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강한 바로(출애굽기8:8-15)
바로 왕이나 신하들 그리고 애굽의 국민들은 계속되는 재앙에 진저리가 쳐졌습니다. 온통 어디나 개구리뿐이었습니다. 그들이 신으로 섬기던 개구리가 이제는 넌더리가 났습니다. 할 수 없이 애굽의 국민들은 왕이 어떠한 조치를 취해주기를 구했습니다. 바로는 모세를 불러서 개구리를 제거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히브리사람들을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모세는 애굽에 내렸던 재앙을 거두시라고 하나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애굽의 술객들도 이적을 흉내는 냈지만, 그 재앙을 없이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미 애굽의 술사들은 판가름이 났습니다. 모세는 바로에게 어느 때에 개구리를 거둘 것인가 물었습니다. 바로는 그 이튿날로 정했습니다. 모세가 그렇게 빨리 개구리를 제거할 수가 있을까 해서 다음날로 정한 것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간구를 하니까 집에 있던 개구리, 마당에 있던 개구리, 밭에 있던 개구리가 죽었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무더기로 쌓자 악취가 진동했습니다(9-14).
하지만 바로가 숨을 쉴 수 있게 되자, 스스로 그 마음을 완강케 하였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듣지 않았습니다. ‘완강케 하다’ “카바드”는 그 자신을 “무겁게 하였다. 그 자신을 힘겹게 하였다”입니다. “카바드”는 대부분 바로와 관계하여 쓰여졌습니다(출7:14, 8:15,28, 9:7,34, 10:1, 삼상 6:6). 그 상황 혹은 히브리 백성의 청원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 바로의 거부는 마음의 완악함 혹은 강퍅함으로 변했습니다. 그 자신의 고집을 완강케 하는 것은 죽는 것입니다. 바로가 그 스스로를 완강케 하니까 본인에게 막대한 손해가 돌아왔습니다. 본인 뿐에게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손해가 막심하였습니다. 왕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스스로를 완강케 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아직도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징계를 받고서야 그 스스로 채웠던 빗장을 풀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강퍅하게 해선 안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만 있을 뿐입니다. 마태복음21:18-19을 보면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즉 유다와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아무리 설득을 하려해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결국은 내려오셔서 그들과 함께 하셨는데, 이들은 사사건건 예수님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예수님의 갈 길을 막으려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셔서 교훈하셨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이것이 현실로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70년에 예루살렘과 유다가 그대로 파괴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강퍅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신자들인 우리가 얼마든지 스스로를 강퍅케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항상 그 앞에서 순종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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