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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사도행전2:37-42)

사도들의 말과 베드로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들이 십자가에 못을 박도록 종용한 사람이 주와 그리스도인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성경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분이 하나님이신 줄을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을 제일로 잘 섬긴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른다고 생각하여(물론 잘못된 생각이지만) 십자가에 못 박게 하였는데, 알고 보니 자신들이 너무나 잘못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음이 심히 찔렸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물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심히 찔렸던 것입니다. ‘찔려’(katanuvssw/카타뉫소)katav/카타/-에 대하여)nuvssw/뉫소/찌르다)에서 유래했으며, ‘마음에 예리한 고통을 주다’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는데 잘못알고 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는 색깔론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소위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쓴 소리를 하면 무조건 좌파/빨갱이라고 예단해버립니다. 일부 언론들이 조장하고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이 몰고 갑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우리나라는 절반이상이 좌파입니다. 보수라고 하면서 보수 아닌 사람들은 절반도 안 됩니다. 아주 적은 숫자에 불과합니다. 대단히 잘못된 예입니다. 좌파를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모릅니다. 보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나 알고 자신들을 보수라고 하는지 모릅니다. 나라가 이렇게 될 때 힘이 극히 감소됩니다.

창세기50:15에서 21을 보면 요셉의 형들이 야곱이 죽은 뒤에, 요셉에게 부탁하는 말입니다. “16…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찌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만난 뒤에 야곱의 그늘 밑에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셉은 이미 형들의 죄를 용서해주었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용서를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죽은 뒤에 후환을 생각했습니다. 죄책감이란 두려운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도둑 제 발 저린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려면 죄책감도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인 외에 ‘당신 죄인이지?’라고 묻는다면 그 말에 대한 긍정은 아주 희소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하나님이 죄를 용서해주지 않아도, 능히 자신들이 그 죄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신 죄책감은 어떤 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기 자신을 죄인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전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들에게도 많은 죄책감이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과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그 죄책감이 없어집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없다고 인정해주십니다. ‘하나님, 저 죄인입니까? 아니’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으로 인해서 죄가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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