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무익한 인간(로마서3:9-18)
로마서3:12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Renaissance는 14세기에서 16세기에 유럽 문명사에 나타난 문화운동입니다. Renaissance는 학문 또는 예술의 재생, 부활이라는 의미입니다. 고대의 Greco-Roman 문화를 이상으로 하여 이들을 부흥시킴으로써 새 문화를 창출해 내려는 운동입니다. 사상, 문학, 미술, 건축 등 다방면에 걸친 운동입니다. 5세기 Roma제국의 몰락과 함께 중세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Renaissance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야만시대로 구분했습니다. 인간성이 말살된 시대로 파악했습니다. 그리하여 고대의 부흥을 통하여 이 야만시대를 극복하려는 운동이었습니다. 중세 1000년간 Roman-Catholic에 의하여 인간성이 말살된 시대로 보고 거기에서 벗어난 운동이 Renaissance입니다.
Renaissance는 철저하게 인간본위의 운동(movement)이었습니다. 이때에 나온 문학이나 미술, 음악 등의 표현은 인간을 아름답게 묘사하거나 표현했습니다. 억압되었다 터진 모든 분야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오다시피 터져 나와 그야말로 인본주의의 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내 이것이 아니다싶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다시 떠나고 싶었습니다. 탈(post)출하고 싶었습니다. 소위 근대라는 16세기 이후의 과학기술과 계몽사상에 근거한 인본적이고 이성적인 삶의 양식이 지배하는 이상한 시대(modern)를 떠나고 싶었습니다. 이른바 postmodernism입니다. 자신 나름대로 현시대가 마음에 맞지 않아 탈(post)하고 싶은 것입니다. 세계 제1차대전전에는 사람들이 온통 utopia사상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깨버린 것이 세계제1차대전이었습니다. 인간본위의 utopia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결코 선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의 사상은 그 시대상황에 따라 왔다 갔다 했습니다. 신학사상도 여러 가지가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초월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그 초월성을 다시 재건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내재성을 인정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무익하다’ ajcreiovw/achreiôo는 ‘무용하게 하다’입니다. 지팡이가 손상되었을 때, 그 지팡이는 더는 쓸모없어져 버립니다. 이럴 때 ‘아크레이오오’라고 말합니다. 비유적으로는 ‘부패(타락)하게 되다.’입니다. 한마디로 이전에는 어땠을지 모르나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것입니다. 부패한 음식은 아무리 값이 비싸고 아까워도 버려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상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아무리 큰 고부가가치를 지닌 사람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익한 인간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들의 선행에 대해서 청교도 목사인 William Gurnal은 거듭나지 않은 도덕가의 삶은 그가 아무리 깨끗하게 살려고 해도, 펜에 머리털이 끼어 있으면 아무리 잘 쓰려고 해도 이중으로 흐린 글씨밖에 쓸 수 없는 것처럼, 흠이 있는 삶이 될 수밖에 없다. 그의 성실함은 이 세상에 사는 다른 사람들의 그것보다는 낫지만, 도래할 세상에서 중생한 사람들이 가지는 성실함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을 행하는 사람들은 없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범죄이전의 사람이 과연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의 논증은 복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나라가, 모든 사람이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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