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반대하는 자들의 변명(로마서3:1-8)
5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6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그림물감에서 노랑색을 하얀 백지에 칠하면 그리 선명하지는 않습니다. 하얀색인지, 노랑색인지, 멀리서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바깥에 검정색을 칠하면 노랑색이 확연히 돋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검정색이 노랑색을 두드러지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3:4절은 시편51:4절을 인용한 구절입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바울사도는 사람은 다 거짓되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직 참되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편51:4을 인용했습니다. 다윗은 내가 주께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고 했습니다. 시편51편은 표제에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시편51:3절에서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를 y['v;p]/pĕshâʽay/‘페샤아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간음죄(우리야의 아내 밧세바), 살인죄(우리야를 죽게 한 죄)를 졌습니다. 그런데 ‘반역죄’를 저질렀다고 고백합니다. 사람은 어떻게 하든지 죄를 삭감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께 반역죄를 졌다고 고백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란 복합적으로 나타나서 어떤 결과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죄란 서로 얽혀서 이렇게 나타나기도 하고 저렇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죄란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 항상 숨어있습니다. 그래서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모릅니다. 바울의 반대자들은 억지스러운 말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말하기를 “당신(바울)의 말이 사람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더욱 날카롭게 드러낸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틀림없이 그 전능하신 분께서는 그러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기뻐하실 것이 아닌가요? 그러면서도 사람에게 진노를 내리신다면 하나님은 불의한 분이 아니요?” 이에 대한 바울사도의 말은 “결코 그렇지 아니하다”고 분노에 찬 말을 함으로써 사악한 생각을 타파하고 있다. “무엇이라고? 하나님께서 불의하시다니 네가 어찌 감히 이런 말을 하느냐?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살 자격이 있으시다. 실제로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불의하실 수가 있느냐?
바울을 시기하고 반대하는 자들은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는 것입니다. 이들의 논리는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임한다면, 죄를 많이 지을수록 은혜가 넘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즉 선을 이루기 위해서 악을 행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들은 마치 바울이 사람은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이 “너 마음에 원하는 대로 계속 죄를 지어라. 그러면 은혜가 더 크게 작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바울사도는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다”고 했습니다. 건전한 교리를 교묘하게 파고들어 왜곡되게 말하는 자들에게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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