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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확증(창세기17:19-22)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약속을 믿어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을 설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생각을 바꾸기 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소견이 잘못되었다 말씀하십니다. 네가 비록 100살이고 사라가 90세지만 결코 아들을 낳으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설득하려고 천군천사를 동원해서 강제로 믿게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미리 일어날 일을 보여 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자신을 믿기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자신들에게 아이가 없었는지를 그들은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특별관리 하신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마치 그들에게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이 신실한 크리스챤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벽을 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받고서 여러 번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현현하셨습니다. 그러나 24년 전에 언약을 받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확증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계속 약속을 반복내지 첨가만 하셨지, 그것이 확실하게 손으로 잡혀지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지 못하는 아브라함에게 낳을 아들의 이름까지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삭과 언약을 세우리라 하셨습니다. 네가 믿지 못하니까 네가 낳을 아들 이삭과 언약을 세우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표징이 되어서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하였습니다.

확증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삭이 태어난다는 것은 보여지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제 아브라함과 사라는 일 년만 있으면 이삭이라는 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내 언약이라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삭이 있습니다. 도저히 믿지 못할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일어난 것들이 우리의 이삭입니다. 그 이삭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우리에게 약속하신 바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수많은 약속상자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 약속 상자를 취하는 것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 약속 상자는 믿는 자에게만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 보물을 수집하고 분류하는 것은 우리들의 이성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견해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궁지에 몰린 히스기야에게 분명히 두려워하지 말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천사 한 명이 185,000명의 앗시리아군을 죽였을 때 확증이 되었습니다. 지금 세상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어제의 우리나라가 아닙니다.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실로 그것들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합니다. 그런데 그 약속들은 너무도 평범하기에 어린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약속을 이루겠다 하십니다. 이 약속들은 지구보다도 훨씬 오래 지속되고 안정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약속들을 탐구하면서 마음속에 아로새겨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17:19-22)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약속을 믿어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을 설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생각을 바꾸기 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소견이 잘못되었다 말씀하십니다. 네가 비록 100살이고 사라가 90세지만 결코 아들을 낳으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설득하려고 천군천사를 동원해서 강제로 믿게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미리 일어날 일을 보여 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자신을 믿기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자신들에게 아이가 없었는지를 그들은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특별관리 하신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마치 그들에게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이 신실한 크리스챤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벽을 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받고서 여러 번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현현하셨습니다. 그러나 24년 전에 언약을 받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확증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계속 약속을 반복내지 첨가만 하셨지, 그것이 확실하게 손으로 잡혀지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지 못하는 아브라함에게 낳을 아들의 이름까지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삭과 언약을 세우리라 하셨습니다. 네가 믿지 못하니까 네가 낳을 아들 이삭과 언약을 세우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표징이 되어서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하였습니다.

확증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삭이 태어난다는 것은 보여지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제 아브라함과 사라는 일 년만 있으면 이삭이라는 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내 언약이라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삭이 있습니다. 도저히 믿지 못할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일어난 것들이 우리의 이삭입니다. 그 이삭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우리에게 약속하신 바를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수많은 약속상자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 약속 상자를 취하는 것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 약속 상자는 믿는 자에게만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 보물을 수집하고 분류하는 것은 우리들의 이성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견해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궁지에 몰린 히스기야에게 분명히 두려워하지 말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천사 한 명이 185,000명의 앗시리아군을 죽였을 때 확증이 되었습니다. 지금 세상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어제의 우리나라가 아닙니다.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실로 그것들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합니다. 그런데 그 약속들은 너무도 평범하기에 어린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약속을 이루겠다 하십니다. 이 약속들은 지구보다도 훨씬 오래 지속되고 안정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약속들을 탐구하면서 마음속에 아로새겨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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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을 믿지 못하는 아브라함(창세기17:17)

17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하는 당연한 생각입니다. 결코 지식도 없으면서 우리의 지식을 초월하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러한 약속과 액션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엎드리면서 속으로 웃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웃음에 대해서 많은 해석이 있습니다. 어거스틴이나 칼빈, 델리취 같은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웃음은 믿음의 눈으로 사라를 통해 이삭 뿐 아니라 메시야가 태어날 것까지 보고 기뻐하였다는 웃음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의심의 웃음이라고 말합니다. 웃음에는 여러 가지 웃음이 있습니다. 기쁨의 웃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회의에 빠진 웃음이 있습니다. 또한 비웃는 웃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비웃는 웃음이었습니다. 즉 의심의 웃음이었습니다.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왜 아브라함이 웃었습니까?

