정의와 공의는 사라지고, 불의와 악의가 판치고 있는데, 하나님은 뭐하고 계실까라고 반문할 때가 많습니다. 과거에도 그랬습니다.

많은 사람이 미신을 그럴듯하게 꾸며 내놓아 그것들을 좇았기에 사람들이 극도로 악해졌습니다. 종교적 열심이 신앙은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종교가 하나님의 뜻에 반한 행동을 열심히 합니까? 이것이 종교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지만, 전혀 아닌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미신적인 신앙은 하나님이 관심조차 없다고 명시한 것들만 고수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못된 짓만 골라서 합니다. 미신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열왕기하23:10 왕이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더럽게 하여 사람으로 몰록에게 드리기 위하여 그 자녀를 불로 지나가게 하지 못하게 하고

 

예레미야32:35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을 건축하였으며 자기들의 자녀를 몰렉의 불에 지나가게 하였느니라 그들이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하여 유다로 범죄케 한 것은 나의 명한 것도 아니요 내 마음에 둔 것도 아니니라

 

에스겔 16:20,21 또 네가 나를 위하여 낳은 네 자녀를 가져 그들에게 드려 제물을 삼아 불살랐느니라 네가 너의 음행을 작은 일로 여겨서 나의 자녀들을 죽여 우상에게 붙여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느냐

 

암몬 자손들이 섬기는 밀곰(Milcom)은 몰렉(Moloch), 몰록(Moloch), 말감(Malcam)으로 불리던 암몬인들의 민족신입니다. 이 신을 섬기는 제의(祭義)의 특징은 인신제사였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가증한 신으로 언급되었습니다(20:1-5). 유아(幼兒) 희생제사였습니다. 이 우상의 재료는 놋이었고, 그 머리는 힘센 황소(bull)의 모양이었습니다. 팔은 마치 어린이를 맞아들이려는 듯이 앞으로 쭉 뻗어 있었습니다. 또한 이 우상 바로 전면 좌우측에 맹렬히 불을 타오르게 했습니다. 고대 이방 족속들은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불인 태양을 섬기기위해 이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부모들은 자식 중 하나를 택하여 이 우상에게 바치면 남은 자녀들에게 복이 온다고 생각하여 자기 자식을 이 우상에게 바쳤습니다. 아하스(Ahaz) 시대 때 벤힌놈(Ben-Hinnom) 골짜기에서 아이를 죽여 뜨겁게 가열된 몰렉의 팔에 안겨 결국 불태우는 유아제사가 있었습니다(16:20, 21; 20:31; 32:35; 왕하23:10). 이같은 사실은 예루살렘 근처 벤 힌놈(Ben-Hinnom) 골짜기에서 행해진 이 제사를 가리켜 선지자 에스겔이 학살이라 불렀고(16:21), 예레미야가 불에 살랐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종교에 열심을 내면 어떻게 됩니까? 가정을 파괴하고, 지역을 파괴하며, 국가를 파괴하게 됩니다. 국가가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하는데, 무당의 혀를 빌어서 정치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엉뚱한 곳으로 국정이 흘러가 파선하게 됩니다. 현재 일본과 미국의 식민지가 되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누구의 짓입니까? 무당의 짓거리입니다.

 

사도바울도 갈라디아교회에게 너희가 그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4:8) 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모호하고 그릇된 견해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라고 경고했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이 한 분이신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이 방황할 때 그들은 하나님 없는(2:12) 자들이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들은 위선자들입니다. 정의와 공의를 외치고 있는 나라들 일본, 중국, 러시아, 아프리카를 초토화했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하나님을 섬겼습니까? 우상숭배에 미쳐서 날뛰던 국가였습니다. 오늘날 이들 국가는 어떤 나라들이 되었습니까? 괴물들이 되었습니다. 백성을 학대하고 사람들을 무참히 학살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심판대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이것이 무너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을 가지고 그들은 하나님께 대항하여 싸우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나 심판 하시지 않는 하나님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피할 수 없는 힘을 제거할 수도 없고 그것으로부터 도망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을 두려워하여 외양이 흡사한 어떤 종교를 꾸미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범하고 하나님의 의를 소멸시킬 뿐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전 생애에 걸쳐 하나님께 끊임없이 순종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진리와 정의를 쏟아야 하는데, 헛된 곳에 소비했기 때문에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쟁의 패배로 인한 포로 생활, 궁핍한 생활, 죽음의 공포를 당한다는 말씀입니다.

