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의 아들에 관한 복음(로마서1:1-3)
peri; tou' uiJou' aujtou'/페리 투 휘우 아우투/ 그의 아들에 관하여. 교회란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로 통일되어 있는 특수한 곳입니다. 바울사도나 모든 사도가 전하는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에게서 한 발자국이라도 옮겨가는 것은 복음에서 심히 이탈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큰 교회당을 가지고 유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바알을 숭배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하나님의 살아있고 명백한 형상이기 때문에 그분만이 우리의 전 신앙의 대상이요 중심입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 지혜를 찾는 것은 무모하고 완전히 정신 나간 사람들의 행태입니다(Calvin). 그리스도인들은 Warfield의 주장대로 “초자연주의적(Supematurlistic) 구원개념”과 자연주의적 구원개념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자연주의적 구원이란, ‘자력구원론’(Self-Salvation)이라 불리는 것으로서 교회는 이러한 사상을 최초로 주장한 5세기 초 영국의 수도사 Pelagius의 이름을 따라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라고 부릅니다. 이 사상은 사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은 타고난 능력으로 자신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초자연적 이해는 힙포의 주교인 Augustine의 이름을 따라 어거스틴주의라고 하는데, Augustine은 Pelagius의 가르침을 신랄하게 반박했습니다. 절대로 인간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며 영혼을 구원하는데 필요한 모든 권능은 하나님께로 부터라고 했습니다. 어거스틴주의는 제16차 카르타고회의에서 펠라기우스주의를 정죄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승리함으로써 기독교는 죄인을 위한 종교로 인식하였습니다. 그 결과 구원이 필요 없는 의인들에게만 적합한 완전한 윤리체계로 전락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점에 관해서 세계의 모든 종교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만 ‘초자연주의적’이거나 ‘어거스틴주의적’이므로 이런 의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론적 신앙에서 ‘어거스틴적’이어야 합니다.
Augustine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을 통한 은혜에 의한 구원교리와 교회와 성례전을 통해 베풀어지는 구원교리입니다. 전자는 그의『고백록』속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표현 속에서 그 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제가 더 이상 이 세상의 어떤 약속을 추구하지 않고 당신을 향하도록 저를 이끄셨습니다(8.12). “당신의 은사에 의해 저는 스스로 품어온 뜻이 아니라 당신이 품어 오신 뜻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사역이었음을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교회와 성례전을 통해서 베풀어지는 구원교리도『고백록』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당신의 행위를 인정하면서 믿음으로 기뻐하면서 당신의 의지의 행위를 인정하면서 믿음으로 기뻐하면서 당신의 이름에 찬양을 돌립니다, 하지만 이 믿음은 저의 지난 죄에 대해 안심케 해주지 못하곤 했습니다.”(9.4). 그 후에 Augustine은 Ambrosius에게 세례를 받고나서야 “과거의 삶에 대한 모든 걱정이 사라졌습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Warfield는 종교개혁에 대해 개혁교회 입장에서 공정하게 평가했습니다. Warfield는 protestant 종교개혁을 Augustine의 교회론에 대한 은총론의 반역이라고 보았습니다. “protestant 종교개혁은 성례(sacraments)를 통하여 은총이 전달된다고 보는 생각에 대한 반란이었고, 교회의식의 좁은 틈을 통해서만 예정이 조금씩 실현된다는 생각에 대한 반란이었다” 그 반대로 종교개혁은, 인간이 버림받아서 어두움과 악한 것에 매여 있는 상태에 처해 있으며, 따라서 은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Augustine의 생각을 확언한 것이었습니다.
주목해야 할 점은 펠라기우스주의가 418년에 열린 회의에서 정죄되었습니다. 그러나 소멸되지는 않았습니다. 항상 사탄은 교회를 계속 공격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Pelagius의 가르침에 동조하면서 지하로 숨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형태를 바꾸거나 교회의 정죄를 피할 만큼만 수정하면서 교회를 괴롭혔습니다. 이단들이 바로 그렇습니다. 유사하게 교회를 표방하면서 못된 교리를 전파했고 전파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행위를 강조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공격합니다. 이러한 못된 것들을 받아들여 구원을 위한 선행적 은총의 필수성을 거부하는 半펠라기우스주의로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半펠라기우스주의는 529년에 제2차 오렌지회의에서 거부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회의는 半펠라기우스주의에서 교회를 건져낸 반면에, 교회를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해 선행적 은총의 불가항력성을 거부하는 반반(semi-semi) 펠라기우스주의로 인도했습니다. 이 신학사상은 Gottschalk/고트샬크, Bradwardine/브래드워딘, Wycliffe/위클리프, Hus/후스와 같은 사람들의 시대를 지날 때까지 계속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Aquinas에 의해 체계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트렌트공의회(1545년)에서 반(反)종교개혁과 연합하여 Roman-Catholic의 공식적 입장으로 선포되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Roman-Catholic의 神人(신인) 공조적 구원론(synergistic)을 거부하고, 후기 어거스틴의 탁월한 통찰과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바울의 영감어린 통찰로 돌아갔습니다.
펠라기우스주의는 어떤 형태를 취하든지, 근본적으로 오직 그리스도-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라는 종교개혁의 원리에 대한 위협으로서, 인간은 누구나 적어도 자신을 구원시킬만한 분량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비록 처음부터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최초의 은혜에 협력하여 그와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므로, 교회는 언제나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라는 성경의 원리가 여전히 구원의 유일한 궁극적 근거라는 것을 보증하는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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