의학상 생리학상 불가능 하다는 것이 아브라함의 판단이었습니다. 자신은 100살이고 사라는 90세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의원들에게 이미 출산 불가능판정을 받았는데 어떻게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후로 아브라함이나 사라의 보기에 기적 같은 일은 아직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모두 아브라함이나 사라 모르게 역사하셨지 공개적으로 하시지 않았습니다. 애굽의 궁중에서 나올 때도 하나님께서 어떠한 조치를 취하셨는지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조카 롯을 구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절대 비밀에 붙이셨기 때문에 기적다운 기적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는 말씀은 너무 과하다고 생각해서 심중에 웃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주의 할 것이 있습니다. 내 견해입니다. 내 이성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소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판단은 지극히 위험합니다. 우리의 소견은 항상 하나님의 생각과 상반되기 때문에 경계해야 합니다.

사사기17:6에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하였습니다. 여기서 소견은 우리의 눈(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의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육적인 눈과 영의 눈입니다. 영의 눈을 떠서 하늘의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영의 눈을 뜨지 못했을 때 자기의 소견대로 할 뿐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의도와 정 반대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니 결과가 좋지 않았더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앞에 있는 분이 아직까지 정확하게 누구인지를 몰랐습니다. 전능하신 분이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거침없이 생각하고 자기의 소견을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아브라함을 출발부터 믿음이 좋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은 성경을 연구하지 않고 결과만을 가지고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직까지도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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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창세기17:15-16)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침묵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30년간이나 노예생활 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침묵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포로에서 돌아와서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까지 약400년간 침묵하셨습니다. 침묵기간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우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외치는 자가 없습니다. 마치 자신의 백성을 유기하시는 듯합니다. 세상의 역사에 그들을 맡기는 듯이 보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13년간 침묵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갈을 통해서 얻은 아들로 인해서 약속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다고 만족했을 것입니다(15:4). 그러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오셔서 아브라함을 개명하시며 열왕과 나라들이 너로부터 나오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할례를 받을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사라의 이름을 개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래를 사라로 바꾸신 이유는 아브라함에게 역사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역사 속에 들어오셔서 역사하십니다. 이미 이 약속은 갈대아우르를 떠날 때에 아브라함에게 이루시려고 작정되어 있었습니다. 사래는 아브라함을 만나서 상당히 고통을 당했습니다. 고향에서 이미 불임여자라고 낙인이 찍혔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65세 될 때까지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아브라함을 따라서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갔습니다. 하란에서 다시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기근을 피하고자 애굽에 갔다가 큰 낭패를 당할 뻔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위기직전에 구출을 받고서 가나안에 돌아온 그녀는 하갈이라는 고통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사래는 고통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이름을 바꾸시라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1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권세[선택의 자유·권리·통치력·권력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세는 어떤 행동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용해 주신 능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 가지의 권리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 권리를 아무에게나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인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초대교회에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나 이방인의 지역에서 나타났던 능력이 오직 그리스도인에게만 나타났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름이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름을 바꾸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너는 이제 그리스도인이라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신분이 바뀐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 주시겠다 하십니다. 성경에 우리를 위한 그 많은 약속을 반드시 이루어주시겠다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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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에서 제외되는 불순종(창세기17:14)

창세기의 저자는 하나님께서 아무리 좋은 약속을 하셨다 해도 그것을 이행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것을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약속은 이행하여야 효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받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끊어지리라 하셨습니다. 이미 주신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세우시고 예외의 규정을 두셨습니다. 할례를 시행하지 않는 사람은 과감하게 언약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언약에서 제외시키실 뿐만 아니라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 하셨습니다. 그 원인은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기 때문입니다.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백성이라고 하는 것은 그 나라의 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집단 내의 유지를 위해서 정한 규범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에게 명령하신 것을 이행치 않을 때에는 과감하게 제외 하십니다. [끊어지리라]는 것은 [추방하다·자르다·제거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의 공동체에서 주어지는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여호수아7:16-21을 보면 아간이 제비 뽑히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아간은 심판을 받습니다. 아간의 인생으로서는 참으로 안된 인생이었습니다. 아간이 가나안땅에 들어오기까지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광야의 어려움과 수많은 전쟁들을 치렀습니다. 백성들과 함께 부푼 꿈을 안고 가나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했습니다. 아간의 죄 값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아이성의 전투에서 패배와 전사자를 내게 만들었습니다. 아간은 이스라엘의 공동체에서 영원히 끊어져 버렸습니다.