 

13 이러므로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 사로잡힐 것이요 그 귀한 자는 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며 14 음부가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중에서 연락하는 자가 거기 빠질 것이라 15 천한 자는 굴복되고 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로되 16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공평하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시리니 17 그 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 같이 먹을 것이요 살찐 자의 황무한 밭의 소산은 유리하는 자들이 먹으리라

 

흥청망청 먹고 떠들었던 자들이 전쟁의 패배로 인한 참상을 겪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아무리 귀한 자들이라 하더라도 전쟁에 패하면 노예가 됩니다. 돈이 많고, 학식이 풍부하며, 권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죽음은 그를 매우 하찮게 여깁니다. 사망은 환락을 애곡으로 변하게 합니다. 사망은 희락을 울음으로 변하게 합니다. 천한 자와 귀한 자가 하나님의 심판에서 함께 만나게 됩니다. 아무리 높은 사람일지라도 죽음은 그를 낮아지게 합니다. 천한자들은 더 낮아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이 심판의 결실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이신 거룩한 하나님께서 그 심판과 이 섭리의 의로우심으로 인하여 높임을 받으십니다. 스스로를 높이는 자들을 낮추심으로써 거기서 하나님의 정의가 인정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거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닌 하나님으로서의 영광을 받으십니다. 가장 강한 자를 꺾으시고, 가장 교만한 자를 낮추시며, 가장 다루기 힘든 자를 길들일 수 있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높임을 받으실 것입니다. 흠 없이 택한 하나님으로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거룩하신, 무한히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의롭게 심판하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실 것입니다. 교만한 자가 낮아질 때는, 위대하신 하나님이 영광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선한 사람들은 구제되고 구조됩니다. “그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같이 먹을 것이라했습니다. 어린 양(예수)을 따르던 자들, 이 땅의 온유한 자들, 그래서 교만한 압제자들에 의해 학대받아 두려움에 빠져있던 자들이 평안하게 푸른 초장에서 먹을 것입니다. 교회의 원수들이 멸망될 때, 교회는 비로소 휴식을 얻고 그들은 기쁘게 먹을 것입니다.

 

Closing 세속적인 철학자들은 한때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질문했습니다. 이에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어디에 안 계시는지를 네 자신에게 먼저 물어보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의 참으심은 계속되지만, 결코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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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0) 2022.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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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1:1-9 

 

2021Suez運河痲痹事故는 이집트 시간(UTC+2)으로 2021323일 오전 740분에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Ever Given)Suez運河에서 7일간이나 좌초된 사건입니다. 400m 길이의 배가 시속 74km의 모래폭풍을 맞고 넘어진 것이 좌초의 원인입니다. 그 결과 Suez運河의 통행을 가로막게 되었습니다. 좌초된 지 하루가 채 되지 않아 최소15척의 선박이 묘박지에 체류하였습니다. 이후에 237척의 선박이 운하를 통과하기 위해 줄을 서고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좌초가 이 운하의 하부에서 발생한 까닭에 이를 우회할 방법도 현재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1869년 개통된 Suez運河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교통로입니다. Africa대륙을 우회하지 않고 AsiaEurope을 직접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Suez運河는 세계 물동량의 12%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2020년 기준 통행선박은 1,8500척 이상으로 하루 평균 51.5 척입니다.

