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박의 재앙⑦(출애굽기9:27-35)
바로는 숨통이 막히면 살길을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숨이 트이면 즉시 원상으로 돌아가는 심리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망할 때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한 살려서 막판까지 갑니다. 지금까지의 이적을 보면 충분히 하나님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함에도 즉시 돌아섰습니다. 불과 우박이 떨어지니까 공포스러워 모세와 아론을 불렀던 그는, 그 요인이 없어지자 즉시 원래의 마음으로 돌아섰습니다. 27절을 보면 바로가 짐짓 회개한 것 같이 보입니다.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이렇게 말했지만 바로의 그 마음이 오래가지 못하였습니다. 즉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7:3을 보면 가룟유다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뉘우쳤습니다. 그리고 은 30을 도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뉘우쳤다” 할 때 헬라사람들은 metamevllomai(메타멜로마이/마음을 바꾸다)와 metanoevw(메타노에오)를 사용하여 대조하였습니다. metamevllomai는 단순하게 감정적인 변화만을 나타날 때 사용하였습니다. 일시적인 감정의 변화입니다. 그러나 곧 자신의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변화입니다. 가롯유다의 뉘우침이 그랬습니다. 바로가 이러한 뉘우침입니다. 일시적인 뉘우침이었습니다. 따라서 고통과 감정의 변화가 평안해지면 원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뉘우침은 신앙에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聖化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뉘우침은 오히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 외엔 없습니다.
이에 비해서 “회개하다”metanoevw는 선택의 변화입니다. 역전입니다. 내가 가고 있는 지금까지의 길이 틀렸습니다. 그런데 사는 길이 따로 있습니다. 그러면 바로 지금까지의 길이 잘못되었음을 뉘우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롭게 길을 선택합니다. 똑같이 죄를 지었음에도 베드로가 가룟 유다와 다른 점이 선택의 변화입니다. 베드로는 심히 통곡했습니다. 그리고 후에 예수님을 따릅니다. 선택한 변화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뉘우치기는 했지만 스스로 목을 매어서 자살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생을 마감합니다. 요샛말로 사무라이 같은 정신입니다. 남자다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비굴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베드로는 칭찬하고 가룟 유다는 영원히 저주받은 삶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로 같은 회개는 회개가 아닙니다. 임기응변으로 하는 행위는 회개가 아닙니다. 오직 살려고 연기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회개를 하여야하지만 진심으로 회개를 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회개가 상달이 되지 않습니다. 많은 회개라고 하는 것들이 바로의 회개와 같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진실로 회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회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회개를 우리가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살길입니다. 진실 된 회개는 말뿐이지 않습니다. 행동이 뒤따릅니다. 바로는 재앙이 거두어지자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