빅터 후고라는 그리스도인은 [영국에는 두 권의 책이 있습니다. 성경과 세익스피어의 작품입니다. 영국은 세익스피어를 만들었고 성경은 영국을 만들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영국이 있게 된 원인이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국을 만들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므로 항상 하나님과 우리사이는 열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마음에 이미 할례를 받은 우리의 몸 안에 하나님의 약속이 항상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무리 좋은 약속을 하셨다 해도 그것을 이행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존 오웬은

그리스도는 불신적이고 죄로 가득한 죄인들을 구원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렇게 되려면 반드시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말씀에 역행해야 하며, 또한 자신의 영광을 부인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자기를 통해 하나님께 오는 모든 자들, 오직 그들만을 구원하실 수 있다. 당신이 죄와 불신앙속에 살고 있는 동안에 그리스도는 당신을 결코 구원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언약의 증표를 주셨습니다. 언약하신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항상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불신앙은 언약에서 제외를 당합니다. 불신앙은 신자를 훼방하는 바리케이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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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의 증표(창세기17:10-13)

하나님께서 언약(베리트)을 받을 사람들은 할례를 받으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천국의 공증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할례는 언약에 포함되는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살을 조금 도려내는 표시로 인하여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생기고 언약의 확신이 아브라함과 그의 모든 후손들의 마음속에 강렬하게 불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표징은 그 의미가 굉장히 깊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것을 상속받는 일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복지관을 수시로 이용하는 카드입니다.

할례는 이스라엘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오늘날 인류의 수억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런 저런 목적으로 살을 도려내는 의식을 합니다. 이스마엘의 후손들도 이 의식을 합니다. 또한 남아메리카의 부족들과 오스트레일리아의 부족들, 남태평양 어떤 부족들도 이 의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도 이를 실시했습니다. 따라서 할례를 행한다고 해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할례를 시행코자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이것에 의해 그 후 계속될 모든 세대의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믿도록 하는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할례를 반드시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할례는 백지수표에 서명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카드의 비밀번호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확실한 증표입니다. 할례라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우리의 몸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언약이 우리의 살에 있기를 원하십니다.

하늘창고에는 우리가 사용해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생에서도 사용하고 후에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사용해야 할 것들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그리스도인이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해서 모두 혜택을 입는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속한 모든 사람이 약속의 대상이었지만 할례를 받는 사람만 효력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즉 지금은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 곧 할례자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 마음에 이미 할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할례는 아이를 낳은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할례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표시로 바꾸어졌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우상을 섬기던 너희가 마음의 할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할례의 효력은 두 가지입니다. 직접적으로는 아브라함과 같이 당대에 받은 사람들입니다. 또 하나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효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적용이 되는 말씀입니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하였습니다.

12절을 보면 우리말 성경에는 번역이 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라켐]즉 너희를 위하여 할례를 받으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13절에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반드시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그래야 언약이 영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할례의식을 행하라는 것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도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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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을 지켜라(창세기17:9)

아브라함은 대단히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항상 하나님께서 지켜보시고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어디를 가나 하나님의 눈동자가 그를 따랐습니다. 애굽에 가든지 다시 가나안에 들어오든지 항상 하나님께서 동행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러한 마음을 아브라함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힘이 있을 때는 앞날에 대하여 꿈에 부풀어 있게 됩니다. 기대할만한 것들이 우리 안에 충분히 있기 때문입니다. 유력한 사람으로부터 확실한 약속을 받은 사람이라면 더할 것입니다. 그런데 푸른 꿈이 차일피일 미루어지다가 좋은 시절이 모두 지나가버렸다면 그보다 큰 낭패는 없습니다. 우리가 출세를 하고자 결심을 하고 기다렸는데 세월이 훌쩍 흘러 정년퇴임할 때가 되어버렸다면 모든 것을 접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따금 오셔서 자꾸 약속을 상기시키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별로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개명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과 사라는 점점 나이가 들고 점점 쇠약해졌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소망이 없는 아브라함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 언약을 지키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말 성경대로 푼다면 하나님의 언약을 잘 보살피라는 말씀인데 하나님께서는 24년전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에 말씀으로 약속을 하셨습니다. 많은 민족이 네게서 나오고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한 평의 땅도 없이 떠난 그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하사받을 것임을 명백히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에게 내 언약을 지키라는 말씀은 내가 네게 언약한 것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베아타 에트 베리티 티스모르)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면밀하게 분석해서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흠과 티 같은 불순한 것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죄 많은 우리는 그 앞에 감히 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거룩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음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언약(베리트)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능동적이어서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손에 쥘 수 있는 실제적인 약속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접한 우리에게 복이 되는 것은 아브라함에게만 언약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너와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말씀을 찾아야 합니다. 찾은 말씀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전국을 뜨겁게 달구는 로또복권을 사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찾고 그 말씀을 굳게 지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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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을 주시는 하나님(창17:6-8)