문제는 전 세계 물류의 약 10%Suez運河를 통과하는 까닭에, 이 사건으로 인해 유류, 일용품 등의 운송에 심각한 차질이 생길 것으로 내다보았습니다. 매 시간 4억 달러(4518억원)의 손해가 발생하고 있으며,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추가로 매일 90억 달러(10조원) 상당의 상품운송이 지연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Suez運河를 주요 통로로 이용하고 있던 석유운송이 차질을 빚자 국제유가는 6% 이상 상승하였다고 합니다. 이집트에서는 매일 158억원의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더구나 코로나정국, 코로나사태, 코로나상황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들이 망가졌습니다. 이전에 잘 나가던 사업장이 송두리째 없어졌습니다. 이로 인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도미노처럼 무너졌습니다. 어떻게 해볼 래야 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못살겠다고 합니다. 너무나 어렵다고 모두 말합니다.

 

이사야 1절을 보아도 그런 시기였습니다. 양상은 달라도 국가가 매우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국제적 상황으로 국내의 상황이 안정적이지 못했습니다.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오늘 첫 번째로

 

I. 여호와의 선지자 이사야(1)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때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 시대였습니다. 이때는 팔레스타인이 굉장히 암울했었습니다. 유다의 형제국인 북 왕국 이스라엘은 주전722년에 멸망했습니다. 그리고 유다도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예루살렘만 외롭게 남아 있었습니다. 히스기야 왕 통치중간에는 유다도 점점 쇠퇴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거기에 주변의 강대국이 부상함으로 인해서 유대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졌습니다. 이사야는 주전791년부터 주전 681년까지 네 왕에 걸쳐 약 60년간 사역을 했습니다. 이미 망해버린 이스라엘을 바라보면서 유다는 이러한 전철을 밟지 말라고 준엄하게 유다에게 경고를 했습니다.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과 구원의 메시지를 동시에 선포했습니다.

 

이사야부터 선지서입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5)은 대선지서라 하고,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12)를 소선지서라 부릅니다. 사람들이 위대해서 대선지서라 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분량이 많고 적음에 따라 대선지서, 소선지서로 구분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선지자를 aybin:(나비)라 불렀습니다. nabi대변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정규적인 대변자로 그의 말에 신적 권위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선지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다음 그것을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직분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라는 직분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먼저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후에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전해야 합니다. 점치듯이 앞일을 훤히 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으면 선지자가 아닙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거짓 선지자이며 박수무당입니다. 귀신들의 조종을 받고 있는 아주 나쁜 사람들입니다.

 

이사야는 Amos의 아들입니다. 선지자 Amos가 아닌 다른 Amos의 아들입니다. 이사야는 이름에서부터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hy:[]v'y](예샤야)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이사야는 가족적으로도 하나님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그의 아내는 여선지자였습니다(8:3). 그의 큰 아들은 bWvy: ra;v](스알야숩)입니다. “남는 자가 돌아오리라입니다. 이스라엘이 앗수르를 통해 징벌을 받은 후에 남은 자가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암시한 이름입니다(10:21). 다른 아들 이름은 zB' vj' ll;v; rhem'(마헬살랄하스바스)입니다. “약탈에 날래고 포획에 신속하다입니다. 앗수르에 의해 유다가 약탈될 것을 예언한 이름입니다. 따라서 이사야는 철저하게 하나님중심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를 세우든지, 선견자를 세우든지 그의 대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겨우 여호수아가 살아 있을 때만 제대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왕정시대의 다윗 왕 때 40년간만 제대로 신앙생활을 할 정도였습니다. 800년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내놓을 시간은 약 70년이 채 못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들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러한 결과로 인해서 이스라엘은 큰 파란을 겪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나라가 둘로 쪼개졌습니다. 북쪽의 나라 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남쪽나라 유다 역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망해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유대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너희들이 계속적으로 잘못 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빨리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국가나 어떤 단체의 안녕을 위해서 여러 가지 안전장치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전장치는 불안정한 안전장치입니다. 환경과 여건에 따라 사람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서 환경과 여건이 불리하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안전장치만 믿고 갑니다. 세상의 모든 여건을 쥐고 계시는 하나님을 의지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알량한 지식에 의존하여 사람들은 죽음으로 달려가고 있을 뿐입니다. 알량한 이상한 교리에 혹하여 자신의 영혼을 팔고 있습니다. 결국 그로 인해서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데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뛰쳐나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내 말대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장 좋은 안전장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정국을 코로나정국이라고 합니다. 다들 못살겠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추후에 있을 세상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오직 현세(Only this life)만 신경을 쏟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세상은 필연적으로 오는데, 오직 숨이 붙어있을 동안의 삶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죽음이란 아예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람들이 경제경제 하는데 경제 즉 이 세상의 부만 좇다가 망한 사람의 예를 이스라엘의 오므리와 아합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16-28을 보면 오므리 왕은 근동문헌에 팔레스타인을 오므리의 집이라고 기록될 만큼 탁월했습니다. 모압과의 전쟁과 외교에 탁월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쟁의 승리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의 사적도 13절의 기록으로 끝냈습니다. 아합도 시리아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성경은 침묵하고, 그가 이방종교를 섬겼던 배교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습니다.

