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에게 내린 형벌(창세기3:17-19)
(하나님께서)그리고 아담에게 이르셨다.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그것으로부터)종신토록 수고하여야 너는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네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만일에 인간의 조상인 아담이 에덴에서 죄를 짓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좋지 못한 많은 것들이 없었을 것입니다. 죽음도 없었을 것입니다. 슬픔도 없었을 것입니다. 고통도 없었을 것입니다. 추위와 더위도 없었을 것입니다. 생각해서 온갖 좋지 않은 것들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도 우리가 살아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에녹도 그랬을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정답게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짓게 되자 현재같이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고난과 슬픔의 연속입니다.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이것은 죄에 대한 형벌의 대가였습니다. 불순종한 인간의 대가였습니다.
인간의 창조는 영혼이 먼저 생기고 육체가 나중에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육체가 먼저 창조되고 영혼이 나중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창2:7) 그래서 육체와 영혼의 이원론의 사고는 비성경적인 사고입니다. 육체는 본질적으로 선합니다. 육체는 죄의 원천이 아니었습니다. 육체는 죄의 유혹의 통로는 될 수 있으나 죄의 기원은 사람의 영혼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은 창조의 본래의 모습이 아닙니다. 죽음은 본래부터의 부채(빚)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성을 파괴한 것 즉 죄의 부채(負債)입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는 말씀은 죄로 말미암은 아담에 대한 저주에서 나타나며, 오직 그러한 배경에서만 타당성을 갖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에 있어서 형벌이 집행되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사람의 인격의 독특한 구성이 고려되는 가운데 죽음이 사람의 인격에 선고되었습니다. 따라서 그 판결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흙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사람이 흙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서 땅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가시나무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남자들은 얼굴에 땀이 흘려야 했습니다. 이것이 모두 인간의 죄 값입니다. 멸망해야 하고, 고난 받아야 하고 죽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형벌입니다.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전적부패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전적무능력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죄책을 가지고 있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은 결코 잘나지 않았습니다. 결코 선하지 않습니다. 즉 인간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