우리 말 속담에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갈증이 나서 물을 마시려고 우물에 갔으면 거기에서 나오는 생수를 달라고 해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숭늉을 달라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이치에 맞지 않거나 성급한 결과를 요구하는 경우에 적용되는 속담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대체적으로 이 속담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이 속담이 맞지 않습니다. 세상의 이치와 결과를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daom] daom]Bi *~t]ao ytirEp]hiw])심히 번성케 하리라”를 반복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계속 카드를 내미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라들을 아브라함에게 주신다는 약속을 하십니다. 모든 왕들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리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나온 왕들이라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아브라함으로 인한 나라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온 지구에 수없이 많습니다. 많은 왕들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찍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나라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성장이 계속 됩니다. 나라가 튼튼합니다. 국민들의 수준이 올라갑니다. 똑같은 땅인데 옥토로 만들어주십니다. 똑같은 하늘인데 이른 비와 늦은 비로 때마다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이 7절에 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에게만 약속한다면 아무리 좋은 약속이라 해도 우리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실 뿐만 아니라 네 대대 후손에게 세우시겠다 하셨습니다. 여기서 후손은 육적인 이스라엘 후손만이 아닙니다. 후손은 혈육관계를 넘어선 후손입니다. 갈3:29을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아브라함의 대대 후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가정마다 개인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이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일시적인 복이 아닙니다. 영원한 기업입니다. 아브라함 당대에 끝나는 복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서 비롯된 기업은 그의 후손 대대로 유효한 기업입니다.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인 우리에게 아주 유효한 기업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의 소유는 아직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아브라함은 그 땅에서 나그네였습니다. 하지만 이 땅이 아브라함의 소유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현재 가나안 사람이 주인이지만 잘 관리했다가 때가 되면 아브라함에게 자동으로 소유권이 넘어간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토지등기부에 가나안이 아브라함의 소유라는 말씀입니다. 기업[아훗자]이란 소유한 자의 재산입니다.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재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브라함이 살고 있는 땅을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엘로힘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엘로힘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금 거하는 이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말씀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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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름을 바꾸시는 하나님(창세기17:3-5)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네 자신을 고치라고 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네가 믿음이 없다 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든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납작 엎드려 묵묵히 하나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야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복된 자는 여호와의 율법(토라; 가르침)을 즐거워하는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목숨을 겁니다. 목숨을 걸고 말씀을 지킵니다.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인 순종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말씀을 믿고 그대로 시행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7:24-2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많은 무리들을 가르치신 후에 “나의 이 말을 듣고”라는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와 행치 않는 자에 대한 결과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마치 반석위에 집을 지은 것이나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가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더라도 기초가 튼튼해서 절대로 넘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수많은 억수같은 비와 창수와 태풍이 쉬지 않고 달려듭니다. 몰아칩니다. 몰려옵니다. 이때에 우리를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름을 바꾸어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아브람에게 실제적인 카드를 사용하십니다. 그 비밀번호가 “언약을 세우니”입니다. 약속의 확증을 아브람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제발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살았든지 간에 너와 언약을 세우겠다 나를 제발 믿어다오 라는 하나님의 부탁이 “내 언약을 세우니”입니다. 사실 이 약속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아브람이 열국의 아비가 된다는 것은 많은 나라의 아비라는 뜻입니다. 지금 아브람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될지라(하야)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전문용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대로 시행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수 있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의 진원지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시면 우리에게 불가능이 없습니다. 못하실 일이 없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이름을 개명하십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개명하였습니다. 대체로 이름을 개명하는 데는 본인이나 본인과 관련된 사람의 소원이 다분하게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개명했다고 해서 그 이름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름대로 살지 못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이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을 창조하신 분이 개명을 하신다면 양상이 다릅니다. 곧 이름대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람의 이름을 바꾸는 것은 새로움을 부여하시고자 함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통된 새로운 이름을 주셨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에게 새로운 신분의 이름입니다. 현재의 어떠한 상황도 불문하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새로움의 길을 열기 위해 이름을 개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우주적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원적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천국을 비자 없이 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마귀가 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만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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