 

죽음이란 말은 창세기2:17에 나옵니다. tWmT; tWm/mût thâmût 죽고 죽으리라를 반복하심으로 반드시 죽을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데 대한 결과라고 아담과 하와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죽음은 불순종에 대한 필연적인 결과였습니다. 구약성경의 주요주제는 하나님의 거룩 성입니다. 이 거룩 성이 그의 속성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모든 것에서부터 그를 떼어 놓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죽음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궁극적으로 분리되는 것’/ultimate separation from God due to sin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대한 반역이거나 그 뜻에 순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던 인간은 그 실재를 눈으로 보았습니다. 아벨이 형 가인에게 죽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이고자 철저하게 계획하였습니다. 창세기4:8을 보면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물은 받으심에 가인은 언젠가 아우 아벨을 죽이리라고 살해계획을 세웠습니다. 두 형제가 들에 있을 때에 형 가인은 아우 아벨을 쳐 죽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기 위해서 계획적으로 아벨을 들로 유인한 것인지, 아니면 우연한 기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을 때 가인이 아벨을 죽였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아주 모호하게 기록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은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무엇을 말했는지 그 목적어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의 번역본들은 우리가 들로 가자는 말을 첨가하였습니다. 원문의 흐름을 유연하게 할 뿐만 아니라 가인의 범죄가 계획적인 것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개역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바른성경 가인이 그 동생 아벨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들로 가자 그들이 들에 있을 때 가인이 자기 동생 아벨을 대적하여 일어나 그를 쳐죽였다.

 

공동번역 그러나 카인은 아우 아벨을 "들로 가자"고 꾀어 들에 데리고 나가서 달려들어 아우 아벨을 쳐죽였다.

 

개역개정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3)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3)고대 역본들에 의하면 '우리가 들로 나가자'가 있음

 

CEV(Contemporary English Version) Cain said to his brother Abel, "Let's go for a walk." And when they were out in a field, Cain killed him.

NIV Now Cain said to his brother Abel, "Let's go out to the field." And while they were in the field, Cain attacked his brother Abel and killed him.

 

이후 죽음은 사람들에게 묘하게 다가옵니다. 므두셀라가 얼마나 오래 살았습니까? 969년입니다. 고려의 11대왕 문종 왕 61052년에 태어났다고 가정하면 올해 2021년이 그의 죽는 년도입니다. 그래도 죽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광개토태왕은 북경까지 땅을 넓혔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죽었습니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장군 같은 분들이 지금까지 살아서 국가를 위하여 고문역할을 해주시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나쁜 사람들 즉 을사오적인 이완용 외 4명은 아예 태어나지 말아야 했습니다. 아베나 천황이라는 작자들은 아예 어렸을 때 죽어야 했습니다. 이승만이나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등은 우리나라에서 없었어야 할 인물들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못살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우리생각에 나쁜 자들은 일찍 죽거나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죽음은 신비입니다. 착한 사람도 죽고, 나쁜 사람도 죽습니다. 돈이 많아도 죽고, 돈이 없어도 죽습니다. 죽음은 나이순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죽음이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까? 죄 때문입니다.

