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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믿음(로마서4:1-8)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4:1-3)

 

흔히 지성이 있다. 종교성이 있다. 종교인이다.’라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것이 행위입니다. 그들 조상들의 가르침을 본받자는 것입니다. 또는 과거의 철인들이나 명사들의 가르침을 좇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전면에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거기에 매료되어 버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들이나 소위 말해서 凡人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곧 유명해집니다.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조상들을 그렇게도 끔찍이도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평하고 존경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대단히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어서 그것을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신 것이지, 어떤 것을 행함으로써 의롭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창세기15:6을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말합니다. 창세기15장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나 교회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믿음에 관한 중요한 진술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15장에서는 믿음과 계약이라는 것을 병행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와 함께 무자한 상태에서 말씀에 의해 부름을 받습니다.

 

창세기11:30 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창세기12: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아브라함의 여정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땅과 자손들을 약속합니다. 그의 나이 75이나 되었지만 자녀 하나 없는 상태에서입니다. 그런데 그 불임은 15장에 와도 계속됩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고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약속만 있었지, 여전했습니다. 결국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분명히 성경에 약속되어 있는데, 희망을 품고서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삶의 정황들이 약속과는 많이 어긋납니다. 많이 뒤틀리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童話처럼 바로 이루어지거나 나타나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들은 많이 실망하고, 낙심하기도 하고 때로는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믿음이 성장합니다.

 

창세기15:1을 보면 아브라함이 두려워했습니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라함이 왜 두려워했습니까? 14장을 보면 롯을 구출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때 그들이 아브라함을 반격할지 몰랐습니다. 아브라함은 날마다 두려워했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모두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 말라는 것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창세기15:2-3 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대답입니다.

 

창세기15:4-5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약속을 믿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런 아브라함을 그의 의로 여기십니다.

 

창세기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두려워했다arey:/yārē’/야레는 두려워하다, 경외하다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성경에서는 두려움의 감정, 존경이나 경외, 의로운 행동이나 경건이라는 영역의 단어입니다. 두려움에 관한 예들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의 불을 보고 두려워했을 때입니다.(5:5). 또한 유대인들이 블레셋인들의 동원소식을 듣고서 미스바에서 두려워했을 때 야레를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두려움은 복합적이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연합국의 침략에 대한 두려움, 이 나이 먹도록 자식하나가 없어서 종에게 모든 것들을 물려줄 것을 생각하니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로 나는 너의 방패요 상급이라는 말씀입니다. 방패란 말할 것도 없이 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입니다. 상급/rk;c;/sākār/사카르, 임금, 보수라는 뜻입니다. 상급이란 당연히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서 상급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일한 보수로 마땅히 받아야 할 삯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물입니다. 왕이 위험을 무릅쓰고서 자신의 일을 수행한 신실한 종에게 주는 특별한 표창이 상급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무자한 상태에서 맞서서 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럴 때에 여호와의 상급은 희망입니다. 여러 고통 속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근거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믿음은 성취의 원인이 아닙니다. 만일에 믿음이 성취의 원인이라고 하면 상급이란 마땅한 보수가 되어버립니다. 내가 하루에 열 시간씩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주시더라이럴 경우에는 상급이 은혜가 아니라 보수에 속합니다. 이런 목사들, 이런 성도들이 더러 있는데, 이들은 자기의 의를 쌓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자기의 상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6절을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 대두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어떤 업적이나 도덕적인 결단으로 보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즉 믿음을 인간의 공적이나 행위에 의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고 그 계시를 받아들이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하고, 내가 이렇게 했으니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자신의 어떤 행위를 내놓고 대드는 신앙이 아닙니다. 오직 고백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된다는 것은 인간 피조물에게 새로운 미래를 신뢰하게 하는 것입니다.

 

Walter Brueggemann은 하나님의 의의 개념이 모든 主義(-ism)를 종결시킨다고 했습니다. 道德主義(moralism), 獨斷主義(dogmatism), 敬虔主義(pietism), 實存主義(existentialism), 實證主義(positivism), Marx主義(Marxism), 資本主義(capitalism), 人本主義(humanism) 등은 항상 현재를 통제하려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의는 새로운 탄생을 위하여 현재를 통제하려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믿고 행하는 것은 약속을 지탱하는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아브라함이 어떤 행위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다면 아브라함은 자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서 받아들여 의롭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성도들이나 하나님앞에서 자랑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삯이 아니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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