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로마서4:18-25)
성경은 다른 세계에서 이 세상으로 들어온 하나님 나라의 법전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하나님나라의 일반적인 체계입니다. 성경에는 거룩한 삶에 대한 완전한 규칙입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영광된 삶에 대한 확실한 약속 등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육신적으로만 잘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구원을 위해서 성경을 주셨습니다.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에 무죄상태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청교도인 John Flavel은 성경은 우리에게 가장 나은 삶의 방식이 무엇이고, 가장 고상한 경험이 무엇이며, 가장 편안하게 죽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해석한 설교는 두 세대를 잇는 다리역할을 합니다. 아브라함과 오늘의 시대를 연결시키는 가교역할을 설교가 합니다. 바울사도는 유대인들을 설득합니다. 유대그리스도인들에게도 설득시키고 있습니다. 이방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설득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함을 받는다고 지루하고 길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설득함은 수백년 내지 최소한 천년 이상을 잘못된 율법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한번 머리에 어떤 것을 새겨버리면 그것을 지우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그러한 내용이 오래도록 뇌리에 박혀 있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반복적인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신념을 고친다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類比/유비라는 말은 맞대어 비교하는 뜻입니다. 바울사도는 당시 아브라함과 바울시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수천 년 전의 아브라함과 오늘의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그만큼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만 의로 여기신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바울시대도 그리고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의로 여기심 받은 그대로 똑같이 대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2000년 전의 예수님과는 더욱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어도 과거로 치부되지 않습니다. 遡及適用소급적용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다시 사심은 우리에게 있어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을 뛰어넘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없으면 복음이 아닙니다.
‘우리 범죄 함을’paraptwvmata hJmw'n/파랖토마타 헤몬에서 범죄/paravptwma는 ‘진리나 정도에서 벗어남 또는 이탈함’입니다. ‘파랖토마’는 비유적으로 인간을 타락시키고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위치를 상실하게 하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하지 말라고 한 것을 기어코 범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의도에서 심히 벗어난 것이 죄입니다. 그 범죄한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도록 하나님께서 내어주셨습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지옥에서 건짐을 받지 않았다면, 영원한 형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예수님의 은혜로 우리가 건짐을 받았습니다. 건짐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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