 

결국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것을 밝히셨습니다(59:16-18,20). 그리스도의 탄생과 통치를 말씀하셨습니다(7:14, 9:1,6,7, 11:1-9). 예수님 앞에 올 세례요한의 사명을 예언했습니다(40:3, 3:3). 그리스도의 임무를 말씀하셨습니다(61:1,2, 4:17-19). 예수님은 왕이 아니라 종으로서 오심을 말씀하셨습니다(42:1-4).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구원하심을 말씀하셨습니다(53:7-8,10,12, 61:1-11). 사람들을 복음으로 초대하셨습니다(55:1-3, 13:34). 죄인들이 구원 얻는 길을 말씀하셨습니다(1:18-20).

 

오늘을 사는 이 시대에도 굉장히 암울합니다. 좋은 news는 하나도 없습니다. 100% 모두 암울한 news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없이 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모두 다 못산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살 길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구원의 길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은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뜻이 성경이고, 여호와의 섭리를 알려주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구원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육신은 그것을 전혀 모르지만, 사람의 영혼은 구원되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죄인들을 초대하는 하나님의 목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영육 간에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지 않아야 합니다.

II.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2-9)

 

2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 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7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무하였고 8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원두밭의 상직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9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옛날에 자식들이 부모의 말을 듣지 않을 때 갑자기 문을 열어놓고 크게 외치면서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동네사람들, 내 말 좀 들어보세요. 우리 자식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하며 동네방네 다 들으라고 외칩니다. 도시에서야 누가 들은 척도 하지 않지만, 시골에서는 그런 일이 있으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는 모습들이 모두 동네사람들에게 open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있으면 창피해서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해서 탄식을 하십니다. “들으라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땅이여왜냐하면(yKi) 이스라엘이 나를 배반하였다는 것입니다. 지금 속이 터진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전부 타버려 숯검정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죄가 하나님의 속을 터지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내가 자식들을 아주 귀하고 귀하게 키웠는데, 그 놈들이 나에게 역적 짓을 했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못 참겠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땅과 하늘은 귀를 기울여 들어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를 낱낱이 지적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W[v]P;/2). 3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짐승만도 못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여호와를 버렸습니다(Wbz][/4). 이스라엘은 심판을 자초했습니다(5). 하나도 빠짐없이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6).

 

하나님이 왜 이스라엘에게 분노하셨습니까?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씀입니다. 소와 말은 제 주인을 알아보는데 이스라엘은 저희를 구원해 낸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핏덩이를 데려다 키웠는데 저희들 혼자 자란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탄식하시고 분노하십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영역 안에서 사라지겠다는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특별히 대하셨습니다. 항상 국빈으로 그들을 대우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많은 민족 중에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 신명기7:6-8을 봅시다.

 

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하나님께서는 지상의 모든 민족들을 제치시고 오직 이스라엘만 사랑하셨습니다. 이스라엘보다 똑똑하고 잘난 민족들을 제쳐두시고 오직 이스라엘만 사랑하셨습니다. 로마서3:1,2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위에 엄청난 복들을 쏟으셨습니다(9:4,5).

 

저희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무엇보다 인류의 구원자이신 메시야가 그들 중에서 나게 하셨습니다(2:22-39).

