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님/대제사장과 장로들(마태복음27:41-43)
사람의 시기심은 큰 산도 불태울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시기심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있습니다. 다만 이 시기심을 어떻게 제어하느냐입니다. 시기심 때문에 역사적으로 많은 일들이 큰 손해를 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은 유대의 상위그룹들입니다. 즉 많은 기득권들과 기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동방에서 박사들이 유대에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묻는 말은 청천벽력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유대의 왕이 어디에서 나느냐?’고 물었습니다(마2:2). 그들에게는 유대의 왕이 필요 없었습니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할 때에 어느 때보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헤롯은 왕위가 위태로울까봐서 베들레헴에 있는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을 무참히 살해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그들의 정적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틈을 잡지 못했습니다. 갈릴리에서부터 스파이를 보냈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로부터 정말 반가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것도 밤에 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혹시 잘못될까봐 그 밤에 거짓증인을 내세워 기획재판을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빌라도의 최종 재판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역시 술수를 썼습니다. 민란이 나려는 것같이 해서 그 고비도 넘겼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있어서 큰 정적을 죽일 수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종교지도자들이라고 하는 것을 잊었습니다. 최소한 예루살렘에 종교최고책임자들이라는 사실도 잊었습니다. 그리하여 지나가는 사람들과 같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희롱했습니다(41절). 군중들과 똑같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내려와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입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조소는 증오와 시기로 섞여 있었습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가증스럽고 야비한 것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것에 대해서 공격한 것입니다. ‘네가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이 능히 구원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53:3을 보면,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질 때에 그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120명의 사람들입니다. 그의 제자들입니다. 그의 치료를 받고 나음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 이외는 모든 유대인들이 그를 싫어했습니다. 그만큼 이 세상은 마귀에 얽매어 있었습니다. 죄로 온통 꽉 차있습니다. 그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수님의 비하의 신분 중에서 가장 절정입니다. 그러나 곧 이 세상을 심판하고 마귀의 왕국을 송두리째 파내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것을 세상과 마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아는 분들은 삼위의 하나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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