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로마서1:15-17)
하박국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갈라디아서3: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히브리서10: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소위 기도 많이 한다고 하는 사람들, 사람 많은 교회에서 목회하는 목사들에게서 더러 나타나는 현상이 자신들은 완전한 줄 압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목회의 폭이 넓으면 비례해서 자신들의 모든 것들이 완전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혹 있다면 세상의 종교에서나 생각할 법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에는 그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칭 의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신성모독을 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절대로 의인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롭다 하심이란 말을 사용한 구약의 주된 단어군은 qd'x;/tsâdaq에서 왔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dikaiovw/dikaiôo입니다. Murray는 법적인 의미를 갖는 기본형 qd'x;/tsâdaq가 Qal(능동형) Hiphil(사역형) Piel(강의형)으로 널리 쓰인다고 했습니다. 또한 Hihpael(재귀형)으로 한번 쓰이고 있으나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70인역 성경과 신약성경에서 dikaiovw가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Leon Morris는 “-ovw(오오)로 끝나며 도덕적 특질을 언급하는 동사들은 선언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선언적인 의미이지, ‘-게 만든다’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이지, ‘의인되게 만든다는 것’이 아닙니다. 의롭다 하심이 주관적인 변화에 반대되는 객관적인 법정적 심판이라는 사실을 다음의 구절에서 증명합니다.
신명기25:1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시비가 생겨서 재판을 청하거든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Hiphil)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 의인을 의롭다 함에 있어서 재판장들이 그 사람을 의로운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욥기32:2 람 족속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노를 발하니 그가 욥에게 노를 발함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Piel) / 엘리후에 따르면 욥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의롭다 했다는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것인데 즉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잠언17:15 “악인을 의롭다 하며(Hiphil)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 이것은 분명히 그 땅의 재판장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뇌물 때문에 악인을 의롭다고 선언하거나 의인을 정죄하는 그 재판장은 여호와를 분노케 했습니다.
누가복음7:29 “하나님을 의롭다하되” 즉 그들은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다고 선언하거나 인정한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의롭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의롭다하심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죄인들을 의롭다 하신다는 ‘복된 소식’입니다. 그래서 의롭다 하심은 복음의 본질이요 핵심입니다. 의롭다하심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이지, ‘어떤 사람의 행위로 말미암는 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말은 조심해야 합니다. “마치 내가 죄를 짓지도 않은 것처럼 나를 보신다”라는 말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Roman-Catholic의 교리를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Roman-Catholic은 트렌트 공회(Council of Trient/1547)를 인용하는 Catholic교리문답(1994)은 “의롭다 하심은 죄의 속함일 뿐만 아니라 내적인 사람의 거룩하게 하심과 새롭게 하심”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또한 그것은 “의롭다 하심은 세례에서 시여되며(para. 1989)”그것으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비의 능력에 의해 우리를 내부적으로 의롭게 하신다(para. 1992)”라고 말합니다. 즉 이들이 말하는 의란 하나님의 의와 어느 정도 있는 인간자신의 의가 합해져 인간을 의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있어서 의란 우리 자신의 의가 아니라 우리와는 동떨어진 우리 밖의 의입니다. 우리의 노력 대가로 얻은 의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어진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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