 

이스라엘 사람들아 ····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복음이 그들에게 먼저 전파되게 하셨습니다(3:18-26).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 복된 것들을 모두 버렸습니다. 2005년도에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Carcon a la pipe by Pablo Picasso))이란 작품이 14백만 달러에 팔렸습니다. 11746800만원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별로 볼 것이 없습니다. 한 소년이 파이프를 들고 앉아 있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이 그림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그림보다 수 억 배보다 더 귀하신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아주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버렸습니까? 자신들은 하나님을 절대로 버리지 않았다고 우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절대로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섬기면서 우상숭배를 철저하게 했습니다. 남편인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우상과 갖은 짓을 했습니다(13:1-4). 그러면서 하나님께 희생은 더 드렸습니다. 무수한 제물을 드렸습니다(1:11-14). 하나님께서 제물만 원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무수한 제물로 자신들의 죄를 덮으려고 했습니다. 위선적인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또한 철저하게 불순종했습니다(7:22-28). 청개구리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예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일단 배척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11:1-11). 홍해를 가르신 것도, 요단강을 건넌 것도, 광야에서 먹이신 신앙을 몽땅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았습니다. 듣지를 않으니까 믿을 수도 없었습니다. 괜히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가지고 우리만 귀찮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우리 방식대로 살 테니 상관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스라엘에 대해서 매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우리 같으면 당장 우주 밖으로 보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무척 사랑하셨습니다. 5절을 보면 너희가 어찌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더욱 패역하느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너무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잘못될까봐 노심초사하셨습니다. 그들이 죄를 지으면 즉시 심판하시지 않았습니다. 오래 참다가 겨우 매를 준비하셨습니다. 블레셋의 매, 아멜렉의 매, 미디안의 매, 애굽의 매, 앗수르의 매들로 그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또 다른 매를 준비하셨는데, 그 매는 기상이변입니다. 비를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메뚜기로 온갖 식물을 다 먹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산업은 잘못되고 소출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치시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천둥치고 번개가 번쩍번쩍하는 매를 준비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바벨론의 매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들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빨리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들도 믿는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라고 했을 때 우리 역시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하나님을 떠나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 죄가 됩니다.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기면 죄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역시 죄가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엄청난 복들을 쏟으시고, 쏟으실 텐데, 이것을 받고, 못 받고는 모두 우리들에게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에 위와 같은 것들의 죄를 우리가 회개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혜택이 제한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처럼 예배는 열심히 드리고, 기도는 열심히 하면서도 하나님을 떠날 수는 얼마든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수시로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함을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이지 못함을 회개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회개는 은혜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회개(bWv/suûwb/슈브/metavnoia/메타노이아/repentance)란 마음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며, 행동을 완전히 바꾸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말하는 회개란 쉽게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 했던 것들을 끊어버리고, 잘못된 것으로부터 180도 돌아서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래서 회개는 마음과 행동을 바꾸어야 합니다. 행동만 바꾸어서도 안 되고, 생각만 바꾸어서도 안 됩니다. 둘 다 바꾸어야 합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란 죄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는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결정적으로 돌이키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죄를 향한 변화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회개는 동시에 죄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는 거룩한 생활을 가능케 하는 성령의 역사를 수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일을 계획할지라도 내일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내일 믿어야지, 내일 믿게 해야지 하는데 시간과 기회는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믿어야하고, 지금 믿게 해야 합니다.

 

청교도인 토마스 왓슨은 회개를 미루면 미룰수록 그만큼 죄는 더 강력해지고, 마음은 더 강퍅해진다고 했습니다. 진실한 회개는 범죄를 그치게 하고,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복이 오는 통로를 마련케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것이 약속되어 있는데도 회개하지 못해서 그 통로가 막혀 있습니다. 우리는 그 통로를 회개함으로 뚫을 수 있습니다. 내가 잘못되었다고 하나님께 고백할 때 그 통로가 뚫어집니다.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하고 나갈 때 막혔던 복의 통로가 뚫어집니다. 삭개오가 회개할 때 삭개오의 주변이 변한 것처럼, 우리가 회개할 때 우리의 주위가 변하고, 우리의 가정이 변하며, 우리가 있는 곳이 변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혜택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가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밝지 않은 인간의 미래에 밝은 미래를 약속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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