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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지 못하는 인간(로마서3:9-18)

 

로마서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시편14: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우리들은 어떤 사람들이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말들을 종종 듣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별것도 아닌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대부분 이 세상에 속해 있는 것들을 남보다 조금 안다고 해서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호들갑을 떨어댑니다. 이렇게 해서 깨달았다고 하지만 실상 그 자신의 영혼에는 아무런 소득이 없는 예가 허다합니다. 특히 깊이 깨달아서 종교의 교주들이나 창시자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자신의 깨달음이(?) 오히려 걸림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는 하나님과 깊이 통달했다고 하는 유대인에게 말하기를 깨닫는 자가 없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시면서 지각이 있는가 하고 살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시지만,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창세기4장을 보면 가인의 후손들이 기록되었습니다. 즉 사람의 자손들입니다.

 

16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17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18 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19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20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1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22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이었더라


창세기5장을 보면 셋의 후손들이 기록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들의 후손들입니다.

 

1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3 아담이 일백 삼십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4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5 그가 구백 삼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6 셋은 일백 오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7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 칠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8 그가 구백 십 이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9 에노스는 구십세에 게난을 낳았고 10 게난을 낳은 후 팔백 십 오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1 그가 구백 오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12 게난은 칠십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13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 사십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4 그가 구백 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15 마할랄렐은 육십 오세에 야렛을 낳았고 16 야렛을 낳은 후 팔백 삼십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7 그가 팔백 구십 오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18 야렛은 일백 육십 이세에 에녹을 낳았고 19 에녹을 낳은 후 팔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0 그가 구백 육십 이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21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23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25 므두셀라는 일백 팔십 칠세에 라멕을 낳았고 26 라멕을 낳은 후 칠백 팔십 이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7 그는 구백 육십 구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28 라멕은 일백 팔십 이세에 아들을 낳고 29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30 라멕이 노아를 낳은 후 오백 구십 오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31 그는 칠백 칠십 칠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32 노아가 오백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이들 자손들이 혼합됩니다. 가인의 후손들과 셋의 후손들이 혼합되어버립니다. 셋의 후손들이 가인의 후손들과 합해집니다.

창세기6:1-2 1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경건했던 사람들이 아름다운 여자들을 보자 정신이 없었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져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따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경건했던 자들이 너도나도 자기들의 좋아하는 자들로 아내를 삼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경건했던 셋의 후손들이 정욕적으로 해결하려고 경건하지 않은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서 아내를 삼은 것입니다. 문제가 붙은 것입니다.

창세기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신(성령)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육체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은 사람에게 주어진 생명의 신적인 영, 즉 육체적, 윤리적, 자연적, 영적인 생명의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그의 성령을 사람에게서 거두신다는 말씀입니다. ‘육체가 됨이라’는 사람들이 그들의 범죄와 배신으로써 자신들이 육체가 된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능력이 결여되고 있는 육신과 하나님의 영이 논쟁하는 것은 헛수고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육체에 맡겼습니다. 그리하다보니 성령의 지배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점점 그들의 생활은 하나님의 목표하신 것에서 후퇴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점점 벗어나버렸습니다. 더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짐승같이 변해버렸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두 잊었습니다. 오히려 잊으려고 애를 썼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쾌락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육신적인 정욕에 사로잡혀서 자신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몰랐습니다. 한 사람도 깨닫는 자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소위 도통(道通)했다고 하는 사람들, 무엇을 깨달았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깨달았다는 것이 하나님의 형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세상은 변화무쌍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과학의 정상에 있는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져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람의 따뜻함을 찾기가 여간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정신없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자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탄식하는 것입니다. “깨닫는 자도 없고…” 큰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래도 살 수 있는 사랑을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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